한국적인 것은 뭘까. 혹은 한국화한다는 것은 뭘까. 두기봉 감독의 <마약전쟁>(2013)을 리메이크한 이해영 감독의 <독전>을 보면서 범죄조직에 몸담고 있는 남자들이 모여 룸살롱에 가는 장면이 없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그것만으로도 감격한다는 사실이 서글프긴 하지만, 어쨌건 왜 이 영화에는 범죄자들이 어떤 식으로든 유흥을 즐기는 장면이 없는가. 원작은 물론 <독전>이 다루는 이야기, 즉 마약조직을 소탕하려는 경찰이 약점 잡힌(혹은 변심한) 조직원을 앞세워 조직 계보의 꼭대기를 치려는 상황에서 이미 경찰이든 범죄자든 딴짓을 할 수 없을 만큼 급박한 처지에 놓였을 수 있다. 혹은 애초에 유흥 따위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는 남자들을 다루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지난 몇년간 한국에서 소위 한국형 누아르를 표방하며 홍콩 누아르에 기반해 만들어진 영화들에서는 남자들이 유흥을 즐길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주어졌기 때문에 이를 마음껏 묘사할 수 있었던 것일까. 물론 아닐 테다. 이를 단순 비교해보더라도 두기봉 감독(으로 대표되는 홍콩 누아르) 영화가 이해영이란 필터링을 거쳐 탄생한 <독전>은 한국 범죄영화를 둘러싼 어떤 전형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한다는 인상을 받게 하는 데 충분한 단초를 제공한다.
이해영 감독은 범죄조직간의 암투 내지 사나이들의 연대는 결코 찾아볼 수 없는 영화를 만들어왔다. 전작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2014)은 남성 캐릭터 자체가 발을 디딜 공간이 없었다. 영화의 후반부 일본군 캐릭터가 등장해 주란(박보영)을 향해 총을 쏘아대지만 말 그대로 탕탕탕 수준으로 몇발 정도 거들 뿐 영화가 보여주는 스타일이나 메시지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 캐릭터였다. 하지만 <독전>에는 권총과 마약을 수반한 폭력 장면이 등장할 수밖에 없다. 또 복수와 배신의 정서로 똘똘 뭉친 인물들이 서로를 물고 뜯는 과정도 필요하다. 이해영 감독에게 이는 한번도 만져본 적 없는 재료들이다. 마초적인 세계를 묘사하는 데 익숙하지 않거나 관심을 보이지 않던 감독이 장르의 전형 혹은 한국형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시도를 할 때, 그럼 영화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게 될까.
<독전>의 이야기를 끌고 가는 캐릭터 원호(조진웅)와 락(류준열)의 관계는 원작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한명은 형사, 한명은 마약 조직원이다. 락은 위기가 발생한 조직의 틈새에서 배신감에 사로잡혀 원호를 도와준다. 아니, 도와주는 척한다. 마약반 형사 원호가 조직의 최종 보스인 이 선생이란 인물을 잡으려면 당장 몇 시간 후에 있을 중국 마약조직과의 거래를 락과 함께 무사히 성사시켜야만 한다. 호텔 스위트룸에서 벌어지는 이 장면은 일종의 역할 바꾸기로, 두 조직간의 보스들이 직접 호텔에서 대면해 거래하는 상황에서 서로의 얼굴을 모른다는 맹점을 역이용한다. 원호는 이 선생 조직과 거래하려고 한국을 찾은 길림성 마약조직 보스 하림(김주혁)을 대할 때는 락과 함께 이 선생 조직의 중간 보스인 척 연기하고, 하림을 만나러 온 이 선생의 부하 선창(박해준)을 만날 때는 길림성에서 방금 도착한 거물급 보스 하림의 행세를 하게 된다. 두기봉 감독은 이 역할 바꾸기 시퀀스를 통해서 마약조직을 일망타진하겠다는 경찰의 필사의 의지를 쏟아내듯 보여준다. 조직원을 제대로 속이기 위해 보스의 모습을 그대로 따라 연기하는 <마약전쟁>의 뢰 형사(순홍레이)의 모습에선 범죄자를 잡겠다는 의지 외에 다른 사심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하지만 <독전>의 원호는 눈앞에서 미지의 인물 하림을 만났을 때 그에게 압도당하는 것처럼 보인다. 원호 앞에서 마약을 흡입하고 애인과 함께 이상한 행동을 마구 쏟아내는 하림의 존재감은 순수악을 상징하는 조커 같다. 때문에 자신이 이 선생의 부하 선창 앞에서 하림 행세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원호는 당황하고 만다. 연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그 자신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힌 나머지 원호는 선을 넘게 되고 혼란스러워한다. 그런데 사실 영화가 진짜로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원호의 혼란을 옆에서 지켜보며 감정이입(“방금 그거 꿈꾸신 거예요”)하는 락의 혼란스러움이라는 것이 나중에야 밝혀진다. 덤으로 락의 존재를 교란시키기 위해 등장했던, 그리고 마치 <독전>은 원작과는 다른 노선을 간다고 선언하듯 등장했던 브라이언 이사(차승원) 역시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을 겪게 된다. 그 때문에 스스로 이 선생 행세를 하면서 조직을 장악하려던 그가 이 선생의 존재감에 취해 실수를 저지르고 만다.
<독전>의 남자들 대부분이 마치 병처럼 앓고 있는 정체성의 혼란이란 테마는 그 출처를 <마약전쟁>을 경유해 <무간도> 시리즈 이전까지도 거슬러 올라가게 만든다. 하지만 혼란스러운 남자를 다루는 데 있어서 <독전>은 같은 뿌리를 지닌 여타의 한국형 누아르영화들과는 분명 다른 노선을 취한다. 즉, <독전>의 남자들에게는 고독의 여유가 허용되지 않는다. 철저히 대립함으로써 끝을 향해 사실상 연대하는 원호와 락의 관계를 묘사하는 데 있어서 어떤 여유도 제공하지 않으면서 오직 지구 끝까지 쫓아가 잡고 말겠다는 감정만 오롯이 남겨둔다. 그 과정에서 유흥은커녕 하다못해 맥주 한잔 마실 여유도 없고(<프리즌>), 담뱃불에 불을 붙이며 신세를 한탄하거나(<신세계>), 문득 자신의 손에 묻은 소변 냄새를 맡거나(<무뢰한>), 선후배 사이의 질긴 악연에 번뇌하며 총구를 겨누는(<아수라>) 등의 남성성을 전시하는 컷이 거의 전무하다시피 한다. 같은 맥락에서 밤낮없이 범죄자를 쫓는 마약반 형사들의 모습을 보여줄 때도 으레 등장할 것만 같은 생활에 찌든 모습이나 가정을 돌볼 여유가 없음을 과장해서 보여주는 다분히 한국적인 경찰조직 풍경을 보여주는 데도 별다른 관심이 없다. 기껏해야 <독전>의 형사들에게 허한 여유라는 것은 종이컵에 든 커피를 마시거나 박카스를 마시는 행위가 전부이니, 보는 내내 너무 건전해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이 전혀 고독하지 않은 듯한 남자들의 악다구니가 주는 무국적의 불협화음이 <독전>의 색깔이라면 색깔이다.
이해영 감독이 한국적인 어떤 것을 벗어나 다른 방향을 추구하고 싶어 한다는 것은 캐릭터의 속내뿐만 아니라 캐릭터의 겉모습을 다루는 방식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마약조직원의 외모를 묘사할 때 <독전>은 번지르르한 ‘은갈치’ 슈트의 질감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 마약반 형사에게는 기능성이 돋보이는 아웃도어 형태의 옷을, 길림성에서 건너온 중국 조직원들에게는 멕시코 갱단 스타일의 옷을 입힌다. 그리고 그 조직의 수장 하림 자신은 또 전혀 계통을 알 수 없는 로브를 갑옷처럼 두르고 등장한다. 캐릭터 각각의 이질감은 브라이언 이사와 그의 아지트 공간의 디자인을 보여주는 후반부 장면에서 절정을 이룬다. 브라이언 이사의 말투와 헤어스타일은 극도로 과장되고 그가 머무는 공간은 그와 달리 황량하기 그지없다. 장소는 서울의 용산역이지만 어느 나라 어느 도시의 시설이라고 해도 어울릴 공간이다. 의상과 공간을 비롯한 프로덕션 디자인 전반을 통해 의도적으로 국적을 지우려는 시도가 엿보인다.
홍콩영화에 뿌리를 둔 한국형 누아르영화의 계보 안에서 <독전>은 어떤 식으로든 스스로의 위치를 부정할 수가 없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해영 감독의 <독전>은 어차피 감당해야 할 운명 앞에서 최대한 멀리 벗어나보려는 시도에 충실한, 그럼으로써 이 영화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경계선을 희미하게 지우는 시도를 한 영화로 보인다. 그것은 언제나 장르의 경계에서 모호한 줄타기를 해온 이해영 감독의 전작과 궤를 같이하는 선택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