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영화]
이학준 감독의 <다섯 대의 부서진 카메라> 너는 왜 찍으려 하느냐?
2018-06-19
글 : 이학준 (영화감독)

감독 가이 다비디, 애머드 버넷 / 출연 애머드 버넷 / 제작연도 2011년

영화감독을 꿈꾸다 신문기자가 됐다. 유난히 재능 없는 기자였다. 편집국 선배들은 어린 수습기자를 불러놓고 조언했다. “더 늦기 전에 다른 직업을 찾아봐라.” 하고 싶어서 뛰어든 직업도 아니었다. 유년기부터 꿈꿨던 영화감독은 막연했고, 드라마 PD 시험에선 낙방했다. 때마침 밀어닥친 외환위기(IMF). 기댈 곳 없는 흙수저 청춘은 처량했다. 서울 시내 경찰서를 돌아다니며 정보를 캐내는 이른바 ‘마와리’. 하루 일과를 마치고 나면 녹초가 됐다. 남녀 가리지 않고 어깨를 마주치며 잠을 청해야 하는 2진 기자실 대신, 찾았던 곳은 경찰서 인근 비디오방이다. 그곳에서 <그랑부르> <첨밀밀> <패왕별희> 등과 재회하고는 목젖을 떨며 울었다. 영화와 정면대결 못한 스스로의 비겁함이 부끄러워서.

사표를 들고 강남경찰서 기자실을 찾았다. 1진 선배를 만나기 위해서다. 회사가 자랑하는 최고의 에이스 앞에서 수습기자는 잔뜩 주눅 들었다. 그에게 포기하겠다고 고백하려는 순간. 쌍코피가 주르륵 터졌다. 후배의 모습이 안쓰러웠던 선배는 다정히 껴안고는 다독였다. “악착같이 버텨라, 그럼 중간은 간다.” 그 말을 품고 저널리스트 생활을 해왔다. 그게 벌써 20년 가까이 된다.

<다섯 대의 부서진 카메라>는 팔레스타인 감독, 애마드 버넷의 원 히트 원더(one-hit wonder) 다큐멘터리영화다. 그는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에 속한 빌린이라는 작은 마을의 농부다. 막내아들 지브릴의 성장을 담으려고 거금을 들여 카메라를 샀다. 가족을 위해 준비했던 카메라 렌즈는 갑작스레 농토를 치고 들어와 철조망 장벽을 쌓는 이스라엘 군인들을 향하게 된다. 처음엔 그저 장난스럽게 시작한 일이었다. 하지만 내 땅에 들어와 주인행세를 하는 군복 입은 폭도들의 잔혹함 때문에 버넷은 악착같은 투사로 변해간다. 친형제인 이야드는 크게 다치더니 이스라엘군에 끌려갔다. 동료인 피터는 불 뿜는 총구에 생명을 잃고 말았다. 버넷 역시 이스라엘군에 끌려가 감옥 생활을 했고 정신병 증세까지 앓는다. 트럭을 몰고 장벽에 달려들다 20일 동안 혼수상태에 빠진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 과정에서 부서진 카메라만 다섯대다. 5살이 된 지브릴은 남들보다 일찍 어린아이의 순수함을 잃고 말았다. “왜 칼로 군인을 찔러 죽이지 않나요?” 그 모습에 아비는 서럽다. 남편의 활동에 적극적이었던 아내마저 삶에 지쳤다. 그녀의 만류에도 현장에 나가는 버넷은 고백한다. “나는 내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아니 살아남기 위해 찍는다.” 그에게 있어 카메라는 군인들의 총구에 비견되는 무기다. 계란을 들고 바위를 내리치는 버넷의 도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지금도 고향 땅 어디선가 여섯 번째, 혹은 일곱 번째 카메라를 들고 현장을 ‘악착같이’ 기록하고 있을 것이다.

‘너는 왜 찍으려 하느냐?’ 중년을 한참 넘어 논픽션의 세계를 떠나 픽션을 꿈꾸는 내게 스스로 던지는 질문이다. 악착같이 달려들지 못할 거라면 하루빨리 포기하는 게 나을 테다. 어리숙한 자에게 깨달음을 준 신문사 선배와 버넷에게 감사드린다.

이학준 영화감독, <조선일보> 기자. <나인뮤지스; 그녀들의 서바이벌>(2012), 올해 전주시네마프로젝트 선정작 <굿 비즈니스> 등 두편의 장편다큐멘터리를 연출했고, 차기작으로 극영화 연출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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