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 아녜스 바르다가 수집한 시네마의 초상
2018-06-28
글 : 이지현 (영화평론가)
얼굴을 담는 여정에는 아름다움이 남았다
아녜스 바르다 감독, 포토그래퍼 JR(왼쪽부터)

한편의 영화에 다 담기지 않는 이미지가 있다. 누벨바그의 기수 중 한명인 아녜스 바르다와 사진작가 JR의 작업은 어떨 땐 영화 안으로 들어오고 대부분 프레임 밖에서도 생명력을 유지한다. 이들의 협업 과정을 따라가는 로드 다큐멘터리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은 어쩔 수 없이 아녜스 바르다라는 궤적을 가로질러 이야기되어야만 한다. 아녜스 바르다의 예술세계를 이해하다보면 결국 삶, 영화, 예술이 분리될 수 없음을 실감할 것이다. 여기 아녜스 바르다기 지나온 걸음과 멈추지 않는 행보를 전한다.

2015년 아녜스 바르다의 딸 로잘리가 자신의 어머니와 포토그래퍼 JR의 만남을 주선하면서 두 사람은 만나게 된다. JR이 먼저 바르다를 찾아간 뒤, 이후 그녀가 다시 JR의 작업실을 찾으면서 그들은 본격적으로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바르다에 따르면, JR이 선글라스를 벗을 생각이 없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 직감적으로 무언가 함께하게 되리란 걸 알았다고 한다. 처음에 그 작업은 단편다큐멘터리였다. 하지만 영화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2017)은 결국 장편의 다큐멘터리로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바르다와 JR, 두 사람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둘 다 비주얼 이미지에 관심이 있고, 자신을 드러내는 방법에 원칙을 지니고 있으며, 현실과 이미지를 조합하는 데 흥미를 가진다는 점이다. 다만 JR이 포토그래퍼로서 디스포지티프(장치)를 옥외의 갤러리로 정했다면, 바르다는 시네마를 통해 극장에서 이미지를 드러내는 데 익숙해졌다는 점이 서로 다르다.

바르다를 거쳐 영화를 본다

영화 속 사진 이미지들을 바라보다보면 자연스레 그 속에 담긴 바르다의 일상, 아니 영화를 생각하게 된다. 영화의 시작부, JR을 통해 바르다가 떠올린 이미지는 다름 아닌 ‘고다르’다. 바르다의 대표작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1962)에서 고다르는 선글라스 너머의 진짜 눈을 카메라에 드러낸 적이 있었다. 30대 포토그래퍼의 시각적 특성이 80대 노감독의 노스탤지어를 자극하게 된 것이다. 그런 면에서 JR과 바르다의 교류는 운명적이다. 눈을 가린 남자의 이미지가 에너지가 되어, 이후 ‘사진 찍기’의 모티프가 생성된다. 그 과정은 연출되기도 하고 실제로 포착되기도 하면서 함께 어우러진다. 사진의 비연속성 때문인지 영화 속 파편들에 더욱 눈길이 가는데, 이상하게도 그 조각이 낡을수록 관객은 더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 같다. 노년에 이른 이 거장의 감독은 마치 마법을 부리듯 삶의 곳곳으로부터 찬란한 고색들을 끄집어낸다. 누군가의 주름이, 집 안 구석에 박힌 오래된 양산이, 그리고 사라진 옛 방식들이 JR의 세련된 방식을 거쳐 관객 앞에 선다. 어쩌면 세계적 어번 아티스트 JR을 이끌고 프랑스의 시골 마을만을 찾아다니는 이 작업은 시작부터가 아이러니했다. 그런 면에서 한마디로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은 현재에 대한 과거의 시선이자 영화에 대한 삶의 사색, 그리고 무엇보다 바르다 자신에 대한 주관적 성찰을 담은 작품이라 이를 수 있다.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에서 대칭을 통한 구성은 영화 전체를 관통한다. 굳이 다큐멘터리가 아니더라도 이러한 방식은 처음부터 아녜스 바르다의 것이었다. 이를테면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에서 느낀 다큐멘터리적 생동감의 본질도 여기에 있다. 타로카드를 통해 미신적이고 운명적인 의심을 가지게 된 여주인공은 영화 끝부분에 이르러 현대 의학의 명쾌한 진단서를 받아들고서야 안도한다. 이렇듯 사물의 상태에 대한 이중성의 감지에서부터 출발한 픽션과 현실의 간극을 통해 바르다는 관객의 감상을 촉각으로 변화시킨다. 이번 영화와 가장 흡사하다고 할 수 있는 <아녜스의 해변>(2008)을 살펴도 마찬가지다. 신비롭고 어렴풋한 브뤼셀의 추억에서 시작되는 이 작품은 누벨바그라는 분명한 과거에서 시작해서, 자크 드미라는 실질적인 구심점을 거쳐, 마침내 작가의 현재 주변인들을 돌아보며 끝맺는다. 이 다큐멘터리의 연출 직전에 바르다는 파리의 카르티에 재단에서 전시회를 가졌는데, 2006년 개최된 최초의 개인전 타이틀은 <섬 그리고 그녀>로 사진과 텍스트, 12개의 영상물들로 구성됐다. 당시 작업은 그녀에게 큰 영향을 줬다. 미장아빔(액자)의 예술 기교를 통해 현재를 말하는 자전적 영화 만들기의 방식이 <아녜스의 해변> 즈음 완전히 모습을 갖춘 것이다. 고다르가 외부에서 몽타주를 통해 토픽을 드러내는 작가라면, 바르다는 자신의 내부에서 출발해 콜라주의 방식으로 스스로를 드러내는 작가라 말할 수 있다.

명쾌한 대칭의 이미지들, 남자들만 일하는 항만에서 그녀가 끄집어내는 이미지는 다름 아닌 여성의 얼굴들이다. 바르다는 그렇게 뿔이 없는 염소들을 보고서 뿔 달린 염소를, 그리고 뿔 달린 염소 뒤에는 죽은 염소의 사진을 연결시키는 식으로 구상을 이어간다. 이러한 방식의 대칭은 대립을 지향하지 않는다. 익숙한 것들에 특이한 요소들을 삽입하고, 버려진 장소에 일상의 생기를 넣는 식으로 주변을 바꾸어갈 뿐이다. 이와 같은 콜라주를 통해서 그녀는 다큐멘터리를 완성시킨다. 콜라주된 이미지의 연쇄가 만들어낸 간격을 통해 영화는 스스로 아카이브화되고 장치화된다.

영화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의 원제는 ‘Visages, Villages’ (비자주, 빌라주)로, ‘얼굴들, 마을들’ 정도로 번역할 수 있다. 영화가 끝나고 이 제목을 돌이켜보면, 이는 비자주와 빌라주의 전시를 통해 이마주의 콜라주, 그리고 브리콜라주를 완성시킨다는 의미로 다시 읽힌다. 애초에 영화 인트로에서 드러났던 낱말놀이의 단계에서 나아간, 단어의 라임(운율) 맞추기가 이 나열의 핵심인 것 같다. 비견컨대 고다르가 몽타주를 통해 시간 개념을 지우거나 남긴다면, 바르다는 이미지를 통해 이야기(말하기)를 만들어내는 연출자라 말할 수 있다. 그녀의 작품이 지닌 혁신성도 바로 여기에 있다. 무수한 여느 감독들처럼, 그녀는 이야기를 통해 이미지를 만드는 작업을 행하지 않는다. 대신 그 반대의 작업에 열중할 뿐이다.

필름으로 지은 집

최근 바르다의 행보는 더 과감해졌다. 일종의 로드무비라 부를 수 있는 구성을 지녔음에도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에는 과정의 고단함이나 여정의 방향성, 작업의 인과관계가 감지되지 않는다. 심지어 별다른 내용이 없는 듯 가볍게 느껴질 정도로 완성된 영화는 그저 간결하기만 하다. 프랑스의 외곽 마을을 돌아다니는 과정, 스위스로 칩거한 고다르를 만나러 떠나는 여정, 그 속에서 공간의 방향성이나 시간의 선형성은 약화된다. 마치 일부러 삭제한 것처럼 그저 나열될 따름이다. 왜 그런 것인지를 생각한다. 영화 속 바르다는 실제와 동일한 89살이고, 묘지 앞에서 “죽음이 기다려지기까지 한다”고 고백할 정도로 삶에 대해 진지한 자세를 가진 예술가이다. 이상하게도 나는 그녀가 하는 말 모두를 믿는다. 심지어 연출된 JR과의 재현 장면조차 실제로 일어난 일들이라고 믿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의 가장 대담한 장면인 ‘흐릿해진 JR의 얼굴 이미지’ 신도 실제로 일어난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고서 이 장면을 돌이켜보면, 이 숏의 프레임이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 속의 단편영화 <막도날드다리의 약혼자들>(1961)에서 고다르를 바라보던 시점숏과 대비되어 찍혔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이번 영화에서도 JR의 얼굴이 작품의 결론과 연결돼 있다. 1961년과 2017년 사이의 간극에서 달라진 점은 단지 낡은 시력이 주는 멜랑콜리한 감상, 이 하나뿐이다.

아녜스 바르다와 장 뤽 고다르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둘 다 비주얼 이미지에 관심이 있고, 기존의 영화 원칙을 깨고 스스로 원칙을 만들어냈으며, 현실과 이미지를 조합하는 데 흥미를 가진다는 점이다. 현재 우리는 바르다를 통해 직접 만나는(혹은 만나지 못하는) 가상의 고다르(혹은 영화)를 생각한다. 과거 흑백의 필름에서 그의 모습은 선명했지만, 이제 그녀의 시야에 고인 눈물 탓인지 그가 보이지 않는다. 시간만큼 낡고 물리적인 변화가 둘의 차이를 생성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남은 것은 무엇인가? 선명함이 변질된 과거의 대상들은 단순히 애정이 옅어졌기 때문에 변한 것이 아니다. 그저 운명처럼 찬란해졌을 뿐이다. 해안가 벙커에 새겨진 JR의 작업이 전한 찰나의 아름다움을 관객은 잊지 못한다. 그리고 영화를 통해, 그 기억은 또 다른 누군가에게 전해질 것이다. 고다르가 사라지고 바르다가 사라져도, 심지어 JR이 없어진다 해도 영화는 남을 것이다. 이 단순한 사실에 시네마에 대한 해답이 담겨 있는 것 같다. 기억은 삶이고 오래된 삶은 찬란하며 외로운 것이기에 가치 있다고 이 작품은 말한다. 문득 <아녜스의 해변>의 마지막 장면이 떠오른다. 필름으로 지어진 집 안에 홀로 앉아 있는 그녀의 모습은 쓸쓸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그토록 열망하던 예술가의 초상임을 부정할 수 없다.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

다큐멘터리와 바르다

어떤 경우 예술가는 시대에 의해 탄생하기도 한다. 누벨바그 시대의 대표주자로 꼽히는 아녜스 바르다도 그러한 사람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1928년생인 바르다가 처음 영화 일을 시작했던 계기는 누벨바그였다. 누벨바그가 시작될 즈음 프랑스영화계는 저예산의 비용으로 개성 있는 작품을 만들어낼 연출자를 필요로 했는데, 당시 분위기 속에서 우연한 기회를 얻은 바르다는 데뷔작을 내놓았고 결과는 모두가 알고 있듯 성공적이었다. 파리의 에콜 데 보자르에서는 사진을, 이후 에콜 뒤 루브르에서는 예술사를 전공했던 그녀가 처음 사회에 발을 내딛은 것은 국립민중극장(TNP)에서 포토그래퍼로 활동하면서부터다. 거의 10년간 사진작가로 일했지만 데뷔작 <짧은 송곳>(1954)을 계기로 바르다는 완전히 영화쪽으로 방향을 튼다. 그리하여 네다섯편의 단편영화를 제작하고, 1962년 두 번째 장편영화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를 내놓는다.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의 유명세 탓에 오해하는 일이 있지만, 사실 바르다가 다큐멘터리로 전향한 것은 급격한 변화가 아니다. 데뷔작 이후에 완성한 24분 분량의 단편영화 <해안가쪽으로>(1958)는 대놓고 다큐멘터리를 표방했으며(리비에라 해변의 분위기를 ‘에덴’과 ‘카니발’로 설정한 이 작품의 뉘앙스는 ‘봄의 파리’를 그리는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와 꼭 닮았다), 작가 자신이 느낀 감상을 영화의 주제로 부각시켰다(이 영화가 상영되던 1958년의 투르단편영화제는 이를 알랭 레네의 <히로시마 내 사랑>(1959)과 비교하기도 했다). 향후 자크 드미와 함께 미국에서 완성한 몇몇의 드라마는 다큐멘터리 기법을 혼합해 사용하고 있는데, 어쩌면 포스트 장르적인 다큐멘터리의 열린 기능이 그녀가 오랜 기간 몸담은 ‘사진’의 개념적 성향과 잘 맞았던 것 같다. 돌이켜보면 바르다는 단 한 차례도 일반적 형태의 극영화를 연출한 적이 없었다. 제목이나 내용 전개에 있어서 꾸준히 구상적 접점이나 변주 지점을 찾아내고, 그 연결을 복잡하거나 어렵지 않은 다른 것으로 바꾸는 것은 그녀의 특기다. 예를 들어 <라이언의 사랑>(1969)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둘 다 외형적으로 사자 머리를 하고 있으며, <해안가쪽으로>의 프랑스어 제목은 듣자마자 마르셀 프루스트의 <스완네 집으로>를 떠올리게 된다. 1983년에 <FR3>에서 방영된 TV시리즈 <이미지를 위한 일분>(1983)의 경우에도 ‘다큐의 방식으로 접근해 개인의 느낌으로 끝맺는 다큐멘터리’라 소개할 수 있다. 요컨대 디스포지티프로 무엇을 선택하든 구상의 내부에서 그녀는 스스로 살아남는다. 영화감독, 사진작가, 조형예술가로서 바르다는 그렇게 스스로의 주제가 된다.

사진 영화사 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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