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분노>, 스위스의 여성참정권 투쟁을 유쾌하게 풀어낸 영화
2018-07-05
글 : 김소미 |
<거룩한 분노>, 스위스의 여성참정권 투쟁을 유쾌하게 풀어낸 영화

여성참정권에 대한 주민투표를 몇주 앞둔 스위스 작은 마을의 실화를 다룬 <거룩한 분노>는 이름처럼 엄숙하기보다는 유머러스하고, 거침없기보다는 감미롭고 따뜻하다. 정치적으로 공고하고 첨예한 움직임을 기대한 누군가에겐 지나치게 안전한 영화일 수 있지만, <거룩한 분노>는 조용하고 내향적인 주인공의 투쟁이 품은 내면의 맹렬함을 쉽사리 지나치지 않는다. “페이스북의 ‘좋아요’가 아닌 실재하는 우리의 몸을 통과해 일어나는 사회 변혁”(<인디펜던트>)을 그리기 원했다는 페트라 볼프 감독의 말처럼, 영화는 여성의 성적 욕망과 공동체의 형성이 당대의 인물들에게 얼마나 새로운 즐거움을 주었는지 밝고 생생한 기운으로 전한다.



익숙한 서사, 색다른 무대



올해로 프랑스에서 시작된 68혁명이 50주년을 맞았다. <거룩한 분노>는 이를 기념하듯 오프닝에서 다큐멘터리 푸티지를 통해 평등, 자유, 평화를 외치며 들끓는 서구 곳곳의 거리를 소환한다. 모든 권위에 저항하는 이 시기 68혁명의 도화선을 타고 일어난 주요한 움직임 중 하나는 바로 페미니즘의 부활이었다. <거룩한 분노>는 19세기 페미니즘의 물결 속에서 영국 여성참정권 투쟁이 가속화된 역사를 다룬 <서프러제트>(2015)에 이어 1960~70년대 페미니즘의 두 번째 물결을 다룬다. 그런데 이번엔 장소가 조금 생소하다. 오프닝 속 우드스톡의 흥겨운 릴 테이프는 이곳에서 ‘일시정지’된다. 고요한 풍경화를 옮겨놓은 듯한 영화의 배경은 취리히에서도 멀리 떨어진 스위스의 작은 마을. 정숙한 아내 노라(마리 루엔베르게르)와 근면한 노동자 남편 한스(맥시밀리언 시모니슈에크) 그리고 적절한 터울을 지닌 두명의 아이들까지 모든 것이 단정하게 가꾸어진 어느 가정을 무대로 삼았다. 노라가 일종의 역할 모델에 가깝다는 건 입센의 희곡 <인형의 집> 속 입지전적 캐릭터 노라 헬메르와 동일한 이름을 가지고 있다는 의도적인 우연에서도 엿볼 수 있다. 그러니까 <거룩한 분노>엔 모두가 다 아는 이야기 두개가 포개져 있다. ‘노라’가 남성 중심의 차별과 억압의 세계를 뛰쳐나오는 서사와 한명의 노라가 아닌 여럿의 노라가 손을 잡고 연대하는 서사의 겹침이다.



영화의 첫마디에서 이른 아침 남편과 아이들의 배웅을 마친 노라는 자전거 페달을 밟고 형님 테레즈(레이첼 브라운쉬웨이그)가 사는 농장을 향해 달린다. 날갯짓 직전의 발돋움처럼 노라가 전속력으로 자전거를 타고 내달리는 이 장면은 아름답고 유려한 리듬으로 짜여져 있어 일순간 긴장과 이질감을 동시에 자아낸다. 그리고 불현듯, 깨닫게 된다. 아마도 하루 중 노라가 해방감을 느끼는 유일한 시간은 바로 이 순간일 것이라고.




신성한 규율에 돌을 던지는 조용한 혁명기



<거룩한 분노>는 별난 불행이나 악행이 아닌, 구태의연하고 만연한 것들에서 비죽 솟아나온 차별과 억압을 딛고 일어선 여성들의 이야기다. 혁명의 열기가 스며들기에 노라가 사는 작은 마을은 지나치게 좁고 단단하다. 그러니 자유와 권리를 향한 물음도 단번에 오기 어렵다. 결혼 생활에 권태를 느낀 노라에게 혼인법을 들먹이며 남편이 취직을 불허할 때, 조카 한나(엘라 룸프)가 자유로운 연애를 이유로 교도소에 갇히게 되었을 때, 동료 브로니(시빌레 브루너)가 재산권을 다 가진 남편 때문에 평생을 일한 가게를 잃었을 때, 노라는 그제야 반발한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구호로 대변되는 전개다. 성경의 ‘거룩한 질서’(The Divine Order)를 내세우는 반대파 주민들이 내 친구의 가족인 작은 마을에서 신성한 규율에 균열을 내는 수단은 많지 않다. 아마도 여기서 페트라 볼프 감독은 자신이 각본을 쓴 <하이디>(2015)와 <러블리 루이즈>(2013)에서 공유했던 밝은 정서를 해열제로 택한 듯 보인다. 노라가 눈썹 위로 떨어지는 뱅 헤어로 머리를 자르거나, 샛노란 바탕에 무늬까지 화려한 딱 붙는 니트에 나팔 청바지를 입으며 무언의 해방을 즐길 때 이를 마냥 시시하다고 치부하기는 어렵다. 처음 만나는 자유의 달콤함을 빼앗을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다.



특히 영화가 묘사하는 ‘각성의 밤’은 흥미롭다. 조카 한나를 데리고 취리히 시내로 나간 노라는 운동가들로부터 곧 있을 여성참정권에 대한 투표 소식을 듣고 얼떨결에 각종 전단을 받아온다. 모종의 사건들로 내면의 페달을 서서히 밟아가던 이 여성은 자신이 남성과 동등한 ‘시민’이자 ‘개인’이 될 수도 있다는 은근한 열망에 밤잠을 설친다. 노라가 침대에서 밤새 전단을 뒤척이다 아침 식사 시간이 한참 지나 일어난 장면은 거룩한 역사의 시작들이 대개 그렇듯 그다지 거창하지 않다. 비슷한 방식으로 <거룩한 분노> 속의 마을 여성들은 <서프러제트>의 에멀린 팽크허스트 같은 (당대의) 급진적인 운동가와는 사뭇 다른 특질을 내보인다. 굳이 분류하자면 노라는 신중하고 내향적인 인물이다. 페트라 볼프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거룩한 분노>의 서사를 두고 “스위스의 사례로는 잘 알려지지 않은 어두운 이야기지만, 여성의 역사에서 너무도 흔한 이야기”라고 스스로 평한 적이 있는데, 이런 익숙함은 노라의 차분한 태도 속에서 보다 남다른 진실성을 감지하게 되는 것으로 무마된다.




파업과 투쟁의 오르가슴



노라의 변화를 두고 “마치 눈앞에서 어떤 장막이 걷힌 것처럼, 갑자기 일상생활의 모든 세부가 그녀가 겪는 억압의 증거가 된다”는 <인디와이어>의 평은 적절해 보인다. 시아버지, 남편, 두 아들에게 전유되는 남성 우월주의와 가부장제의 악습은 전복된 노라의 시선 속에서 순식간에 그들을 우스꽝스럽고 무력하게 만든다. 영화는 그들이 자기 접시를 설거지하고, 우유와 맥주를 직접 냉장고에서 꺼내 먹는 순간의 미묘하게 억울한 표정까지 알뜰하게 유머 코드로 풀어낸다. 그러나 <거룩한 분노>가 또렷한 집중력을 발휘하는 쾌감의 중심은 따로 있다. 노라와 아이들은 밤마다 지구본을 돌리며 지금 이곳이 아닌 바깥의 자유를 상상하는데, 노라는 태평양을 설명하면서 “심해의 물고기들은 완전한 어둠과 고요 속에서 살고 있다”고 말한다. 이어서 노라는 이렇게 덧붙인다. “저 멀리, 해와 빛이 있다는 걸 모른단다.” <거룩한 분노>는 참정권을 얻고 세계를 바꾸기 이전에 당대 스위스 시골의 여성들이 실질적으로 일상에서 처음 마주하게 될 밝고 따스한 해와 빛의 세계를 성적 해방으로 치환한다. 취리히 여성 시위에 참가한 노라의 하루가 유독 길고 감각적인 시퀀스를 이루는 것도 이날 시위가 끝난 뒤 있었던 ‘여성의 힘’ 워크숍 덕분이다. 여성의 진정한 성적 해방과 자유를 모색하고, 히피 문화에 깊은 영향을 받은 이 워크숍에서 노라와 친구들은 거울을 들고 처음으로 자신의 성기를 들여다본다. 그리고 다리 사이에서 제각각 호랑이, 나비, 은색 여우를 발견한다. 자신의 몸을 알고, 욕망의 주체가 된 여성이 전에 없던 씩씩한 기쁨으로 물드는 이후의 몇몇 장면들도 좋지만, 보다 즉각적으로 관객에게 손짓하는 건 여성의 성기를 직접적으로 지시하는 표현이 반복적으로 들려올 때의 시원함이다.




우정과 연대의 다락방



<거룩한 분노>는 손색없는 버디무비이기도 하다. “저는 안 낼래요.” 여성의 정치 참여를 반대하는 단체에 기부를 거부하는 용기를 낸 그날 밤, 노라를 뒤쫓아와 말을 건 이가 있었다. 노라보다 곱절은 더 나이가 많은 브로니는 “너도 그렇게 생각하는 줄 몰랐어”라는 말로 영원한 의리를 제안한다. 영화는 버디무비의 다정한 정서로 이른바 커뮤니티의 형성 과정을 보여준다. 가사 노동의 전면 중단을 선언한 마을 여성들이 그라지엘라의 가게에 모여 파티하는 장면은, 남자들만 잔뜩 모여 맥주를 마시고 축구 경기를 보거나 당구를 치는 펍의 모습에서 성별만 바꿔놓은 것처럼 연출됐다. 속세의 즐거움을 실컷 즐긴 그들은 이윽고 다락방으로 올라가 살을 맞대고 은밀한 속내를 털어놓다가 잠을 청한다.



영화는 노라가 투표함에 첫 투표 용지를 골인시키는, 그토록 고대해 마지않았던 장면에서 멈추지 않는다. 그녀가 사실은 단 한번도 오르가슴을 느낀 적 없었다고 남편 한스에게 소리쳤던 장면이 회심의 반격으로 되돌아온다. 그 누구의 시선도 용납하지 않고 스스로의 기분을 만끽하는 노라의 꽉 찬 클로즈업은 <거룩한 분노>가 사적 영역에서 꿈꿀 수 있는 최고의 쟁취를 보여준다. 어떤 영화의 해피엔딩이 현실에서 희미해진 낙천성을 일깨워줄 수 있다면, <거룩한 분노>는 그 작용을 적절히 수행한다. 영화가 끝난 뒤 시작되는 고민은 <서프러제트>와 <거룩한 분노>의 시도가 지금 현재도 계속 쓰여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오늘날 시위대의 구호는 노라가 참여한 시위대의 목소리와 거의 다르지 않다. 페트라 볼프 감독에게 <거룩한 분노>가 “미투(#MeToo) 운동이 판타지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인디펜던트>)을 호소하는 영화인 이유기도 하다. 엔딩 크레딧에 등장하는 1969년 스위스 호루라기 시위 현장을 지켜보면서 2018년의 우리는 그들에게 어떤 답장을 보낼 수 있을지 곱씹게 된다.




스위스의 그때와 지금



<거룩한 분노>를 여는 60년대 말 미국과 유럽의 분위기, 영화가 그리는 1971년 이야기, 엔딩 크레딧의 1969년 스위스 호루라기 시위 모두 여전히 뜨거운 김을 뿜어낸다. 전설적인 우드스톡 현장에서 시작해 극영화로 매혹하고, 그제야 스위스 역사의 일부분을 담은 뉴스릴을 등장시키는 페트라 볼프 감독의 선택은 영화의 목적이 엔딩 크레딧 속 여성들의 실존을 관객에게 각인시키는 데 있었다는 것을 짐작게 한다. 우선 1969년 호루라기 시위를 제대로 들여다보기 위해선 조금 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스위스에서 여성참정권에 대한 목소리가 본격적으로 감지된 것은 1918년의 대규모 총파업 투쟁을 통해서였다. 비례대표제 도입 이후 지속적으로 여성의 동등한 정치 참여를 주장하는 움직임이 거세졌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1957년에 바젤-도시주, 제네바 등의 대도시에서 일부 여성참정권이 도입된다. 영화에서 브로니가 언급하는 “1959년의 일”이란 58년에 스위스 연방의회가 여성에게도 참정권을 부여하는 헌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59년의 주민투표에서 결과가 다시 뒤집힌 일을 말한다. 이후 1969년, 혁명의 불길을 접한 5천여명의 여성들이 베른 연방의회 광장에 호루라기를 들고 모여 콘서트 현장을 이루고, 라디오를 통해 이 소식이 생중계된다. 노라가 통과하는 1971년의 취리히 시위와 주민투표는 이 호루라기 시위에 힘입은 바가 크다.



페트라 볼프 감독은 <거룩한 분노>의 촬영지가 된 마을이 스위스에서 가장 보수적인 지역 중 하나라고 언급한 바 있다. 촬영 당시 엑스트라로 동원된 마을 노인들 중 일부는 실제로 과거에 여성 투표권 도입을 끝까지 반대하기도 했다. 재밌는 사실은 영화 촬영장을 보는 경험이 매우 희귀한 동네인 탓에 영화의 내용을 알면서도 보수적인 주민들이 엑스트라 출연을 자처했다는 데 있다. 덕분에 여성 주민들은 “마치 작은 복수를 하는 뿌듯한 심정으로” 엑스트라 촬영에 임할 수 있었다(<인디펜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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