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거룩한 분노>와 서구 여성참정권의 역사
2018-07-05
글 : 이주현
여자는 투표를 할 수 없다고요?
<거룩한 분노>

스위스는 유럽에서 가장 늦게 여성의 참정권을 인정한 나라다. 1971년에야 비로소 스위스 여성은 남성과 동등하게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거룩한 분노>는 “여성의 권리는 인간의 권리”라는 당연한 명제를 받아들이지 못했던 1971년 스위스의 보수적인 작은 마을에서 벌어진, 스위스 여성참정권 운동의 미시사 한 페이지를 그린 영화다. 영화를 풍성하게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여성참정권 운동의 역사를 소개한다.

20세기 이전의 여성참정권 운동

여성 또한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지닌 시민이며 인간이라는 외침이 여성참정권 운동의 시작이었다. 여성참정권 운동사가 곧 페미니즘의 역사인 이유다. 페미니즘은 20세기 가장 위대한 사회혁명이지만 그전까지의 사회혁명에 페미니즘이 낄 자리는 없었다. 여성의 권리는 시민의 권리가 아니었고, 시민의 권리가 아닌 여성의 권리에 남성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여성을 정치적으로 배제하는 것에 대한 항변의 목소리는 일찍이 프랑스 대혁명기(1789~94) 때도 존재했다. 1789년 프랑스혁명 당시 혁명세력은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을 발표했다. 하지만 권리선언이 말하는 시민에 여성은 포함되지 않았다. 이에 1791년 올랭프 드 구즈는 ‘여성과 시민의 권리선언’을 발표한다. 혁명세력이 말한 ‘인간’의 자리에 ‘여성’을 대입했다고 봐도 무방한 이 성명서는 “여성은 태어날 때부터 남성이 가진 모든 권리를 가진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프랑스에 올랭프 드 구즈가 있다면 영국엔 메리 울스턴크래프트가 있다. 1792년 영국 작가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는 <여성의 권리 옹호>를 펴내, 여성도 이성을 지닌 온전한 인격체이며 남성과 동등하게 교육받고 동등하게 직업에 종사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여자들은 비이성적인 본성 때문에 정치적인 삶에 적합하지 않으므로 남성에게 종속되어야 한다’는 장 자크 루소의 주장을 반박하며 “여성이 복종해야 할 대상은 남성이 아니라 인간 고유의 이성”이라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그로부터 50여년이 지난 1849년의 프랑스. 잔 드로앵은 “남자로만 구성된 의회는 남성과 여성으로 구성된 사회를 다스리는 법을 제정하는 데에 부적합하다. 이는 마치 노동자의 이익을 토론한다면서 특권층으로만 의회를 구성하거나 국가의 명예를 드높이겠다며 자본가들로만 의회를 구성한 것과 마찬가지다”라며 제2공화국의 헌법을 거부하고 여성으로서 선거에 출마했다. 여성들만 여성참정권을 주장한 것은 아니다. 대표적으로 영국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은 1869년 <여성의 종속>을 출간해 여성의 권리를 옹호했다. 하원의원으로 활동하던 시기인 1866년엔 여성참정권 청원을 하원에 제출하기도 했다. 19세기 말까지만 하더라도 영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나라에서 여성은 남편의 사적 소유물로 여겨졌다. 남편에게 귀속된 재산이었다는 얘기다. 그러한 종속의 상태를 거부하려는 여성들의 목소리, 여성참정권론자들의 운동이 결실을 맺기까지는 시간이 좀더 필요했다.

<서프러제트>

각국의 사례들

여성참정권의 역사를 얘기할 때 가장 명예롭게 언급되는 나라는 뉴질랜드다. 1893년 뉴질랜드는 여성의 선거권을 법적으로 최초 인정한다. 뉴질랜드의 여성참정권 운동을 이끈 인물은 케이트 셰퍼드. 영국 출신의 케이트 셰퍼드는 뉴질랜드로 이주한 뒤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기독교여성절제회’ 활동을 하며 이후 뉴질랜드 사회에 만연한 불평등 문제에 관심을 기울인다. 인종, 계급, 성별에 대한 차별 철폐를 주장한 케이트 셰퍼드는 여성참정권 운동에도 매진해 뉴질랜드 의회에 여성참정권 탄원서를 제출한다. 1983년, 3만명 이상의 뉴질랜드 여성으로부터 서명을 받아 의회에 제출한 여성참정권 탄원서는 현재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도 등재되어 있다. 뉴질랜드 10달러짜리 지폐에 인쇄된 얼굴의 주인공이 바로 케이트 셰퍼드다. 뉴질랜드에 이어 호주는 1902년 여성참정권을 인정했고, 핀란드는 유럽에서 최초로 1906년 여성에게 투표권을 부여한다.

미국은 1920년에 여성참정권을 인정한다. 앞서 1848년 뉴욕에선 세계 최초의 여권대회가 열린다. 이 대회에서 여성의 참정권을 요구하는 ‘소신선언’이 채택됐고, 이것이 미국 여성참정권 운동의 토대가 된다. 프랑스에 올랭프 드 구즈, 영국에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와 마찬가지로 미국에선 수전 앤서니가 참정권 운동의 선구자 역할을 했다. 수전 앤서니는 1869년에 전국여성참정권협회를 조직했다. 1872년엔 미국 대통령 선거투표를 강행해 이듬해 100달러 벌금형을 부과받기도 했다. 또한 수전 앤서니는 노예제 폐지 운동에도 앞장섰는데, 미국의 여성참정권 운동이 노예제 폐지 문제와 맞물려 인간해방운동의 차원에서 발전했다는 것도 특기할 만하다. 참고로 미국의 흑인 남성들에게 참정권이 주어진 건 1870년이다.

영국에서도 19세기 후반부터 여성참정권 운동이 전국적으로 발생했다. 에멀린 팽크허스트는 1903년 여성으로만 이루어진 여성사회정치동맹을 조직해 참정권 운동을 한다. 참정권 보장을 얘기했던 남성 정치인들의 배신을 반복해서 경험하고, 합법적 운동이 계속해서 실패하자 에멀린 팽크허스트와 여성사회정치동맹의 용감한 여성들은 건물의 유리창을 깨거나 우체통을 폭파하는 등 과격한 투쟁 방식을 펼친다. 에멀린 팽크허스트는 폭력 운동으로 재판을 받을 때 “참정권을 위해 싸우는 과정에서 1천명이 넘는 여성이 감옥에 갔”으며 “우리는 옳건 그르건 현재의 투쟁 방식이야말로 견딜 수 없는 끔찍한 상황을 바꿀 유일한 길이라고 확신한다”고 자기 변론을 했다. 메릴 스트립이 에멀린 팽크허스트로 출연한 영화 <서프러제트>는 20세기 초반 영국의 여성참정권론자(서프러제트)들의 이야기를 사실적으로 그려낸 영화다. 영국 정부는 1918년에 30살 이상 여성에게 참정권을 부여했다.

유럽의 많은 국가가 제1차 세계대전을 전후로 여성에게 참정권을 주지만, 프랑스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6년에야 헌법에 여성의 참정권을 포함시킨다. 한국은 1948년 제정헌법을 통해 남녀의 평등한 참정권을 인정한다. 2000년대에도 투표하지 못하는 아랍의 여성들이 있었는데, 2005년 쿠웨이트, 2006년 아랍에미리트에 이어 2015년 사우디아라비아가 여성의 참정권을 인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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