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켄 로치 / 출연 마틴 콤프스턴, 윌리엄 루앤 / 제작연도 2002년
처음 원고를 청탁받고 어떤 영화를 추천하고, 어떤 이야기를 풀어가야 하나, 라는 고민과 나의 버킷리스트 영화들을 생각해보았다. 이제야 첫 장편 <박화영>을 완성한 내가 과연 이런 글을 감히 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쯤 켄 로치 감독의 <스위트 식스틴>이 떠올랐다, 그래서, 결정했다. 켄 로치 감독의 <스위트 식스틴>. 이 영화는 사실 내가 배우로 출연한 양익준 감독의 <똥파리>를 찍을 당시 감독님이 레퍼런스 영화로 보여줘서 처음 만났고, 제법 강렬한 인상과 기억이 꽂힌 영화다.
이야기와 플롯은 심플하다. 영화는 오프닝에서 두 소년이 가게 안 손님들을 상대로 싸구려 담배를 암거래하는 모습을 비춘다. 이 이미지에서 개인적으로 지금은 사라져 버린, 왠지 모르게 내 중·고등학교 시절인 90년대… 길거리 가판대에서 가치담배를 팔았던 이미지와 지금은 사라져버린 담배 자판기에 대한 이미지가 기억났다. 영국의 중·고등학생쯤으로 보이는 두 소년 모두 일반 학생과는 거리가 먼 듯, 학교에서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이들은 어른으로 성장해가는 길목의 소년들이다. 소년의 이름은 리암(마틴 콤프스턴). 푹 팬 깊은 눈과 돌출된 광대 그리고 분장을 하지 않은 듯한 날것에 거친 얼굴은 이 캐릭터를 그리고 이 영화에 톤과 룩을 암시하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그는 자신을 소년이나 어른으로 생각한다. 15살 소년 리암은 한번도 평범한 가정의 보호를 받은 적이 없다. 리암은 자기 힘으로 집을 마련하고 엄마와 누나, 누나의 아들 칼룸과 함께 남들처럼 살고 싶어 한다. 지금까지 살아왔던 집들처럼 구질구질하지도 않고 틈만 나면 폭언과 폭력을 일삼던 의붓아버지에게 벗어나 자유로운 곳에서 자신의 힘으로 엄마와 누나를 돌보는 삶을 꿈꾼다. 하지만 가진 건 배짱과 기지뿐인 소년에게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무엇을 얻든 세상은 대가를 요구한다. 여기서 리암은 포기하지 않는다. 엄마도, 누나와 조카도 그가 지키고 싶은 소중한 가족이다. 비록 누나는 엄마를 포기하려 하지만 리암은 아직 남은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자신이 엄마의 존재를 갈구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어른은 필요하고, 부모는 태초에 선택적으로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닌 핏줄로 진득하게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이 가족이라는 핏줄의 굴레는 잔혹하고 처절하다. 지금껏 이토록 암울한 성장영화를 본 적이 있던가….
그의 삶은, 어떻게 될 것인가. 감옥에 갔다가 사회로 나온 남자, 혹은 이미 10대 중반에 어른의 삶을 경험한 그가 앞으로 몸담고 살게 될 삶의 색깔을 떠올리기란 어렵지 않다. 리암이 만나는 인물들은 거의 모두가 어른들이다. 그에게 인생을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주는 어른은 없다. 그들은 어떤 어른을 원하고 어른이라고 인정을 하는가…. 내가 <박화영>을 만들면서도 끊임없이 던진 질문이고 화두이다. 나 역시 어쩌면 그것이 궁금했는지도 모른다.
물론 10대에게 이런 것을 묻는 것이 역설적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이 바라보는 세상에 대한 이야기와 감정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치열하고 집요하며 그들은 역동적이다. 그들에게도 책임과 감정은 존재한다. 켄 로치 감독은 세상을 어린 소년을 통해서 직설적이고 역설적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그 소년을 통해 어른들의 무책임을 반성케 한다. 또한 가족이란 무엇인가…. 책임을 지는 가장의 모습이란 무엇인가를 소년의 눈과 요동치는 감정의 매서움으로 우리에게 되묻는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그리고 다르덴 형제의 영화와 이창동 감독의 세계는 어떤 면에서 켄 로치 감독과 맞닿는 지점들이 존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거장들의 영화는 문화이고 문학이다. 그리고 늘 그렇듯이 거장 감독들의 영화는 제목만큼이나 처절하고 잔인하다.
이환 배우로 <똥파리> <암살> <밀정> 등에 출연했으며, 얼마 전 장편 연출 데뷔작 <박화영>을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