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괴> 이전에는 뭐가 있었을까? 한국 괴수영화의 계보
2018-09-14
글 : 김진우 (온라인뉴스2팀 인턴기자) |
<물괴> 이전에는 뭐가 있었을까? 한국 괴수영화의 계보
(왼쪽부터) <불가사리>, <대괴수 용가리>

사극과 괴수의 조합이라니, 독특하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흉악한 괴물을 소탕하기 위한 이들의 고군분투를 그린 <물괴>가 9월12일 개봉했다. 괴수는 완성도 높은 CG에 대한 부담감, 높은 제작비 등으로 그간 국내에서 꺼려왔던 소재다. 이런 악조건에, 사극 요소까지 더해 도전을 감행한 <물괴>는 어떤 결과를 불러올까.



대규모 예산이 투입되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서는 빈번히 등장한 괴수영화. 그러나 분명 국내에도 괴수를 소재로 한 영화들은 있어왔다. <물괴> 개봉과 함께, 몇 안 되는 한국 괴수영화의 계보에 대해 정리해봤다.



고전 괴수영화



(왼쪽부터) <불가사리>, <대괴수 용가리>

1962년 개봉한 김명제 감독의 <불가사리>는 한국 괴수영화의 효시격 영화다. 전통 설화에 등장하는 쇠를 먹는 요괴, 불가사리를 소재로 했다. <오발탄>, <하녀> 등의 작품들로 한국 고전 영화 황금기라 불리던 60년대, <불가사리>는 인형극을 촬영한 듯한 엉성한 기술력으로 많은 혹평을 받았다. 1954년 첫 개봉, 큰 흥행을 기록하며 프랜차이즈화 된 일본의 <고지라> 시리즈와는 상반된 반응이었다. <불가사리>는 삼류 오락영화 정도로 치부됐지만 최초의 한국 괴수영화라는 점에서 의의를 남겼다. 1985년 북한에서 같은 소재, 제목의 영화가 제작되기도 했다.



(왼쪽부터) <우주 괴인 왕마귀>, <킹콩의 대역습>

그 뒤를 이은 것은 1967년 김기덕 감독의 <대괴수 용가리>다. <고지라>를 만든 일본의 쓰부라야 프로덕션이 참여했다. 불가사리와 용을 모티브로 탄생한 용가리는 특수 제작 미니어처, 세트 등 당대로서는 최신의 기술력으로 완성됐다. 이후 1970년대까지 <대괴수 용가리>와 표절 시비가 붙기도 했던 <우주괴인 왕마귀>, 최초의 한미 합작 괴수영화 <킹콩의 대역습> 등이 등장했다. 80년대에는 '서유기'를 모티브로 한 김종성 감독의 <신서유기(손오공대전비인)>, <손오공 대전홍해야>과 <우뢰매> 시리즈 등에서 다양한 괴수를 볼 수 있었다.



괴수를 향한 무한 사랑, 심형래 감독



(왼쪽부터) <용가리>, <디 워>

한국 괴수영화사에서 심형래 감독을 빼놓기란 힘들 듯하다. 1980년대, 영구 캐릭터로 최고의 인기를 구사하던 코미디언 심형래는 극장판 <영구> 시리즈, <우뢰매> 시리즈 등의 영화에 출연한다. 그리고 1992년 <영구와 흡혈귀 드라큐라>를 시작으로 1993년 괴수 사랑의 시발점인 <영구와 공룡 쮸쮸>를 연출한다. <영구와 공룡 쮸쮸>는 주연뿐 아니라 기획, 제작에까지 참여했으니 영화에 대한 그의 강한 애정이 보인다. 이후 그는 <티라노의 발톱>, <영구와 우주괴물 불괴리>, <드래곤 투카> 등의 괴수영화를 꾸준히 만든다.



그의 작품들은 코미디 요소를 섞었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고전 특촬물 영화와 크게 다를 바 없었다. 그러나 그는 1999년 최초로 CG 기술을 도입, 괴수를 창조한 <용가리>를 공개한다. <용가리>는 완성도 면에서는 졸작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디지털 시대에 걸맞은 구색을 갖춘 국내 첫 번째 괴수영화라 할 수 있겠다. 약 100억 원의 막대한 예산이 투입됐으며, 처음으로 심형래가 주연을 맡지 않은 연출작이기도 하다. 2001년 어색한 CG, 스토리 등을 보완한 <2001 용가리>를 선보이기도 했지만 이 역시 좋은 평을 받지는 못했다.



낮은 영화의 완성도로 질타를 받은 심형래 감독이지만 그의 괴수 사랑은 멈추지 않는다. 6년간 작품을 선보이지 않았던 그는 2007년, 840억 원이라는 엄청난 제작비를 쏟아부은 <디 워>로 돌아온다. 사악한 이무기가 LA를 파괴한다는 내용이다. <디 워> 역시 유치한 설정과 이야기 전개로 많은 혹평을 받았지만 도심을 파괴하는 스펙터클 면에서는 좋은 평을 받기도 했다. 속편인 <디워: 미스테리즈 오브 더 드래곤>도 2020년 개봉을 준비 중이니, 괴수영화를 향한 그의 무한 사랑은 계속될 듯하다.



한국 괴수영화의 신기원, <괴물>



<괴물>

한국 괴수영화의 최고봉은 단연 봉준호 감독의 2006년 개봉작 <괴물>일 것이다. <괴물>은 이전까지의 한국 괴수영화와 많은 차이를 보여줬다. 도시, 국가를 넘어 세계를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인물들은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자식을 구하기 위해 온갖 고생을 하는 가족들의 사투만 있을 뿐이다. 거창한 목표를 가진 멋진 주인공들이 아닌 엉성한 가족의 수난기는 관객들에게 색다른 쾌감을 선사했다.



시사점이 많은 영화로도 유명하다. 우주 혹은 고대 전설 속에서 갑자기 튀어나와 절대 악으로 묘사된 이전의 괴수들과 달리, <괴물> 속 괴물은 한강에 독극물을 폐기한 미군의 실화를 차용해 탄생했다. 또한 돈을 위해서는 친구마저 버리는 뚱게바라(임필성), 무책임한 정부, 남 일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는 대중 등 한국 사회에 만연한 여러 문제들을 틈틈이 보여준다. 영화는 "과연 누가 괴물인가"라는 의문을 남긴다. 스릴러, 코미디, 드라마를 자유자재로 오가는 절묘한 장르적 변주, 이병우의 미스터리한 음악 등도 두드러졌다. 극 후반부, 괴물의 CG는 그래픽 티가 역력했지만 이미 절정에 치달은 몰입도를 깰 정도는 아니었다. <괴물>은 봉준호 감독 최고의 흥행작이 되며, 평단과 관객 모두를 사로잡은 전후무후한 한국 괴수영화로 남았다.



근래의 괴수영화들



(왼쪽부터) <차우>, <7광구>

<괴물>, <디 워> 이후 국내 괴수영화로는 <차우>, <7광구> 정도를 들 수 있겠다. 2009년 개봉한 <차우>는 돌연변이 식인 멧돼지를 소재로 삼았다. 전형적인 오락영화의 형태를 띤 <차우>는 스릴러와 코미디를 접목시켰다. 장르 혼합이라는 면에서는 <괴물>과 유사해 보일 수도 있지만, <차우>는 억지스러운 웃음 코드로 혹평을 받기도 했다. 괴수가 내뿜는 포스와 긴장감보다는 <시실리 2km>등의 작품에서 보였던 신정원 감독의 B급 유머가 돋보인 영화였다.



그리고 2011년, 말 많고 탈 많았던 괴수영화 <7광구>가 개봉한다. <7광구>는 바다 위 시추선을 배경으로 괴생명체와 대원들의 사투를 그렸다. 고립된 공간 속에서 펼쳐지는 괴수영화라는 점에서 명작으로 평가받는 존 카펜터 감독의 <더 씽>, 리들리 스콧 감독의 <에이리언> 시리즈가 떠오르기도 한다. 그러나 영화는 엉성한 CG, 개연성 없는 스토리 등으로 많은 혹평을 받았다. 영화에 대한 기대효과도 한몫했다. 하지원, 안성기 등 쟁쟁한 배우들의 출연, 한국 영화 최초의 IMAX 상영 등으로 치솟았던 기대는 결과적으로 더 큰 실망을 낳았다. 이후 한국 괴수영화는 더욱 보기 힘든 장르가 됐다.



이처럼 근래 한국 괴수영화들은 아쉬운 모습을 보여줬다. 번외로 괴수영화의 범주에 넣기는 힘들지만 최근 괴수가 등장, 적잖은 호평을 받은 작품이 있다. 장준환 감독의 <화이 : 괴물을 삼킨 아이>다. 영화 속에서 괴수는 다섯 명의 살인자로부터 키워진 아이, 화이(여진구)의 상상 속 존재로 그려진다. 그 모습은 겨우 두 장면 남짓으로 짧게 등장하지만 화이가 처한 극단적 상황과 공포, 분노가 뒤섞인 여진구의 연기와 맞물려 강한 인상을 남겼다.



<화이 : 괴물을 삼킨 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