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해준 작품.” <안시성>이 필모그래피에서 차지하는 의미를 묻자, 배성우는 이렇게 답했다. 영화 개봉은 잠시 동안이지만, 오랫동안 함께할 동료를 얻는 건 그처럼 많은 영화에 출연한 배우에게도 흔치 않은 기회라는 말과 함께. 당의 20만 대군에 맞서 안시성을 지켜내는 사람들의 투쟁을 다룬 영화 <안시성>은 팀플레이가 무엇보다 중요한 영화였다. 성주 양만춘(조인성)의 부관 추수지를 연기하는 배성우와 안시성을 지키는 기마대장 파소로 분한 엄태구는 ‘팀 안시성’의 밑그림을 완성하는 중요한 퍼즐이다. 그런 그들이 혹독하지만 끈끈했던 <안시성>의 추억을 말한다.
-<안시성>은 전투 장면이 주가 되는 사극 액션영화다. 최근의 한국영화에서 보기 드문 설정인데.
=배성우_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다. 안시성 전투라고 하면 우리 민족의 역사 가운데서도 가장 호쾌했던 승리의 전투잖나. 드라마보다 전투에 몰입하는 사극이라는 점이 흥미롭고도 신선했다.
=엄태구_ 나도 선배님과 비슷한 이유로 출연을 결심했다. 액션 연기가 힘들 수는 있겠지만 찍는 과정이 재미있을 것 같았고, 멋진 장면으로 완성될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들더라. 개인적으로는 악역이 아니라 좋았다. 기존과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겠다는 생각에 꼭 도전해보고 싶었다.
-영화에서 안시성의 성주 양만춘을 보필하는 부관 추수지, 기마대장 파소 역을 맡았다. 각자의 캐릭터에 대한 첫인상은.
배성우_ 사실 처음 봤을 때는 밋밋했다. 전투에 몰입하는 영화이다보니 개인의 서사가 많지 않다. 추수지의 경우 개인적인 특징이 전혀 없는 인물이라고 해도 무방한데, 그러다보니 더더욱 이 인물을 어떤 캐릭터로 만들지 고민을 많이 했다. 감독님, (조)인성이와 많은 얘기를 나누며 추수지라는 인물을 만들어나갔다. 특히 인성이와는 <더 킹>을 함께하며 자주 보는 사이가 됐는데, 그런 개인적 친분이 영화에도 투영되지 않았나 싶다. 격의 없는 사이라면 서로 투닥거리기도 하고, 계급이나 나이에 상관없이 서로를 이해해주잖나. 양만춘과 추수지의 관계도 그럴 거라고 봤다.
엄태구_ 파소는 드라마틱한 사연을 가진 인물인데 스포일러가 될까봐 말하지 못하는 게 아쉽다. 기본적으로 우직하고 따뜻한 인물이다. 능글맞은 모습도 있는 것 같다. 설현씨와 함께 연기하는 장면이 꽤 있는데, 서로 낯을 많이 가려서 많은 대화를 나누진 못했지만 굉장히 올곧은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추수지는 창검에, 파소는 기마에 능하다. 이처럼 인물마다 액션 컨셉이 뚜렷한데 준비는 어떻게 했나.
배성우_ 우리 영화는 슬로모션으로 액션을 보여주는 장면이 많다. 천천히 보여줄수록 관객은 디테일에 집중하게 되니까, 가짜는 금방 들통나게 되어 있다. 최대한 리얼한 액션을 보여주기 위해 악착같이 노력했다. 창은 휘두르는 자세가 중요해서, 멋진 자세를 위해 연습을 많이 했는데 대역을 맡은 친구의 시범포즈를 도저히 따라갈 수 없겠더라. 그래도 모든 장면을 대역 없이 스스로 연기했다는 점은 뿌듯하다.
엄태구_ 기마 대장 역할이기에 말 타는 연습을 많이 했다. 현장에서 쉴 때도 안장 위에 앉아 있거나 말과 함께 산책하는 등 기마에 익숙해지려는 노력을 가장 많이 했던 것 같다. 말을 탄 채로 대기하고 있다가 신호가 떨어지면 달리기 시작하는데, 맨 앞에서 달리는 희열이 엄청나더라. (웃음)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안시성>은 모두의 모습이 한 화면에 걸리는 전투 장면이 많다. 팀워크가 무척 중요했을 것 같다.
배성우_ 우리끼리 “<안시성>은 ‘힘듦’이 장르”라는 농담을 했다. 혹독한 날씨, 먼지와 불, 바람이라는 외적 요소들 때문에 다들 많이 힘들었을 거다. 그런데 참 감사하게도 배우들 성격이 너무 좋았고 현장에서 빠르게 친해졌다. 마침 <안시성>이 똘똘 뭉쳐서 적을 물리치는 이야기잖나. 우리의 끈끈한 팀워크를 영화 속 모습으로 연결시켜보자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 극중에 전투에서 이긴 뒤 맛있는 걸 먹으며 웃고 떠드는 장면이 있다. 대본이 따로 없어서 배우들끼리 수다를 떨고 있는데 감독님이 그 모습을 그대로 영화에 쓰셨더라. 옛날 고구려 사람들도 딱 우리 같지 않았을까. 지지고 볶고 웃고 떠들고.
-차기작 계획도 궁금하다.
배성우_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의 촬영을 시작했다. 지금까지 만났던 인물 중 가장 특징이 없다 싶은 인물이 추수지였는데, 그보다 더 특징이 없는 게 특징인 인물을 맡았다. (웃음) 그래서 어렵다. 강렬한 임팩트가 있는 인물보다 가장 일반적인, 보통 사람 캐릭터를 연기하는 게 더 어렵더라.
엄태구_ <뎀프시롤>(가제)을 촬영했다. 장구 장단에 맞춰서 복싱을 하는 ‘판소리 복서’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특이하고 기발한 영화가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