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디지털인 줄 알아?” 북한의 리관암 감독이 배우에게 호통쳤다. 필름 촬영에 엔지를 많이 내면 어떻게 하냐는 거다. <안나, 평양에서 영화를 배우다>의 안나 브로이노스키 감독이 평양까지 간 것은 다국적 기업에 의해 행해지는 호주의 셰일 가스 채굴을 반대하는 북한 스타일의 선전영화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영화 개봉을 앞두고 한국을 찾은 그를 만나 흥미진진한 제작기를 들었다.
-평양에서 영화를 찍고 서울에서 상영하는 소감이 어떤가.
=영화를 찍을 때만 해도 남한에서 상영할 수 있을지 상상할 수 없었다. 북미정상회담 이후 남북 관계가 변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북한의 모습을 드러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영화를 찍기 전에 북한영화에 대해 알고 있었나.
=잘 알고 있었다. 북한에 가기 전에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이 쓴 책 <영화와 연출>을 읽고 북한 스타일의 영화를 만드는 방법에 대해 많이 연구했다. 신상옥 감독이 북한에서 찍은 영화 <불가사리>(1985)를 보고 북한영화를 더 잘 알고 싶었고, 이후 <도라지꽃>(1987), <평양 날파람>(2006) 등 다른 영화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북한 스타일의 선전영화 만드는 방법을 배워 셰일 가스 채굴을 막으려고 하는 발상이 재미있더라.
=사실 말도 안 되는 발상이다. (웃음) 그 아이디어는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전략일 뿐이다. 다국적 기업의자본주의의 프로파간다와 북한의 프로파간다를 비교해 보여주고 싶었다.
-촬영 허락을 받는 데만 2년이 걸렸다고.
=호주에는 북한 대사관이 없다. 그래서 여러 국가에 주재하는 북한 대사관에 편지를 썼는데 허락을 받지 못했다. 주스페인 북한 대사관에서 7만 유로를 내면 북한에 들어가 촬영할 수 있다는 내용의 답변이 왔는데 그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러다가 북한을 자주 오가는 영국 감독의 도움을 받아 북한에 들어갈 수 있었다.
-답사차 평양을 처음 방문했을 때 북한의 신뢰를 얻는 게 중요했을 것 같다.
=많은 서구의 영화감독들이 북한에 들어가서 필요한 장면만 찍고 돌아오는 반면 나는 호주와 호주영화를 그들에게 알려주었다. 북한 영화인들을 만나 평양냉면을 먹고 소주를 마시며 함께 어울렸다.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그들도 좋아했던 것 같다. 신뢰를 쌓은 덕분에 그들이 다시 와도 된다고 허락했고, 이후 21일 동안 그곳에서 영화를 찍을 수 있었다. 정직함이 최고의 전략임을 깨달았다.
-평양에 대한 첫인상이 어땠나.
=남한 사람들이라면 도시 곳곳에 있는 선전문구 내용이 먼저 눈에 들어왔을 테지만, 내게는 그 문구조차 파스텔톤의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정치적인 해석을 차치하고 본다면 북한은 스스로를 가둔 채 진화한 문화를 가지고 있어 1950년대 뮤지컬을 보는 느낌이었다. 다큐멘터리 박사 과정에서 프로파간다를 전공한 내게 평양은 디즈니랜드 같았다.
-셰일 가스 채굴 개발을 막겠다는 목적은 달성했나.
=불행히도 다국적 기업을 막지 못했다. 그럼에도 호주 퀸즐랜드에선 여전히 땅을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