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두고 찰리 채플린과 겨루다
위대한 작가의 청춘 시절을 이야기하면서 첫사랑을 언급하지 않기란 어려운 일이다. J. D. 샐린저는 예외 없이 사교계에서 가장 유명한 여성 중 하나였던, 우나 오닐에게 반했다. <지평선 너머> <밤으로의 긴 여로> 등을 집필하고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극작가 유진 오닐의 딸이다. 당시 샐린저는 22살, 우나 오닐은 겨우 16살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한 것이 콤플렉스라고 고백한 우나 오닐은 젊고 유능한 샐린저의 구애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샐린저와 우나 오닐은 각각 군대와 캘리포니아로 떠나면서 관계의 휴지기를 맞는다. 배우를 꿈꿨던 우나 오닐은 이후 할리우드에서 찰리 채플린과 결혼하고, 채플린이 사망할 때까지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다. 채플린의 네 번째 결혼은 36살의 나이 차이로도 세간의 화제가 됐다. 한편 샐린저는 군 부대에서 신문을 통해 이 소식을 처음 접하고 큰 충격에 빠진다.
영화화를 향한 끈질긴 구애를 거절하다
“내가 싫어하는 것을 딱 하나 꼽자면 그건 영화다. 나에게 영화 이야기는 아예 꺼내지도 말았으면 좋겠다.” <호밀밭의 파수꾼> 속 홀든 콜필드는 소설이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렇게 밝힌다. 2010년에 샐린저가 사망하기 전까지 엘리아 카잔, 빌리 와일더 그리고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영화화에 관심을 보였다. 엘리아 카잔 감독의 영화화 제의를 거절할 때 샐린저는 위에서 언급한 소설 속 문장을 의식한 듯, “홀든이 싫어할 것 같다”고 대답하기도 했다. 대체 왜 영화화를 거부하는지 따져 묻는 독자의 편지에는 “홀든 콜필드는 근본적으로 연기가 불가능한 인물”이라고 일갈했다. 미국 온라인 잡지 <슬레이트>는 이런 사실을 정리하며 “<호밀밭의 파수꾼>은 한번도 각색된 적 없다. 그러나 그 영향은 모든 곳에 있다”라고 평했다. 여기까지만 보면, 영화화를 강박적으로 싫어하는 작가의 스토리로 조금도 빈틈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딱 한 차례 영화로 만들어진 작품이 있다. 단편 <코네티컷의 위글리 아저씨>(1948)다. 이십세기 폭스사의 전신인 이십세기픽처스의 설립자 대릴 재넉이 판권을 구입해 1949년 <어리석은 내 마음>이라는 영화를 발표했다. <어리석은 내 마음>으로 배우 수잔 헤이워드는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도 지정됐지만, 샐린저만큼은 끝까지 이 영화를 질색했다.
<파인딩 포레스터> 그리고 <샐린저>
비록 그럴듯한 영화화는 이루어지지 못했지만, 니콜라스 레이 감독의 <이유없는 반항>(1955)을 <호밀밭의 파수꾼>의 후계자라고 평가할 수도 있다. 체제에 반항하는 제임스 딘 캐릭터는 홀든 콜필드에 열광했던 젊은 층의 지지를 그대로 흡수한 것처럼 보인다. 긴 시간이 흘러 구스 반 산트의 <파인딩 포레스터>(2000)에는 샐린저에게서 모티브를 얻은 듯한 인물이 등장한다. 속세와 인연을 끊고 은둔하는 작가 포레스터(숀 코너리)다. 현실의 부박함에 혀를 차며 점점 고립되어만 가는 인물 포레스터는 뉴햄프셔 시절의 샐린저를 연상시킨다. 문학적 자질이 뛰어난 흑인 소년과의 우정을 통해 새로운 변화를 맞이한다는 서사는 샐린저의 실제 삶과 맥락을 달리하지만, 현대판 샐린저에 대한 구스 반 산트의 재해석이라고 할 만하다. 지난 2013년에는 샐린저의 삶에 대해 6년간 자료를 수집한 다큐멘터리 <샐린저>가 칸국제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되기도 했다. J. D. 샐린저의 의지와 달리, 그의 삶과 작품을 스크린에서 보고자 하는 관객의 욕망은 이렇게나 끈질기게 세대를 초월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