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BIAF에서 만난 영화인들③] <우리의 계절은> 리하오린 감독, "주변의 것을 귀하게 여기는 정서를 담고 싶었다"
2018-10-31
글 : 김현수
사진 : 최성열

올여름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옴니버스 장편애니메이션 <우리의 계절은>은 <너의 이름은.>을 성공시킨 제작사 코믹스 웨이브의 차기작이면서 중국 제작사 하오리너스와 협업한 중·일 합작영화라는 점에서 여러모로 제작 과정이 궁금했다. 코믹스 웨이브와 함께 도쿄가 아닌 상하이와 광저우 등에서 펼쳐지는 젊은이들의 꿈과 사랑에 관한 이야기는 어떻게 기획되었을까. 이 영화를 총괄 기획하고 세 번째 단편 <상하이의 사랑>을 연출한 리하오린 감독을 만나 <우리의 계절은>이 BIAF에 초청되어 한국 관객과 만나게 된 소감을 물었다.

-제작사 코믹스 웨이브와의 합작 스토리가 궁금하다. 그곳에서 제작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초속5센티미터>(2007)를 너무 좋아한 나머지 몇년 전부터 꾸준히 합작을 제안했었다고 들었다.

=2011년 즈음에 코믹스 웨이브 대표인 노리타카 가와구치 프로듀서와 알게 됐는데 그때 이후로 합작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나는 TV애니메이션을 주로 만들던 회사에 다니고 있었고, 당시 양국의 애니메이션 시장도 그리 상황이 좋지 않았다. 그 이후 내가 제작사 하오리너스를 차려 웹 기반의 애니메이션을 전문으로 작업하게 되었고, 또 시장 상황도 나아져서 기회가 찾아왔다.

-3편의 옴니버스 단편으로 이뤄진 <우리의 계절은>은 중국 도시를 배경으로 각각 의식주라는 주제를 나누어 다루고 있다. 영화의 큰 방향은 누구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나.

=의식주라는 큰 주제는 내가 정했다. 함께 연출한 이샤오신 감독은 내가 섭외했고 다케우치 요시타카 감독은 일본에서 추천해줬다. 각 작품의 디테일한 표현과 아이디어는 감독들에게 자율적으로 맡겼다. 중국의 지형, 정서, 캐릭터에 대해 전체적인 조율을 하는 정도였다. 각 작품의 주요 배경 역시 감독들의 선택이었다. 이샤오신 감독은 후난성 출신으로 베이징에서 오래 살았고, 다케우치 요시타카 감독도 광저우에 관심이 많았다. 물론 패션에도 조예가 깊었다.

-3편의 공통된 정서나 스타일에 대해 나름의 방향을 논의한 것이 있었나.

=의식주를 다루되 그 안에서 가족간의 정이나 첫사랑을 소재로 삼으며, 어떤 교과서적인 접근보다는 사람 사이의 끈끈한 관계를 표현하고자 했다.

-코믹스 웨이브와 하오리너스의 역할분담은 어떻게 이뤄졌나.

=하오리너스는 중국어 대본과 스토리보드, 중국어 버전의 음악과 더빙을 맡았다. 중국 취재가 필요한 부분은 우리가 도맡았고, 코믹스웨이브는 감독이 꾸려진 뒤에는 원화를 작업했다.

-한국에서는 중국어 더빙 버전을 접할 수가 없다. 그리고 일본과 중국, 인터내셔널 버전이 존재한다고 하는데 내용이 다른가.

=일본어 더빙과 중국어 더빙 버전이 있는데 중국어 더빙은 인터내셔널판과 본토 버전이 존재한다. 넷플릭스는 중국어 더빙을 자체적으로 만들어 인터내셔널 버전을 서비스하고 있다. 중국 내 동영상 플랫폼인 아이치이나 비리비리에서만 볼 수 있는 본토 버전은 사투리를 사용하고, 주제가도 따로 있다. 그런데 한국 계정에 대해 중국어 더빙 버전을 제공하지 않는다는 건 몰랐다.

-넷플릭스 배급을 결정한 이유도 궁금하다. 일본에서는 넷플릭스 공개와 함께 극장 동시개봉을 하기도 했다. DVD를 출시한 것도 넷플릭스 작품으로서는 이례적인 행보 아닌가.

=현재 넷플릭스는 중국에 진출할 수가 없다. 내 입장에서는 중·일 합작영화, 나아가 아시아영화를 전세계에 보여주고 싶은 바람이 있어 넷플릭스 배급이 필요했다. 넷플릭스가 중국 외 배급을 담당하는데, 코믹스 웨이브는 자신들의 영화에 대해 DVD 판권을 그들만이 소유한다. 이를 넷플릭스가 받아들인 것이다. 해외 발매가 아니라 일본 내수용으로 자체 발매했기에 가능했다.

-세 번째 단편 <상하이의 사랑>은 <초속5센티미터>에 오마주를 바치는 작품 같다.

=이 작품은 놓쳐버린 첫사랑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정서적인 표현 방법에서 <초속5센티미터>의 영향을 많이 받았을 거다. 그러면서 우리 주변에서 점차 사라지는 것들에 관심을 기울이고 싶었다. 주변의 것을 귀하게 여기라고 말하고 싶었다.

-또한 <상하이의 사랑>에서는 1990년대 상하이와 현재의 상하이를 배경으로 지금은 점점 사라져가는 주거 형태인 스쿠먼(石庫門)을 아름답게 표현하고 있다. 상하이라는 도시가 지닌 어떤 매력을 표현하고 싶었나.

=스쿠먼은 우리 가족과 친구들이 살던 공간 형태다. 과거에는 그런 곳에서 다 같이 모여 서로 살을 맞대고 살았다. 주거 공간이 점점 현대화될수록 친밀했던 가족관계도 자연스레 멀어졌다. 공간이 가족간의 거리 변화를 말해준다. 그래서 나는 영화를 통해 과거 상하이의 따뜻한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싶었다. 한국에서는 요새 ‘소확행’이라고도 표현하던데 그 시절의 사소했던 행복의 추억을 담고 싶었다. 노리타카 가와구치 프로듀서에게 이런 작품 주제를 이야기했을 때도 “우리 회사가 배경을 잘 그리지 않나. 주제가 잘 맞을 수 있겠다”며 좋아했다. (웃음)

-<상하이의 사랑>을 비롯해 사라져가는 오래되고 낡은 추억, 카세트테이프 같은 아날로그 감성 소재를 주로 다루는 점도 리하오린 감독만의 개성 같다.

=뿐만 아니라 젊은 두 남녀의 러브 스토리를 표현할 때에도 중국 사람들은 일본 사람들에 비해 더욱 조심스러운 면을 지닌다. 왜냐하면 우리는 19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학생들은 연애를 하면 안 되는 분위기 속에서 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이나 일본 젊은이들보다 감정을 더 억누르고 감추거나 부끄러워하는 면이 강했던 것 같다.

-처음 애니메이션에 뛰어들게 된 계기도 궁금하다.

=2008년에 대학교를 졸업하면서 애니메이션을 시작했는데 당시에는 애니메이션 전공이 개설된 학과도 없고 시장도 형성되어 있지 않아 힘들었다. 정말 소규모 회사에 들어가 입문하듯 배우면서 일을 시작했고 한참 후에 텐센트나 아이치이 같은 플랫폼이 생겨나면서 웹 기반의 애니메이션을 만들 기회가 늘어났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인터넷 애니메이션을 만들기 시작했다. 구인 창구도 없어서 채팅 애플리케이션으로 사람들을 모았다. 그러다 2014년에 지금의 회사를 차렸다. 중국 전역을 통틀어 직접 해외 시장과의 협력을 개척한 것은 우리가 처음이다.

-각 나라의 지사마다 역할이 나뉘어지나.

=한국 지사는 주로 제작 파트를 담당해 한국 제작사와 연계 업무를 하고 있고, 일본 지사는 제작팀의 육성, 일본 제작사와의 비즈니스, 해외 배급 시장 운영이나 부가 사업 등을 담당한다.

-차기작 계획도 궁금하다.

=극장 개봉용 장편영화 작업을 하고 있고, 해외 배급을 논의 중이다. 두 번째는 성인 대상의 오리지널 시리즈의 공동 기획하는 작품이 있는데 넷플릭스 배급도 논의 중이다.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 한국 관객과 지속적으로 만나고 싶다.

<우리의 계절은>은 어떤 작품?

중국의 세 도시를 배경으로 한 3편의 단편영화를 모은 옴니버스 형태의 영화다. 베이징에서 외로운 도시 생활을 하는 젊은이가 할머니의 음식 미펀을 그리워하는 <따뜻한 아침식사>, 광저우에서 패션 모델로 살아가는 이린과 루루자매의 꿈을 다룬 <작은 패션쇼>, 대학 진학을 앞두고 서로의 애틋한 마음을 표현하지 못한 채 헤어진 샤오유와 리모의 안타까운 사연을 담은 <상하이의 사랑>은, 각각 중국 젊은이들의 의식주를 표현한다. 세 작품은 현대 중국 사회에서 꿈을 펼치며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도전과 사랑, 그리고 과거를 추억하는 노스탤지어의 정서로 묶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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