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다의 그해 여름>(2017)은 카를라 시몬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로, 엄마를 잃은 6살 소녀가 친척집에 맡겨진 뒤 낯선 환경에 적응해나가는 과정을 섬세하게 담는다. 천재적인 아역 라이아 아르티가스의 연기와 감독의 사려 깊은 연출이 기적처럼 느껴진다. 바르셀로나에서 살던 프리다(라이아 아르티가스)는 외삼촌 부부를 따라 시골로 내려간다. 어른의 눈으로 보았을 때 별 문제가 없어 보인다. 외삼촌 부부가 프리다를 냉대하는 것도 아니고, 사촌동생 아나(파울라 로블레스)는 프리다를 좋아한다. 하지만 영화는 프리다가 느끼는 불안, 질투, 회피, 영악함, 투정, 눈치보기, 거짓말, 죄의식, 반항, 그리움, 애정결핍, 서운함, 우울, 두려움, 안도감 등을 담아낸다.
흔히 엄마를 잃은 아이가 친척집에 맡겨지는 서사를 다룰 때 가장 쉬운 접근이 차별이나 학대를 당하는 이야기다. 아이는 ‘이노센트’한 존재로, 죽은 엄마와의 관계는 이상적으로 그려진다. 즉 행복하게 살던 순진한 아이가 어른들에게 미움을 받는다는 ‘피해자 서사’를 펼치곤 한다. <프리다의 그해 여름>은 전혀 다른 길을 간다. 프리다는 순진무구한 존재가 아니며, 죽은 엄마에게 사랑을 담뿍 받은 아이도 아니다. 더욱이 엄마의 죽음이 품고 있는 비밀은 아이가 새로운 곳에 적응하기 힘든 요소로 작용한다. 요컨대 프리다를 가족으로 맞아들이는 것이 외삼촌 가족에게 오히려 힘든 일이었을 수 있으며, 외숙모(브루나 쿠시)의 성격이 조금만 강퍅했더라면 훨씬 나쁘게 흘러갔을 것이다. 이처럼 영화는 아이의 입장에서 풀어가지만 아이의 주관적 감정에 관객을 몰입시키지 않는다. 담담한 관찰자의 위치에서 거리를 유지하며 객관적인 판단이 이루어지도록 한다.
영화는 프리다의 질투와 경쟁심을 보여준다. 프리다가 처음 짐을 풀었을 때, 아나에게 자신이 선물로 받은 인형들을 자랑하며 만지지 말라고 말한다. 이는 프리다가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것에 민감하며, 그 사랑을 아나와 공유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는 점을 알려준다. 프리다는 아나를 경쟁자로 생각하는데, 상추를 뽑아오라는 외숙모의 심부름을 자신이 수행하여 인정받으려는 행동에서 잘 드러난다. 외숙모는 프리다의 엄마가 신종 바이러스에 걸려 폐렴으로 죽었다고 말하지만, 친척과 이웃들의 행동을 보면 석연치 않은 점들이 있다. 프리다가 아나와 놀면서 죽은 엄마를 흉내내는 장면이나 프리다의 엄마에 대해 “네 아버지 때문에 바보 같은 짓도 많이 했다”라는 할머니의 말은 프리다의 엄마가 방탕한 생활을 했음을 추측게 한다. 프리다의 엄마에 앞서 아빠도 죽었다는 사실이나 프리다가 여러 번 피검사를 받아야 하는 상황, 프리다가 피부를 긁는 것에 외숙모가 유독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 그리고 프리다가 피를 흘리자 주변 사람이 유난스럽게 반응하는 점 등은 프리다의 엄마가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에 감염된 것이 아닐까 짐작하게 한다. 1980년대 중반에 세상에 알려진 HIV 감염이 80년대 후반에 빠르게 확산되면서,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일상생활을 통해 HIV가 감염될 수 있다는 괴담이 널리 퍼졌다. 이런 상황을 고려하면 외숙모가 프리다를 편견 없이 대하는 모습은 예사롭지 않다.
그렇게 가족이 된다
영화는 프리다의 감정이 몇번의 고비를 넘는 것을 보여준다. 동생을 보살피는 것에 익숙지 않은 프리다는 귀찮게 쫓아다니는 아나를 숲속 나무에 두고 온다. 그러고 나서 외숙모가 아나를 찾자 거짓말을 한다. 영화는 물웅덩이 등을 비추며 아나가 혹시 잘못되지 않았을까 하는 프리다의 불안을 담는다. 장면이 바뀌어 팔에 깁스를 한 아나가 들어올 때, 관객은 프리다와 함께 안도한다. 프리다는 아나가 다친 것에 미안함과 죄의식을 느끼지만 사과하지는 않는다. 외삼촌 부부의 다투는 소리를 들으며 불편해할 뿐이다. 프리다가 감정에 미숙한 탓인데, 다행히 외숙모와의 감정은 다음 장면을 통해 풀린다. 프리다는 생리통으로 누워 있는 외숙모를 쓰다듬으며, 외숙모의 코에 손을 대본다. 외숙모도 엄마처럼 죽지 않을까 걱정하는 프리다를 보고 외숙모는 연민을 느꼈는지 자신은 죽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며 안심시킨다. 이 장면은 프리다가 외숙모를 안정된 양육자로 받아들였음을 암시한다. 마음의 거리가 좁혀지자 프리다는 아나를 따라 밤중에 부부의 침대로 파고든다. 때마침 프리다의 가려움증이 고양이털 알레르기로 밝혀지자 외숙모는 프리다와 아이스크림을 나눠 먹으며 격의 없이 웃는다.
하지만 이런 흐름이 순탄하지만은 않다. 프리다를 따라 수영하던 아나가 물에 빠지자, 외삼촌은 프리다에게 원초적으로 화를 낸다. 이번에는 전혀 잘못한 것이 없지만, 아나를 숲에 두고 왔을 때보다 더 큰 꾸지람을 들은 프리다는 마을 축제에서도 혼자인 듯한 기분을 느낀다. 이후 프라다의 행동이 이상해진다. 좋아하던 할머니가 사준 잠옷 색깔이 아나와 같지 않다는 이유로 심하게 투정을 부리고, 외삼촌 부부가 자신을 학대한다는 거짓말을 한다. 이모들을 따라가겠노라 고집을 부리다가, 급기야 한밤중에 가출한다.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라는 프리다에게 아나가 “나는 언니 사랑하는데”라고 답하자, 프리다는 처음으로 인형을 준다. 가출해 큰길까지 나갔던 프리다는 외삼촌 부부가 자신을 찾는 것을 보자 금방 집으로 돌아온다. 이는 프리다의 마음이 상대의 관심과 반응에 따라 얼마나 유동적인지를 잘 보여준다. 그날 밤 외숙모의 쓰다듬는 손길을 느낀 프리다는 다음날 마을 축제에서 자신이 주인공인 양 깃발을 들고 달리며 흥겨워한다.
프리다는 외숙모에게 엄마의 죽음에 대해 묻는다. 외숙모는 건조하게 사실만을 말해준다. 프리다는 자신이 왜 엄마의 임종을 보지 못했으며, 엄마가 자신에게 어떤 말을 남겼는지 묻는다. 언제나 묻고 싶었지만 아무에게도 묻지 못했던 말을 외숙모에게 묻고, 담담한 목소리로 답을 들으면서 프리다는 가슴에 맺혔던 응어리가 풀어지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시퀀스는 압도적인 해소감을 안긴다. 아나와 함께 목욕하고 나온 프리다가 같이 잠옷으로 갈아입는다. 잠옷 색깔로 차별받는다는 느낌을 받았던 프리다와, 할머니를 ‘언니의 할머니’라 칭하는 아나에게 외삼촌은 “할머니가 같다”라고 말해준다. 프리다와 아나가 외삼촌과 얽혀 까르르까르르 몸싸움을 하는 장면은 아무런 거리낌도 없는 천진난만한 행복으로 가득하다. 영락없이 이 집 큰딸이 된 충만한 순간, 프리다는 별안간 눈물을 쏟는다. 이제 가족이 되었다는 안도감에 그동안 품고 있던 긴장이 일시에 풀어지며 눈물이 터진 것이다. 위태로운 감정의 골짜기를 돌아 그렇게 가족이 되었다.
미세한 감정의 골을 지나 새로운 가족으로 단단하게 맺어지는 과정은 찡한 감동을 안긴다. 특히 혈연관계가 없는 외숙모와 프리다가 안정된 모녀관계를 맺어가는 과정은 교훈을 남긴다. 프리다가 학대받는다고 거짓말을 하며 이모들을 따라가겠다고 나섰을 때 친척들이 외숙모를 믿지 못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보다 외숙모가 프리다와의 관계를 포기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최근 개봉한 일본영화 <친애하는 우리 아이>(2017)에는 재혼가정에서 계부와 딸의 관계가 불신과 서운함에 요동치며 파탄 직전까지 갔다가 가까스로 봉합되는 과정이 담겨 있다. 아이의 불안정한 심리에 일비일희하지 않고 양육자가 일관된 태도로 아이에게 신뢰를 준다면 혈연과 무관하게 좋은 부모가 될 수 있다. 곱씹을수록 외숙모는 얼마나 비범한 사람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