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제7회 스웨덴영화제②] <베리만 아일랜드> 마리 뉘레로드 감독 - 그는 외로웠던 사람
2018-11-22
글 : 김소미
사진 : 백종헌

-1980년 스웨덴 공영방송 <SVT>에 입사해 아직까지 일하고 있다. 기자, 프로듀서, 다큐멘터리 감독 등 다방면을 섭렵 중인데.

=뉴스 기자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첫아이를 임신하고 1986년부터 문화예술부로 자리를 옮겼다. 지극히 사적인 관심에서 지원한 일이었다. 지금도 문화예술계 소식을 종종 뉴스로 전하고 있지만, 다큐멘터리 작업에 좀더 집중하고 있다. 텔레비전 방송용 다큐멘터리의 책임 프로듀서로도 활동 중이다.

-잉마르 베리만이 노년을 보낸 포뢰섬을 방문해 그를 인터뷰한 유일한 언론인이다.

=1983년에 인터뷰차 베리만을 처음 만났고, 1997년에 <SVT>의 문화지에 들어갈 긴 인터뷰를 나눈 것이 중요한 계기를 됐다. 이후 그가 나에게 편견 없이 대해주어서 고마웠다고 전화를 해왔다. 당시 업계에서 잉마르 베리만은 다루기 어려운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있었지만 나는 그와의 대화가 꽤 편안하다고 느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더 심도 있는 만남을 가져야겠다고 결심한 그때 이후로 무려 5년이 지나서야 포뢰섬에 입성할 수 있었다. 인터뷰 준비가 아주 잘되어 있을 수밖에 없었지. 베리만에 대한 거의 모든 자료를 읽을 수 있을 만큼의 긴 기다림이었다. (웃음)

-85살의 베리만을 담은 <베리만 아일랜드>를 2004년 발표했다. 다큐멘터리를 실질적으로 촬영한 시점과 기간은.

=약 5주간 촬영했다. 그전에 스톡홀름에서 5일 정도 촬영한 분량이 있었고. 그렇게 30시간 정도의 푸티지들을 얻었다. 2004년 <SVT>에서는 각각 1시간 분량의 3부작(영화, 연극, 사적인 삶)으로 편성돼 극장판보다 훨씬 긴 분량이 방영되었다.

-잉마르 베리만의 작품이나 다큐멘터리는 스웨덴 방송가에서 시청률이 어느 정도 되나.

=<베리만 아일랜드>의 경우 50만명 정도. 많은 수라고는 보기 어렵다. 베리만은 사실 스웨덴에서조차 단 한번도 대중적인 적이 없었던 예술가다. 어둡고 어려운 흑백의 작가로 취급되는 건 스웨덴에서도 똑같다. 그나마 <화니와 알렉산더>(1982)가 스웨덴의 전통적인 크리스마스 풍경을 담고 있기에 좀더 쉽게 공유되는 영화다. (웃음)

-반면에 TV드라마의 경우 전 국민적 인기를 얻기도 했는데.

=<SVT>에서 드라마로 제작된 6부작 미니시리즈 <결혼의 풍경>(1973)은 방영시간대가 되면 길거리에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드라마 종영 이후 스웨덴의 이혼율이 전보다 2배 가까이 치솟았다는 보고도 있다. 당시만 해도 마음만 먹으면 전화번호부에서 잉마르 베리만을 찾아서 개인적으로 전화도 걸 수 있었다. 나중에 들었는데, 베리만에게 결혼 생활에 대한 조언을 해달라는 요청이 쇄도했다고 한다. (일동 웃음)

-스웨덴의 텔레비전 보급과 동시에 베리만은 매우 빨리 TV매체로 뛰어들었다. 방송 관계자로서 그의 행보를 평가한다면.

=베리만은 1957년에 첫 번째 텔레비전 연극을 선보였다. 당시에 보급된 전체 텔레비전 수가 겨우 2만대 정도였으니, 그는 다른 영화감독들과는 매우 다른 선택을 한 셈이다. 이른바 얼리어답터가 아닐까. 1950년대에 5개의 텔레비전 연극을 만들었고, 1975년에는 오페라 <마술 피리>를 스웨덴어로 바꾸어서 TV 관객층을 넓힌 것이 지금까지도 특별하게 기억되는 점이다. 그는, 영화는 하이클래스의 예술이고 텔레비전은 그보다 수준이 낮다는 인식을 싫어했다.

-자서전 <마법의 등>에서 그랬던 것처럼 <베리만 아일랜드>에서도 베리만은 5번의 결혼과 9명의 자녀들에 관한 죄책감을 털어놓기도 하고, 과거 인터뷰에서 <외침과 속삭임>(1972)에 대해 “자신의 어머니와 모성에 대한 영화”라고 답한 것이 순간적으로 지어낸 말일 뿐이었다고 고백하는 등 매우 덤덤하고 솔직한 모습으로 나타나 인상적이다.

=오랜 시간이 지나고 다시 영화를 보았을 때, 나조차도 깜짝 놀라게 된 점이 바로 그것이다. 이 영화에서 베리만은 자신의 작품보다는 사적인 삶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한다. 촬영 당시 그는 직업적으로 은퇴한 상태였고, 외로운 한명의 인간이었다. 포뢰라는 지독히도 고요한 외딴섬에서 아무도 만나지 않고 지냈다. 많은 영화계 사람들이 젊은 시절의 베리만이 보였던 예민하고 불같은 성격을 두고 악평을 하기도 하지만, 나는 다큐멘터리 촬영 후 그를 변호하는 입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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