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부도의 날>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끊임없이 의심하고 사실을 확인하는 것.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그리고 항상 깨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 <국가부도의 날> 결말부에 깔리는 전 한국은행 통화정책팀장 한시현의 내레이션은 배우 김혜수 본인의 일상적 다짐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진실하고 아름다운 것들을 바쁘게 보고 듣는 이 배우의 습벽은 예술만을 대상으로 한정하지 않아서, 같이 읽고 싶은 기사 링크를 채팅창에 하도 자주 올리는 바람에 친구들이 피로를 호소할 정도다. 연기생활 30주년인 2016년 이후 <굿바이 싱글>(2016), 드라마 <시그널>(2016), <미옥>(2017)까지 우연히도 김혜수는 약자 혹은 다음 세대가 일단 무사히 어른이 될 수 있도록 그때까지 지켜주려는 인물을 연기했다. KBS <다큐 공감-김혜수의 난민일기>(2017)에서 난생처음 만난 난민 어린이들을 두셋씩 끌어안고 목말을 태우는 그를 보며 나는 아무래도 김혜수는 한둘이 아니라 가능하면 수십, 수백 아이의 엄마가 되는 편이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에 기여하는 길이라는 생각을 했다. 스스로 계속 배우고 발전하는 좋은 어른 캐릭터를 연기하는 동안 배우 김혜수도 숙성하고 있다. 본인이 큰 희열을 얻은 근작으로 꼽는 드라마 <시그널>에서, 김혜수는 역대 배역 가운데 가장 사실적이면서 진일보한 여성 캐릭터 차수현을 20년의 시간을 아우르며 안정적으로 연기했다. 이마에 “능동적”이라고 써붙이는 일 없이 능동성을 드러내고, 슬픈 사랑의 기억을 가슴 포켓에 넣은 채 현장을 뛰어다니고, 리더로서 중심을 잡았다. 그런가 하면 <국가부도의 날>의 화장기 없는 얼굴이나 <시그널>의 회상 속에서는 <첫사랑>(1993)의 영신이 문득 보여 놀라움을 주기도 했다. 우리가 기억하는 그 소녀를 김혜수는 아직 떠나보내지 않은 것이다. <굿바이 싱글> 속 40대 배우 고주연은 “다 협찬이야. 내 것이 하나도 없어!”라고 외쳤지만 김혜수는 ‘진짜 내 것’들을 하나씩 수확하는 계절에 진입한 것처럼 보인다.
-<차이나타운>(2014)을 마치고 곧장 <굿바이 싱글> 촬영에 들어갔고 다시 며칠 쉬지 못하고 드라마 <시그널>, 그리고 <미옥>을 찍었습니다. <국가부도의 날>은 <미옥> 이후 1년 만이니 숨고르기를 한 셈인가요?
=1년이나 1년 반에 영화 한편이 원래 제 주기고, 말씀하신 시기에만 공교롭게 작업이 겹친 거예요. <시그널>은 제가 욕심내면 안 되는 일정이었고 적어도 초반에는 차수현 캐릭터가 연기로 두드러질 만한 면도 없었지만 이 작품에 참여하고 싶다는 생각이 더 컸어요. 무엇보다 장기미결사건을 다루는 <시그널>의 관점이 피해자와 유가족의 그것이라는 사실이 좋았어요. 보통은 피해자 관점을 견지하겠다고 해도 형식적으로만 다뤄지고 결국 가해자나 형사 위주가 되기 쉬운데 <시그널>은 정말 관점을 지켰어요. 후반 대본을 받고야 알았지만 세명의 주요 인물이 모두 미제사건의 직간접적 피해자이기도 하죠. 처음 김원석 감독님에게 물어본 질문도 제 역할에 관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사건을 다루게 되냐는 거였어요. 어떤 케이스냐에 따라 작품이 지향하는 메시지가 달라지니까요. 그런데 다음 작품 일정 때문에 <시그널>을 제가 찍을 수 있는 기간이 두달 반뿐이었고 차수현의 16회 분량을 먼저 찍어야 했어요. 드라마를 정확히 시간 순으로는 못 찍어도 대략의 흐름은 있어요. 현장 리듬을 본의 아니게 제가 흔들어놓은 셈인데 감사하게도 김은희 작가님이 저와 하고 싶다고 두달 반 사이에 16회를 탈고하겠다고 말씀하셨어요. 실제로, 심지어 완성도 높게, 말씀을 지키셨고요. 덕분에 김원석 감독님은 촬영 준비할 시간이 많았다고 긍정적으로 말해주시더라고요.
-<국가부도의 날>에 출연한 동력은 예컨대 르포 기사를 읽고 “이 사실은 널리 읽혀야 해!”라는 마음과 비슷한 게 아니었을까 짐작해봤는데요.
=분노가 선택의 큰 동력이었다고 할 수도 있어요. 특히 IMF 협상 장면을 읽으며 충격을 받았어요. 놀라고 화가 난 나머지 안압이 높아지는 느낌이었어요. 협상 신에서 배우를 보느라 관객이 영어 대사 자막을 놓치면 아쉬울 것 같아요. 그 내용 안에 현재 우리가 사회인으로서 겪는 다양한 비극의 단초들이 있으니까요. 한시현은 정석의 모범적 주인공이라 별로 재미는 없는 캐릭터예요. 한시현이 겉만 주인공이 아니라 관객의 마음에 주인공으로 남으려면 진심이 전달돼야 한다고 봤어요. 그러려면 전문용어를 비롯한 말이 관객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기능으로만 존재해야 해요. 많은 기자들이 영어 대사에 관해 물으시는데, 3일간의 협상을 실제로도 3일에 걸쳐 찍는 동안 “내가 영어 연기를 유창하게 해야지. 뱅상 카셀에게 밀리지 말아야지”라는 생각은 전혀 없었고 IMF 구제금융으로 가기까지 과정을 아는 경제 전문 공무원이자 한 사람의 국민으로서 한시현이 안 것을 관객도 알 수 있도록 내용을 명확히 전달하는 게 목표였어요. 나중에 “깨어 있는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라”라는 시현의 대사가 나오지만 사실 아무리 깨어 있어도 사람은 아는 만큼만 똑똑해요. 1997년 당시 엄청난 일을 겪고 어떤 분들은 인생이 끝났고, 많은 분이 그 고통의 연장선상에 있잖아요. 에필로그에서 갑수(허진호)가 자식에게 타인을 믿지 말라며 이주 노동자를 닦달하는 대사가 피맺혀요. 말하자면 그 시기의 경험이 이후 우리가 삶의 어떤 선택을 내리는 데에 영향을 주고 있는 거잖아요. 근면하고 성실하게 가족과 회사를 위해 일했던 사람들이 극한에 몰린 다음 착취하는 쪽을 택하게 되는 거죠. 그 선택 자체가 상처고 저 자신도 우리 아이들도 그런 상처를 더이상 받지 않길 바랐어요.
-말씀하신 대로 비정규직 노동자의 증가라든가 타인과 사회 시스템을 불신하는 각자도생의 나라가 된 과정을 되짚게 하는 이야기예요. 경제적 조건뿐 아니라 인생관의 집단적 변화가 있었다는 관찰이 들어 있는데요.
=내가 도태되거나 낙오되지 않으려고 옆을 밟는 선택이죠. 제 또래 부모들이, 자식이 학교에서 따돌림당하는 친구가 안쓰러워서 도와주려고 하면 “그러지 마, 너도 왕따 돼”라고 한대요. 아이들에겐 학교가 세상의 전부인데 말이죠. “네가 옳지만 더는 나서지 마라” 정도만 해도 나은 편인데 그것이 내 아이만 무사하게 키우려는 욕심이라기보다 그만큼 각박해진 거예요. 제게 아이가 있다면 이 영화를 통해 깨달은 바를 아이에게 양심을 걸고 일관되게 이야기해줄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됐어요.
-마지막에 언급되지 않던 가족관계 하나가 드러나는데요. 저는 두 인물을 영화에서 결국 만나게 할 거면 시나리오대로 가족을 위한 청탁을 감수하는 시현의 굴욕도 보여주는 게 맞고, 아니라면 주요 인물이 대면하지 않는 채로 가는 게 맞지 않을까, 현재 절충안이 최선일까 하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정학(유아인)도 영화에는 나오지 않지만 국가로부터 크게 배신당한 기억이 행동의 숨은 동기로 작용해요. 그에 비하면 한시현은 초지일관의 캐릭터죠. 말씀하신 장면이 마치 출생의 비밀처럼(웃음) 나오지만요. 제작진이 의견을 물었을 때 저는 세 인물이 각기 독립적인 이야기로 가는 편이 담백할 것 같다고 답했지만 지금 결과 뒤의 고민도 완성본을 보면서 납득했어요. 신파로 가자는 것이 아니라, 당시 각자의 자리에서 다른 목표로 최선을 다한 사람들이 사적으로 연결돼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고려했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한시현은 남성 중심 조직에서 버텨나가는 전형적인 80, 90년대 파워우먼인데 오히려 메이크업은 세지 않더군요. 그렇다고 90년대 유행한 화장도 아니고요.
=거의 맨 얼굴이었어요. 제가 많이 해봐서 당시 유행 메이크업은 잘 알죠. (웃음) 당시 보수적인 금융조직에서 살아남은 여성이라고 설정할 때 외양을 세게 표현해도 틀린 건 아니었을 거예요. 그러나 한시현의 진의가 전해지기 위해 관객에게 장애가 되는 요소는 제거하고 싶었고 메이크업도 그중 하나였어요. 막이 하나 씌워지면 진심은 그만큼 더 힘겹게 뚫고 나와야 하거든요.
-세 인물이 IMF와 관련된 입장- 막으려는 사람, 희생된 사람, 역이용하려는 사람- 으로 나뉜 집단을 대표하다보니 인간적 개성을 드러낼 여지는 크지 않습니다. 초반에 시현이 책상 위 서류 모서리를 정리하는 모습에서 성격이 암시되는 듯도 했지만요. 원래는 영화에 등장하는 자명종에 맞춰 약을 먹어야 하는 인물로 설정돼 있었던 걸로 알고요.
=그런 부분이 많이 줄었죠. 시현은 강박증과 공황장애가 있다는 설정이었는데 그런 조건이 캐릭터를 효율적으로 전달할지 반대로 부담으로 작용할지 제작진이 고민했을 거예요.
-개인사가 구구히 묘사되지 않아서 다행스럽기도 합니다. 대개 영화에서 워커홀릭 여성은 사적으로 불행하고 결핍이 있다는 암묵적 전제가 있어왔죠. 그 지점에서 제시카 채스테인 주연의 <미스 슬로운>(2016)이 떠올랐어요. 대단히 유능한 로비스트로 나오는 슬로운은 약물 의존 등 불건전한 면이 있지만 동종업계 남성들과 다르지 않은 습성으로 그려지죠.
=그렇죠. 일로는 완벽한데 크게 빈곳이 있다는 식. <미스 슬로운>은 좋아하는 영화고 끝내주는 캐릭터라고 생각해요. 사실 시나리오 보고 <미스 슬로운>을 떠올렸지만, 캐릭터란 그를 운영하는 연출자들이 어떤 식으로 캐릭터를 욕망하는가에 따라 달라지니까요.
-한시현과 관련해 팀원들과의 관계도 눈에 띕니다. 뜻을 같이할 뿐 아니라 멤버들이 팀장을 사적으로 염려하고 챙기는 특별한 면이 있어서 백 스토리도 있을 법한데요.
=통화정책팀은 한국은행 안의 외인부대 같은 부서로 설정했다고 봐요. 당시 팀장급 실무자에 여성이 없었다고 해요. 극중에선 수장이 여자인 팀으로서 기본적으로 권위나 성별에 대한 선입견이 없는 사람들이었을 테고 원래 있었대도 한시현과 일하는 과정에서 당연히 없어졌을 거예요. 남성 직원이 한시현에게 구두를 가져다주는 장면이 있는데 당시는 주로 여성 비서들이 상관에게 슬리퍼를 대령했을 때거든요. 그리고 상급자에 의해 팀에서 퇴출된 구성원도 비공식적으로 시현의 팀으로 계속 일하잖아요? 에필로그에서 보듯 20년 후 각자의 길을 간 다음에도 자기 자리에서 정보를 주고받으며 팀의 기능을 유지하고요. 너무 이상적 설정이지만 요컨대 팀이 곧 한시현의 능력이에요.
-2008년 미국발 서브 프라임 모기지론 위기를 다룬 애덤 매케이 감독의 <빅 쇼트>(2015)도 <국가부도의 날>과 관련해 떠오르는 영화입니다. 다만 <빅 쇼트>가 자본주의가 자본주의다울 수 없도록 만든 탐욕과 무책임을 파헤치는 범죄 미스터리 형태를 취한다면 <국가부도의 날>은 정부의 무능과 역기능을 중심에 둔 재난영화 같아 <괴물>(2006)과 닮은 구석이 있어요. 비단 한강 자살 신 때문만은 아니고요.
=<빅 쇼트>는 이야기, 구성, 편집, 연기 모두 뛰어났어요. 큰 이야기를 하지만 재미 요소도 많았고. 전 브래드 피트 역이 브래드 피트인 줄 자막을 보고 알았다니까요? 낯선 모습인데 차갑고 이질적인 생경함이 아니라 다시 보게 만드는 따뜻한 낯섦이었죠. 그의 캐릭터가 주장한대로 삶의 근원인 땅에, 씨앗에 투자해야 한다는 생각에 진심으로 공감하기도 했고요. <빅 쇼트>에 비해 우리 영화는 스펙터클 없이 덤덤하고 묵묵한 관점 같아요.
-전달할 정보가 많고 메시지를 전하려는 의지가 강한 영화의 난점은, 대사가 대부분 브리핑 아니면 분노나 울음이 되어 극적으로 단조로워지기 쉽다는 것인데요.
=배우는 영화가 어떤 톤과 매너로 마감될지 미리 알 수 없어요. 다만 스킬을 부각시키거나 과장하지 말자는 생각은 있었어요. 제가 과장하면 관객이 부담을 느끼면서 진심이 왜곡될 수 있으니까요. 조심한 부분이 오히려 영화를 모노톤으로 만들었나 하는 걱정도 되지만요. 지나고 보니 저도 극중 한시현과 같은 태도로 영화에 임한 것 같아요. 묵묵하게 내 본분만 제대로 하자. 트릭은 없다.
최선 이상의 최선을 찾아서
-며칠 전 25번째로 청룡영화상 시상식을 진행했습니다. 청룡상 MC를 맡고 지속하게 된 과정과 후보작 관람부터 의상까지 준비 절차가 문득 궁금했습니다.
=20대 초반 이른 나이에 시작했어요. 배우로서 정체성도 불확실하고 주체성도 낮은 시절이었는데, 들어오는 시나리오를 보면 영화계 내부자들이 저를 바라보는 시각이 어떤지 알 수 있잖아요? 영화를 잘하는 사람들은 제게 관심이 없는 것 같았고 영화상 후보 지명 받을 만한 작품에 출연하지 못할 때였죠. 배우로서는 영화상에 갈 자격이 주어지지 않으니, 진행하는 역할로라도 한해 영화를 총정리하는 자리에 가서 어떤 영화들이 무슨 성과를 내서 인정받았고 어떤 영화인들이 와서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 듣고 싶었어요. 하지만 이렇게 오래할 줄은 몰랐죠. 청룡상 MC는커녕 배우를 언제까지 할지도 확신이 없었는걸요.
-예전 인터뷰에서 본인을 예술가로 부르기는 주저하면서 재능 있고 창의적인 예술가들 주변에 있는 일이 좋았다고 얘기한 기억이 나네요.
=특별한 사람들을 관찰하는 것 자체도 대단히 흥미롭긴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것만은 아니었던 거 같아요. 그들 곁에 있는 일이 왜 신나고 좋았을까요? 결국은 그들로부터 자극과 영향을 받길 욕망했기 때문이겠죠.
-화제가 되는 의상을 비롯해 시상식의 실질적 준비는 해가 거듭되면서 쉬워졌나요?
=지금은 시상식도 많고 배우들이 드레스를 입지만 제가 청룡상 MC를 본 초기에는 한국에 드레스 문화가 없었어요. 배우들이 한복, 투피스, 때로는 청바지에 재킷을 입고 무대에 올랐죠. 스탠딩 드레스 문화가 없다보니 외국의 드레스들도 홍콩과 일본에는 가도 우리나라에는 들어오지 않았어요. 국내 드레스는 하용수 선생님 정도만 만드셨는데 사진을 보면 보디 실루엣과 톤 앤드 매너가 당시 제가 20대 초반이었는데도 패티 김 선생님풍이에요. 스팽글 인어 드레스? 그런 스타일이었죠. 드레스 자체가 드물다보니 본인에게 어울리는 드레스까지 찾기는 불가능했어요. 그러다 제가 결심하고 “배우니까” 하면서 처음 직접 산 고가의 옷이 일반 의상이 아니라 드레스였어요. 그때까지 나름 “나는 절대 사치하는 연예인이 되지 않을 거야!” 하는 결심이 있었는데 어디 그게 쉽나요. (웃음) 예쁜 것들 보면 끌리고, 남모르는 고생을 했으니까 스스로에게 이 정도 선물은 괜찮아라는 핑계도 찾고. 여기서 IMF 위기가 연관돼요. 제가 쇼핑을 시작한 것이 1996년인데, 1997년에 “너희가 과소비하고 흥청망청해서 나라가 망했다”는 식으로 언론보도가 쏟아졌죠. 그래서 저, 금도 내고 엄청 반성을 많이 했어요. 내가 초심을 잃고 정신을 못 차렸구나, 나도 허황된 욕망을 가진 속물이었어, 하면서. (좌중 웃음)
-전작 이야기를 좀 하고 싶습니다. <시그널>에서는 20대 시절도 연기하셨죠. 외적으로도 위화감이 없었지만, 일한 시간만큼 많이 변화했으되 본질이 동일한 인물로 성공적으로 표현한 점이 인상적이었어요.
=과거 장면은 화면 비율이 달라서 다행이었어요. 세로가 길어진 화면의 최대 수혜자가 조진웅씨고 그다음이 저죠. (웃음) 성공적이었다면 대본이 좋았던 덕분이에요. 김은희 작가님이 회상 장면이 그렇게 잘 써진다고 그러시더니 예정보다 과거 장면이 늘어났고 그 대부분이 좋았어요. 순진무구한 신참 순경의 모습을 억지로 묘사하는 게 아니라 마음들이 살아 있었거든요. 감독님에게 제 20대는 누가 연기하냐고 물었더니 “선배님이 하셔야죠. 그것 때문에 선배님이 하는 건데요”라는 거예요. 아니, 하라면 하겠지만 시청자가 그렇게 봐줄지, 비주얼에 거부감이 들면 몰입이 차단돼 위험할 수 있어서 염려했어요. 대중이 김혜수의 나이를 대충은 아는데 어린 척한다는 거부감이 불거지면 캐릭터도 실패지만 드라마 본질에서 벗어난 쟁점이 부각될 테니까요. 그런데 같은 소속사의 이성민 선배가 김원석 감독님의 전작 <미생> 경험을 들어, 자신 없는 것은 하지 않을 감독이고 테스트 촬영 결과가 나쁘면 그때 다시 판단할 거라고 안심시켜주셨어요. 아마 제가 알 수 없는 촬영팀의 면밀한 기술적 노력도 있었을 거예요. 과거와 현재도 그렇지만, 극중 사건 케이스에 따라 조명 톤도 달랐거든요. 소품, 미술팀도 깜짝 놀랄 만한 노력을 기울인 작품이에요. 형사 책상에 실제 사건일지들이 쌓여 있었는데 화면에 잡히지 않는 서류도 실제 수사기록을 담고 있었어요. 쉬는 시간마다 읽었어요. 다음 촬영에는 또 어떤 기록을 읽게 될까 기다리기까지 했으니까요. <시그널>을 하면서 배운 것은, 내가 생각한 최선 이상의 최선이 항상 존재한다는 걸 절대 잊지 말자는 교훈이에요. 김원석 감독님이 그렇게 일하는 사람이었으니까요.
-<시그널>을 하면서 본인 관점에서 배우가 된 기분을 처음 느꼈다는 인터뷰를 봤어요.
=잘하는 배우들 인터뷰를 읽어봐도 사실 연기를 해내기까지 과정의 대부분은 괴롭거든요. 있는 걸 다 짜내고 없는 것은 만들어서 유지해야 하죠. 직업상 당연한 일이지만 고통스러워요. 그럼에도 “이 맛에 배우 한다”는 보람의 찰나를 저는 느껴보지 못했거든요. 난 이렇게 오래 했는데 왜 그 비슷한 감정도 모를까? 정말 알고 싶었죠. 그런데 <시그널>을 찍던 중에 혼연일체라는 것이 이와 비슷한 걸까 느낀 순간이 있었어요. 과거의 차수현이 연쇄살인범으로부터 탈출해 검은 비닐 봉지를 얼굴에 쓴 채 쓰러져 있는데 재한 선배(조진웅)가 달려와 구해주는 장면이었어요. 대사도 거의 없지만 감정이 중요했기에 저도 상대방도 어떻게 연기할지 모르는 채 리허설도 안 했어요. 얼굴숏, 풀숏 딱 두번 찍었고 어떻게 움직였는지도 모르겠는데 집에 가서 샤워하며 보니 엉덩이가 다 까졌더라고요. 촬영 직후에는 그저 춥고 아프고 정신도 없었고, (잠깐 생각) 아무 계산 없이 오직 집중만 했으니 다시 하라 그러면 못할 것 같은데, 이게 정말 포커스 나가지 않고 잘 담겼기만 바라게 되더라고요. “아, 이거야!”는 아니고 “이런 건가?” 했죠. 한번 느꼈다고 매 작품 느낄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아요. 아마 하나의 요소만으로 이뤄진 찰나는 아닐 거예요. 소중했어요.
-늘 ‘잘하는 배우’를 3인칭으로만 쓰잖아요.
=김혜수가 못한다는 건 아니에요. 그렇게 오래 하고 못하기도 쉽지 않아요. (웃음) 하지만 잘한다는 제 기준은 그것과 달라요. 잘하는 배우는 정말 많지만 진짜 잘하는 배우는 그중에서도 선별이 되고 저는 그들에게 깊은 경외심이 있어요. 당연히 연기가 보일 만한 캐릭터가 전제돼야 하고 열의, 디테일, 목소리, 몸짓, 호흡, 그 순간의 모든 것이 포함되겠죠. 영화는 공연이 아니므로 촬영, 편집이 만들어주는 부분이 있죠. 영화적 장치로 연기가 부각되기도 하고 반대로 현장에 느낀 울림이 스크린에서는 떨어지는 드문 예도 있어요. 나름 오랫동안 최선을 다해 일했지만 솔직히 저는 배우와 카메라, 스크린과 관객 사이의 거리 가운데 무엇이 함정이고 비밀인지 아직도 몰라요.
배우는 다 배우다
-공개 순서로는 <굿바이 싱글>이 다음 작품입니다. 20년차 배우인 주인공 고주연은 모두를 힘들게 하지만 아무도 미워하지 못하는 인물이기도 하죠. 주연이 우정을 맺는 10대 소녀 단지(김현수)가 “맑아, 사람이”라고 요약하는 대사가 있는데, 고주연이 사람을 붙드는 힘은 뭐라고 보았나요?
=“맑다”가 딱 맞죠. 상처도 이기심도 있지만 순도가 손상되지 않은 사람이에요. 저는 그 점이 매우 중요하다고 보고, 인간적으로 끌리는 상대도 순도 높은 사람이에요. 배우로서 성숙하고 성장해야 한다는 사실은 변함없지만 성장과 정비례하게 순수를 유지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어요. 그래서 경외감을 느끼는 분이 김혜자 선생님이에요. 너무 순수하시고 너무 깊은. 저는 죽었다 깨도 김혜자 선생님처럼 안 되겠지만 지향하는 바는 그래요.
-어떻게 하면 순수함을 방어할 수 있을까요?
=사실 손상되고 싶어서 손상되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정말 다각도로 정신을 차려야 해요. (좌중 웃음) 신념, 세계관과도 직결된 문제고 매순간의 선택도 중요하죠. 내가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떤 사람들과 교류하는가도 관계 있고요.
-<굿바이 싱글>의 에필로그에서 독립영화 속 노숙자로 분한 모습이 나오는데 그것이 <매니페스토>(2015)라는 영화 속에서 케이트 블란쳇이 분한 14개의 남녀노소 캐릭터 중 하나랑 정말 비슷해요. 그러고보니 해외에서는 블란쳇이 국내에선 김혜수씨가 제가 아는 가장 다양한 헤어스타일과 머리칼 색을 소화하는 여성배우더라고요. 결점을 감추거나 장점을 돋보이게 하려는 고려 없이 그냥 턱, 스타일을 씹어 삼켜버려요.
=저 정말 노숙인 역 해보고 싶어요! <굿바이 싱글>의 외양은 제가 좋아하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2006)을 참고해 달라고 의상팀, 분장팀에 의견을 드렸어요. <매니페스토>는 보고 싶어서 적어두고 아직 못 봤어요. 케이트 블란쳇, 멋지죠. 안 해본 헤어스타일이라고 망설이는 경우는 없고 오히려 대담한 제안을 하기도 해요. <미옥>의 반삭발 쇼트커트는 제 제안 중 하나였고 색깔은 감독님 선택이었죠.
-<굿바이 싱글>은 40대 여성배우가 삶에서 자기 것이 하나도 없다고 깨닫고 아기를 가지려는 이야기인데요. 극중에 나오듯 우리나라에서는 독신자의 입양이 불가능하잖아요. 만약 가능하다면 고려할까요?
=예전에 실제로 알아봤더니 안 된다고 하더군요. 우리나라는 입양 관련 법 제도가 현실에 맞게 개선될 여지가 있어요. 담당 공무원들이 미혼모의 상황을 전혀 모르는 게 아닐까 싶은 부분도 있어요. 경험을 다 알 필요 없고 미혼모 10명만 인터뷰했어도 나오기 힘든 규정들이 있거든요. 원래 저와 호두앤유 엔터테인먼트의 이정은 대표가 입양 전 보호시설을 찾아가 아이들에게 우유 먹이고 기저귀 갈아주는 일을 꾸준히 했었는데, <굿바이 싱글>을 찍고 나서 미혼모와 입양 관련 법 개정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됐어요. 처음부터 책임지지 못할 아이를 임신하고 싶은 사람도 없고, 아기를 버리고 싶은 사람은 없어요. 미혼모를 끝까지 보호하지 못하는 사회가 그렇게 만드는 부분이 크죠. 너희들이 낳았으니 책임지라는 식이에요. 하지만 그렇다면 사회가 뭐 하러 존재해요?
-<굿바이 싱글>에서 광화문시네마의 김태곤 감독님을 만나면서 독립영화에 더 관심을 갖게 되었나요? 아니면 반대 순서인가요?
=독립영화에는 원래 관심이 있어요. 광화문시네마는 <족구왕>을 계기로 관심을 갖게 됐고 좋아하는 제작사는 저예산영화를 만드는 아토 ATO예요. (수줍은 웃음) 앞으로도 기대가 크고 제가 함께 뭘 하고 싶을 만큼 응원해요. 대학(동국대 연극영화과) 때 저도 단편영화 만들었잖아요? 제가 끼고 싶은 잘하는 애들의 팀은 연예인을 안 넣어주려고 했어요. 그래도 열심히 해서 저랑 일해본 선배들은 칭찬이 자자했어요. (웃음) 편집을 좋아해서 무비올라랑 스플라이서로 필름을 붙였고 장비가 열악할 때니 그것도 순서가 안 오면 영사기 돌려가며 8mm로 작업했어요. 1년 동안 무지 필름도 붙였죠. 카메라 이동차 끄는 일은 보통 힘좋은 1학년 남자 후배들이 하는데 그애들은 영화를 안 해봤으니 배우 감정에 이동 리듬을 못 맞추거든요. 좋은 영화는 못해봐도 현장 경험이 있으니 제가 이동차 끌 때 촬영하는 선배가 제일 좋아했어요. 난 또 힘도 세잖아? 그리고 아이라이트(배우의 눈동자에 떨어지는 조명)가 없었는데 저는 그 중요성을 아니까 스테인리스 냄비 뚜껑을 철수세미로 박박 닦아서 끝내주게 그걸 줬죠. 그 아이라이트를 받은 우리 단편영화 주인공이 박신양 선배였어요. 우리 금관영화제 대상도 받았어요! 그리고 “김혜수, 반사광 막아라!” 그러면 벽에다 빨랫비누를 막 칠해요. 그러면 색깔이 튀지 않으면서 반사광을 먹거든요. 무광 스프레이가 있었지만 학생들이 돈이 있나요? 제 돈으로 사면 티내는 거니까 안 되고요. 신양 선배랑 만든 작품의 소재가 인력시장이었어요. 양재동 새벽 인력시장에 취재를 나가라는 거예요. 뭘 취재하라는 말도 없이. 그래서 밤 11시부터 새벽 4시에 하늘이 푸르스름해질 때까지 아저씨들로부터 멀찌감치 떨어져서 상황을 몽땅 그렸어요. 페인트통의 모닥불, 무수한 가래침, 남아 있는 꽁초의 수. 몇시에 승합차가 오고 어떤 욕설이 오가는지 적고 그렸어요. 저, 거의 에이스였어요. (웃음)
-저개발국의 어린이 후원을 독려하는 공익광고 가운데 김혜수 배우가 내레이션을 한 “샨티야 어린 아내로 살지 마. 14살 엄마로 살지 마. 꿈을 포기하고 살지마” 광고가 나오면 다른 일을 하다가도 집중해서 보게 돼요. 10대 시절 스포츠 신문 인터뷰를 보니 그때부터 “5명 정도 가난하고 공부 잘하는 고아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하고 싶다”라는 말을 했던데요. 숫자까지 구체적이라서 인상깊었어요.
=그랬군요. 건전한 꿈나무였네요. (웃음) 아마 저희 집이 5형제라서 최소한 5명을 돕고 싶었나봐요. 광고에 나오는 소녀 샨티는 직접 만나진 못했어요. 내레이션은 원고를 받아서 수정할 부분은 수정해요. 작가님들이 더 대중적인 말을 쓰긴 하지만, 개인적 체험을 전하기에는 진짜 제 말이 나을 때가 있잖아요. 내레이션 제안이 많은 편인데 관심이 가는 작품의 경우는, 편집에서 누락된 촬영분까지 요청해서 하루 정도 다 보고나서 답을 드려요.
-KBS에서 방영한 <다큐 공감-김혜수의 난민일기>를 봤어요. 유럽으로 목숨걸고 넘어온 난민들을 취재했는데 리비아 인신매매 조직에서 탈출한 소녀를 만나러 갈 때 제작진을 기다리게 하고 직접 설득하러 가더군요. 보통은 스탭들이 미리 섭외한 다음 진행자를 투입할 텐데요?
=대화를 할 사람이 저였으니까요. 방송이 결국 안 되더라도 직접 이야기를 해보려고 했어요. 다큐멘터리를 찍으며 몇 나라를 다녔는데 아프리카 난민들이 제일 많이 도착하는 이탈리아에서 만난 어린 친구들과는 지금도 채팅앱으로 연락하고 있어요.
-국내에서도 제주도의 예멘 난민 문제가 이슈가 됐어요.
=한번 취재를 다녀온 저와 달리 실질적으로 난민 대사로서 아주 많은 일을 해온 정우성씨가 어떤 인터뷰보다 심사숙고해서 단어를 선택해 관련된 인터뷰를 했다고 느꼈어요. 저는 여기에도 <국가부도의 날>이 그린, 시스템에 대한 불신이 작용한다고 생각해요. 정부의 대책을 신뢰하지 않고 알아서 살아남고 피해보지 않으려는 두려움이 앞서는 거죠. 그런데 난민에 대해 우리가 얼마나 제대로 아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어떤 사안에 대해 의견을 말할 때는 먼저 알아야 해요. 나와 다른 의견은 늘 있을 수 있어요. 마음이 위태로우면 의견이 없이도 감정을 대변하는 말과 행동이 먼저 나가고 타인의 의견을 알고 싶지 않은 상태가 되죠. 정부의 현재 입장이 중립적이거나 모호할 수도 있겠죠. 그렇지만 그 과정은 <국가부도의 날>이 말하듯, 국민들에게 정확히 전달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동료 배우 한지민, 천우희씨와 가까운가요? 그렇다면 외출을 자주 안 하고 술도 못하는 걸로 아는데 어떻게 관계를 시작하고 지속하나요?
=그들이 나를 외출하게 만들죠. 하하핫! 가끔 문자하고, 아니 문자는 자주 해요. 천우희씨는 시상식에서 처음 만났어요. <한공주>(2013)를 좋아해서 내심 천우희씨가 수상하길 바랐는데 수상 소감에서 이렇게 작은 영화의 하찮은 배우에게 상을 주셨다고 말하는 거예요. 속으로 “하찮은 배우라니! 배우는 다 배우지! 너무 잘했어! 아무도 못한 걸 당신은 했어!”라고 혼자 대꾸했어요. 천우희씨의 연기도 얼굴도 배우로서 정말 좋아했는데, 먼저 고맙다는 문자를 보내와서 가끔 다른 배우들과도 어울려 모이게 됐어요. 촛불집회 당시 제가 집도 가깝고 해서 친구들과 따로 또 같이 매주 집회를 나갔거든요. 어느 토요일에 그 그룹과 만났는데 저녁에 선약 있다고 일어나니 한 사람이 어디 가냐고 헤어지기 아쉽다는 거예요. “그게 같이 가기가 좀…” 하고 얼버무리다가 말을 했더니 그 배우가 너무 가고 싶었는데 동행이 없어서 못 갔다고 반색해서 함께 집회 나가기도 했어요. 한지민씨는 그 팀은 아니고 우연히 밖에서 만나 다른 배우들과 모임이 생겼죠. 모임 이름은 처음 만났던 날을 따서 701이에요.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