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한국영화감독조합②] 임필성 감독이 <리틀 포레스트>의 임순례 감독에게 묻다
2018-12-20
글 : 김소미
사진 : 최성열
생각할 여유를 주는 영화
임순례 감독, 임필성 감독(왼쪽부터).

“긴 겨울을 뚫고 봄의 정령들이 나오는 그때까지 있으면 해답을 찾을 수 있을까?” <리틀 포레스트>의 지친 몸과 마음을 이끌고 고향 시골에 돌아온 혜원(김태리)에게 자신의 모습을 찾아낸 관객은 한둘이 아닐 것이다. 올해 2월 28일 개봉한 <리틀 포레스트>는 일본의 원작 만화 및 영화를 바탕으로, 임순례 감독이 한국 전원생활을 오롯이 담아낸 작품이다. 12월 10일 롯데시네마 월드타워에서 열린 ‘제18회 디렉터스컷 어워즈 한국영화감독들이 뽑은 올해의 영화 스페셜 토크: 감독이 감독에게 묻다’ <리틀 포레스트> 편을 통해 임순례 감독이 그간 묵혀둔 작품에 관한 생각을 밝혔다. 이날 모더레이터를 맡은 임필성 감독은 “단편 <우중산책>(1994)이 서울단편영화제 대상을 수상하던 현장을 영화감독 지망생으로서 지켜보던 기억이 생생하고, 이후 임순례 감독님의 장편 데뷔작 <세 친구>(1996)의 최종 오디션까지 올라간 적 있다”고 인연을 밝혔다. 그는 먼저 “영화적인 속임수를 쓰지 않고, 긴 시간을 들여 사계절을 오롯이 찍어낸 의도”를 물었다. 임순례 감독은 “일본 원작은 조감독이 농촌에 장기 거주하면서, 1년간 직접 농사를 지었을 정도인데 결국 <리틀 포레스트> 시리즈가 끝나고 영화계를 떠났다고 한다. (웃음) 우리는 그렇게까지 하진 못했지만, 미술이나 기술적으로 지어내지 않고 평범한 한국 농촌의 사계를 그대로 보여주고자 했다. 내가 양평에서 13년 가까이 전원생활 중이라 계절마다 오는 변화를 가까이 실감하고 있다”고 전했다.

경상북도 군위군에서 촬영한 <리틀 포레스트>는 계절마다 약 11~13회차 분량을 촬영했다. “벌과 나비, 백로, 그리고 메뚜기, 잠자리, 청개구리 같은 친구들의 인서트를 가급적 많이 찍길 원했던 터라 촬영감독님이 쉬는 날에도 연출부나 제작부들을 데리고 여기저기 다녔다. 그래서 촬영감독님 별명이 인서트 지옥이었다.” 임필성 감독은 임순례 감독이 수년째 대표로 역임 중인 동물보호단체 카라를 언급하며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2010)에서 소에게 명연기를 시키셨듯, <리틀 포레스트>는 제작 과정에서도 동식물에 대한 감독님의 철학이 드러난다. 마치 유기농 인증 마크가 찍힌 영화 같다. 진돗개 오구는 어떻게 다뤘나”고 질문했다. 임순례 감독은 “진돗개는 훈련이 어려워서 개의 심리와 습성을 최대한 이용하는 게 중요하다. 오구가 있는 모든 장면은 소품 속에 전부 간식이 들어 있다”고 회상했다. 덧붙여 영화에 등장하는 닭은 근처 거주민이 키우는 토종닭 중 한 마리를 빌려 매일 출퇴근하는 방식으로 촬영했다. “닭도 주 52시간 근무를 지켰다. 그런데 닭이 우리 촬영장에만 오면 꼭 알을 낳더라. 먹고 싶어 하는 스탭들을 제지하고 반드시 알과 함께 퇴근시켰다. 닭을 빌려서 촬영했던 이유는 장터에서 사서 촬영할 경우 사후 처리가 곤란해지고, 그것이 혹시 안 좋은 결과를 낳을까 염려스러웠기 때문”이라고 동물복지에 대한 확고한 실천적 태도를 보여주기도 했다.

배우들에 관해서는 “김태리 배우는 자신의 밝고 명랑한 면모를 가공하지 않고 편안하게 보여줬다. 아침 식사를 하고 촬영장에 온 날에도 매 신 너무 잘 먹어서 놀랐다. 스크린에서 보이는 그대로다”라고 후일담을 전했다. 류준열, 진기주 배우를 포함해 모두가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분위기여서 현장에서 딱히 지시할 것이 없었다는 임순례 감독. “나는 그저 세 사람의 케미스트리만 조율해나갈 뿐이었다. 그래서 처음엔 태리씨가 불안해하기도 했다. 아마 내 스타일이 박찬욱 감독과 정반대였나보다.” (일동 웃음) “영화 속 음식을 선정하는 과정”을 궁금해하는 임필성 감독에게 임순례 감독은 “편의점 음식의 질이 높아지고 그것대로 문화가 생겨서 애호가들도 늘어났지만, 개인적으로는 사람의 정성과 마음이 들어간 요리를 젊은 사람들이 잘 먹지 못한다는 게 조금 안타까웠다”고 답했다.

<리틀 포레스트>

이날은 <리틀 포레스트>의 시나리오 수정 과정에 대한 이야기도 살짝 오갔다. 기존에는 혜원이 임용고시에 합격한 전 남자친구를 학교 교문 앞에서 기다리는 장면이 있었다고 임순례 감독은 전했다. “직접 만나서 이야기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는데, 젊은 스탭들이 쿨하지 못하다고 기겁하더라.” 영화 마지막에 혜원이 마을 회관에 가서 어르신들과 어울리는 장면도 있었는데, “스탭들이 이게 <6시 내 고향>이냐고 반발하기에 조금 더 간소하고 드라이하게 고쳤다. <리틀 포레스트>는 예전이었으면 수용하지 않았을 의견도, 특히 젊은 친구들의 생각이라면 귀담아듣는 작업이었다.” 이어진 객석의 질의응답 시간에 관객이 꺼낸 <리틀 포레스트>의 키워드는 어김없이 ‘힐링’이었다. 수능 시험을 끝낸 고3 학생들, 각종 시험을 준비하는 고시생들이 다수 참석해 임순례 감독에게 삶의 방향성을 구하는 훈훈한 광경이 연출됐다. 임순례 감독은 “유독 획일화된 한국 사람들의 생활 패턴”을 절감한다고 끄덕였다. “가끔 <리틀 포레스트>가 손쉽게 귀농을 권장하는 영화는 아닌가 하고 물어보는 이도 있는데, 그건 아니다. 중요한 건 혜원이 자기 사명감 때문에 임용고시에 매달렸었는지, 아니면 그저 남들처럼 안정적인 직업을 원해서 하는 건지 다시 질문해보자는 데 가깝다. 적어도 혜원은 시골에서 잠시 쉬어가면서 자신이 원하는 삶에 대한 윤곽을 잡았다. 각자의 오감에 조용히 집중할 때, 자기 내면과 본질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혜원의 엄마를 연기한 문소리 배우에 대한 칭찬도 이어졌다. 임순례 감독은 “원작의 괴짜 이미지를 조금 더 현실에 발붙인 캐릭터로 옮겼는데, 문소리씨는 양가적인 면을 모두 훌륭하게 소화했다. 전적으로 배우의 공에 의해 사람들이 엄마 캐릭터에 마음을 빼앗겼다”고 답했다. 임필성 감독은 마지막으로 한국영화감독조합에서 올해의 베스트영화 중 하나로 <리틀 포레스트>에 투표한 이유에 대해 “감독님 세대의 여성감독으로서 지속적으로 활동해주신 점, 그리고 꾸준히 젊은 감각을 계발하려는 자기 혁신적 측면에 대한 존경”이라고 꼽았다. 또 “초기작 <세 친구>, <와이키키 브라더스>(2001) 등과 확연히 다른 최근 작품들의 스타일”을 언급하며 “감독님만의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시각이 부각된다”고 변화를 짚었다. 임순례 감독은 “초기작에는 프랑스문화원에서 본 영화들, 그리고 허우샤오시엔의 영향이 있었다. 편집의 리듬으로 주제를 강요하기보다는 관객에게 충분히 생각할 여유를 주고자 했다”고 답했다. 필모그래피의 분기점은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2007)으로 꼽았다. “여자들이 단체로 나오는 비인기 스포츠영화였는데, 이 영화가 망하면 당시 제작사인 명필름도 위험해질 수 있었기에 절대 그럴 순 없다고 생각했다. (웃음) 사실 나는 어둡고 실패감이 두드러지는 정서를 좋아하는데, 현실이 어렵다보니 많은 분들이 화면에서는 밝은 것을 보고 싶어 하신다. 그런 괴리 때문에 괴로웠던 적도 있다. 극장에 앉아있는 2시간 동안 울고 웃고 감각적으로 즐기는 일도 영화의 중요한 덕목 중 하나라고 인정하면서, 과거에 집착하던 리얼리즘에서 벗어나 영화 연출에 좀더 유연하게 접근하게 됐다.” 임필성 감독은 “<리틀 포레스트>는 한동안 일정한 흐름을 이뤘던, 남자 여럿이 나와서 열심히 싸우는 영화들 사이에서 숨통을 틔우게 해줬다. 악인이라고 한다면 은숙(진기주)이 일하는 농협의 부장님 정도”라고 재치 있게 화답했다. 임순례 감독은 끝으로 내년 5월 일본에서 한국판 <리틀 포레스트>의 개봉 소식을 알리며 토크를 마무리했다. 자연의 넉넉함과 여유로 관객을 끌어안는 <리틀 포레스트>는 올해 한국영화계를 다독이는 위로가 됐다. “아주 오랫동안 후배 감독들에게도 용기를 주시는 분”이라는 임필성 감독의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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