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크리스 콜럼버스 / 출연 로빈 윌리엄스, 샐리 필드 / 제작년도 1993년
나에게 하루 중 가장 바쁜 시간대는 ‘아침’이다. 나뿐만이 아니라 대부분 아이를 키우는 사람들의 아침은 전쟁일 것이다. 이른 시간대에 회의가 있는 날에는 아침이 더 정신없다. 거의 1분마다 아이에게 “빨리 좀 해. 엄마 바쁘거든!” 하고 채근하며 집을 나선다. 부랴부랴 아이를 어린이집에 들여보내놓고 뒤돌아설 때, 가끔 아이가 “엄마 미안해” 하며 인사를 대신할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아이에게 어떤 말을 해줘야 하나 멈칫하다가 무뚝뚝하게 “들어가” 해버리고는 돌아선다. 그런 날은 하루 종일 아이가 남긴 “엄마 미안해”라는 말이 머릿속에 맴돈다. ‘채근하는 내 잘못이었나. 아니야, 일찍 회의하자고 한 사람들 잘못이야. 아니지, 그 사람도 그 사람 사정이 있겠지. 그러면 빨리빨리 하지 않는 애 잘못인가. 글쎄…. 그래도 오늘은 제법 빨리 했는데. 그러면 내 잘못인가.’ 이런 답도 없는 고민을 하루종일 한다.
어릴 적, 학교를 일찍 마치는 토요일에는 늘 비디오 가게에 들렀다. 텅 빈 집에 혼자 있기 싫어서 시간 보내기에 적절한 곳을 찾다가 발견한 곳이 비디오 가게였다. 포스터가 지저분하게 붙은 나무 문을 힘주어 밀고 들어가면 딸랑, 하는 종소리가 들렸다.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하면 비디오 가게 이모가 “왔니?” 하며 의자를 하나 내주었다. 난 거기에 가방을 아무렇게나 팽개치고 비디오 구경을 했다. 비디오 케이스에 적힌 줄거리들을 읽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재밌을 것 같은 비디오를 하나 들고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그날도 줄거리를 읽다가 ‘이거 재밌겠는데?’ 하고 빌려온 영화가 <미세스 다웃파이어>였다.
저 아줌마는 꼭 우리 엄마 같다, 저 아저씨는 우리 아빠네, 하며 즐겁게 영화를 봤다. 마지막에 로빈 윌리엄스가 정신병자 취급을 받고 아이들을 자주 볼 수 없게 되는 장면에서는 ‘너무하다!’며 화를 내기도 했다. 영화 속 세상의 모든 것은 해피엔딩, 이라고 생각했던 그때의 나에게 너무 가혹한 엔딩이었다.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나에게 위로가 되었다. 미세스 다웃파이어로 분장한 로빈 윌리엄스의 TV프로그램을 보는 아이들이 나오는 장면이었다. 부모님이 이혼하게 되었다는 편지에 미세스 다웃파이어는 이렇게 말한다. “괜찮아, 그건 너의 잘못이 아니야.” 그때의 나는 우리 가족이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매일 고단한 표정으로 집에 돌아오는 엄마를 보면서, 엄마가 힘든 건 나 때문인가, 라는 생각을 했었다. 어린 나이에 열심히 고민했던 일이 “괜찮아, 너의 잘못이 아니야”라는 대사 한마디에 위로가 됐다.
아이에게 “미안해”라는 이야기를 들었던 날, 아이와 함께 이 영화를 보았다. 물론, 아이는 “재미없어”라는 말을 되풀이했고 결국 나는 “좀 진득하게 보라고!” 하며 다시 좋은 엄마 되기에 실패하고 말았다. 잠들기 전, 아이와 나란히 누워 아침의 일을 사과하며 로빈 윌리엄스가 했던 그 대사도 함께 전했다. “괜찮아, 너의 잘못이 아니야.”
명소희 다큐멘터리 감독. 다양한 사람들의 삶에 대해 쓰고 싶어 많은 경험을 하겠다는 생각에 다큐멘터리 수업을 들었고, 어쩌다보니 글은 접고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사람이 되었다. 올해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앵글 경쟁부문 초청작 <방문>을 연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