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7일 용산CGV에서 열린 <알리타: 배틀 엔젤> 푸티지 상영회 및 기자 간담회 참석차 내한한 마이크 코젠스 애니메이션 감독과 김기범 CG 감독은 VFX 스튜디오 웨타 디지털의 새로운 도전 과제인 <알리타: 배틀 엔젤>의 제작 과정과 기술적 성과를 상세하게 소개했다. 이날 두 감독은 간단한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알리타’라는 사이보그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 제작진이 얼마나 도전적인 작업을 해왔는지를 설명했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과 <아바타>(2009)를 작업했고 <호빗> 시리즈에도 참여한 마이크 코젠스 감독과 영구아트무비 출신으로 ILM(Industrial Light & Magic)에서 10여년간 근무하다가 웨타 디지털로 옮겨 <혹성탈출: 종의 전쟁>(2017), 리안 감독의 <제미니 맨>(시니어 조명 TD) 등에 참여한 김기범 CG 감독을 만나 알리타의 일거수일투족을 창조해내는 과정에 대해 물었다.
-애니메이션 감독과 CG 감독이 맡은 파트별 업무는 어떻게 다른가.
=김기범_ CG 감독은 기술적인 부문을 총괄한다. 초반에는 우리가 어떤 기술을 필요로 하는지를 구상하고, 작업자들과 감독의 요구 사이에서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 지원자이면서 동시에 감시자이기도 하다. 어떤 부서가 정해진 방식대로 하지 않는다면 부서간 조율도 해결한다.
=마이크 코젠스_ 애니메이션 감독은 시각효과 부문에서 움직임과 관련된 모든 것을 담당한다. 프리 프로덕션 때는 로버트 로드리게즈 감독과 프리 비즈 작업을 같이했고 그것을 어떻게 시각화할지, 액션 안무는 어떻게 만들지 등을 논의했다.
-원작 만화 <총몽>을 접하고 어떤 인상을 받았는지 궁금하다.
김기범_ 만화책보다 애니메이션을 먼저 접했다. 작가가 창조한 방대한 세계관과 수많은 캐릭터 컨셉이 놀라웠다.
마이크 코젠스_ 제임스 카메론 감독도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에게 소개받아 만화책보다 애니메이션을 먼저 접했다고 한다. 나 역시 만화책과 애니메이션을 다 보면서 작업의 영감을 받았다. 영화에 원작을 그대로 오마주한 장면이 두어번 등장한다.
-마이크 코젠스 감독은 기자 간담회에서 “알리타는 웨타 디지털이 가장 야심차게 내놓은 디지털 캐릭터”라고 말했다. 이후 소개한 기술적 과정 역시 종합해보면 알리타를 연기한 배우 로사 살라자르의 얼굴 구석구석을 해체해 모두 분석한 다음, 인간성이 만들어내는 오차까지도 똑같이 그려내는 작업이었던 것 같다. 알리타를 실사화하는 데 파트별로 중요하게 생각한 점이 다를 것 같다.
마이크 코젠스_ 디지털로 얼굴을 그려내는 방식 자체를 바꿔서 접근했다. 보통은 큰 표현이나 표정에서부터 모델링을 거쳐 그 표정을 기반으로 다른 포즈로 확장해나가는데 이번에는 반대였다. 액션영화지만 캐릭터의 섬세한 심리 변화를 드러내기 위해 입 주변의 디테일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성형외과 의사들과 함께 안면근육 조직을 공부했고 로사 살라자르의 얼굴 구조에 맞는 세부 근육까지 다 표현해냈다. 이러한 부분이 디지털 액터 퍼펫을 만드는 과정의 일이었다면 움직임을 연출하는 애니메이션 작업에서는 순간 포착이 관건이었다. 실제로 배우가 연기하는 즉흥적인 상황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를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간담회에서 소개했던, 배우의 얼굴을 세세하게 분석해 근육 움직임이나 안구 조직의 섬유층 움직임까지도 표현했다는 것은 모델링 단계에서의 어려움일 텐데, CG 감독으로 그외에도 더 많은 문제들을 해결해야 했을 것 같다.
김기범_ 그동안 웨타 디지털은 동물을 구현하거나 사람을 어리게 만드는 데는 모두 성공했다. 하지만 <알리타: 배틀 엔젤>처럼 퍼포먼스 캡처를 통해 액터 퍼펫을 만들어낸 다음 또 한번 공정을 거쳐 최종적으로 CG 캐릭터를 만들어내는 과정 자체는 도전이었다. 간담회 때는 렌더링 과정에 대해 소개를 못했는데 웨타 디지털이 가진 자체 렌더링 소프트웨어를 이용해서 현존하는 모든 기술을 종합해 원하는 실사를 구현하는 게 목표였다. 원래 렌더링의 목적이 시간을 단축하고 단순화하려는 것인데 우린 거꾸로 갔다.
-처음 예고편이 공개됐을 때 많은 사람들이 알리타의 비인간적인 외모, 즉 만화 캐릭터의 비율을 그대로 옮겨놓은 눈 크기와 눈동자로 인한 어색함을 지적했다.
김기범_ 간담회에서 소개한 홍채와 배우의 눈 근육 디테일을 CG 캐릭터에 이식했더니 어느 정도 해결됐다. 우리는 로사 살라자르의 데이터를 이용해 알리타를 만들려고 했으나 처음엔 로사 살라자르의 데이터를 알리타에 입력하면 그것은 알리타가 아니라 로사 살라자르의 CG 캐릭터가 되는 것이 아닌가 의심했다. 하지만 결과는 달랐고 알리타는 로사 개인의 개성이 아니라 인간성을 획득할 수 있었다.
-간담회에서 마이크 코젠스 감독은 이번 영화는 배우들이 블루 스크린에서 거의 촬영하지 않고 실제 세트에서 촬영함으로써 자연스러운 연기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고 소개했다. 그렇다면 애니메이션 움직임을 만드는 과정에서는 알리타를 연기한 배우 로사 살라자르에게 특별히 요구한 사항은 없었나.
마이크 코젠스_ 먼저 로사는 이미지가 강력한 배우다. 그녀의 이미지가 우리로 하여금 알리타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동력이 됐고 반대로 시각효과로 인해 그녀의 연기가 방해받지 않기를 바랐다. 우리의 작업을 보고, ‘그걸 CG로 그리면 되지 왜 배우가 직접 고생해’라고 할 수 있지만 결국 현장에서 나오는 배우의 개성은 임의로 만들어낼 수 없는 부분이다. 또한 극중 알리타가 자신의 정체성을 깨달아가듯 로사가 직접 알리타를 연기하면서 스스로 발전해나가면서 배우로서 자신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깨닫게 하는 것이 중요했다.
-김기범 CG 감독은 ILM에서 거의 10여년 일하다가 웨타 디지털로 옮겼다. VFX 분야의 양대산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텐데 두 회사의 문화나 파이프라인 등의 차이를 직접 겪어보니 어떤가.
김기범_ 극명하게 차이가 나는데 물론 서로 장단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ILM은 계획과 예측에 강하다. 상당히 조직화가 잘되어 있고 결과물에 도달하는 과정이 투명하다. 반면에 기술 개발에 많은 에너지를 쏟는 것 같지는 않다. 웨타 디지털은 상대적으로 조직화는 덜 되어 있지만 개개인의 역량에 따른 높은 퀄리티를 추구하는 문화가 기본 바탕에 깔려 있다. 종종 효율성이 떨어질 때도 있는데 놀라운 결과물을 만들어낼 때가 있다. 한마디로 퀄리티를 높이는 데 목숨을 거는 회사다.
-어떻게 적응했나.
김기범_ 처음에는 너무 힘들었다. 처음 웨타에 갔을 때 그 문화가 분명 논리적으로 틀린 게 아닌데 본능적으로 불편해서 못 받아들이겠더라. 팀원들의 모습에서 많이 배우려고 노력했다. 지금은 또 완전히 적응했다. 외부에서 CG 슈퍼바이저를 채용한 경우가 내가 거의 처음이라고 하더라. 한마디로 이전 회사에서 쌓은 노하우를 보고 채용한 것이다. 웨타 디지털도 변화하고 싶다는 거다. 효율적으로 퀄리티를 높이는, 뭔가 모순된 것 같지만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작업 방식을 추구하며 다음 작품을 준비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