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카메론의 꿈의 프로젝트로 알려진 <알리타: 배틀 엔젤>이 2월 초 국내 개봉한다. 기시로 유키토의 만화 <총몽>을 원작으로 하는 이 작품은 제작자 제임스 카메론의 비전과 <씬 시티>의 감독 로버트 로드리게즈의 개성, 웨타 디지털의 혁신적인 기술을 결합한 초대형 블록버스터로 일찌감치 화제를 불러모았다. <알리타: 배틀 엔젤>은 유토피아에 가까운 공중도시 자렘과 디스토피아의 모습을 한 고철도시로 삶이 양극화된 26세기를 배경으로, 고철 더미 속에서 모든 기억을 잃은 채 깨어난 사이보그 알리타의 모험을 조명한다. 지난 2017년부터 올해 초까지 순차적으로 공개된 네편의 예고편은 이 영화가 선보일 환상적인 세계와 다채로운 캐릭터, 화려한 액션을 맛보기로 짐작할 수 있게 해줬다. 흥미로운 점은 예고편이 공개되는 시기마다 <알리타: 배틀 엔젤>의 주연배우이자 디지털 캐릭터인 알리타의 모습이 조금씩 변해왔다는 것이다. 2억달러에 육박하는 초대형 블록버스터의 주인공이 된 이 디지털 캐릭터는 과연 인간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을까. 지난해 9월, <씨네21>은 <알리타: 배틀 엔젤>을 연출한 로버트 로드리게즈 감독, 주연배우 로사 살라자르, 크리스토프 발츠와 일대일 전화 인터뷰를 진행했다. 지난 1월 7일에는 영화의 시각효과를 담당한 웨타 디지털의 주요 제작진, 마이크 코젠스 애니메이션 감독과 김기범 CG 감독을 내한 기자 간담회에서 직접 만날 수 있었다. 이들이 들려준 <알리타: 배틀 엔젤>에 대한 이야기 중 개봉 전 알아두면 좋을 몇 가지 중요한 사실을 코멘트로 정리해보았다.
1. 태초에 제임스 카메론이 있었다
제목 그대로다. <알리타: 배틀 엔젤>은 이 프로젝트에 대한 제임스 카메론의 헌신이 없었다면 탄생하지 못했을 프로젝트다. 일본 작가 기시로 유키토가 집필한 만화 <총몽>의 세계관과 캐릭터의 개성에 매료된 제임스 카메론은 지난 2000년대 중반부터 <알리타: 배틀 엔젤>의 영화화를 꿈꿨다. 하지만 그는 원작의 방대한 세계관과 사이보그 캐릭터의 매력을 만족할 만한 결과물로 스크린에 구현할 준비가 아직은 되어 있지 않다고 느꼈다. 자신의 비전을 뒷받침할 시각효과 기술이 충분히 발전하지 못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알리타: 배틀 엔젤> 프로젝트가 연기되는 사이, 카메론은 <아바타>(2009) 연출에 전념했다. <아바타>가 전세계 박스오피스 역대 1위를 달성하고 여러 편의 속편 제작 계획이 발표되면서 카메론은 당분간 <아바타> 프랜차이즈에 전념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하지만 <알리타: 배틀 엔젤>의 제작진은 카메론이 <총몽>의 영화화를 꿈꾸며 집필한 600페이지 분량의 세계관이야말로 이 영화의 DNA라고 입을 모아 말한다. “제임스 카메론은 ‘엔지니어’다. 그는 모든 것들이 어떻게 작동해야 하는지에 대해 완전히 간파하고 있는 사람이다. 카메론이 집필한 600페이지 분량의 자료는 보기만 해도 탈진할 정도의 디테일로 가득하다고 들었다. 알리타의 사이보그 몸이 어떤 재료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녀의 몸이 어떤 메커니즘으로 작동하는지와 같은 세세한 내용이 다 기록돼 있었다니 알 만하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250페이지 분량으로 압축한 로버트 로드리게즈 감독도 대단하다. 그는 제임스 카메론이 창조한 광활한 세계관을 토대로 그 가운데 반드시 포함되어야 할 내용만 남기는 방식으로 방대한 이야기를 정리했다. ‘와, 내가 사랑했던 모든 것들이 남아 있네요. 도대체 어떻게 쓴 거죠?’ 로버트 로드리게즈의 시나리오를 보고 제임스 카메론이 이렇게 감탄했다고 들었다.” 알리타를 연기한 주연배우 로사 살라자르는 말했다.
로버트 로드리게즈 감독은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원작 만화 <총몽>과 이 만화의 영화화를 처음으로 꿈꾼 제임스 카메론, 이 두 대상을 충분히 존중하면서 <알리타: 배틀 엔젤>을 찍고 싶었다”고 말했다. “25년 동안 친분을 쌓아온 영화계 선배이자 언젠가 반드시 협업해보고 싶었던 꿈의 제작자”인 제임스 카메론에게 경의를 바치는 로버트 로드리게즈만의 해법은 이 영화를 “제임스 카메론이 찍었을 법한 방식대로” 만드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 결과 <알리타: 배틀 엔젤>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제임스 카메론의 인장과도 같은 특성을 가지게 됐다. 강인한 여전사 캐릭터, 방대하고 환상적인 세계관, 시각효과를 극한까지 밀어붙이는 최첨단 디지털 기술과 3D영화라는 제작 방식은 영락없는 제임스 카메론 영화의 특성이다.
2. 주인공 알리타는 강인함과 연약함을 겸비한 인물이다
<알리타: 배틀 엔젤>의 주인공 알리타(로사 살라자르)는 형편없이 부서진 기계 몸에 인간의 두뇌만 남은 채 고철 더미 속에서 발견되는 인물이다. 그는 사이보그를 고치는 의사 이도(크리스토프 발츠)의 도움으로 새로운 기계 몸을 가지게 된다. 이십세기폭스코리아가 1월 7일 공개한 40분가량의 푸티지에 따르면, 자신이 전혀 중요하지 않은 존재라고 생각하던 알리타는 고철도시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사건에 연루되며 자신이 30년 전 자취를 감춘 첨단기술의 결정체이자 고도로 훈련된 사이보그 전사였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나는 이 영화를 통해 여전사 캐릭터의 조금은 다른 면모를 보여주고 싶었다. 알리타가 그저 강하게만 보이는 게 아니라 마음만큼은 굉장히 따뜻한 사람으로 비쳤으면 했다. 초인적인 힘을 지녔지만 어떤 면에서는 금방이라도 무너져내릴 것 같은 연약함을 동시에 담고 있는 캐릭터 말이다. 과거의 SF영화 여전사들이 그런 자질을 갖추고 있었다. 로사 살라자르가 바로 그런 자질을 가지고 있는 배우였다.” 로버트 로드리게즈 감독은 <메이즈 러너> 시리즈의 브렌다 역으로 이름을 알린 라틴계 배우 로사 살라자르가 <알리타: 배틀 엔젤> 제작진의 ‘톱 초이스’가 된 계기에 대해서도 들려줬다. 살라자르가 원작 <총몽>에서부터 이어지는 주인공 알리타의 가장 중요한 특징인 크고 순수한 눈망울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 영화의 주요 장면에 걸맞은 적절한 리듬감을 잘 알고 있으며 매 장면을 굉장히 파워풀한 방식으로 연기했다는 점이 제작진의 마음을 사로잡았다고 로드리게즈 감독은 말했다.
로사 살라자르는 전화 인터뷰를 통해 알리타와 그에게는 공통점이 많다고 설명했다. “알다시피 나는 조연배우 생활을 오랫동안 했다. 때문에 나 자신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느낌이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이 영화는 알리타의 여정인 동시에 나의 여정이기도 했다. 알리타가 자신이 누구이며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지 탐색해나가는 것처럼, 나 역시 <알리타: 배틀 엔젤>을 통해 나 자신이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이룰 수 있는 존재임을, 또 내 안에 내재되어 있는 힘을 발견했다. 나는 알리타를 연기하면서 나의 나약함을 끌어냈다. 동시에 그런 나약함을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감정도 함께 이끌어냈다.”
3. <알리타: 배틀 엔젤>에는 다양한 층위의 이야기가 존재한다
사이보그 의사 이도를 연기한 크리스토프 발츠는 <알리타: 배틀 엔젤>의 가장 큰 매력이 “할리우드 상업 블록버스터가 담을 수 있는 거의 모든 층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점”이라고 말한다. “액션 어드벤처, 미스터리, 성장담, 러브 스토리, 사회 비판, 캐릭터의 심리적인 측면, 정치적인 메시지”, 그 모든 것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알리타: 배틀 엔젤>의 푸티지를 통해 그의 말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알리타를 처음 발견한 사이보그 의사 이도와 알리타의 관계에서는 아버지와 딸의 관계를 떠올릴 법한 다정함이, 고철도시에서 우연히 알게 된 사이보그 부품을 파는 소년 휴고(키언 존슨)와 알리타가 함께하는 장면에서는 로맨스의 정서가, 알리타가 고철도시의 뒷골목에서 만난 일련의 사이보그 살인병기들과 대치하는 모습에서는 액션 블록버스터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었다. 영화의 다채로운 구성에 걸맞게 <알리타: 배틀 엔젤>에는 다양한 개성을 가진 인물들이 등장할 예정이다. 알리타, 이도, 휴고 이외에 알리타가 가진 강력한 힘을 알아본 뒤 자신이 거느린 사이보그들을 이용해 알리타를 제거하려 하는 고철도시의 지배자 벡터(마허샬라 알리), 현존하는 최고의 모터볼 기술자로 고철도시를 떠나 공중도시에서의 삶을 꿈꾸는 치렌(제니퍼 코널리) 등이 영화의 서사에 합류한다.
4. 디지털 캐릭터의 감정선을 제대로 보여주는 것이 이 영화의 핵심이다
<알리타: 배틀 엔젤>은 인간을 꼭 닮은 디지털 캐릭터를 구현하는 데 있어 21세기 할리우드의 시각효과 기술이 어디까지 발전했는지 가늠하게 해줄 영화다. 로버트 로드리게즈 감독은 “<아바타>와 <혹성탈출> 시리즈처럼 디지털 캐릭터의 시각적 진보를 보여준 영화들이 있지만 인간 캐릭터를 디지털로 구현하는 건 또 다른 문제”라며 이 영화의 시각적 성취 여부는 (인간을 닮은) 사이보그 캐릭터를 기술적으로 생동감 있게 보여주는 데 전적으로 달렸다고 말한다. <알리타: 배틀 엔젤>의 푸티지 영상에서는 디지털 캐릭터 알리타의 감정 변화를 보여주는 다양한 장면이 소개됐는데, 특히 큰 눈을 극단적으로 조명하는 클로즈업 신이 자주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국내 매체와의 기자 간담회에 참석한 김기범 CG감독은 “CG 작업자라면 누구나 클로즈업 숏을 부담스러워할 거다. 하지만 이 영화에 디지털 캐릭터를 클로즈업한 장면이 많다는 얘기는 그만큼 퀄리티에 자신감이 있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그는 여타의 디지털 캐릭터와 차별화되는 알리타 캐릭터의 특성에 대해 “디지털 캐릭터를 CG로 완벽하게 구현하는 데 초점을 맞춘 다른 영화들과 달리 <알리타: 배틀 엔젤>은 주연배우 로사 살라자르의 모든 감정 표현을 완벽하게 스캔해 디지털 캐릭터에 반영하는 작업을 이뤄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웨타 디지털은 이 작품을 위해 세계 최초로 배우의 머리카락을 한 가닥씩 모두 시뮬레이션해 디지털 캐릭터에 적용하는 과정을 거쳤으며, 알리타라는 인물의 가장 특징적인 인상으로 손꼽히는 큰 눈의 경우, <반지의 제왕> 골룸에 비교해 홍채의 형태를 구성하는 디테일을 320배가량 늘렸다고 김기범 CG 감독은 말했다.
5. 모터볼 액션 시퀀스는 <알리타: 배틀 엔젤>의 하이라이트다
특히 이번 1월 초 공개된 푸티지에는 기존 트레일러에서 볼 수 없었던 모터볼 액션 시퀀스가 새롭게 추가됐다. 레이싱과 럭비 경기를 합쳐놓은 것 같은 모터볼 경기 장면은 <씬 시티>와 <마셰티> 시리즈, <플래닛 테러>(2007) 등을 통해 개성 넘치면서도 독보적인 액션 장면을 선보여온 로버트 로드리게즈 감독의 장기가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로드리게즈 감독은 모터볼 시퀀스야말로 “액션 블록버스터로서 <알리타: 배틀 엔젤>의 매력을 만끽할 수 있는 핵심적인 장면”이라며 본편을 기대해달라고 말했다. 이 장면에서는 다채로운 기계 몸을 가진 사이보그들이 모터볼 경기 도중 알리타를 암살하기 위해 속도감 넘치는 사투를 벌인다. 놀라운 민첩함으로 죽음의 위기를 거듭 피하며 모터볼 경기에 임하는 알리타의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아드레날린을 분출하게 한다. 3D작업임에도 40대의 카메라로 동시에 촬영한 이 장면은 짧은 분량을 관람했음에도 대규모 제작비가 들어간 할리우드 오락영화의 매력을 충분히 느낄 수 있게 해줬다. “40분가량의 푸티지를 봤을 뿐인데 본편을 어서 보고 싶어졌다. 이런 기분이 드는 블록버스터를 보는 건 배우로서도 굉장히 오랜만이다.” 지금까지 공개된 영상으로 미루어보았을 때 배우 크리스토프 발츠의 이 말에 기대를 걸어보아도 될 것 같다. <알리타: 배틀 엔젤>은 2월 초 국내 개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