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모털 엔진
2019-01-23
글 : 김혜리

*<카우보이의 노래>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가버나움>

<가버나움>은 검거된 소년 자인의 나이를 치아로 추정하는 광경으로 시작한다. 12살로 짐작되는 소년은 또래보다 체구가 작다. 반면 20대처럼 행동하고 40대의 눈빛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자인은 욕을 들으면 곧장 욕으로 맞받아치고 연명하기 위해 좀도둑질을 망설이지 않는다. 조그만 소년은 크고 힘센 어른들에게 밀리지 않기 위해 항상 눈을 위로 치뜨고 있다. 찰스 디킨스의 올리버 트위스트가 좀더 거친 영혼을 가졌다면 이런 모습일까? 베이루트 거리에서 캐스팅된 비전문 배우 자인 알 라피아는 나아가 할리우드 청춘스타 같은 카리스마로 관객을 당황스럽게 한다. 게다가 <가버나움>에서 미성년 배우의 놀라운 연기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우여곡절 끝에 자인이 돌보게 되는, 걸음마도 못 뗀 아기 요나스(보루와티프 트레저 반콜)는 사상 최연소 명배우로 손색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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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언 형제의 <카우보이의 노래>는 알폰소 쿠아론의 <로마>와 함께, 미뤘던 넷플릭스 구독을 결정하도록 나를 떠민 지렛대였다. 아트하우스 스타 감독의 프로젝트이면서 극장 장편영화로서 투자받을 만한 상품성이 애매한 영화를 넷플릭스가 앞으로도 중요한 유인으로 삼을 거라는 징표로 보여서다. 무려 25년 전부터 코언 형제의 서랍 속에 잠들어 있었다는 <카우보이의 노래>는 6편의 독립적- 그러나 주제로 연결된- 이야기의 모음으로, 넷플릭스라는 신규 플랫폼을 만나 마침내 현실화됐다. <카우보이의 노래>는 필모그래피의 양과 질 그리고 일관성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코언 형제가 반복적으로 회귀한 주제와 형식 패턴을 일별할 수 있는 앤솔러지다. 여섯 챕터는 서부극의 울타리 안에서 코미디, 뮤지컬, 범죄, 멜로드라마, 귀신영화 등의 하위 장르를 끌어들인다. TV 연작은 고려한 적이 없고 단일한 영화의 여섯 챕터로 구상했다는 것이 코언 형제의 변이지만, 결과적으로 <카우보이의 노래>는 텔레비전이나 컴퓨터상에서 보기에 적합하다. 단편소설집의 형식을 취한 이 영화는 섹션의 처음과 끝을 각각 책의 일러스트와 첫 문단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로 열고 닫는데 리모컨이나 마우스로 화면을 멈추면 영화에 다른 뉘앙스를 더하는 문장들을 읽을 수 있다. 여섯 에피소드 사이의 연관을 더듬으려는 팬들에게도 리모컨은 유용하다. 또한 코언 형제 최초로 디지털 촬영을 택한 <카우보이의 노래>는 CG를 비롯한 시각효과가 적극적으로 구사된 작품이기도 하다.

01/05

<카우보이의 노래>가 제목을 따온 첫 번째 에피소드 ‘카우보이의 노래’는 존 포드 서부극의 풍경 속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그러나 이내 노래하는 총잡이 버스터 스크럭스(팀 블레이크 넬슨)의 기타 안에서 내다보는 특이한 시점숏이 우리가 코언 영화를 보고 있음을 환기시킨다. 여섯 단편을 관통하는 주제, 죽음의 불가피성을 제시하는 1화의 톤은 만화적이다. 바에 들어선 버스터가 상의를 털면 피어오른 먼지가 벗은 외투처럼 그의 실루엣을 그리고, 죽은 자는 귀여운 날개를 파닥이며 하프를 안고 승천한다. 노래하는 냉혈한 총잡이 버스터는 말하자면, 웃는 관상의 안톤 쉬거(<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이자 만화 <루니 툰>에서의 벅스 버니다. 그러나 메시지는 선명하다. 당신이 제아무리 (심지어 관객에게 직접 말을 거는 화자인) 버스터 스크럭스라고 해도, 내일은 더 손이 빠르고 노래 솜씨도 우월한 총잡이가 지평선 너머에서 찾아와 반드시 당신을 대체할 것이다. 에피소드2 ‘알고도네스 근방’의 어설픈 은행털이(제임스 프랭코)는 본인이 지은 죄에 내려진 형벌은 피하지만 결국 남의 죄를 뒤집어쓰고 처형된다. 코언의 전작 중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2001)의 이발사 에드(빌리 밥 손튼)와 비슷한 운명이다. 이 세계에서 죄와 벌의 인과는 뒤죽박죽이다. 각종 냄비로 무장한 늙은 은행원이 강도의 총탄을 튕겨내며 “팬 숏!”이라고 조롱하는 장면이 있는데, 직전에 도둑과 그의 말을 오가는 숏이 마침 짧은 패닝숏이다.

‘알고도네스 근방’의 짤막한 스케치 다음에는 장중하고 암울한 3화 ‘밥줄’이 이어진다. 유랑 흥행사(리암 니슨)와 팔다리 없는 아티스트(해리 멜링)는 철저한 공생 관계다. 흥행사는 아티스트의 재주를 팔아 돈을 버는 대신 그를 먹이고 입히고 용변보는 걸 거든다. 그러나 수입은 줄어만 가고 한 마을에서 재주 피우는 닭을 발견한 흥행사는 어느 쪽이 싸게 먹히는지 계산하고, 결론을 냉정히 실천한다. ‘밥줄’은 <인사이드 르윈>(2013)의 대사, “돈이 될 것 같지는 않구먼”으로 돌아간다. 공교롭게도 코언 형제는 이 에피소드에서 극히 필수적인 숏과 대사만으로 얼마나 경제적인 필름메이커인지 입증한다. 코언이 그리는 웨스턴의 시공, 미국의 초창기의 모든 인간관계는 투명하게 드러나는 거래다. 교환의 양변이 맞는다는 보장은 없지만. 에피소드4 ‘황금빛 협곡’은 늙은 금광 개척자(톰 웨이츠)의 이야기다. 디즈니스러운 CG로 그린 야생동물들이 뛰어노는 처녀지에 들어온 그는 여기저기를 흉하게 파헤치며 금을 찾고 마침내 성공한다. 하지만 이내 불로소득을 원하는 총잡이에게 습격당한다. 금을 발견해도 여생이 얼마일까 의심되는 노인에게, 금은 재산이기보다 삶을 잡아당기는 동력원으로 보인다. 금광은 혈혈단신 개척자의 유일한 대화 상대다. 총잡이를 물리친 노인은 손에 넣은 황금보다 불한당을 이겼다는 자부심으로 기뻐하는 듯하다. 총잡이에 비해 노인은 의롭지만 ‘황금빛 계곡’의 결말은 두 사람 모두 자연의 관점에서 보면 별 차이 없는 얼룩이었다고 말한다.

러닝타임이 가장 긴 에피소드5인 ‘겁먹은 처녀’는 장편으로 확장할 만한 에피소드다. 앨리스(조이 카잔)는 오리건으로 이주하는 도중 오빠를 여의고, 마차 행렬을 감독하는 진중한 카우보이 빌리(빌 헥)에게서 동반자를 발견한다. 솔직하고 공정한 두 남녀는 말하자면 이상적인 인간이다. 물론 결혼에서도 개척 서부에서 인간관계가 거래라는 사실은 지워지지 않는다. 앨리스와 빌리는 기혼 남녀에게 두배로 지급되는 정부보조금을 언급하고, 결혼에 영향받을 동업자와 고용인의 입장을 상의한다. “하루만 생각할 시간을 주세요”라는 부탁을 교환하며 이어지는 구애의 과정은 담백하되 코언 영화에서 본 적 없이 로맨틱하다. 어쨌거나 에피소드5의 선하고 존경스러운 인물들도 죽음의 임의로운 쇠스랑을 면할 수 없다. 방황과 역경을 극복했다고 믿는 순간 회오리바람이 밀어닥친다. <시리어스 맨>(2009)의 결말처럼.

마지막 에피소드 ‘죽을 자만 남으리라’는 주제의 직설적 요약으로, 맺음말이 흔히 그렇듯 주로 야외가 배경인 이전 에피소드들과 달리 창밖으로 CG 하늘만 보이는 마차 내부에서 촬영된 에피소드로 아직 죽음을 인식 못하는 망자들의 여정이다. 세명의 승객은 맞은편의 두 사람이 저승의 안내자라는 사실을 서서히 깨닫고 어떤 일이 있어도 고삐를 늦추지 않는 얼굴 없는 마부는, 괴테의 시 <마왕>에서 아픈 자식을 안고 폭풍 속을 달리는 아버지와 닮았다. “살았거나 죽었거나”라는 1화의 지명수배 전단 문구가 반복되고 버스터의 노래로 시작한 영화는 저승 가이드의 노래로 끝난다. 인물에게 냉혹하고, 죄와 벌, 덕과 보상의 자동적 연관을 누차 부인하는 <카우보이의 노래>는, 코언 형제를 냉랭한 염세주의자로 여기는 관객에게 새로운 물증이 될 법하다. 죽음이 도처에서 기습하고, 공정한 법은 오직 이론적으로만 존재하는 개척기 서부는, 코언 형제의 세계관과 라이트 모티브를 형상화하는 최적의 무대다. <카우보이의 노래>에서 여전히 변하지 않은 코언 형제는 희망적인 영화를 만드는 대신 버스터의 대사로 대꾸한다. “내가 인간혐오자라고요? 아닙니다. 인간들은 성가시고 무례하고 속임수를 부리지만 그보다 나은 것을 기대하는 바보들이나 실망하지, 나는 다 인간 본성이라고 생각해요.”(‘카우보이의 노래’ 중) “불확실성(uncertainty)은 우리가 사는 이 세계의 문제를 다루는 데에 유용한 미덕입니다. 당위는 편하기 위해서 만드는 거예요.”(‘겁먹은 처녀’ 중)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망자들을 데려가는 사자는, 인간은 이야기에 혹하고 그러는 사이에 죽음이 잡아챈다고 말한다. 하지만 과연 사자는 삶의 무의미함과 스토리텔링의 무용함을 조롱하는 걸까? 반대로, 불가피한 사멸을 불공평한 이유로 공평하게 맞을 인간은 이야기를 그칠 수 없고 어쩌면 그것이 전부라고 말하는 건 아닐까?

<카우보이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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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들리

코언 형제의 단골 배우가 포함된 <카우보이의 노래>를 통틀어 제일 강력한 인상을 남기는 배우는 에피소드3 ‘밥줄’에서 팔다리가 없는 유랑 아티스트를 연기하는 해리 멜링이다. 멜링은 소년 시절 <해리 포터> 시리즈에서 주인공의 밉상 이종사촌 더들리 더즐리로 얼굴을 알렸고 이후 정통 연극배우로 성장했다. 아티스트는 천막무대에서 의자에 비끄러매진 상태로 오직 얼굴과 목소리만으로, 셰익스피어와 퍼시 셸리의 문장, 링컨의 연설을 쩌렁쩌렁 독백한다. 그의 연기는 몇명 안 되는 청중 너머의 광야를 호령한다. 언어의 폭포를 쏟아내는 무대 위와 대조적으로 무대 밖의 그에게 코언 형제는 대사 한마디도 주지 않았다. 지체가 부자유한 그의 목숨줄인 흥행사(리암 니슨)의 일거수일투족에 대해, 아티스트는 오로지 눈과 고개의 각도만으로 경계와 힐문, 항의와 체념을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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