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제69회 베를린국제영화제 황금곰상 수상작 <시너님스> 나다브 라피드 감독 - 이 영화는 정체성, 그리고 자신에 대한 영화다
2019-02-28
글 : 한주연 (베를린 통신원)
<시너님스>

올해의 황금곰상 수상작 <시너님스>는 나다브 라피드 감독이 프랑스에서 직접 경험한 이야기를 토대로 한 영화다. 이스라엘 청년인 주인공 요아브는 배낭 하나 들고 파리에 와서 모국어인 히브리어를 쓰지 않고 오로지 프랑스어만 하며 살기로 결심한다. 이스라엘인이라는 정체성을 버리고 프랑스인이 되려는 것이다. 빈집에서 모든 것을 잃고 목숨까지 잃을 뻔한 요아브는 부유한 또래 커플에게 극적으로 구조된다. 낯선 것을 대면하는 한 인간의 실존과 정체성 문제를 다루는 이 영화는 올해의 베를린국제영화제를 찾은 심사위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시너님스>의 기자회견 내용을 요약 발췌했다.

-<시너님스>는 감독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어떻게 영화를 만들게 되었나.

=나는 20년 전 3년 반 동안의 군역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가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패션 잡지에서 일하기도 하고 소설을 쓰기도 했다. 사는 것이 좋았다. 그러던 어느 날 잔 다르크처럼 신의 목소리를 들었다. 꼭 신의 목소리라기보다 이스라엘을 떠나야 한다는 일종의 깨달음을 얻었다. 나 자신을 구하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다는 결심으로 프랑스행 편도 항공기 티켓을 샀다. 10일 후 초급 프랑어 실력으로 파리 드골 공항에 도착했다. 미래에 대한 계획도, 아는 사람도, 체류에 필요한 서류도 없었다. 다만 파리에서 살고 죽겠다는, 즉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라 프랑스 사람이 되겠다는 명확한 갈망만 있었다. 당시엔 잘 몰랐지만 모든 게 급박하고 폭력적이었다. 자신의 태생과 정체성을 바꾸는 게 비행기 티켓 하나로는 되지 않았다. 가장 힘든 건 모국어를 포기하는 것이었다. 나는 당시 단어 하나도 히브리어로 말하는 것을 거부했다. 그래서 내겐 단어가 없었다. 나는 새로운 단어를 찾아야 했다. 그래서 나는 파리에서 길을 나서면 비슷한 단어들을 중얼거리며 외웠다. 영화에 나오는 장면은 대부분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다. 내 인생을 스크린으로 보여주는 일이 꼭 마음에 드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런 실존적인 순간을 포착하려면 이런 방법을 써야 한다. 나는 나 자신의 삶을 타인의 삶보다 잘 안다. 그래서 그걸 활용했다.

-최근 이스라엘 젊은이들이 유럽으로 이주하고 있다. 기성세대는 이런 추세를 문제라고 생각한다. 영화를 통해 이런 경향을 보여주려는 의도도 있는가.

=내게 흥미로운 건 수많은 이스라엘 젊은이가 유럽, 특히 베를린에 정착하려고 한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유럽의 질서를 존중하고 순종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 한다. 이스라엘의 정치적 상황으로 볼 때 받아들여질 수 없는 사실이다.

<시너님스> 포스터.

-정치적으로 극단적인 분위기를 보여주는 장면이 곳곳에 포진해 있다. 당신은 어떤 입장을 취하는지 큰 맥락 안에서 설명해줄 수 있는가.

=이 영화에는 극단적인 정치적 도발 장면이 많지만 내 정치적 입장을 표현한 것은 아니다. 영화에서 내 생각과 입장은 주인공의 표정, 몸의 움직임과 섞여서 표현됐다. 어떤 특별한 실존을 표현하려는 시도다. 우리의 삶, 즉 생각이나 결론을 곱씹어보는 거다. 이건 모든 것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나중에 모든 것이 다른 것과 섞여 우리 삶인 혼돈의 현실이 된다. 아마 도발적인 측면이 있겠지만 이건 좌파나 우파 영화가 아니다.

-이스라엘 문화부의 재정 지원을 받은 사실을 영화 초반에서 밝힌다. 이스라엘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는 영화인데 이스라엘 정부가 지원한 걸 보면 어느 정도 자유를 인정하는 것 같다.

=내 영화는 이스라엘에 대한 비판과 동시에 애착도 포함하고 있다. 나는 이스라엘과 연결돼 있다고 느낀다. 나는 단순하고 상징적인 정치적 설명은 하지 않으려 한다. 세상의 모든 나라는 그들 나름대로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를 가지고 있다. 이스라엘도 복잡한 문제를 가진 나라다. 이스라엘엔 잔인한 면이 존재하고 내 영화에 그 부분을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이스라엘 문화부가 이 영화를 보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 작품의 여러 측면을 통해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심사위원장 줄리엣 비노쉬

-이스라엘 사람은 미국이나 유럽의 유대인과 다른가.

=이 영화는 정체성과 과거, 자신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가 어디까지 우리의 정체성을 버리고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갈 수 있는지 묻는다. 이스라엘인으로서 나의 조국에 대해 말하자면 이스라엘은 국민에게 완전한 사랑을 요구한다. 의심, 조건, 질문 없는 사랑을 요구한다. 즉 완전한 충성과 신의를 요구한다. 영화 속 인물도 이스라엘이란 이름 자체를 저주한다. 이 정체성을 버리기가 매우 힘들기 때문에 극중의 그처럼 강렬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젊은이들이 자유를 찾아 베를린으로 오고, 프랑스의 유대인들은 유대인을 향한 공격 때문에 프랑스를 떠난다는 사실과 이 영화가 관련이 있는가.

=내 영화는 고전적 의미에서 정치적 영화가 아니고 현재 상황을 다루지 않는다. 문제는 이스라엘에서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의 나는 거기 살고 있지 않은데도 왜 그 문제에 민감한지 스스로 묻게 되더라. 이스라엘의 집단의식은 남성성과 관련이 많다. 그렇다면 오늘날 남자라는 존재는 무엇인가? 나는 사회학자가 아니지만 내가 보는 이스라엘을 이야기하기 위해 특정한 시적 자유를 사용한다. 하지만 나는 다른 생각을 가진 누구와도 토론할 수 있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좋은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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