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생일> 설경구 - ‘힐링’은 <생일>의 금기어였다
2019-03-26
글 : 임수연
사진 : 백종헌

설경구는 올해 <우상> <생일> <퍼펙트 맨> 등 최소 세편의 영화로 관객을 만난다. <우상>에 이어 <생일>까지, 하루 간격으로 <씨네21> 표지를 찍게 된 그는 이날 인터뷰가 끝나자마자 <킹메이커: 선거판의 여우> 의상 가봉을 하러 갔다. 현재 충무로에서 가장 바쁜 배우인 설경구는 <우상> 촬영 당시 이준동 대표로부터 <생일> 시나리오를 받았다. 빠듯한 일정에도 불구하고 그가 세월호 이후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생일>을 놓칠 수 없었던 이유에 대해 물었다.

-<우상> 촬영 분량이 남아 있을 때 <생일> 시나리오를 읽었다. 어떤 부분에서는 강력 사건의 피해자가 된 아이의 아버지를 연기했던 <소원>(2013)과 겹치는 작품인데, 어떻게 다가왔나.

=<소원>의 동훈이 사건 당시 곁에 있었던 당사자라면, <생일>의 정일은 당사자이면서도 당사자가 아니다. 정일은 어떤 특수한 상황 때문에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을 때 외국에 있었고, 시간이 지나 한국에 돌아온 후에도 사건의 중심에 들어가지 못한다. 이미 가족은 이사를 갔고, 딸 예솔(김보민)은 현관문 비밀번호를 누를 때 아빠에게 보여주지 않으려고 한다. 노란 머리로 <우상>을 찍다가 머리를 다시 검게 물들이고 <생일>을 찍으려고 하니 정말 낯설었는데, 이렇게 낯선 상태로 작품에 들어가는 것도 캐릭터와 어울려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마음을 먹으니 오히려 편했다.

-캐릭터와 세월호 사건의 거리감은 ‘물’에 대한 태도에도 반영된다. 예솔은 갯벌에 들어가지 못할 만큼 트라우마가 있지만, 정일은 오히려 낚시터에 가서 죽은 아들 수호(윤찬영)와의 기억을 떠올린다.

=정일은 세월호 소식은 전해 들었지만 그 비극의 무게가 확 와닿지는 않는 인물인데, 그게 세월호 이후 시간이 흘러 거리를 두고 있는 일반인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어마어마한 참사라는 것을 머리로는 알지만 어떻게 사건에 감정적으로 들어가야 할지 모른다. 각자의 마음으로 뭔가를 하고 싶지만 방법도 모르고 잘 안 되는 거다. 괜히 성급하게 행동했다가 상처를 줄 수 있으니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렇게 세월호에 거리를 두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정일의 시선을 통해 어깨너머 순남(전도연)을 보도록 하는 게 감독님의 의도였다. 그렇게 정일은 관객을 괴로워하고 온몸으로 피를 철철 흘리고 있는 순남에게 데리고 간다. 처음에는 이야기의 중심에 들어가지 못하고 주변을 맴돌던 정일은 조금씩 서서히 중심으로 들어간다.

-정일이 꾹 눌러놓았던 감정을 언제 터뜨리느냐가 영화의 온도를 좌우한다.

=이 장면에서는 정일의 감정이 어느 정도인지 감독님과 상의하고 계산해서 들어가야 했다. 이것은 기록을 담은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영화다. 순서대로 찍은 것도 아니라서, 마지막 촬영이 납골당에서 다른 유가족들과 밥 먹는 신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멋모르고 시나리오에 있는 감정대로 갔다가는 감정이 뒤죽박죽 엉키게 된다. 전체적으로는 담담하게 하려고 했다.

-원래 언론배급 시사회 때 영화를 처음 보는 편인데, 이번에는 미리 봤다고. 관객으로서 본 영화는 어땠나.

=눈물이 한번 터지면 수습이 안 되는 편이라, 시사회 후 기자간담회를 제대로 할 수 없을 거 같아서 먼저 봐야만 했다. 여권에 도장 찍는 장면도, 순남이 오열하는 장면도, 예솔이 복도에서 펑펑 울 때도 너무 힘들어서 자주 끊으면서 봤다. ‘힐링’은 <생일>의 금기어였다. 절대 힐링영화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힐링은 말도 안 된다며 만들었다. 그런데 영화가 위안은 줄 수 있지 않나. 서로가 서로를 다독여주고, 등을 쓰다듬어줄 수 있는 영화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다행이다. 그리고 <생일>은 한 가족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당사자 가족뿐만 아니라 그 주변 사람들도 생일 모임에 참석해 서로를 위로한다. 이것은 당장의 내 이야기, 혹은 앞으로의 내 이야기일 수 있다.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2000) 이후 18년 만에 다시 만난 전도연 배우와는 어땠나.

=전도연씨는 나이를 안 먹는 거 같다.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아우라를 갖고 있다. 전도연씨는 모든 배우들의 로망 아닌가. 나는 두번이나 같이 연기해봤으니 영광이다. 더 나이를 먹고 세 번째로 만나도 재미있을 것 같다. 그땐 이렇게 슬픈 이야기 말고 코믹 스릴러 장르가 어떨까. (웃음)

-올해 <우상> <생일> <퍼펙트 맨> 등 세편의 영화에서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줄 예정이다.

=<우상> 끝나고 <생일> 현장에서 CGV아트하우스 관계자를 만났는데, 처음에 날 못 알아보고 지금 촬영 중이냐며 묻다가 화들짝 놀라더라. 그 반응에 굉장히 기분 좋았다. 어쨌든 올해는 캐릭터도 얼굴도 완전히 달라지는 것을 목표로 했는데, 이러다가 내년에 밑천이 떨어지면 어떡하지. (웃음) 어떻게 얼굴을 계속 바꿔… 힘들다. 결국 난데. 그냥 나만을 위한 자위가 아닌가 싶지만, 글 속에 있는 캐릭터를 내 얼굴로 표현하는 재미가 결국 가장 좋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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