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스무살을 맞은 전주국제영화제에 잘 다녀왔다. 원래 갈 계획이 없다가 가게 되니, 더 즐거운 시간을 보낸 것 같다. 올해도 <씨네21>이 영화제 공식 데일리로 참여하면서, 매일 어떤 기사와 인터뷰로 채울지 데일리 구성안을 짜는 것보다 더 힘든 삼시세끼 맛집 순례 구성안을 짜느라 고생했다. 기자들 모두 출장 기간 중반을 통과하며 가져온 바지가 맞지 않는다고 호소했고, 특히 술독에 빠진 송경원 기자는 매일 밤 자리가 파한 뒤에도 나라 잃은 백성처럼 숙소로 복귀하길 거부하며 전주 영화의 거리를 헤매고 다녔다(혹시 그의 행방을 아시는 분들의 제보를 기다린다). 데일리 작업실은 전주 라운지의 <스타워즈> 컨테이너, <스타워즈> 갤러리와 가까워 하루 종일 수백번 무한 반복되는 존 윌리엄스의 <스타워즈> O.S.T를 듣느라 계속 그 환청에 시달리기도 했다(한동안 <스타워즈>를 볼 일 없을 것 같다). 그렇게 9권의 데일리가 끝났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는 역대 최고 매진 회차를 기록하며 순항했다. 데일리팀 또한 예년과 비교해 확연히 영화의 거리가 북적인다는 느낌을 받았다. 영화 상영 외에 다채로운 토크 프로그램의 인기도 높았다. 기존의 ‘마스터클래스’와 ‘시네마, 담(談)’에 더해 ‘영화를 통한 영화의 이해’를 시도하는 ‘시네마톨로지 클래스’, 논쟁적인 주제와 혁신적인 스타일 등 동시대 가장 용감한 영화들을 모은 프론트라인 섹션 감독들과 함께하는 ‘프론트라인 클래스’도 반응이 뜨거웠고, 올해 한국영화 100주년을 기해 ‘스페셜 포커스’ 섹션에 편성된 ‘백년 동안의 한국영화: 한국영화의 또 다른 원천(20세기)’, ‘백년 동안의 한국영화: 와일드 앳 하트(21세기)’ 상영작 감독 20인과 함께한 ‘시네마클래스’가 단연 압권이었다. 한국영화사에 족적을 남긴 <짝코> 임권택 감독, <복수는 나의 것> 박찬욱 감독, <지구를 지켜라!> 장준환 감독, <청연> 윤종찬 감독, <천하장사 마돈나> 이해영 감독, <사랑니> 정지우 감독, <황해(감독판)> 나홍진 감독 등이 전주를 찾아 알찬 대화를 나눴다.
그럼에도 유감인 것은 있다. 시네마톨로지 섹션에 로랑 아샤르 감독의 다큐멘터리 <장 클로드 브리소-마르카데가 251번지>(2018)가 포함된 것이다. 장 클로드 브리소는 영화를 함께했던 여배우 2인에 대한 성추행 혐의가 인정되어 실형을 받은 적 있다. 또한 지금은 작업 준비차 만난 여성에 대한 강간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중이다. 알 만한 사람들은 자연스레 ‘그럴 줄 알았다’고 느끼는 ‘상습범’이라 해도 틀리지 않다. 그럼에도 지난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마스터클래스도 가졌고, 부끄럽지만 <씨네21>도 지난해 데일리를 작업하며 그를 인터뷰한 적 있다. 그러니까 알아야 하고, 또 알려야 한다. 그런데도 그를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가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지는 걸 보면, 프랑스나 한국이나 그 영화계의 ‘카르텔’이란 게 비슷한가 보다. 지난해 시네마테크 프랑세즈 회고전 라인업이 발표됐을 때, 미성년자 성폭력 혐의로 2018년 미국 영화아카데미에서 영구제명된 로만 폴란스키 회고전은 열리지 않았다. 하지만 성폭력 혐의로 실형까지 받았음에도 프랑스영화계 내 지인들이 많은 장 클로드 브리소 회고전은 여러 단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국 강행되었다. 한편, 성폭력 관련 미투 제보가 있었던 김기덕 감독의 <인간, 공간, 시간 그리고 인간>을 올해 초 개막작으로 초청한 일본 유바리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국내 여러 단체들이 선정 취소를 요구했으나,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가 모스크바국제영화제 심사위원장으로 위촉됐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다 별 차이 없는 일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