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지>는 아일랜드의 사회복지 문제를 다룬 영화다. 아일랜드 출신의 소설가이자 시나리오작가인 로디 도일(<커미트먼트>(1991))의 시나리오를 같은 아일랜드 출신의 패디 브레스내치(<아이 웬트 다운>(1997), <비바>(2015)) 감독이 연출했다. 더블린에 사는 로지 가족은 집주인이 집을 팔겠다고 통보하면서 7년간 살았던 임대주택에서 쫓겨난다. 주인공 로지(사라 그린)와 그의 남편 존(모 던퍼드) 그리고 네명의 자녀들은 하루아침에 거리로 내몰리고 홈리스가 된다. 더블린시가 마련한 대책은 호텔 명단을 주고 그들이 방을 구하면 시에서 숙박비를 지급하는 것이다. 로지의 가족과 같은 처지의 가족들이 많아지면서 호텔 방을 구하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진다. 영화는 로지가 조그마한 자동차에 의지해 자녀들을 학교에 등하교를 시키면서 하룻밤이라도 잘 곳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로지는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지 않는다. 심지어 엄마의 도움마저 거절한다. 그녀는 안간힘을 쓰면서 이 모든 것을 혼자 감내한다. 이 영화에서 인상적인 것은 감독이 그녀를 보여주는 방식이었다. 이 부분에 대해 지금부터 살펴보려고 한다.
누구를 향해 분노할 것인가
첫 번째는 영화의 오프닝에서 들리는 그녀의 목소리다. 영화는 암전 속에서 라디오방송의 보도(임대주택의 물량 부족과 임대료 상승으로 홈리스가 증가하고 있다)를 통해 현재 더블린의 홈리스 문제에 대한 소식을 전해주면서 시작한다. 이어서 주인공 로지의 목소리(“방을 찾고 있는데요. 가족실이요. 하룻밤도 없나요?”)가 들린다. 영화에서 우리가 처음 만나게 되는 것은 이미지가 아니라 목소리다. 그러고 나서야 우리는 자동차 안에서 핸드폰을 들고 통화하는 로지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감독은 자연스럽게 라디오방송의 목소리와 로지의 목소리가 이어지도록 배치한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그녀가 호텔 방(가족실)을 찾는 목소리가 이 영화 전체에 걸쳐서 끊임없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이는 영화가 마치 라디오 방송의 보도를 로지가 증명해 보이는 것처럼 하루하고 반나절 동안(36시간)의 이야기로 구성된 것과도 연관이 있다고 생각된다. 영화의 시작과 동시에 효율적으로 연결된 두 목소리(뉴스 보도와 로지가 방을 구하는)는 현실과 드라마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이 부분이 켄 로치 감독의 <나, 다니엘 블레이크>(2016)나 다르덴 형제의 <로제타>(1999)와 구별되는 점이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가 우리에게 감동을 주었던 것은 켄 로치 감독이 노동자계급의 연대를 통해 척박한 현실을 뛰어넘을 수 있는 인간의 존엄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또한 <로제타>를 보는 동안 우리는 생존을 위해 발버둥치는 그녀를 보면서 자본가를 향한 분노를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로지>에서 감독은 섣부른 희망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계급(자본가와 노동자) 갈등을 보여주지도 않는다. 영화는 우리가 분노해야 할 대상을 명확히 보여주지 않는다. 잠잘 곳을 찾으려고 애쓰는 로지를 보여줄 뿐이다. 감독의 이런 선택은 로지 가족에게 일어난 일이 특별한 일이 아닌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는 아니었을까.
두 번째는 핸드헬드 촬영과 고정숏의 대비다. 영화에서 대부분의 장면은 핸드헬드로 촬영됐다. 로지가 가족들과 대화하거나 이동하는 장면들은 클로즈업이나 주로 미디엄숏으로 보여준다. 특히 감독은 로지를 프레임의 중심이나 전경에 위치시켜 그녀에게 집중하게 만든다. 반면, 공간을 중심으로 그녀를 보여주는 장면에서는 카메라를 고정시키고 풀숏으로 촬영했다. 예를 들어 콘크리트벽과 기둥으로 둘러싸인 주차장의 후경에 놓인 로지의 자동차를 보여주는 장면을 떠올려보자. 로지가 양손에 커다란 검은 비닐봉지(가족들이 먹을 음식)를 들고 걸어가 자동차의 트렁크 문을 열 때 그녀는 프레임의 후경에 위치해 있어 더 작게 보인다. 우리는 이 장면에서 콘크리트벽과 기둥에 둘러싸여 고립된 로지의 모습을 보게 된다. 또는 큰딸이 다니는 학교에서 딸을 찾아다니는 로지의 모습(핸드헬드 촬영)을 보여주다 갑자기 복도의 사물함 앞에 서 있는 로지(고정 풀숏)를 보여주는 장면에서도 고립된 로지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게다가 로지가 딸의 학교에서 교장선생님을 만나는 장면에서 감독은 의도적으로 프레임의 한가운데 모니터를 놓아 교장선생님과 로지가 서로 다른 세계에 있는 것처럼 분리시킨다. 다음으로 잠잘 방을 구하지 못한 로지의 가족이 시간을 보내기 위해 음식점에 앉아 있는 모습에서 감독은 가족을 후경에 위치시켜 한쪽 벽면으로 몰아놓는다. 더 나아가 음식점 직원이 문 닫을 시간이 10분밖에 안 남았다면서 셔터를 반쯤 내리는 장면은 로지와 가족이 갇힌 것처럼 보인다. 이처럼 감독은 공간(주차장의 기둥, 학교 복도, 음식점의 벽, 교장실)과 사물(사물함, 셔터, 모니터)을 이용해서 로지를 고립시키고, 분리시키고, 가두면서 현실에서 밀어낸다. 하지만 그녀는 홈리스가 되지 않기 위해 완강히 버틴다. 이것은 감독이 그녀의 태도를 보여주는 장면에서 확인할 수 있다.
홈리스가 되고 싶지 않은 바람
마지막은 바로 그녀의 태도다. 그녀가 남동생의 집을 찾아갔던 장면을 떠올려보자. 남동생은 그녀가 맡긴 짐을 찾아가라고 하면서 그녀에게 ‘홈리스’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이 말을 들은 그녀는 “우린 홈리스가 아니야. 우린 집을 잃은 거야”라고 말하면서 열쇠를 잃어버려 집에 못 들어가는 것이라고 강하게 부정한다. 그녀는 왜 ‘홈리스’로 불리는 것을 싫어하는 걸까? 이는 그녀가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거절하는 것과도 연관이 있다고 생각된다. 그녀는 청소년기에 아버지와 불화(그녀는 아버지를 욕했다)로 가출했던 것으로 보인다. 로지의 엄마가 그녀의 아이들을 재워주는 조건으로 아버지를 욕한 것을 사과하라고 강요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 현재는 그 문제로 엄마와 갈등 관계에 있다. 로지의 엄마는 남편이 좋은 사람이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그녀의 엄마는 그녀의 입장을 이해해주지 않는 것 같다. 어쩌면 그녀의 선택은 그녀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로 보인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호텔 방을 구하지 못한 로지의 가족이 자동차 안에서 밤을 보내야 하는 최악의 상황을 보여준다. 남편은 가족들이 조금이나마 더 편안하게 자동차 안에서 잘 수 있도록 밖으로 나간다. 추운 겨울 남편은 야외에서 밤을 보내야 한다. 영화는 자동차 안에서 잠들지 못하는 로지의 얼굴을 보여주면서 끝난다.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자존심을 지키고 싶은 그녀의 욕망(‘홈리스’가 되고 싶지 않은)이 참담하게 부서지는 순간이다. 결국 감독은 아무런 해결책도 제시하지 않고 영화를 끝낸다. 우리는 그녀가 그토록 되고 싶지 않았던 홈리스가 된 그녀와 마주하게 된다. 감독은 이 영화에서 홈리스가 되는 것은 로지 가족만의 사건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이라는 것을 보여주려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