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로, 마케터로, 제작자로, 인터뷰를 진행하거나 구경만 하다가 직접 인터뷰를 당하는 입장이 되니 어색하다.” 곽신애 대표가 쑥스러운 미소를 짓는다. <기생충>을 제작한 그는 영화잡지 <키노>의 기자로 활동하다가 제작사 청년필름, LJ필름의 기획마케팅실을 거쳐 바른손이앤에이의 대표이사가 된 흔치 않은 경력의 소유자다. 정지우 감독의 <해피엔드>를 기획, 홍보하고 <모던보이>의 프로듀서를 맡았으며 <여자, 정혜> <러브토크>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삼거리극장>의 마케팅 총괄을 거쳐 <가려진 시간>과 <기생충>을 제작한 그의 이력을 살펴보면 어떤 일관성이 엿보인다. 작가로서 뚜렷한 개성을 가진 감독들에게 깊은 애정을 가지고 그들의 든든한 지지자이자 서포터로서 업계에 몸담아온 곽신애 대표는 <기생충>의 황금종려상 수상과 국내 흥행으로 영화인으로서 가장 화려한 순간을 맞이했다. 그에 대한 코멘트를 요청하자 시드니국제영화제에 참석 중이던 봉준호 감독은 음성메시지를 보내와 <기생충>의 프로덕션, 마케팅, 배우들간의 앙상블을 최적의 컨디션으로 끌어올리는 데 “곽신애 대표의 혁혁한 공로”가 있었음을 전했다. “살다보니 이런 날도 있다”며 곽신애 대표는 웃었지만, 그에게 찾아온 ‘좋은 날’은 순간의 우연이 아닌, 오랜 노력의 산물이다.
-<기생충>이 864만 관객을 돌파했다(6월 셋쨋주 기준). 흥행을 예상했나.
=이 정도일 줄은 예상 못했다. <기생충> 개봉을 경험하며 국내 관객에게 크게 놀랐다. 영화가 잘 만들어졌고 재밌다는 건 알았지만 <기생충>이 보고 나서 관객을 기쁘게 하는 영화는 아니잖나. 관객을 편치 않게 하면서도 매혹시킨 영화 중 최대치로 흥행을 기록한 작품을 생각해보니 <곡성>(2016) 정도겠더라. <기생충>이 <아가씨>보다는 보편적으로 관객을 유인하기 쉬운 영화라고 생각했고, 그럼 <곡성>과 비슷한 스코어가 되려나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기록을 뛰어넘었다. 놀랍고 기뻤다. 또 정말 많은 관객이 영화를 봤는데도 서로 스포일러 유출을 조심하며 지켜주는 모습 또한 생소하고도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칸국제영화제(이하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이 흥행에 미친 영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모든 게 칸영화제 전후로 나뉜다. (웃음) <기생충>이 경쟁부문에 초청될 거라고 생각은 했다. 칸을 알고 이 작품을 알면, 칸영화제가 <기생충>을 안 부르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작품에 자신이 있었다. 영화적 함의가 풍부하고 전세계적으로 시사하는 바가 큰 문제를 다루고 있어 좋은 평가를 받을 거라 예상했지만 설마 황금종려상일 줄이야…. 마치 올림픽 금메달을 수상한 것 같은 분위기가 되어버렸다고 할까.
-칸영화제 시상식 당일에 수상자 발표를 들으며 잔뜩 긴장한 표정이 카메라에 잡혔는데.
=<가려진 시간>(2016)을 함께한 엄태화 감독이 사진을 캡처해 보내줬다. 내 표정이 너무 웃겼다며.(웃음) 폐막식에 참석하라는 건 상을 주겠다는 뜻이니 어떤 상이든 받을 거라는 건 알고 있었다. 그래도 미처 황금종려상까지는 예상하지 못했다. 칸영화제가 상을 주면서 한명씩 레이스에서 떨어뜨리는 구조잖나. 쟁쟁한 감독들의 이름이 한명씩 불릴 때마다 ‘어, 저 감독의 이름을 벌써 부르네’라는 놀라움과 ‘설마 우리가…?’라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마티 디옵 감독의 심사위원대상이 확정된 뒤, 송강호 선배님이 우리만 남았다는 의미로 팔을 잡으시더라. 그때는 ‘세상에 이런 일이’의 심정이었다.
-봉준호 감독이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뒤 송강호 배우와 함께 무대에 올랐다.
=송 선배님과 감독님께서 신호를 주시기에 무대에 올랐다. 긴장하거나 당황하지는 않았다. 사진을 찍을 수는 없으니 눈앞에 보이는 모든 걸 잘 담아가야겠다는 생각으로 차분하게 둘러봤다. 평생 또 언제 이 광경을 보겠나 싶더라.
-봉준호 감독과의 인연이 궁금하다.
=나와의 인연 이전에 <마더>(2009)의 제작자였던 바른손이앤에이 문양권 회장님과 감독님의 인연이 있었다. 감독님이 <마더> 이후에도 몇 작품을 하셨지만 지나고 나서 돌아봤을 때 <마더> 프로덕션의 세팅과 안정감이 좋으셨던 듯하다. 그런데 <마더> 프로듀서였던 서우식 대표가 <옥자>(2017)를 작업한 뒤 퇴사를 했다. 나는 베테랑 프로듀서도 아니고, 메인으로 제작을 맡은 영화가 <가려진 시간> 한편인 초짜 제작자라서 마음을 비우고 있었는데 서우식 대표를 통해 감독님의 연락을 받았다. 다음 작품을 바른손이앤에이와 하고 싶다고 하시더라. (컴퓨터에서 문서 파일을 열며) 2015년 4월 18일에 감독님과 처음으로 문자를 주고받았다.
-늘 그렇게 메모를 하나.
=일지처럼 주요 사건들을 정리하는 습관이 있다. 중요한 걸 적지 않으면 안 된다는 불안감이 있다. 2015년 당시 감독님에게 “작품에 폐가 될까봐 너무 두렵지만 설레기도 합니다”라고 문자를 보냈는데, “뭘 또 두렵기까지씩이나” 하냐고 답변이 왔던 기억이 난다.
-<기생충>의 제작진은 대부분 봉준호 감독과 호흡을 맞춰본 베테랑 스탭들이다. 이들 중 봉준호 감독과의 협업 경험이 없는 장영환 프로듀서(<고지전>(2011), <1987>(2017))의 합류가 눈에 띄는데, 직접 추천했나.
=그랬다. 다른 파트의 키 스탭들은 이미 내정되어 있는 상황이었고, 내 몫의 스탭 중 가장 중요한 사람이 프로듀서였다. 그래서 나름의 전수조사를 했다. 2년치 개봉일람표를 펼쳐놓고 경험치와 예산, 평판 등을 고려해 추천할 만한 프로듀서의 목록을 작성했다. 프로듀서를 전수조사한 문서와 나름의 기준으로 후보자를 압축한 엑셀 파일 두개를 감독님께 보냈더니 웃으시며 이걸 엑셀 파일로 주는 사람은 처음 봤다고 하시더라. 그중에서 1순위로 생각하던 장영환 프로듀서와 함께하게 됐다. 우직하면서도 성격이 모난 데가 없고, 일을 정말 잘하는 분이었다.
-봉준호 감독에 따르면 <기생충> 제작과정에서 “4K 촬영, 애트모스 녹음, 과감하고 정교한 세트 등 프로덕션 밸류에 대한 아낌없는 투자가 있었다”고 하더라. 시나리오 자체만 놓고 보면 50~60회차 정도를 예상했을 텐데 77회차라는 여유 있는 스케줄을 확보해 홍경표 촬영감독과 봉준호 감독이 “마음껏 기량을 발휘할 수 있게끔 멍석을 깔아줬다”고.
=<기생충>은 처음부터 전세계에 보여질 것이 예상되는 작품이었기 때문에 현재 시점에 어느 나라 수준에서 보아도 영화의 만듦새나 상영포맷 등 퀄리티에 문제가 없는 영화였으면 했다. 그리고 미래의 관객과 만나게 될 작품인 게 명백했으니 현재 구현할 수 있는 최고 수준으로 만들어두는 게 당연했다. 그에 대해 투자·배급사 CJ의 직원들도 전혀 이견이 없었다. 제작자는 그래도 손익분기를 고려해야 하는 책임이 있지만, 감독님의 시나리오와 연출력, 배우 등 흥행요소들을 최대한 객관적 기준으로, 보수적으로 검토해봤을 때도 총제작비를 회수할 수 있는 정도 이상의 흥행이 가능하다는 판단이 섰다. 게다가 봉 감독님이 누구보다 먼저 효율을 고민하고 고려하면서 계획을 미리 조정해서 내놓곤 했기 때문에 무리한 요구로 여겨지는 부분이 없었다.
-봉준호 감독과 제작진에 따르면, 10명의 주요 배우들을 “집안의 큰엄마, 이모처럼”(봉준호 감독의 표현) 챙기고, 그들과 깊고 폭넓게 의사소통을 해 배우들이 가족으로서의 앙상블을 발휘하는 데 중요한 기여를 했다고.
=배우들이 모두 봉준호 감독님의 작품에 참여한다는 사실을 몹시 기쁘고 행복하게 여기고 있었다. 그리고 송강호 선배가 배우들 모두에게 큰오빠, 형님, 아버지, 남편처럼 촬영 전부터 따뜻하게 품어줘서 배우들 사이에 친근감이 쌓이는 속도가 엄청났다. 츤데레에 센스쟁이 이선균 배우, 내공과 분별력에 아름다움까지 갖춘 조여정 배우, 선하고 엉뚱하고 귀여운 최우식 배우, 씩씩하고 시원시원하고 야무진 박소담 배우, 존재 자체가 귀엽고 사랑스러운 데다가 속도 무척 깊은 이정은 배우, 친근하고 솔직하고 감성 풍부한 장혜진 배우, 선하고 묵묵하면서도 기세 있는 박명훈 배우. 그런 그들이 서로를 굉장히 소중히 여기며 챙기는 분위기였다. 현장에서 “우리 꼭 큰집(기택네), 작은집(박 사장네), 고모네(문광네)가 명절에 모인 것 같아”라는 말을 주고받으며 웃곤 했을 정도다. 내가 한 일은 그 분위기 속에 자연스럽게 한 멤버로 스며들려고 노력한 것, 관계 속에서 나누게 되는 이야기들에 집중하고 불편이나 애로사항, 바람 등을 기억했다가 알게 또는 모르게 반영했던 것 정도다.
-<기생충>은 보도자료에 스포일러 유출을 당부하는 ‘감독의 말’을 넣는 등 마케팅 방식에 각별히 신경을 쓴 작품이다. LJ필름 마케터 출신으로서 영화 마케팅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궁금하다.
=10년 정도 마케팅을 하다가 현업에서 손을 놓았던 때쯤부터 투자사가 마케팅의 키를 쥐는 시스템이 정착됐다. 만드는 건 제작사, 파는 건 투자·배급사라는 식의 역할 구분이 암묵적으로 생긴 뒤라 홍보 마케팅 회의에 참여할 때마다 제작자는 마케팅 논의의 중요한 한축이라기보다 참관인 정도로 여겨진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대단히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이슈를 놓고 어쩔 수 없이 대립각을 심하게 세우기도 하고, 내가 결사 반대를 외친 포스터가 채택되는 일을 눈뜨고 지켜보며 허탈감과 무력감을 느낀 적도 있다. 그런데 <기생충>은 CJ마케팅팀, 홍보사 엔드크레딧과 시작 단계에서부터 모든 과정을 함께 고민하며 풀어나갔는데 그게 너무 속시원하고 고마웠다. 화제가 된 그 과감하고 파격적인 포스터는 배우들의 얼굴 사이즈도 작은 데다가 눈까지 가린 버전이라 메인으로 확정하는 게 쉽지만은 않은 판단이었다. 좋은 팀워크가 아니었다면 만들어지지도, 최종안으로 결정되기도 힘들었을 거다. 또 마케터 시절 함께 작업했으나 한동안 포스터 디자인을 맡지 않고 있던 김상만 감독님을 섭외할지 망설이고 있을 때 CJ의 강은경 부장이 등을 떠밀어줬고, 한 장르로 규정하기 불가능한 이 작품을 어떻게 규정하면 좋을지 상당히 긴 시간 동안 고민했었는데, 엔드크레딧의 박혜경 대표가 ‘가족 희비극이 답인 것 같다’고 말씀하셔서 깜짝 놀란 적이 있다. 나 역시 다이어리에 ‘가족+희비극?’이라는 단어를 적어놓았기 때문이다. 스포일러와 관련된 모색이며, 보도자료 작성이며, 노출의 톤 앤드 매너 등등 마케팅의 결과물에 있어 싫은데, 아닌데 하며 내보낸 게 전혀 없어 너무 좋은 작업이었다.
-<기생충>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 있다면.
=직관적으로 좋아하는 장면이 있다. 문광, 근세 커플이 박 사장 저택에서 칸초네에 맞춰 춤을 추는 장면. 가슴이 아프면서도 볼 때마다 좋다. <기생충>이 엄청난 속도와 에너지로 달려가는 영화잖나. 서정성을 신경 쓸 여력이 없을 것 같은데 감독님은 그런 정서적 측면까지도 놓치지 않는구나, 하고 생각하게 하는 장면이다.
-영화기자, 마케터, 제작자를 두루 경험한 흔치 않은 이력의 소유자인데, 이런 경험이 제작을 할 때 어떤 영향을 미치나.
=원하건, 원치 않건 영화인으로서 나의 원형은 <키노>라는 생각을 한다. <키노>적인 세계관과 사고방식으로 영화를 대하기 시작한 거다. 그게 마케팅을 할 때에는 방해가 됐다. 셀링 포인트만 찾으면 되는데 왜 자꾸 의미를 찾고 있냐고. (웃음) 보도자료를 쓰면 경쾌해야 하는데 자꾸 진지해지고. 그래서 한동안 아트영화는 아예 보지도 않고 흥행작만 보며 지낼 때도 있었다. 다만 감독님들과 커뮤니케이션할 때에는 <키노> 출신이라는 점이 좋은 것 같다. 연출자를 비즈니스적으로만 보는 게 아니라 예술가로, 작가로 대하는 제작자가 많지는 않나보다. 봉준호 감독님도 <기생충> 편집본을 처음으로 보여주며 이렇게 얘기하시더라. “제작자로 말고 전직 <키노> 기자로 영화를 본 소감을 얘기해 달라”고. 같은 시선과 문화를 감독들과 공유한다는 건 제작자로서 이례적인 경우가 아닐까 싶다.
-<키노> 기자로 활동하던 중 정지우 영화감독과 결혼했다.
=당시에 내가 좀 드셌다. 서태지 단독 인터뷰를 성사시키는 등 섭외의 왕이었는데, 그러다보니 충무로에는 순한 정지우를 곽신애가 찍어서 결혼까지 했다는 식으로 소문이 났는데 너무 억울하다. (웃음) 제3회 서울단편영화제 취재를 갔다가 임필성 감독의 소개로 영화제에 초청된 단편영화 감독들과 술자리를 함께하게 됐다. 정지우 감독도 그들 중 하나였다. 내 명함을 보고 따로 전화가 와서 만났는데 특별한 용건은 없고, 보고 싶어서 만나자고 했다고 하더라. 그날부터 1일은 아니고, 친구로 지내다가 서로 말도 잘 통하고 생각도 비슷해 자연스럽게 결혼하게 됐다. 정지우 감독과 연애하는 동안 오빠(곽경택 감독)가 단편영화를 찍기 시작하면서, 영화기자로서의 순수성을 더이상 지킬 수 없을 것 같아 결혼과 동시에 <키노>를 퇴사했다.
-이후 청년필름, LJ필름 등에서 기획마케팅을 담당하고 바른손 영화사업부에서 제작 업무를 시작했다. <기생충> 이전 제작을 맡았던 <가려진 시간>과 <희생부활자>의 흥행 성적이 좋지 않아 마음고생을 했을 법하다.
=40대 후반에 예기치 못한 계기로 제작 업무를 맡게 되었을 때 막막하고 두려웠다. <가려진 시간>이 메인 제작자로 나선 첫 영화였는데 자세히 밝힐 수는 없지만 제작비와 관련된 문제 때문에 크게 마음고생을 해야 했다. 그런 과정을 겪고 스코어도 생각보다 낮게 나와 죄인이 된 기분이었는데, 회장님이 “영화가 좋잖니. 우리 좋은 영화 계속 만들자”고 답을 주셔서 <기생충>을 시작할 때 더 분발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기생충> 이후 준비 중인 작품은.
=<가려진 시간> 이후 엄태화 감독의 차기작을 준비중이며, 단편영화 <시시콜콜한 이야기>로 주목받은 조용익 감독의 영화를 준비 중이다. 봉준호 감독의 차기작도 함께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각자의 고유한 색깔을 가진 감독들에게 자꾸 눈길이 간다. 때로는 너무 상업적이지 않은 선택을 하는 건 아닌가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내가 <극한직업> 같은 영화를 잘 만들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와 결이 맞는 감독을, 최선을 다해 서포트하는 게 제작자로서 나의 역할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