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사자> 안성기 - 내공을 쌓는 방법
2019-07-23
글 : 이화정
사진 : 최성열

바티칸의 ‘Arma Lucis’(빛의 무기) 조직에서 악을 좇는 구마사제 훈련을 받고 돌아온 안 신부. 악마한테 제물을 바치는 ‘검은 주교’를 처단하기 위해서라면 죽음도 불사하는 안 신부는, 믿음을 잃은 용후(박서준)를 격려해 함께 악을 물리치는 강한 캐릭터다. 배우 안성기가 가진 노련함, 강인함 그리고 그 속의 부드러움이 판타지 장르 속 안 신부 캐릭터에 설득력을 더한다. 데뷔 62년차, 새로운 관객과의 만남을 적극적으로 만들어가는 배우, <사자>는 그의 이유 있는 도전이다.

-사제복을 입고 출연하는 게 이번이 두 번째다. <퇴마록>(1998)의 퇴마사 ‘박 신부’가 떠오르는데.

=정작 나는 전혀 떠오르지가 않았다. (웃음) <사자>의 안 신부는 바티칸에서 온 사제에, 악령을 퇴치할 때 라틴어를 쓰는 등 설정이 그때와는 사뭇 다르다. 또 박서준씨랑 같이 사건을 풀어나가는 것이 일종의 버디무비처럼 다가왔다.

-얘기한 라틴어 대사는 이번 영화의 큰 숙제였겠다.

=하도 외웠더니 아직도 가만히 있으면, 특히 목욕탕에 들어가 있으면 처음부터 끝까지 한번 자동으로 읊게 된다. 물속에 앉아서 워낙 중얼중얼 외워댄 통에 그 장소만 가면 바로 대사가 나온다. <검은 사제들>의 강동원씨는 어땠을까. (웃음)

-구마사제 캐릭터로는 배우 강동원이 라이벌이 되는 건가. (웃음)

=못 봐서 모르겠다. 봐야 하는데 난 무서운 영화는 못 본다. 다행히 내가 연기하니까 하는 거지. (웃음)

-안 신부는 바티칸에서 전문적으로 구마 훈련을 받은, 악의 세력을 좇는 흥미로운 캐릭터다.

=선수지. (웃음) 이번 영화 하면서 캐릭터도 마음에 들었지만 나의 가장 큰 바람은 많은 관객을 만나는 거다. 4년 동안 일년에 한편씩 작품을 했는데, 관객과의 만남에서는 성적이 저조한 편이었다. ‘왜 일 안 하냐’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그래서 이제 젊은 관객, 새로운 세대에 내가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좀더 확실하게 각인시켜주고 싶다. ‘저 양반이 배우로 잘하고 있구나’ 하고 말이다.

-1957년 <황혼열차>로 데뷔, 62년차 경력에도 아직 ‘전설’이 아닌 ‘현재형’ 배우로서의 노력에 매번 놀란다.

=그럼. 배우에게는 그건 언제나 소망이다. 결국 작품에 완성도가 있으면 관객은 온다고 본다. 내가 거쳐온 작품이 그런 면에서 뭔가 조금씩 모자랐구나, 하나하나 최선을 다해 노력했지만 거기에 플러스해서 무언가가 더 필요했구나 싶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게, 계속 나아가기 위한 선택을 해나가야 한다.

-올해로 한국영화 100주년을 맞았다. ‘한국영화 100년 기념사업’을 비롯해 어느 해보다 ‘국민배우 안성기’의 상징성이 요구된다.

=‘한국영화 100년 기념사업’ 홍보위원장이고, 트레일러도 찍었다. 하라고 하는 일은 뭐든 해야지. (웃음) 돌아보면 한국영화가 여러 어려움을 겪고 여기까지 왔는데, 그걸 가능하게 만든 사람들의 동력이 대단한 것 같다. 선배들이 쌓아온 노력이 단절되지 않게 열심히 해나가려 한다.

-얼마 전 <인정사정 볼 것 없다>(1999) 크랭크업 20주년을 기념하는 막걸리 파티를 가지기도 했다.

=배우는 장동건, 박중훈, 기주봉씨가 왔는데, 모여서 옛날 이야기도 하고 즐거웠다. 요즘은 현장보다 경조사 때 만나는 경우가 더 많은데, 이런 기념 자리를 틈틈이 만들어 서로 교류하면 좋을 것 같다. 그날 “우리 또 다른 영화도 같이 한편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이런 이야기도 하고 그랬다. (웃음)

-<인정사정 볼 것 없다>는 배우로서 기념할 만한 선택의 순간이었다. 그렇게 62년의 시간 속에서 추진력을 갖게 해주는 기록적인 작품들이 있다.

=연착륙을 아주 잘했다 싶다. 시간이 지나면서 매번 주연일 수 없고, 어느 순간이 되면 상황이 바뀌는 걸 받아들여야 한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무사>(2001) 같은 작품을 하면서, 나이가 들어가지만 노련함도 있다는 걸 보여주는 계기가 됐다.

-상업영화뿐만 아니라 저예산영화, 독립영화 등 작품 선택의 폭이 다양하다.

=누가 하자고 해서 하는 게 아니라 내가 보고 싶고 하고 싶은 건 한다. 단순하게 아버지, 할아버지 역할은 못한다. 힘이 있는, 그리고 의외성이 있는 역할을 하고 싶고, 그런 역할을 늘 기다리게 된다. <사자>도 그런 의미에서 욕심나는 작품이었고, 앞으로도 기존에 해온 역할과는 또 다른 역할을 기다리고 있다.

-배우에게 육체도 중요한 도구인데 늘 한결같이 연마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몸 자체의 에너지, 뭘 해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힘이 있어야 한다. 자신에게 힘이 있으면 상대방에게도 그 느낌이 온전히 전달될 수 있다. 스스로 무력하면 누가 인정해 주겠나. 그래서 배우에게 운동은 평생에 걸쳐 해야 할 중요한 습관이다. 그래야 현장의 노동량을 버틸 수 있다. 그게 내공을 쌓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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