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지구 최후의 밤> 배우 탕웨이 - 미스터리한 인물을 붙잡아가는 흥미로운 작업
2019-08-29
글 : 김성훈
사진 : 손홍주 (사진부장)

-비간 감독으로부터 출연 제안을 처음 받았을 때 시나리오의 어떤 점에 매료됐나.

=그가 나를 캐스팅하고 싶어 한다는 소식을 듣고 무척 설렜다.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 오랜만에 만나는 진솔한 사랑 이야기에 깊이 매료되었고, 영화로 만들어지면 어떨까 호기심이 생겼다. 출연 제안을 받자마자 전작 <카일리 블루스>(2015)도 챙겨보았는데 감독님 자신의 이야기라는 사실을 곧바로 알 수 있었다.

-당신이 맡은 완치원은 뤄홍우(황각)의 과거 기억 속 미스터리로 남은 여성인데, 완치원을 어떤 여성으로 이해했나.

=그녀는 평범함을 갈망하는 여인이다. 그리고 감독님 내면세계의 영혼이기도 하다.

-완치원이 어떤 여성인지, 과거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짐작할 수 있는 단서들이 몇 있는데.

=촬영 전 감독님은 영화에서 보여지지 않는 단서들을 비밀처럼 마음에 품고 있는 캐릭터로 연기할 것을 주문했다. 완치원은 운명에 끌려가는 여인이다. 고통에 떠밀려 살아가면서도 늘 자유롭다. 마치 그 모든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처럼.

-당신은 전반부의 완치원과 후반부의 카이전, 두 캐릭터를 연기한다. 이 영화에서 맡은 1인2역은 보통 영화의 그것과 어떻게 달랐나.

=천만에! 시나리오를 처음 받았을 때부터 촬영이 끝날 때까지 내가 연기한 캐릭터는 완치원 하나뿐이었다. 알고보니 후반부의 롱테이크 시퀀스는 완치원의 시선으로 전개되는 것이었다. 원래는 그녀가 뤄홍우를 이용해 줘홍위안으로부터 벗어난 이후의 하룻밤 여정을 그리는 거였다.

-현재의 영화처럼 1인2역으로 설정이 바뀐 건 언젠가.

=안개가 자욱했던 크랭크업 날, 감독님이 내게 아직 약간 부족한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그때 그는 이미 60분에 이르는 롱테이크 신과 카이전이라는 캐릭터 모두 구상해두고 있었다. 이후 뤄홍우의 시선으로, 완치원을 순진했던 시절의 그녀로 회상하는 설정으로 수정했다. 당시 그녀는 카이리에 가기도, 줘홍위안을 만나기도 전이었다. 당시 그녀에게는 카이전이라는 진짜 이름이 있었다. ‘카이리의 진주’라는 뜻인데 언젠가 카이전이 감독님의 어머니 성함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숱한 어려움을 겪으면서 돌아온 고향, 마을의 번화가를 가로질러 긴 터널을 지나 롱테이크 신을 찍은 옛 수은광산 유적지까지 오면서 산길에서 본 산기슭의 불빛, 그 풍경은 감독님이 담고 싶었던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우리의 눈앞에 대장정이 펼쳐져 있었다.

-완치원과 카이전, 두 캐릭터를 동시에 작업하는 건 각기 다른 영화를 찍는 느낌이었을 것 같다.

=솔직히 말하면 60분짜리 영화 두편을 작업하는 느낌이었다. 아무런 연관성이 없는 두 캐릭터를 연기해야 했다. 한때 감독님이 생각하는 완치원과 카이전, 둘의 차이점이 무엇일까 궁금해했다. 감독님의 설명에 따르면 둘의 가장 큰 차이는 불확실성인 것 같다. 2D로 찍은 전반부의 완치원은 확실한 인물이고, 3D로 묘사된 완치원 혹은 카이전은 늘 변화하는 인물로, 끊임없이 뭔가를 찾아 헤매는 캐릭터다. 굉장히 흥미로운 설정이다.

-완치원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그녀를 이해하기 위해 어떤 준비를 했나.

=촬영 전 감독님이 내게 소설 한권을 선물했고, 우리는 구이저우 방언으로 그 소설을 함께 읽었다. 그와는 친한 친구 같은 느낌이었다. 배우로서 느낀 카이리라는 지방은 마치 세속에서 동떨어진 환상의 마을 같았다. 산촌 사람들은 무척이나 순박했다. 원래 완치원과 카이전은 카이리에서 태어난 사람이 아니다. 단지 그곳에서 오랫동안 살았던 사람들이다. 그래서 캐릭터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그녀들이 어떤 날씨와 지리적 환경에서 살아왔는지를 조사했다. 밤에 그녀들은 어떤 모습일지, 말투, 걸음걸이, 먹거리 등을 이해하려고 했다. 특히 완치원의 일상은 감독님의 일상을 이해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감독님이 어린 시절 걷던 길을 걸어보고, 즐겨 먹던 음식을 먹어보고, 봐왔던 산을 보는 등 그가 만난 사람들, 겪은 일들을 함께 나누며 그곳의 온도와 향기에 젖어들었다. 카이리 특유의 방언도 배웠다.

<지구 최후의 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터널 안에서 트럭을 탄 뤄홍우와 걸어가면서 대화를 나누는 영화의 초반부 장면은 그녀의 미스터리한 면모와 삶을 추측할 수 있어 강렬하고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아주 오랜 준비 끝에 완성된 장면이다. 촬영 장소는 터널 두개가 연결된 곳으로, 비간 감독의 공간 설계가 아주 치밀했다. 두개의 터널은 두개의 시공간을 의미했다. 터널 입구에서 차가 고장나고 갑자기 큰비가 내리지 않나. 와이퍼가 움직이고 차창의 비를 닦아낼 때마다 관객은 한 시공간에서 또 다른 시공간으로 이동해간다. 흥미로운 설정 아닌가. 비간 감독은 아주 낭만적인 사람이다. 영화를 통해 동화 같은 꿈을 선물하려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꿈을 꿀 때 나도 모르게 이 세계에서 저 세계로 이동한다. 비간 감독의 영화 또한 그렇다. 그해 여름 카이리에서 우리는 그와 함께 꿈을 만들었다.

-영화의 후반부에서 맡은 카이전은 당구장에서 처음 등장하는 여성으로 붉은 점퍼를 입은 독립된 여성으로 보였다. 카이전을 준비하는 작업은 어땠나.

=카이전을 준비하는 작업은 60여분에 이르는 롱테이크 신을 준비하는 과정이었다. 마치 연극무대를 준비하는 것 같았다. 촬영감독과 반복적으로 호흡을 맞췄고, 불, 말, 사과 등 불확실한 영화적 장치 어느 하나도 착오가 생기지 않도록 주의해야 했다. 무엇보다 60분 동안 화장실에 가지 않는 훈련도 했다. 산 아래 위치한 화장실까지 가려면 왕복 20분이 걸리기 때문에 촬영이 한번 시작되면 절대 갈 수 없다. 이것 또한 한계에 대한 도전이었다. (웃음) 정말 힘든 싸움이었다. 한컷이 너무 길어 연기하면서도 연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을 정도였다. 이것은 십수년간 이어진 배우 생활 중에서 처음 겪는 신기한 경험이었다.

-한 시간가량 이어진 롱테이크 시퀀스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진행됐나.

=한 시간짜리 연극을 하는 느낌이었다. 늦은 밤, 촬영 장소인 수은탄광 유적이 위치한 깊은 산속은 무척 추웠다. 하지만 카메라에 불이 들어오는 순간 어떤 느낌도 사라졌다. 산 전체에 불이 밝혀지자 꿈속 같은 기분이 들었다. 촬영 장소를 제외한 사방이 고요한 채 새소리와 벌레 우는 소리만 간혹 들려왔다. 이 장면은 사흘 동안 리허설을 하고 이틀 동안 촬영이 진행됐다. 동이 틀까 두렵기도 하면서도 동이 트길 기대했다. 하룻밤동안 최대 3회를 찍을 수 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번 분량이 처음과 끝이 연결된 둥근 띠 같았다. 어느 한 부분이라도 잘못되면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는 작업이었다. 결국 우리는 5번의 촬영을 마쳤고 마지막 두번의 촬영분량은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한 결과물을 완성하는 데 성공했다. 그날 촬영을 마친 뒤 자리를 뜰 수 없었다. 혼자서 멍하니 방 안을 오랫동안 배회했던 기억이 난다.

-촬영 장소인 카이리는 어떤 공간이었나. 특별히 기억에 남는 곳이 있나.

=촬영 장소 중 한곳인 옛 수은광산 유적지의 건물 2층에서 양을 기르고 1층에서는 멧돼지를 기르고 있었다. 이런 곳에서 어떻게 촬영해야 할지 난감한 상태에서 수많은 밤 촬영을 진행했다. 당시 배우들은 나무 탁자에 둘러앉아 멧돼지들이 수도관을 ‘쿵쿵쿵’ 치는 소리를 들으며 야식을 먹었다. 옛 수은광산 유적지 안에는 연못이 있었다. 오래된 연못은 아주 깊었고 외부 시냇물로 연결되었다. 아름답기로 말하자면 카이리는 더할나위 없는 곳이었다. 벌레 소리, 새소리를 들으며 야생 귤이 물속에 반사된 모습을 보며 감독님이 만들어낸 또 하나의 꿈결같은 세상을 느꼈다. 그외에도 탁구장, 무너진 벽 위를 걸었던 것 등 공간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또 한 가지! 그 지역은 묘족 자치구역이다. 예전에 접해보지 못한 묘족의 풍습, 의상, 문화도 흥미로웠다.

-개인적인 질문을 하자면, 결혼 이후 육아가 연기하는 데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나.

=아이를 낳는 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특히 여자에게는 내면 깊은 곳에서 시작되는 큰 변화인 것 같다. 내 경우, 예전엔 사람들과 충돌이 많은 편이었는데 지금은 많이 좋아졌다. 인내심도 많아졌다. 웬만해서는 따지는 일도 많이 줄었다.

-육아하는 데 가장 어려운 점은 뭔가.

=아이와 함께하는 건 어렵지 않다. 아이는 나에게 늘 많은 것을 주는, 가장 좋은 친구다. 딸이 나를 엄마로 선택해 내게 와준 것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아주 재미있는 사실은,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김태용 감독)이 내가 임신하면서부터 출산하기까지 성격이 180도 변하는 걸 지켜봤다. 그의 가장 솔직한 면모가 비로소 드러나는 것 같다. 다른 집들도 다 이런가. (웃음)

-차기작은 무엇인가.

=차기작은 비샤오루 감독의 신작 <취초인>(吹哨人)이다. 호주에서 촬영했고 9월 12일 중국 개봉을 앞두고 있다.

-배우로서, 개인적으로서 앞으로 어떤 삶을 살고 싶나.

=현재 내가 가진 것들에 매우 만족한다. 80살이 되어서 인생을 되돌아봤을 때 후회 없는 삶이었다고 회상할 수 있다면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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