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토피아로부터]
계획가족의 비애
2019-09-25
글 : 심보선 (시인)
일러스트레이션 : 박지연 (일러스트레이션)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을 둘러싼 사회적 논란을 보면서 영화 <기생충> 생각이 났다. 특히 주인공 가족의 아버지 기택(송강호)이 했던 말 “아들아, 넌 계획이 있구나”가 자꾸 떠올랐다.

옛날엔 “가족계획”이란 말이 있었다. 1960년대 인구 증가를 억제하기 위해 정부가 펼친 캠페인이었다. “아들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라는 정부 표어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리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가족계획”이란 말은 있었지만 “계획가족”이란 말이 있었나 싶다. 가족계획이 자녀수의 조절을 통해 전체 사회의 비용을 절감하는 국가정책이라면 계획가족은 단기적 혹은 중장기적 계획을 수립함으로써 생계와 사회적 이동을 효율화하는 가족 내 정책이다. 기본적으로 자본주의사회의 가족은 계획가족을 지향한다. 다만 계획을 수립하고 실행하는 자원의 양과 질이 다를 뿐이다. 특히 세습자본에 대한 의존도가 낮아질수록, 금융자본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질수록, 전문가주의가 득세할수록, 부모가 고학력에 고임금일지라도 계획가족의 압박을 외면할 순 없다.

한국의 경우, 지구적 차원으로 계급구조를 확장시키면 아무리 엘리트라 해도 신흥 부르주아 내지 신흥 프티부르주아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엘리트 가족일수록 계획의 필요성은 더 가중될 수밖에 없다. 한편으로는 신분 하락을 방지해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신분 상승을 도모해야 하는 이중압박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이제 계획가족의 자녀들이 수행하는 활동은 기업활동과 유사해진다. 교육은 자녀라는 인적자본의 가치를 준비하고 개발하는 R&D가 되고, 수시에 필요한 사회봉사는 기업의 사회적 가치를 높이기 위한 사회 공헌 활동이 된다. 부모는 자녀의 미래를 준비하는 컨설턴트이자 매니저다. 여력이 충분한 엘리트 가족은 이 활동들을 아웃소싱하기도 한다. 어쩌면 현대가족의 대표 가훈은 이제 “계획적으로 살자”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조국 법무부 장관의 가족의 경우, 그 계획이 불법이냐 합법이냐가 현재 논란의 대상이다.

불법과 합법의 차이는 작기도 하고 크기도 하다. 예전에 기업변호사 직업을 가진 친구가 자신의 일에 대해 자조적으로 말한 적이 있었다. “변호사가 하는 일은 사업이 불법적이지 않도록 계획을 짜는 것이다.” 요컨대 합법화 또한 하나의 계획이며, 불법은 그 계획의 실패에 불과한 것이다.

물론 계획가족의 가장 큰 차이는 계획 자체의 규모와 성격에 달려 있다. 자원이 부족한 가족들은 성공을 포기하고 무난한 길을 선택하지만 “무난함의 과잉경쟁”을 피할 수 없다. 일부 가족은 대박을 위해 도박에 빠지지만 “높은 리스크”를 피할 수 없다. 이 모든 실패가 귀결하는 것은 결국 “무계획의 계획”이다.

<기생충>의 아버지 기택은 “무계획이 최고의 계획이다”라고 아들에게 말할 때, 팔로 눈을 가리고 말한다. 봉준호 감독은 이 제스처가 서글픔과 막막함을 표현한다고 했다. 서글픔과 막막함이야말로 조국 장관 임명을 둘러싼 진영간의 대립을 넘어선 가장 거대하고 깊은 감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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