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토영화제는 프로 영화인들이 유용한 관점을 얻을 수 있는 토의와 컨퍼런스를 다수 개최한다. 2019년에는 시장과 기술에 관한 정보를 공유하는 컨퍼런스, 세계 영화계의 최대 이슈인 소수민족(디아스포라) 재현, 다양성 캐스팅, 젠더 평등을 논하는 프로그램이 마련됐다. 그런데 이와 같은 이슈는 최신작을 큐레이팅하고 미학적 평가가 이뤄지는 영화제의 과제이기도 하다. 때마침 2019년 들어서는 베를린 등 주요 영화제의 디렉터와 프로그래머가 교체되기도 했다. 개막 이튿날인 9월 6일 열린 ‘영화제: 새로운 리더십, 새로운 지평’ 토크에는 토론토영화제 예술감독 겸 공동집행위원장 카메론 베일리, 칸국제영화제(이하 칸영화제) 감독주간 예술감독 파올로 모레티, 베를린국제영화제(이하 베를린영화제) 이그제큐티브 디렉터 마리엣 리젠벡, 선댄스영화제 프로그램 디렉터 킴 유타니가 참여해 국제영화제의 현재와 전망을 논의했다.
먼저 다양한 젠더, 지역, 인종을 포괄하는 프로그래밍에 관해 베를린영화제의 리젠벡은 “영화의 영웅과 스토리는 현실의 변화를 자연스럽게 반영한다”며 “베를린영화제는 1990년대 후반부터 다양성을 주요 이슈로 삼았고 각 섹션이 다른 인구집단의 요구에 독자적으로 부응하도록 노력해왔다. LGBTQ영화에 대해서도 베를린은 선구적으로 접근했다”고 말했다. 올해 베를린영화제 상영작 중 63%가 여성이 만든 작품이었다는 그의 말은 좌중의 환호를 끌어냈다(2019년 베를린 경쟁부문 16편 중 여성감독의 영화는 7편이었다. 칸의 경우 14%, 베니스는 5% 미만이다). 선댄스의 킴 유타니는 인선의 변화가 중요함을 강조했다. 프로그래머진을 다양한 문화를 배경으로 가진 인력으로 세대교체함으로써 선정작의 다양성을 유기적으로 보장한다는 입장이다. 가장 보수적인 칸영화제의 파올로 모레티도 작품 선정위원회의 성비가 반반에 도달했고 감독주간은 1970년대부터 영화제 내에서도 진보적인 입장을 취해온 부문이라고 강조했다. 올해 처음으로 공동집행위원장이 된 토론토영화제 카메론 베일리는 프로그래머로서 수년간 디지털 배급망에서도 볼 수 없는 아프리카영화를 소개해온 경험을 들려주었다.
<옥자>의 칸 상영을 둘러싼 논란으로 국내 관객에게도 잘 알려진 대로 영화제들이 입장을 선택해야 할 또 다른 이슈는 넷플릭스, 아마존 등 스트리밍 서비스의 힘이 커지면서 이들이 제작한 영화를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와 다수 인구가 스트리밍으로 영화를 보는 시대에 극장 중심 영화제의 의의를 어떻게 찾을 것인가이다. 우선 극장주들의 압력으로 넷플릭스 영화와 거리를 두기로 한 칸영화제의 모레티는 자신도 극장을 운영한다며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프랑스는 특수하다. 극장에서 볼 수 있는 영화의 다양성 면에서 최고다. 어쨌거나 스트리밍 영화사와 극장의 갈등이 감독에게 절대 불이익을 끼쳐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다.” 한편 대도시 영화제 베를린은 현실적이었다. “독일에서 20~35살 관객 비율은 현저히 하락했다. 그들을 극장으로 부르려면 다양한 이벤트가 기획돼야 한다. 영화제 상영관인 극장이 줄어드는 것도 인프라 위기다. 지금도 1800석 규모 극장 하나가 없어지려고 해서 고민이다.” 토론토영화제의 베일리는 아직도 3주간의 극장 개봉만 한 영화 프로모션은 아무 데도 없다며 궁극적으로 영화가 넷플릭스에 안착하더라도 발견은 영화제에서 이뤄질 것이라고 낙관했다.
이날 객석을 찾은 소규모 영화제 관계자들은 상대적으로 풍족한 리소스를 가진 A급 영화제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패널들에게 물었다. 토론토와 선댄스 영화제는 프로그래머들을 영화제뿐만 아니라 각국으로 보내 직접 월드시네마를 발굴하고 지원하려는 노력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특히 선댄스의 킴 유타니는 이같은 프로그래머들의 노력으로 한때 미국 영화제로 알려졌던 선댄스가 국제영화제로 도약할 수 있었고 ‘선댄스 홍콩’도 론칭할 수 있었다고 회고하면서 영화제는 궁극적으로 오늘날 예술영화란 무엇인가라는 논의로 돌아갈 것이라 추측했다. 한편 앞서 젊은 관객의 이탈을 염려한 베를린의 리젠벡 디렉터는 교육의 장소로서 영화제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제너레이션 부문에 거는 기대를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