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제71회 에미상 시상식에서 10개 부문 수상한 드라마 <체르노빌> - 진실을 보는 눈을 되찾는다는 것
2019-10-03
글 : 김성훈
얼른 정주행을! 놓치기 아까운 드라마 2편 <체르노빌>과 <킬링 이브>
Liam Daniel/HBO

지난 9월 22일 미국에서 열린 제71회 에미상 시상식에서 <체르노빌>(감독 요한 렌크, 작가 크레이그 메이진)은 리미티드 시리즈 19개 부문 후보로 올라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등 10개 부문의 상을 휩쓸었다. 미국 <HBO>와 영국 <SKY>가 공동제작한 이 드라마는 충성도 높은 시청자들을 거느린 프랜차이즈물이 아닌데도 지난 5~6월 방영 당시 온라인 스트리밍 플랫폼 시청률 52%를 기록했다. 이것은 <왕좌의 게임>이 가지고 있던 최고 기록인 46%를 훌쩍 넘긴 것으로, <HBO> 드라마 중에서 처음으로 50%를 넘겼다. <체르노빌>은 현재 온라인 스트리밍 플랫폼인 왓챠플레이에서 감상할 수 있다.

“거짓의 대가가 무엇일까?” 1화가 시작되자마자 등장하는 누군가의 묵직한 고백은 이 드라마가 이끄는 방향을 명확하게 가리킨다. “거짓을 진실로 착각하는 게 문제가 아니다. 정말로 위험한 건 거짓을 듣다보면 진실을 보는 눈을 완전히 잃는다는 거다. 이 이야기에서 중요한 건 누가 영웅인가가 아니다. 우리가 알고 싶은 건 원흉이 누구냐는 거다.” 1988년 4월 26일, 안경을 쓴 중년의 남자는 말을 멈추고 녹음기에서 테이프를 꺼내 챙긴 뒤, 집 밖으로 나가 주위를 조심스레 살핀다. 맞은편 길가에 주차된 차 안에서 누군가가 그를 감시한다. 남자는 건물을 돌아 녹음 테이프를 꺼내 건물 어딘가에 숨긴다. 집으로 들어와 고양이에게 밥을 주고 담배 하나를 피운 뒤 천장에 달아놓은 줄에 목을 매단다. 그가 자신이 한 말을 봉인하고 목숨까지 끊은 사연이 무엇일까. 많은 물음표를 남긴 그의 죽음에서 몇 가지를 짐작할 수 있다. 이 드라마는 영웅을 그려내는 이야기가 결코 아니며, 누군가가 어떤 사건과 관련된 진실을 감추었다는 사실이다.

Liam Daniel/HBO

<체르노빌>은 이 의미심장한 죽음이 있기 2년 전 같은 날인, 1986년 4월 26일 새벽 1시24분 발생한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폭발 사고를 재구성한 이야기다. 잘 알려진 대로 이 사고는 인류 최악의 인재다. 원자력발전소 폭발 사고는 너무나 많은 희생을 치렀고, 그만큼 재난이 남긴 교훈은 값비쌌다. 사고 이후 33여년이 지난 지금도 그곳은 사람도 동물도 살지 않고, 또 살 수 없는 유령도시다. 우크라이나 프리피야트, 류드밀라이그나텐코(제시 버클리)는 화장실을 나오다가 창 밖에서 무언가가 크게 폭발하는 광경을 목격한다. 폭발 소리 때문에 잠에서 깬 그의 남편이자 소방관인 바실리 이그나텐코(애덤 나가이티스)는 화재 현장으로 출동한다. 그 시각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는 아비규환이 따로 없다. 비상 사이렌 소리가 시끄럽게 우는 건물은 푹발로 생긴 충격 때문에 위태롭고, 몇몇 발전소 연구원들은 피를 토한다. 발전소 부소장인 아나톨리 댜틀로프(폴 리터)는 넋이 나간 채로 모니터를 쳐다보고, 저성능 방사선 량계가 3.6뢴트겐을 가리킨 것을 두고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거라고 자신한다. 오히려 지역위원회 사람들을 지하 벙커에 불러모아 사고와 관련된 정보가 도시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통제하려고 한다. 하지만 1000뢴트겐이 최대 수치인 고성능 방사선량계로 측정 결과, 전원을 켜자마자 방사선량계가 타버렸고, 폭발 잔해 중에 흑연이 발견돼 노심이 폭발한 것으로 보인다는 보고가 들어온다. 한편 장관회의 부의장이자 연료동력부 장관인 보리스 셰르비나(스텔란 스카스가드)와 모스크바 쿠르차토프 원자력연구소 수석부위원장인 발레리 레가소프(재러드 해리스)는 사고를 수습하기 위해 현장으로 향한다.

어딘가 이상한 재난 서사다. <체르노빌>은 재난의 스펙터클을 전시하고, 사람들이 재난을 겪으며 고통스러워하다가 위기를 가까스로 벗어나는 데서 장르적 쾌감이 발생하는 재난 블록버스터가 결코 아니다. 재난 이후 트라우마를 겪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그려내는 드라마도 아니다(2015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작가가 쓴 <체르노빌의 목소리>는 10여년 동안 100여명의 피해자들을 인터뷰해 그들이 겪은 재난과 그로 인한 트라우마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기록이다. 이 드라마 속 인물인 류드밀라 이그나텐코와 바실리 이그나텐코 부부의 애틋한 러브 스토리도 이 책에 소개되어 있다.-편집자). 오히려 이 드라마는 사고 전후를 오가며 사고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여러 사람들의 긴박한 상황을 재구성하며 전개된다.

많은 인물이 등장하지만 그중에서 감정을 이입할 만한 인물은 손에 꼽을 만하다. 보리스 셰르비나 장관과 그가 부른 RBMK 원자력 전문가 발레리 레가소프 원자력연구소 소장, 두 사람은 사고를 수습하는 중책을 맡아 서사를 주도적으로 이끌어간다. 보리스 셰르비나는 정의감이 투철한 관료는 아니지만 감정을 이입할 만한 주인공이라기보다는 재난을 맞닥뜨렸을 때 무기력한 관료의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인물에 더 가깝다. 체르노빌로부터 사고가 무사히 수습됐다는 보고를 받고, 큰 의심 없이 그것을 고르바초프 서기장이 참석한 당 중앙위원회에 전달하려다가 발레리 레가소프에게 제지당한다. 졸지에 사고관리위원장을 맡게 된 그가 체르노빌에서 진실을 목격하면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체념밖에 없고, 체념은 초점 잃은 시선으로 대신한다.

Liam Daniel/HBO

그런 보리스 셰르비나 장관을 어떻게든 구슬려 사고를 수습하려는 인물이 발레리 레가소프다. 앞에서 언급된, 이 드라마를 여는 묵직한 목소리의 주인공이다. 정무적 판단보다는 사실을 앞세우는 그의 말과 행동은 때로는 모스크바를 거슬리게 해 보리스뿐만 아니라 자신을 위험에 처하게 한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아 아슬아슬한 그의 줄타기는 정의감이 투철한 인물로 착각할 수 있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과) 동료의 안위를 생각해 진실을 드러내길 주저하는 모습을 떠올려보면 연구 밖에 모르는 순수한 과학자에 더 가깝다.

두 남자가 재난을 ‘더 큰’ 재난(추가 폭발과 방사능의 지하수 침투)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이, 벨라루스 원자력연구소의 일벌레 핵물리학자인 올라나 호뮤크는 재난이 벌어지게 된 진실을 찾아나선다. 사고의 진상을 파악해달라는 발레리의 요청을 받고 민스크에서 체르노빌로 온 그녀는 아나톨리 댜틀로프,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장인 빅토리 브류하노프(콘 오닐),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수석 기술자인 니콜라이 포민(에이드리언 롤린스) 등 체르노빌 사태의 주범을 포함해 발전소 사람들을 조사한다. 진실을 향해 한 걸음씩 다가가는 그녀는 모스크바로선 여간 성가신 인물이 아니다. 피해를 막는 일보다 국가의 체면이 구겨지는 게 더 우려스러운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이었다. 재난 드라마로서 <체르노빌>이 절망적인 건, 재난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폭발 사고로 유출된 방사능은 공기에 섞이고 바람에 실려 멀리 날아간다. 얼마나 많은 양의 방사능이 언제, 어떤 경로로 사람들이나 동물들의 몸에 침투되는지 알 길이 없다. 온몸에 물집이 잡히고, 육체가 타들어가는 고통을 겪는 순간 공포가 생겨난다. 그것은 쓰나미, 해일, 화재, 유독성 가스, 산사태 등 공포의 실체를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다른 재난과의 결정적인 차이다. 원자력발전소 폭발 소리에 잠에서 깬 체르노빌 주민들이 다리 위에 모여 밤새 꺼지지 않는 화재를 지켜보는 1화의 중반부 시퀀스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머리 위로 흩날리는 재(흑연)를 바라보며 감상에 젖는다. 마치 눈인 양 아름답게 연출된 이 풍경은 아이러니하게도 매우 처참하다.

Liam Daniel/HBO

보이지 않는 공포는 소리나 사물의 형태로 엄습한다. 금속을 긁는 듯한 소리가 방사선량계에서 나올 때마다 방사능의 존재를 환기시킨다. 로봇이 투입되자마자 작동이 멈추는 원자로 근처에서 ‘바이오 로봇’으로 던져진 군인들이 삽 하나로 무거운 흑연 잔재들을 들어올려 힘들게 원자로 안으로 던지는 시퀀스는 보는 내내 마음이 조마조마하고 진이 빠진다. 방사능 때문에 선풍기를 틀어주지 않자 광부들이 속옷마저도 벗어던진 채 땅을 파는 장면은 감탄사가 나오거나 존경심이 들기 전에 아찔아찔하다. 이러한 장면들은 마치 그곳 한복판에 내던져져 체험하는 느낌이 든다. 그것은 이 드라마가, 환영성이 우선하는 다른 재난영화의 고통을 전달하는 방식과 다른 지점이다.

역사는 언제나 되풀이된다. 나쁜 역사일수록 학습효과는 더욱 크다. 4부 오프닝 시퀀스에서 총을 든 젊은 군인이 82살 할머니에게 “이곳은 위험하니 집을 떠나야 한다”고 명령하자 할머니는 듣는 둥 마는 둥 소젖을 짠다. 군인이 “왜 버티는 겁니까”라고 거듭 질문하자 그녀는 “평생 이곳에서 살았어. 총 든 군인이 들이닥친 게 자네가 처음이 아니야.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군이 쳐들어와도 이곳을 지켰고, 스탈린 대기근 때 가족이 목숨을 잃어도 이곳을 지켰어. 그 일을 다 겪었는데 이제 와서 떠나라고? 눈에 보이지도 않는 것 때문에?”라고 단호하게 대답한다. 소련 정부는 체면을 지키기 위해 진실을 은폐하려 하고, 욕심 때문에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은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하며, 그러면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진실로부터 점점 멀어져간다. 그것은 정확히 25년이 지난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원전사고에서 고스란히 반복됐다. 체르노빌과 함께 인류 역사상 최악의 재난인데도 책임을 진 사람은 한명도 없었고, 오히려 모두 순탄하게 출세했고, 높은 퇴직금을 손에 넣었으며, 순조롭게 낙하산 인사의 주인공이 되었다(3·11 후쿠시마원전사고를 다룬 논픽션 <멜트다운> 중에서). 샤도프 석탄부 장관이 광부 45명을 체르노빌로 데려가기 위해 툴라 광산을 찾는 3부 후반부 시퀀스에서, 석탄부 장관이 “당신들이 없으면 키예프에서 흑해까지 물이 방사능으로 오염돼. 당은 동무들이 그걸 막아주었으면 좋겠다”고 부탁하자 광부들은 차례로 석탄 묻은 손을 석탄부 장관의 정장에 탁탁 묻히며 트럭에 몸을 싣는다. 그때 한 광부가 석탄 범벅이 된 장관에게 “이제야 석탄 장관 같수다”라고 말한다. 또, 원자로 수조에서 물을 빼야 하는 상황에서 고르바초프 서기장은 일주일 내에 죽을 인원 세명을 뽑는 허가를 내리고, 보리스 셰르비나 장관은 발전소 직원들을 상대로 “수문 밸브를 열 사람은 자네들 밖에 없다. 자네들이 하지 않으면 수백만명이 죽어”라고 말하며 ‘자살 특공대’ 세명을 모집한다. 이처럼 인민이 국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장면은 숭고하거나 희망이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무기력함과 분노만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그건 어쩌면 국가가 보여준 기만 때문인지도 모른다. 뱃속의 아이가 방사능을 전부 받아들여 엄마 대신 죽는 국가에는 밝은 미래가 없다. <체르노빌>이 절망으로 가득한 비극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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