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방울방울>은 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싱가포르 5개국의 영화인이 모여 기획한 옴니버스영화다. 성차별적인 사회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여성의 이야기가 각기 다른 나라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인도네시아의 레아는 종교간 결혼이 금지된 상황에 갈등하고, 말레이시아의 시티는 임신에 대한 압박을 받는다. 필리핀의 청소년 수아는 성매매 여성이며, 싱가포르의 오스만투스는 가장 친한 남자친구가 몰래카메라를 찍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상이한 환경에서 성장한 창작자들의 눈으로 서술한 여성의 삶이 겹칠 때 가능한 다각성이 기대되는 프로젝트다. 각 에피소드가 결혼에서 출산, 청소년에서 대학생으로 이어지는 삶의 단계를 상징하며 하나의 맥락으로 완성되기도 한다. 한편 부산을 배경으로 단편 <하나>를 만들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시체스국제판타스틱영화제 등에 초청됐던 나카니시 마이 감독은 이를 장편으로 확장한 프로젝트 역시 부산에서 촬영하기를 원한다. 그는 “한국은 다른 아시아 국가에 비해 베이비시터를 많이 쓴다. 부산시의 값비싼 고층아파트와 산 아래 조용한 주택가의 풍경이 현대사회의 강렬한 시각적 메타포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 부산을 선택한 이유라고 한다. 단편 작업 당시 한국 스탭들과 작업한 경험이 인상적이었기 때문에 장편 프로젝트 역시 한국인 제작자와 함께하길 원한다.
국경을 넘어 아시아 영화인의 협력으로 탄생한 이들 프로젝트는 10월 5일부터 8일까지 부산 벡스코 제2전시장에서 열린 ‘링크오브시네아시아’(LINK OF CINE-ASIA)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6일 진행된 ‘AFiS 프로젝트 피칭’에서 부산아시아영화학교의 아시아 프로듀서들이 기획한 19개 프로젝트에 대해 각각 10여분씩 산업 관계자들에게 작품 소개 시간을 가졌고, 이중에는 <인생은 방울방울> <하나>도 포함돼 있었다. 조르주 골덴스턴 칸국제영화제 시네파운데이션 총괄 책임자를 비롯한 전문가 패널 3인에게 현장에서 직접 코멘트를 받기도 했다. 올해로 4회째를 맞은 ‘링크오브시네아시아’는 이처럼 아시아 영화인들의 단순한 교류를 넘어서서, 이들이 영화를 만들 때 필요한 다양한 정보를 취득하고 투자·제작에 참여해줄 파트너를 찾는 네트워크를 지향한다. ‘링크오브시네아시아’에는 아예 시나리오 초고가 완성된 작품이나 부산 지역 기반의 프로젝트를 인더스트리에 소개하는 자리도 준비했다. 6일 오전 ‘FLY 프로젝트 피칭: 피치 하이, 플라이 하이’에서는 FLY(ASEAN-ROK Film Leaders Incubator, 한-아세안 차세대 영화인재 육성사업) 필름 랩에서 개발된 동남아시아 5개 프로젝트가 피칭을 진행했다. 필리핀의 초현실 호러 <낙원의 악마들>, 싱가포르의 코미디 <바스켓 케이스>, 말레이시아의 판타지 드라마 <긴 제방>, 타이 드라마 <솔리드 바이더 시쇼어>, 베트남 드라마 <닥락에서 온 소녀> 등 국가별·장르별로 고른 작품이 선정됐다. FLY는 올해 처음으로 시나리오 개발 랩을 추가해 필리핀 세부에서 1차 랩을 진행했고, 9월 28일부터 10월 9일까지 부산에서 진행된 2차 랩 프로그램 중 하나로 프로젝트 피칭이 진행됐다. 6일 ‘부산 프로젝트피칭: 오버더피칭’은 ‘2019 영상산업센터 지역 스토리콘텐츠 판로개척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선정된 부산 지역 제작사 기반의 우수 프로젝트 5편을 공개한 시간이었다. 이중 현장 관객 및 심사위원 투표로 선정된 우수작 3편, <심야카페>(감독 구자준), <유령사진전>(감독 오인천), <영화의 거리>(감독 김민근)는 영상산업센터가 2020년 홍콩필름마트 참가를 지원할 예정이다.
아시아 네트워크를 확장하다
올해 처음으로 아시아영상위원회네트워크(AFCNet)가 공동관을 차려 행사를 진행한 것 또한 국가간 교류를 활발하게 도모하기 위함이었다. 배주형 부산영상위원회 국제사업팀장은 “부산국제필름커미션·영화산업박람회(BIFFCOM)로 아시안필름마켓(AFM)과 함께 벡스코에서 행사를 진행할 때는 그냥 필름 커미션과 비즈니스 미팅만 진행했다. 필름 커미션의 경우 관광청과 연계해 해외로케이션 등의 홍보도 해왔다. 그런데 AFM의 배지 정책상 배지가 없는 일반 시민은 행사장에 들어올 수 없다”며 예전 포맷의 한계를 언급했다. 최신 카메라를 소개한 ‘시네마로보틱스 론칭 프로모션’이나 요르단왕립필름커미션이 로케이션 정보를 제공하는 ‘필름더월드 인 요르단리셉션’ 등 일반 시민에게도 유용할 정보를 선보이는 공간으로 AFCNet 공동관을 마련한 것은 아시아 네트워크의 범주를 확장한 것이다.
가장 뜨거운 영화계 이슈를 선정해 업계의 이야기를 듣는 세미나는 올해 두 가지 주제로 진행됐다. 패널의 국적은 물론 그들의 이력에서도 아시아 영화인들의 새로운 네트워크를 염두에 둔 구성이었다. 한국시나리오작가조합이 공동주관한 ‘작가간 협업, 새로운 성장의 해법을 찾아서’에서는 한국의 황조윤 작가, 타이의 오누사 돈사와이·뿐 홈츤 작가, 대만의 구어광왕 작가가 패널로 참석해 국가별 시나리오 개발 및 작가 처우, 국제공동제작 등 해외 교류 사례를 공유했다. 7일 ‘5G 그리고 영화, 새로운 영화제작의 패러다임’은 강상우 넷플릭스 코리아 프로덕션 테크놀로지 스페셜리스트, 하정수 넷플릭스 코리아 포스트 프로덕션 매니저, 영국의 로봇특수촬영장비 제조사 MRMC의 아사프 라우너 CEO가 패널로 나섰다. 이들은 5G 서비스와 연계된 고해상도 디지털 프로덕션, 시네마 로보틱스 특수촬영, 넷플릭스의 콘텐츠 관리 시스템 전반에 대해 폭넓은 이야기를 나눴다. 세미나에서 오간 좀더 자세한 이야기는 이어지는 기사에서 확인할 수 있다.
‘AFiS 프로젝트 피칭’에서 <우리들의 아들> 선보인 루키 헤르와나요기 감독 - 막연한 아이디어가 확실한 프로젝트로
루키 헤르와나요기 감독은 2014년 FLY를 만났다. 이곳에서 아시아 각국의 영화인들과 교류를 나누고 부산영상위원회와 지속적으로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근황을 공유한 그는 AFiS의 설립 소식을 자연스레 접했다. 그는 “전에도 영화 제작을 했었지만, FLY와 AFiS를 거치며 영화 제작 전반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수 있었다”고 전했다. AFiS에서 개발한 <우리들의 아들>은 루키 헤르와나요기 감독이 자신의 첫 장편영화가 되기를 희망하는 프로젝트다. 두 부부가 함께 한명의 아들을 키우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는다. 보수적인 인도네시아에서 쉽게 용인되지 않는 상황에 맞닥뜨린 두 여성의 딜레마를 다룰 예정이다. 루키 헤르와나요기 감독은 이번 ‘링크오브시네아시아’에서 피칭을 한 후 관계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다. 신진 영화인이 AFiS에서 무엇을 얻고 성장할 수 있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지난 피칭에 대한 소감은.
=내가 어느 정도 한계를 갖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피칭을 준비하면서 스스로의 벽을 많이 넘어설 수 있었다. 피칭을 마친 후 스스로 이 작품을 만들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얻게 됐다. 그에 앞서 AFiS에 있는 동안 다른 아시아 영화인들과 네트워크를 맺으며 그들에게 배운 것도 많다.
-AFiS에서 멘토링을 받는 동안 어떤 코멘트를 받았는지.
=스토리 자체에 대한 것이 많았다. 이곳에 오기 전에는 장편 아이디어만 막연하게 있을 뿐 제대로 잡힌게 없었다면, 여기에서 확실히 프로젝트를 개발할 수 있었다. 나는 <우리들의 아들>이 인도네시아에 한정된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교수나 멘토들이 “이 이야기는 아주 보편적이기 때문에 다른 곳에도 통용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오히려 인도네시아 지역의 특성을 살려 이 영화를 찍으면 세계에서 더 먹힐 수 있다고 언급했다.
-다른 아시아 영화인들과 맺은 네트워크로 어떤 도움을 받았나.
=학교에서 만난 말레이시아, 필리핀, 싱가포르, 한국 친구들과 함께 아시아 4개국을 관통하는 옴니버스 영화 <인생은 방울방울>을 만들기로 했다. <우리들의 아들>은 AFiS에서 만난 필리핀 친구가 공동 프로듀서로 참여한다. 이 친구 덕분에 내가 필리핀에서 받을 수 있는 펀딩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피칭 이후 비즈니스 미팅을 하며 얻은 성과가 있었나.
=내 프로젝트에 관심을 갖는 몇몇 회사를 만났는데, 그중에는 내가 큰 관심을 둔 곳도 있었다. 미팅을 마친 후에도 계속 서로의 상황을 팔로업하기로 얘기했다. 일단 이런 미팅 기회를 잡을 수 있었던 것 자체가 큰 도움이 됐다.
-앞으로의 포부는.
=일단 첫 장편영화를 완성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우리들의 아들>로 부산국제영화제에 다시 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