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꽃 필 무렵>은 오해를 의도하는 드라마다. 충청도의 가상마을 옹산으로 막 이사 온 동백(공효진)을 보고 동네 남자들은 혹하고 여자들은 경계한다. 뜨내기가 차린 술집 ‘까멜리아’가 옹산 남자들의 아지트가 되면서 ‘줌마피아’를 중심으로 한 여성 무리는 노골적으로 동백을 따돌린다. 젊고 예쁜 여자를 향한 그들의 시기는 전형적인 ‘여자의 적은 여자’ 구도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지만, 손님들이 비혼모 동백에게 성희롱을 일삼고 동백의 8살 아들 필구(김강훈)가 그들을 경계하는 모습은 앞선 장면의 의미를 바꾼다. 외모를 칭찬하며 허락 없이 반말하는 아저씨들을 “엄마를 싫어하는 동네 사람”의 범주에 넣는 <동백꽃 필 무렵>은 초입부터 여성 혐오의 원래 의미를 정확히 전달한다. 전통적으로 가게 상속권을 딸 혹은 며느리에게 물려주기 때문에 남자들은 기죽어 사는 것처럼 묘사되는 옹산의 게장골목에서도 동백은 하대의 대상이며 여성이 여성을 미워하는 일은 숨 쉬듯 벌어진다. 요컨대 여성에게 경제 주도권이 넘어간 가상공간에서도 가부장제가 작동하는 한 여성 혐오는 더 극렬한 형태로 잔재할 수 있다. 규태(오정세)의 맞춤법을 지적하며 기를 죽이는 변호사 자영(염혜란)과 시어머니 은실(전국향)의 관계는 전형적인 고부 갈등처럼 등장하지만 똑같이 바람을 피운 규태의 아빠(‘전생의 업보’)가 언급되면서 그들은 공통분모를 가진 여성들로 재조명된다. 12억원의 연봉을 받는 야구선수 종렬(김지석)의 부인 제시카(지이수)는 타인에게서 받는 관심에 집착하며 극단적인 다이어트를 하는 SNS 스타다. <동백꽃 필 무렵>은 ‘김치녀’나 ‘된장녀’로 후려쳐졌던 인간상을 일부러 전형적으로 등장시킨 후 SNS가 여성의 외모와 자아실현에 가하는 구속을 나중에 묘사한다.
한편에는 악녀를 규정하거나 여자가 여자를 공격하는 캣파이트를 즐기는 시청자가 남아 있다(이른바 ‘막장 드라마’의 꺾일 줄 모르는 시청률을 보라. 씁쓸하게도 혐오는 여전히 가장 잘 먹히는 엔터테인먼트 중 하나다). 반대편에서는 남자가 여자의 손목을 거칠게 잡는 설정이 로맨틱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들이 있다. <동백꽃 필 무렵>의 ‘오해를 받다가 이를 뒤집는’ 서사구조는 양측을 모두 포섭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같은 플롯이 단순한 ‘여성의 적은 여성’이나 ‘여성 연대’ 구도보다 훨씬 입체적이고 보수적인 현실에 가닿는 설명을 제공한다는 점이다. 동백이 자신의 남편과 바람을 피웠을지 모른다고 의심하는 자영은 오해를 푼 후 무료 변호를 자처하고 술 한잔하고 싶다며 술집도 찾아온다. 수년간 성희롱을 당한 동백이 고소를 결심한 후 옹산 여자들은 동백에게 은근한 호감을 느끼고 소문의 힘으로 가해자의 민심을 박살낸다. 누가 어떤 옷을 입고 신발을 새로 샀는지, 살이 빠졌는지 쪘는지 끊임없이 서로를 관찰하는 여성들에게 ‘시샘’과 ‘협력’은 종이 한장 차이로 뒤집힐 수 있다. 한편 <동백꽃 필 무렵>에서 가장 많은 버즈를 담당해온 ‘까불이’의 연쇄살인은 40부작 드라마의 긴장감을 위한 기능적 요소라는 의혹을 받기 쉽다. 하지만 가장 유력한 용의자 흥식(이규성)이 호감을 가진 여자들이 죽어나간 설정이나 초기 수사를 담당한 변 소장(전배수)이 직업여성을 타깃으로 한 성범죄를 의심한 점은 혐오 범죄의 뉘앙스를 내비친다(남성 배달원과 초등학생의 죽음 이후 변 소장은 가설을 폐기했지만 목격자를 제거하기 위해 계획에 없던 살인을 저질렀다고 추론한다면 그의 해석은 여전히 유효하다). 또 다른 유력 용의자인 흥식의 아버지는 ‘마녀’와 ‘마녀가 아닌 자’로 여성을 이분화하며 방화를 저지른다.
모든 사건의 중심에 서 있는 동백은 혐오의 그물에서 어디로 튈지 모르는 변수로 작용한다. 고아에, 평생 누구에게 고맙다는 말을 들어본 적 없고, 을의 연애를 하다 비혼모가 돼 홀로 아이를 키우다가 연쇄살인범 까불이에게 죽을 뻔했던 그는 하루에도 몇번이나 마음이 오락가락한다. 박복한 팔자라는 말에 자존감이 한없이 추락하다가도 자신을 성희롱한 규태와 일대일로 맞붙고, 입고 싶은 옷도 마음껏 입고 막 살 거라더니 불안한 사랑을 확인받기 위해 스스로를 후려치는 말을 한다. ‘걸크러시’와 ‘사이다’ 캐릭터가 트렌드가 된 요즈음, 주체적 여성상을 단지 꼿꼿한 강인함으로 묘사하는 것은 트라우마를 단순화하는 우로 이어질 수 있다. 임상춘 작가가 이름을 알리는 계기가 된 단막극 <백희가 돌아왔다>의 백희(강예원)가 학교 폭력의 가해자이지만 불량학생이란 이유로 불법 촬영을 당하고 그럴 만한 헤픈 여자라 비난받았던 것처럼, 사람은 누구나 입체적이며 마냥 착하지도 나쁘지도 강하지도 약하지도 않다.
로맨스, 휴먼, 스릴러의 절묘한 배합
젠더 이슈를 한껏 품은 이야기가 입체적으로 구현되는 <동백꽃 필 무렵>은 첫회 시청률 6.3%로 시작해 18.4%의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며 케이블과 종편의 부상으로 주춤했던 지상파 드라마의 구원투수가 됐다. <걸캅스>나 <82년생 김지영>에 가해지는 비이성적 비난과 비교하면 <동백꽃 필 무렵>은 여성 서사를 중심에 놓고서도 따뜻하고 사람 냄새 나는 이야기로 널리 소비된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먼저 <동백꽃 필 무렵>은 동백과 용식(강하늘)의 로맨스로 시작했고 아마도 그들의 로맨스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혹자는 이들의 멜로가 여성 서사라는 본래 목적과는 대치되나 대중성을 위해 부차적으로 더해진 요소라고 보지만, 그러기에 용식은 등장인물을 통틀어서도 손꼽히게 디자인이 잘된 캐릭터이며 작가는 둘의 관계 묘사에 많은 공을 들인다. 차라리 용식은 2015년 이후 페미니즘 열풍에 어떤 방식으로든 영향을 받았지만 여전히 로맨스의 마법을 믿는 젊은 여성 작가가 만들 수 있는 판타지로 이해하는 쪽이 적절하다. 첫눈에 반한 여자에게 “예쁘다”고 말하며 쫓아다니는 행위에 설렘보다는 두려움을 느끼는 시청자를 의식하듯, 드라마는 용식이 ‘똥개’의 위치에 있고 ‘나쁜 놈’, ‘치사한 놈’과는 차별화된 ‘좋은 놈’이라고 거듭 설명한다. 용식은 “당신은 누군가가 지켜줄 여자가 아니”라며 동백을 존중하고 여자의 손목을 거칠게 잡기보다 자신의 손을 팔랑팔랑 흔들며 잡아달라고 떼쓰면서 선택을 기다리는 남자다. 정점은 연쇄살인범에게 쫓기는 애인에게 야식 배달을 하지 말라고 화를 낸 것에 대해 “그 말을 하면서 기가 찼다. 동백이 조심할 게 아니라 (경찰인) 내가 그놈을 잡으면 되는 것”이라며 반성하는 대목이었는데, 성범죄를 방지하기 위해선 여자가 처신을 잘해야 한다는 현실의 허튼소리에 정확히 대비된다. 그러니 이런 남자를 현실에서 본 적 없다며 “(극중 동백의 이상형이었던 공유가 연기한) ‘도깨비’보다 판타지”라는 사람들이 속출하는 것도 이해된다. <동백꽃 필 무렵>은 미소지니를 자각했지만 로맨스의 달콤함도 원하는 대중을 위한 시의적절한 업데이트다. 뿐만 아니라 종렬이 이기적인 방식으로 부성애를 보여준다거나 출생의 비밀을 알고 복합적인 감정을 떠안은 필구의 성장담도 <동백꽃 필 무렵>의 엄연한 주요 축이다. 최근의 에피소드에서 급부상 중인 키워드는 ‘모성’이다. 제시카가 어린 나이에 낳은 딸에게 관심이 없는 점을 나쁘게 바라보거나 신장 이식 등 설정만 놓고 보면 주말 드라마와 크게 다르지 않은 정숙(이정은)의 모성애 묘사는 보수적이지만, 이들은 ‘까불이’ 스릴러와의 접점에서 다층적인 의미로 확장되며 호소력을 입는다. 가급적 다양한 사람들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 있게끔 분량을 공평히 배분하고 까불이에게 살해된 향미(손담비) 같은 조연에게 한 회차를 통째로 헌정하는 임상춘의 세계에서는 여성 서사도, 로맨스도, 모성애도, 부자 관계의 회복도 중요하다. 이들은 서로 얽히며 도발성을 완화하고 상투성을 희석한다.
<동백꽃 필 무렵> 제작진은 로맨스와 휴먼, 스릴러의 비중을 4:4:2로 가져가는 전략을 쓴다고 작품을 소개했다. 이 절묘한 배합은 단지 “네가 뭘 좋아할지 몰라 다 준비해본” 결과가 아니라 각 요소가 유기적으로 연결되며 서로를 지탱한다. <동백꽃 필 무렵>은 동시대 젠더 이슈가 전 연령층이 즐길 공영방송 드라마로 틈입한 점이 신기하고, 통속적인 가족 이야기가 아직 힘이 있다는 점에 놀라게 되는 작품이다. 설레고 따뜻하다는 막연한 형용사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영민한 드라마가 탄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