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7일 개봉,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는 <신의 한 수> 스핀오프 <신의 한 수: 귀수편>. 여타의 도박 소재 영화들과 달리 ‘액션’에 집중, 확실한 타기팅에 성공한 사례다. 국내 도박 영화 하면 빠질 수 없는 <타짜> 시리즈는 속고 속이는 인물들의 심리전을 내세웠다. 이외에 볼링 도박을 담은 <스플릿>은 자폐증을 앓는 소년을 등장시켜 드라마에 치중했다. 그러나 세 작품의 공통점은 돈은 기본, 목숨을 걸고 도박 대결을 펼친다는 것. 덕분에 쫄깃한 긴장감은 기본으로 내재됐다.
그렇다면, 국내를 넘어 해외에서 제작된 다양한 도박 소재 영화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고전부터 유명 프랜차이즈까지, 각양각색의 도박 영화 일곱 편을 소개한다. 앞서 언급한 국내 영화들은 제외했다.
<스팅> (1978)
도박은 예나 지금이나 매혹적인 영화적 소재였다. 말론 브란도 주연의 <아가씨와 건달들>(1955), 스티브 맥퀸 주연의 <신시네티 키드>(1965), 당구를 소재로 한 <허슬러>(1961) 등 여러 할리우드 고전 영화들이 있었다. 그중 도박, 사기 영화의 표본이 된 작품은 조지 로이 힐 감독의 <스팅>. 폴 뉴먼을 포함한 <내일을 향해 쏴라> 사단이 그대로 뭉친 케이퍼 무비(캐릭터들의 지능형 절도를 그린 영화)다. 재능 있는 제자, 그를 도와주는 스승, 뒤틀리는 계획 등 여러 장르 클리셰들이 여기서 시작됐다. 아마 영화를 본 이라면 <오션스> 시리즈, 최동훈 감독의 작품들이 자동으로 떠오를 것이다. 가볍고 코믹한 분위기를 살리고, 퍼즐이 맞춰지는 듯한 반전을 보여준 <스팅>은 제작비의 29배가 넘는 수익을 올리고, 아카데미 8개 부문을 석권하며 명작의 반열에 올랐다.
<도신> (1989)
홍콩영화 전성기의 끝자락인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에는 도박영화도 물밀듯이 쏟아졌다. 그 중심에 선 이가 왕정 감독. 그는 첫 도박영화인 <지존무상>을 제작, 연이어 <도신>을 선보였다. ‘영원한 따거’ 주윤발이 연기한 천재 도박사의 큰 그림 대잔치를 담은 <도신>. 그와 함께 유덕화, 왕조현 등 당대를 이끌던 쟁쟁한 배우들이 주연을 맡았다. 도박의 신이라는 제목답게 주인공 고진(주윤발)은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게임을 이기고, 몇 수 앞서 생각하는 등의 경지를 보여줬다. 거기에 기억상실증이라는 소재를 활용, 코미디 요소를 섞은 만큼 카리스마와 귀여움을 오가는 주윤발의 면모로 웃음을 선사했다.
<도신>은 큰 성공을 거두며 주윤발이 그대로 등장하는 속편들, 주성치를 필두로 한 패러디(지만 실제로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는) <도성> 시리즈, 제자였던 도자이(유덕화)와 주성치가 함께 등장하는 <도협> 시리즈, 2000년대 제작된 <도성풍운> 시리즈 등 무수히 많은 속편, 아류작들이 배출했다. 심지어 그중 대부분이 왕정 감독이 직접 연출하거나 제작에 참여한 것이다. 도(睹) 자로 시작하는 도박 소재 홍콩영화는 <도신>의 영향 아래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카지노> (1996)
<아이리시맨>으로 오래간만에 페르소나였던 로버트 드 니로와 재결합한 마틴 스콜세지 감독. 두 사람이 함께 했던 전작은 도박영화 <카지노>다. 주로 주인공의 ‘한 탕’을 그렸던 여타의 영화와 달리 <카지노>는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특성이 그대로 드러난 작품. 배경을 도박의 중심지인 라스베가스로 설정, 인물들의 흥망성쇠를 그려냈다. 거의 도박판 <좋은 친구들>(1990)이라 봐도 무방한 전개와 특색. 극을 이끌어가는 캐릭터는 천부적인 재능으로 갱단의 눈에 들어 카지노 사업을 하는 샘(로버트 드 니로), 그의 친구이자 마피아 조직원 니키(조 페시), 샘의 아내 진저(샤론 스톤) 세 사람이다. 그들이 여러 사건, 상황에 휩싸이며 반목하고 결국 나락으로 빠지는 과정을 치밀하게 그려냈다. 장기를 살린 스콜세지 식 도박영화다.
<라운더스> (1999)
풋풋한 맷 데이먼의 영악한 표정을 볼 수 있는 작품 <라운더스>. <본> 시리즈로 액션스타로 거듭나기 이전에 <굿 윌 헌팅>과 더불어 그의 스마트한 이미지를 구축해준 작품이다. 맷 데이먼이 연기한 마이크는 명문대에 재학 중인 포커 천재. 그러나 친구의 도박 빚을 갚아주려던 그는 자신의 재산마저 탕진하고 이를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라운더스>가 내세운 강점은 성장담의 형식으로 풀어낸 탄탄한 스토리와 개성 넘치는 조연 캐릭터들. 머리는 비상하지만 세상 물정 몰랐던 소년이 자신이 원하는 꿈을 찾는 과정이 담겼으며, ‘최종 보스’격 인물인 테디를 연기한 존 말코비치를 비롯해 여러 배우들의 특색 있는 연기가 스크린을 채웠다. 또한 포커의 한 종류인 '텍사스 홀덤'에 관한 규칙이 디테일하게 등장, 블러핑(높은 패인 척 연기하는 전략) 등의 묘미를 살렸다.
<007 카지노 로얄> (2006)
여러 우려를 일축시키고, 다니엘 크레이그를 제임스 본드로 만든 <007 카지노 로얄>도 빠질 수 없다. 제임스 본드의 매력 중 하나는 오만하다 생각될 정도의 여유로움. 이런 그의 모습과 속마음을 숨겨야 하는 포커의 특징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사례다. 거대 도박판을 통해 테러 조직의 자금을 확보하려는 르 쉬프(매즈 미켈슨). 제임스 본드는 그를 저지하기 위해 직접 도박판에 뛰어든다. 타들어가는 속을 숨기고 게임에 임하는 본드와 교모한 미소로 그를 혼란스럽게 하는 르 쉬프의 대결은 확실히 영화의 백미가 됐다. 거기에 화려한 볼거리를 강조한 <007> 시리즈 특유의 액션과 그들을 둘러싼 여러 이해관계의 인물들로 긴장감을 끌어올렸다.
<21> (2008)21>이제 하다 하다 대학교 내 도박팀도 꾸려졌다. 블랙잭의 숫자 합계를 의미하는 21을 제목으로 가져온 영화는 (중의적으로)이제 겨우 21살이 된 학생들의 카지노 털이를 그렸다. 심지어 그 중심은 교수. 뛰어난 수학 천재들을 모아 팀을 꾸린 미키 교수(케빈 스페이시)는 블랙잭 게임의 허점을 파악하고 이를 간파할 수 있는 방법들을 팀원들에게 전수, 라스베가스의 카지노를 턴다. <21>의 중심이 되는 블랙잭은 남아있는 카드의 개수를 계산하는 '카드 카운팅'이 효과적으로 작용하는 게임. 단순히 도박을 잘하는 것이 아니라, 수학 천재들이 모여 이를 간파하는 과정이 흥미롭게 담겼다. 아무리 머리가 뛰어나도 헤어 나올 수 없는 돈의 중독성, 거듭되는 반전까지 합쳐져 오락성을 극대화한 작품.
<겜블러> (2014)
마지막은 마크 월버그 주연의 <겜블러>다. 아마 도박을 가장 철학적으로 풀어낸 작품이 아닐까. 지루한 삶에 찌들어 열정 따위는 잃어버린 문학 교수 짐(마크 월버그). 그는 유복한 집안에 여유도 있지만 빚까지 지며 도박을 강행한다. 더 큰 돈을 벌고 싶은 욕망 때문도 아니다. 그에게 도박은 삶을 지탱하는 원천. 인생 권태기를 겪고 있는 짐은 스스로 위기를 만들고 이를 극복하면서 삶의 목적을 찾았다. 상식적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는 행동들은 자기 파괴에 가까워 보였다. 영화는 이런 짐의 심리를 집요하게 쫓으며 정반대 격 인물인 에이미(브리 라슨)를 통해 그가 구원받는 과정을 담았다. 도박영화 특유의 빠른 호흡을 버리고 인물의 내면에 집중, 불가피한 공허와 극복을 그려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