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쪽같은 그녀>는 <아이 캔 스피크>(2017)로 무려 10개의 여우주연상을 받은 나문희가 차기작으로 선택한 작품이다. 그가 연기하는 72살 할머니 ‘말순’은 느닷없이 갓난아기를 들쳐 업고 나타난 12살 손녀 공주(김수안)를 식구로 받아들이며 가족이 되어간다. 제작비 면에서나 이야기 면에서나 소박하게 보일 수 있는 작품이지만, 나문희는 “내 평생 그렇게 순수하고 착한 마음으로 촬영한 영화가 없다”고 전했다. 항상 대본과 녹음기를 들고 다니며 상대방과 주고받은 대사를 다시 듣는, 58년차 경력에도 여전히 ‘노력파 배우’의 면모를 보여주는 나문희를 만났다.
-<감쪽같은 그녀> 시나리오를 받고 촬영에 들어가기 전까지 편찮으셨다는 얘기를 들었다.
=대상포진을 좀 심하게 앓았다. 일을 하지 못할 정도였다. 그래서 이 영화를 하지 못하게 될까봐, 내 차례가 오지 않으면 어떡하나 걱정했다. 허인무 감독과 김정군 지오필름 대표가 굉장히 용기 있었다. 처음 만났을 당시 내가 우울증도 앓고 있었는데 과감하게 날 택했다. <아이 캔 스피크>로 상을 많이 받은 부담감까지 있어서 연기에 더 깊이 골몰했다. 그래서 그동안 찍은 작품보다 한수 더 낫지 않을까 싶다. (웃음)
-말순은 기존 매체에서 묘사됐던 할머니 캐릭터와 좀 다르다. 손수건에 수를 놓는 취미가 있고, 경치 좋은 마루에서 고스톱을 치며 낭만을 즐기는 ‘꽃청춘’ 할머니다.
=밝게 가고 싶더라. 그래서 어머니가 실제 입은 옷을 현장에서 입었다. 핑크바지도 입고, 목이 늘어난 옷도 입고, 목에 머플러도 두르고. 그러니까 몸도 마음도 더 자연스러워졌다. 말순은 그냥 밀려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할머니다. 그러니 숙명이거니 받아들이며 자기한테 찾아온 손녀에게 밥도 먹이는거다. <감쪽같은 그녀>는 연기하면서 드러나는 호흡이 거의 없었다. 연기하면서 호흡이 많은 게 불편할 때가 있는데, 이번엔 다 걸러서 해보자고 생각했다.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호흡’이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가.
=역할에 따라 호흡이 달라진다. 그 호흡이 있으면 표현할 때 몰입이 잘되고, 아니면 호흡이 흩어진다. 한 호흡으로 하는 연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얼마 전 <친정엄마> 공연을 할 때 호흡도 발성도 몸의 유연함도 좋아졌다. 그래서 연극이 좋은데, 동시에 좀 무섭다. 내가 41년생이니까 몸도 힘들고, 싸우면서 연기해야 하고, 할 만하면 연극이 끝나고. 연기는 결과적으로 호흡과 리듬이 아닐까.
-말순이 공주를 숙명처럼 받아들인 것처럼, 선생님에게도 매 작품이 숙명으로 다가왔나.
=당연하지. 항상 그랬다. 연기는 나의 전부다. 작품이 곧 내 생명이고, 살아있는 동안 계속 연기를 할 거다. 김영옥씨랑 아주 친한데, 긴 작품에서 함께 연기를 하고 싶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만큼의 능력으로, 그렇게 연기를 하고싶다.
-자극적인 영화가 극장가에서 인기를 얻는 요즈음, <감쪽같은 그녀>를 본 관객이 어떤 걸 얻어갔으면 좋겠나.
=옛날엔 업둥이 문화가 있었다. 버려진 아이를 바로 고아원에 보내지 말고 여건이 되는 사람들은 친자식이 아니라도 길렀으면 좋겠다. 그렇게 과거의 따뜻한 정서와 문화가 되살아나면 얼마나 좋을까. 요즘 사람들은 앞집에 누가 사는지도 잘 모르지 않나. 젊은 사람들은 우리 영화를 본 후 이웃과 잘 지냈으면 좋겠고, 할머니들은 같은 할머니인 내가 꾸준히 일하는 모습을 극장에서 봤으면 좋겠다. (웃음) 그렇게 같이 놀았으면 한다.
-<오, 문희> <정직한 후보> <영웅> 등에 출연한다.
=<영웅>에서는 안중근의 엄마로 나온다. 안중근을 연기한 정성화씨가 너무 안중근 같다. (웃음) <정직한 후보>에서는 라미란의 외할머니로 나온다. 정말 재미있는 희극이다. <오, 문희>는 내가 말도 못하게 기대하는 영화다. 트레일러도 타고, 아주 독특한 호흡으로 연기했다. 내가 나이를 먹으니 감독들이 어려워하는 건지 뭐라고 주문을 하는 대신 나한테 그 호흡이 나올 때까지 기다린다. 치매 걸린 할머니의 좌충우돌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