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가슴 찡한 드라마부터 날 선 광기까지, 한국영화 속 모성애 캐릭터들
2019-12-12
글 : 김진우 (온라인뉴스2팀 기자)
<나를 찾아줘>

이영애가 14년 만의 스크린 복귀작으로 택한 김승우 감독의 <나를 찾아줘>. 실종된 아이를 찾아 헤매던 정연(이영애)이 낯선 제보를 받고 그 흔적을 쫓는 이야기다. 자극적인 설정과 장면들이 불편함을 야기한다는 평도 적잖았지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만큼은 강하게 각인시키는 작품. 2005년 박찬욱 감독의 <친절한 금자씨>로 찬사를 받았던 이영애는 다시금 모성애를 바탕으로 한 캐릭터를 맡아 보다 현실적인 톤으로 호연을 보여줬다. 인터뷰를 통해서도 “아이를 잃어버린 엄마가 상상이 됐다”라며 두 아이의 엄마가 된 후 더욱 마음에 와닿았다는 소감을 전했다.

‘여성 캐릭터= 모성애’라는 좁은 시선에 대한 우려도 있지만, 확실히 모성애는 잘만 담아낸다면 많은 이들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소재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모성애를 다룬 한국영화들 중 선례로 남은 작품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었을까. 그 속에서 맹활약하며 관객들의 뇌리에 박혔던 캐릭터 7인을 돌아봤다.

※ 해당 영화들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친절한 금자씨> 이금자(이영애)

<친절한 금자씨>

앞서 언급했지만 <친절한 금자씨>를 빼놓을 수 없다. 박찬욱 감독의 ‘복수 삼부작’의 마지막을 장식한 <친절한 금자씨>는 딸을 구하기 위해 다른 아이의 유괴를 돕고, 범인 대신 13년 동안 감옥살이를 한 이금자(이영애)의 복수를 담았다. 이전까지의 복수극과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 장르 결합을 보여줬으며 이는 이금자 캐릭터도 마찬가지. 천사 같은 얼굴로 악마 같은 행동을 하고, 영혼이 나간 듯한 표정과 말투로 뱉는 대사들은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녀의 원천은 분노, 억울함, 죄책감 등이 뒤섞인 복합적인 감정. 그러나 후반부, 딸 앞에서 죄를 고백하고 “엄마의 죄는 너무 깊어서 너처럼 사랑스러운 딸을 가질 자격이 없어”라고 고백하는 대목에서는 그 만감이 딸을 향한 미안함으로 연결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전무후무한 캐릭터였던 이금자는 <씨네21>에서 영화 관계자 208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한국영화 최고의 여성 캐릭터’ 조사에서 공동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마더> 마더(김혜자)

<마더>

이금자와 함께 한국영화 최고의 여성 캐릭터 공동 1위를 차지한 이는 봉준호 감독의 <마더> 속 마더(김혜자)다. <친절한 금자씨>에서 모성애는 금자를 움직이게 하는 여러 이유 중 하나였다면 <마더>는 훨씬 끈질기게 모성애라는 감정을 파고들었다. 캐릭터에게 본명도 부여하지 않은 채 ‘마더’로 정의, 제목에서조차 이를 가져오며 모성을 강조했다. 다만 여타의 김혜자가 연기한 마더는 아들을 구해야 한다는 마음이 사랑을 넘어 광기로까지 번진 인물이다. 살인범으로 몰린 아들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는 그녀. 그러나 참담한 진실을 마주한 마더는 결국 걷잡을 수 없는 길을 택했다. 늘 그 마음 자체는 아름답고 숭고한 것으로 여겨졌던 모성애. 그러나 <마더>는 광기로 번진 모성애를 보여주며 기존의 어머니상을 철저히 깨부쉈다. 선행의 대표주자였던 김혜자의 놀라운 이미지 변신도 그 충격을 더했다.

<말아톤> 경숙(김미숙)

<말아톤>

지금껏 한국영화에서 ‘모성애’를 다루었던 가장 빈번한 방식은 사랑을 바탕으로 한 가슴 찡한 드라마다. 한국영화의 고질병이라고도 불리는 작위적인 신파로 혹평을 받은 영화들도 있지만, 이를 피하며 호평을 받은 작품들도 있다. 그 대표적 사례는 2005년 개봉한 정윤철 감독의 <말아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는 자폐증을 앓고 있는 초원(조승우)의 마라톤 도전기를 그렸다. 조승우의 호연도 영화의 완성도를 끌어올렸지만 이에 못지않았던 이가 엄마 경숙을 연기한 김미숙 배우. 초원을 향한 사랑부터, 어쩔 수 없이 수반되는 스트레스와 고충까지 담아내며 영화의 의미를 더했다. 명대사로 남은 대사 대부분은 초원의 몫이었지만, 실질적으로 관객들의 눈시울을 붉혔던 것은 이를 바라보는 경숙의 모습이었다.

<비밀은 없다> 김연홍(손예진)

<비밀은 없다>

다음은 독보적인 개성을 자랑하는 이경미 감독의 <비밀은 없다>다. 로맨틱 코미디, 멜로드라마의 이미지가 강했던 손예진이 놀라운 연기 변신을 보여준 시점. 딸이 실종당하고,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오는 상황에 놓인 연홍(손예진)은 말 그대로 미쳐갔다. <마더>의 마더가 허무를 바탕으로 한 오묘한 광기를 보여줬다면, 그녀의 태도와 행동은 오롯이 분노로 이어졌다. 딸을 찾아야 한다는 불안이 집착으로, 죽음을 확인한 후에는 분노로 바뀌는 과정이 여과 없이 표출됐다. 사랑스러운 눈웃음으로 유명한 손예진이지만 <비밀은 없다>에서 늘 붉게 충혈돼 있는 눈은 호러영화 버금가는 섬뜩함을 자아냈다. <비밀은 없다>는 난해한 서사, 수많은 메타포로 호불호가 크게 갈리기도 했지만 연홍만큼은 강한 충격을 선사한 캐릭터로 남았다.

<미씽: 사라진 여자> 한매(공효진)

<미씽: 사라진 여자>

<미씽: 사라진 여자>(이하 <미씽>)는 모성애로 얽힌 두 여성의 분투를 그렸다. 보모 한매(공효진)와 함께 사라진 아이를 백방으로 찾아 헤매는 지선(엄지원). 얼핏 보기에 모성애 코드는 지선의 몫인 듯했지만 극이 진행될수록 무게가 실리는 것은 한매. 타국에서 한국으로 넘어와 여러 차별과 폭력을 당하며 아이까지 잃었던 한매. 처음에는 악역의 포지션처럼 등장했지만 <미씽>은 한매의 모성애를 통해 계급 갈등, 디아스포라 문제 등을 풀어낸 영화였다. 원래는 <미씽: 사라진 아이>였지만 개봉 전 제목을 ‘사라진 여자’로 바꾼 이유도 그 모습을 보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완성한 공효진은 여러 영화상에 여우주연상으로 노미네이트, 황금촬영상 시상식에서는 트로피를 거머줬다.

<범죄의 여왕> 미경(박지영)

<범죄의 여왕>

<비밀은 없다> <미씽>에 이어 <범죄의 여왕>까지. 확실히 2016년은 다채로운 모성애 캐릭터가 스크린을 수놓은 해였다. 독립영화 명가로 자리 잡은 광화문 시네마의 <범죄의 여왕>은 지금 소개하는 작품들 중 가장 가벼운 톤을 유지했다. 고시생 아들을 둔 미경(박지영)이 수도요금이 120만 원이나 나온 고시원에 직접 방문, 미스터리를 해결하는 과정을 코믹하게 담았다. 미경은 늘 당당한 태도로 살아왔지만 아들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지는 아들 바보. 그 모습을 보면 ‘뭐 저런 자식이 있나’ 싶다가도 ‘그게 나였나..’를 되뇌게 되는 묘한 부끄러움이 수반됐을 수도 있다. 또한 <범죄의 여왕>의 백미는 미경이 범인을 제압하는 클라이맥스. ‘어머니보다 강한 존재는 없다’는 말에 딱 부합했던 장면은 박지영 배우의 연기, 대사와 슬로우 모션 등을 활용해 슈퍼히어로 영화에서나 느낄 법한 ‘멋’을 자아냈다.

<밀양> 이신애(전도연)

<밀양>

마지막은 한국의 거장 이창동 감독의 <밀양>이다. 그가 가져온 모성애는 결코 가벼운 마음으로 다가갈 수 없다. 자신의 아이가 유괴, 살해당한 신애(전도연). 그녀는 종교를 통해 안정을 찾고 범인을 용서하러 교도소를 방문한다. 그러나 자신 역시 종교를 통해 안정을 찾고 “이미 용서를 받았다”고 답하는 범인. 피가 거꾸로 솟을 만치 잔인한 이 설정을 이창동 감독은 담담하지만 묵직하게 그렸다. 음악 한번 없이 배우들의 연기만으로 채운 장면들은 강한 몰입감을 자아내며 불편할 정도의 체험을 선사했다. 아이를 잃은 엄마의 마음을 바탕으로 절망과 희망, 용서와 구원을 모두 섞었다. 가늠이 되지 않은 감정들을 200% 끌어낸 전도연은 <밀양>으로 국내 최초로 칸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뤘다. 감정적으로 매우 고단했던 촬영이었지만 전도연 역시 최근 인터뷰를 통해 “<밀양> 덕분에 연기하는 것에 대해, 남들 시선보다 나 자신에 더 집중하는 기회를 얻게 됐다. 내가 느끼는 것이 진짜인지, 그런 것들을 생각하게 만들어준 작품이다”고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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