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이거 연기가 아닌 것 같은데? ‘하정우 Moment’가 빛났던 영화들
2020-01-03
글 : 김진우 (온라인뉴스2팀 기자)
하정우

2008년 나홍진 감독의 <추격자>로 스타덤에 오른 뒤, 수많은 작품들을 거쳐 대세 배우로 거듭난 하정우. 그에게는 하나의 아이덴티티로 자리 잡은 지점이 있다. 바로 영화인지 다큐인지 구분을 힘들게 하는 능청스러운 생활연기다. 뒤돌아서면 한 번은 ‘피식’하게 되는 유머, 웃기지만 뒷맛이 씁쓸한 블랙코미디, 짙은 여운을 남기는 미소까지. 그 종류도 다양하다. 거의 모든 출연작에서 그 순간들을 발견할 수 있었지만, 특히 ‘하정우 Moment’가 빛났던 영화들을 모아봤다.

말년 병장 그 자체 <용서받지 못한 자>

<용서받지 못한 자>

첫 번째는 지금까지도 ‘현실 병장 연기’로 회자되는 <용서받지 못한 자>속 하정우다. 대학 시절부터 하정우와 함께 해온 윤종빈 감독이 직접 출연까지 한 졸업 작품이다. ‘군대에서는 별별 사람들을 다 만난다’는 말처럼 온갖 인간 군상이 담긴 영화 속에서 하정우는 부대의 실세, 유태정 병장을 맡아 살벌한 리얼리티를 자랑했다. 가장 유명한 신병 교육 장면은 하정우가 애드리브까지 대거 가미해 완성한 부분이다. “그러면 도와줄 수가 없어”, “친구들 전화번호 외운 거야?”, “토할 것 같은데 나는” 등 적재적소로 등장한 찰진 대사들 앞에서는 웃음을 참기 힘들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사실 <용서받지 못한 자>는 군대 부조리를 참담하게 풀어낸 작품. 이에 걸맞게 하정우는 코믹한 요소 외에도 연민, 회의, 이기심 등 복합적인 모습을 실감 나게 그려냈다.

넉살의 안 좋은 예 <비스티 보이즈>

<비스티 보이즈>

확실히 하정우의 말맛은 윤종빈 감독을 만났을 때 빛이 났다. 그들의 두 번째 장편영화 <비스티 보이즈>에서도 하정우는 때어놓고 보면 웃기지만, 영화 전체를 보면 뒷맛이 씁쓸한 블랙코미디를 소화했다. 호스트바를 소재로 한 영화에서 그가 맡은 역할은 호스트들의 리더 재현. 거짓말을 달고 살며,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자존심도 의리도 모두 팔 수 있는 속칭 ‘양아치’의 표본 같은 인물이다. 여자친구에게 거짓 사랑으로 돈을 뜯어내기 위해 밥 먹듯 말하는 (그놈의)“오빠는~”, 진심을 어필하는 뻔뻔한 표정과 설득력을 더하려 몸부림치는 제스처, 마지막으로 본색을 드러내는 상스러운 폭언과 폭력까지. 보는 것만으로도 눈살이 찌푸려지는 모습을 디테일하게 담아냈다.

한국영화사에 기억될 만한 캐릭터 <멋진 하루>

<멋진 하루>

이윤기 감독의 <멋진 하루>를 본 이라면, 하정우가 연기한 최고 캐릭터로 조병운을 꼽는 이들도 적잖을 듯하다. 1년 전 빌려준 돈을 받기 위해 전 남자친구 병운(하정우)를 찾아간 희수(전도연). 그녀를 맞이한 병운은 ‘능글맞음’을 온몸에 장착한 상태다. 그러나 같은 넉살이라도 <비스티 보이즈>의 재현을 생각하지는 말자. 보는 이에 따라 다소 답답함을 유발할 수 있지만 그는 도저히 미워할 수 없는 사랑스러움도 함께 보유했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유니콘’같은 이 캐릭터를 하정우는 범접할 수 없는 친근함으로 풀어냈다. 내 돈을 떼먹어도, 함께라면 분명 ‘멋진 하루’가 될 것 같은 사람. <멋진 하루>를 본 박찬욱 감독은 “이윤기 감독과 하정우가 만든 병운은 한국영화사에 기억될 만한 남성 캐릭터”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찌질과 달콤 사이 <러브픽션>

<러브픽션>

하정우 특유의 찌질 연기와 로맨틱 코미디가 결합되면 어떤 시너지를 발휘하는지 보여준 영화 <러브픽션>. 희희낙락한 끝을 장식한 영화는 명백한 ‘픽션’이었지만, 그 속에 담긴 인물들의 감정과 대사는 논픽션에 가까운 현실 로맨스를 대변했다. 그 속에서 하정우는 앞길이 풀리지 않는 소설가 구주월을 맡아 귀여움과 찌질함, 경우 없는 비매너까지 자유자재로 오갔다. 연인이 된 희진(공효진)의 겨드랑이 털을 처음 발견하고 당황을 감추지 못하는 주월. 기분이 상한 그녀에게 날리는 쉴 새 없는 ‘털드립’은 하정우에게 정확히 들어맞는 웃음 포인트였다. “나는 모자도 털모자만 쓰고, 만두도 털보만두만 먹고, 성격도 털털하다는 소리 많이 들어. 그리고 TV도 디지털이야”. 그 재치 앞에 무너지지 않을 수 있는 이는 몇 없을 듯하다.

그냥 하정우 <577 프로젝트>

<577 프로젝트>

앞선 영화들은 시나리오를 토대로, 하정우의 맛깔나는 연기가 덧입혀진 것이라면 <577 프로젝트> 속 하정우는 그냥 하정우 자체다. 그가 수상 공약으로 내걸었던 ‘국토대장정’ 과정을 다큐멘터리, 예능 형식으로 담아낸 영화이기 때문이다. 그 유명한 하정우의 ‘시골쥐 짤’도 여기서 탄생한 것.(식당에서 잠이 든 하정우를 대원들이 두고 가고, 하정우가 잠에서 깨는 부분) 당연하게도 영화 속에는 하정우, 공효진을 비롯한 여러 배우들의 리얼한 모습이 여과 없이 드러났다. 무뚝뚝한 표정으로 뱉는 실없는 농담들, 이상하지만 묘하게 설득되는 말투 등 앞서 말한 캐릭터들의 유머 포인트들이 실제 하정우에 뿌리를 둔 것임을 확신할 수 있는 지점도 종종 등장했다. 이외에도 하정우 못지않은 존재감을 발하는 여러 배우들도 코미디의 맛을 살렸다.

한 번쯤은 ‘피식’할걸? <롤러코스터>

<롤러코스터>

마지막은 하정우가 등장하지 않는 영화다. 바로 그의 감독 데뷔작 <롤러코스터>다. 다만 누가 봐도 하정우의 연출작임이 여실히 드러나는 작품이다. <롤러코스터>를 감상한 배우 차태현의 말을 인용하자면 “얼굴만 다른 여러 하정우들”을 볼 수 있다. 끝없이 등장하는 어이없는 개그들은 ‘당신이 웃든 말든 상관하지 않겠다. 내가 웃기니까’라고 말하는 듯했다. 호불호가 강하게 갈릴 수 있지만 평상시 하정우의 유머를 좋아한다면 분명 그 수많은 농담들 중 한 가지 이상은 적중할 것이다. 또한 막상 스크린에서 마주했을 때는 터지지 않았을 수 있지만 잠을 청하기 전, 혹은 갑자기 길을 걷다 문뜩 떠올라 한 번쯤은 ‘피식’할 수도 있다. 앞서 말한 작품에서 하정우와 호흡을 맞췄던 배우들이 대거 출연했다는 점도 재미를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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