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짐 셰리던 / 출연 대니얼 데이 루이스, 피트 포스틀스웨이트 / 제작연도 1993년
‘아버지’라는 말이 주는 느낌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따뜻함, 불편함, 엄격함, 허전함, 미안함…. 나에게 아버지는 애증의 존재다. 한국전쟁 때 함경남도 단천에서 내려온 실향민인 아버지는 거친 성격만큼 욕도 잘하신다. 그의 첫째 아들, 그러니까 큰형은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군인으로 살았다. 뭣도 모르던 나도 아버지와 큰형의 권유로 1994년에 육사에 입학해 2학년 1학기까지 다녔다. 하지만 진로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하다가 결국 기말고사 시험지를 백지로 내고 나와버렸다. 이후 한국 현대사에 비판적 시각을 갖기 시작한 나와, 박정희·전두환 등 군사정권 문화에 관대한 아버지, 두 인간 종자의 냉전은 상당히 오래갔다. 2001년 내가 처음으로 만든 작품이 <나의 아버지>라는 사적 다큐멘터리였던 것은 그만큼 내 안에 그 냉전으로 인한 응어리가 컸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짐 셰리던 감독이 연출한 <아버지의 이름으로>는 하루아침에 테러 조직의 일원으로 조작되어 감옥살이를 하게 되는 한 부자의 이야기를 그렸다. 한동안 케이블TV 영화 채널에서 이 작품을 자주 내보내서 여러 번봤다. 볼 때마다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실존 인물이자 아들인 제리 콘론의 자서전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 영화는 1974년 10월 5일 영국 길퍼드의 한 주점이 테러에 의해 폭발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장갑차로 무장한 영국군에 화염병과 돌을 던지며 저항하는 아일랜드의 상황, 진실을 조작하는 영국 경찰의 모습은 남영동 대공분실 같은 공안기관으로 수많은 인사들을 불법으로 끌고 가 고문과 협박을 자행했던 한국 군사정권의 어두운 부분과 판박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간첩으로 조작되어 풍비박산된 삶을 살았는가?
테러범으로 몰려 종신형을 선고받은 아들(대니얼 데이 루이스)을 따라 아버지(피트 포스틀스웨이트)도 테러에 협력했다는 죄를 뒤집어쓰고 감옥에 들어온다. 똑같은 죄수복을 입고 감옥밥을 먹는 부자는 전에 그러했듯 늘 티격태격이다. 아들은 자신의 잘못을 다그치기만 하고 칭찬 한번 없이 평생 기침을 달고 사는 아버지를 원망한다. 아버지는 불평만 늘어놓는 아들이 못 미덥긴 해도 끔찍한 테러를 저지른 범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건 아버지이기 때문에 본능으로 아는 것이다. 한편 각종 테러를 저지른 혐의로 경찰에 체포된 아일랜드공화국군(IRA) 테러리스트가 길퍼드 주점 폭파 역시 자신들이 저질렀다고 자백한다. 그런데 경찰은 죄 없이 갇혀 있는 콘론 부자의 진실을 덮어버리고, 아들은 테러리스트와 친해지면서 함께 싸우려고 한다. 하지만 폭력적인 영국 공권력에 대항하는 IRA 역시 폭력적 방법을 사용하여 무고한 희생을 만들어내는 건 마찬가지. 간수장이 테러리스트의 공격으로 심한 화상을 입고 불구가 되자 아들은 아버지처럼 폭력적 노선을 거부한다. 평화를 택한 콘론 부자의 억울한 사연이 세상에 알려지고, 변호사는 사건이 조작되었다는 결정적 증거를 확보한다. 드디어 제리 콘론을 비롯한 피해자들은 재심을 통해 무죄판결을 받아낸다. 15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후에.
이 작품의 영향인지 나는 억울한 사연을 영화화하는 데에 관심을 가졌다. 1998년 판문점에서 총상을 입고 의문사한 고 김훈 중위의 의문사를 다룬 <진실의 문>과 1981년 안기부에 의해 조작된 진도 박동운 일가 간첩단 사건을 다룬 <무죄> 등 한국 현대사의 음지를 비춘 다큐멘터리영화들을 연출했다. 어찌보면 이런 작품들을 만든 건 아버지의 세계관에 대한 내 나름의 반항이었던 것 같다. 그래도 아바이 수령님의 만수무강을 기원한다.
●김희철 다큐멘터리 감독. <이중섭의 눈>(2017), <진실의 문>(2004) 등을 연출했고, 책 <잠깐 운전하고 오겠습니다>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