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최근 인상적이었던 국내 배우·감독들의 레전드 수상소감
2020-01-14
글 : 심미성 (온라인뉴스2팀 기자)

연말 시상식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다시금 대한민국 영화계가 들썩였다. 지난 1월 5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제77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한국 영화 최초로 외국어영화상의 영예를 안았다. 이때 봉준호 감독이 남긴 수상소감이 종일 화제였다. 세계 무대에서도 존재감 넘치는 <기생충>의 활약을 축하하며, 그동안 한국 시청자들을 울고 울렸던 레전드 수상소감을 모았다.

"단 하나의 언어는 영화입니다"

봉준호 <기생충> 2020ㅣ골든 글로브 시상식ㅣ외국어영화상

"자막의 장벽을, 장벽도 아니죠. 1인치 정도 되는 장벽을 뛰어넘으면 여러분들이 훨씬 더 많은 영화를 즐길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단 하나의 언어를 쓰고 있습니다. 바로 영화입니다." 미국의 로컬 영화제 중 하나인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유일하게 영어 영화가 아닌 영화에 수여되는 '외국어영화상' 수상소감으로 더할 나위 없는 멘트였고, 객석은 감동의 박수 물결로 가득했다. 시상식이 끝난 뒤, 한 매체의 "미국이 왜 <기생충>과 사랑에 빠졌다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봉준호의 대답은 역시나 시원했다. "가난한 자와 부자, 자본주의에 관한 얘기인데. 미국이야말로 자본주의의 심장 같은 나라니까요."

"연기는 내게 짝사랑 같은 존재"

조여정 <기생충> 2019ㅣ청룡영화상ㅣ여우주연상

"<기생충>이 받을 줄 알았는데···." 지난해 11월 치러진 청룡영화상의 단골 멘트였다. <기생충>의 수상을 예상했던 배우들의 끝없는 고백이 이어지고, 마침내 여우주연상에 호명된 <기생충> 연교의 수상소감이 시작됐다. "여우주연상 부문은 저만 <기생충>이 받을 줄 몰랐던 것 같아요"라고 재치 있게 운을 뗀 배우 조여정은 연기를 향한 진심 어린 고백으로 객석을 눈물짓게 만들었다. "어느 순간 연기를 짝사랑하는 존재로 받아들였던 것 같아요. 언제라도 버림받을 수 있다는 마음으로 짝사랑해 왔어요. 어찌 보면 그게 제 원동력이었던 것 같기도 해요. 근데 오늘 이 상을 받았다고 절대 사랑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하지 않겠습니다. 묵묵히 걸어가 보겠습니다. 지금처럼 씩씩하게 잘 열심히 짝사랑을 해보겠습니다. I'm deadly serious."

"성별, 성 정체성, 성적 지향으로 차별받는 사람이 없는 사회를 꿈꿉니다"

박찬욱 <아가씨> 2017ㅣ백상예술대상ㅣ 영화부문 대상

지난 2017년 <아가씨>로 백상예술대상의 영화부문 대상을 받은 박찬욱 감독이 남긴 말도 대단했다. 배우들이 상을 받지 못해 아쉬웠던 박찬욱 감독은 자리를 빛낸 배우들을 향해 "이 상은 함께 받는 것"이라며 위로했다. 더불어 "다른 작품도 아닌 <아가씨>로 받는 상이니 만큼 이런 말 정도는 해도 될 것 같다"면서 "성별, 성 정체성, 성적 지향으로 차별받는 사람이 없는 사회를 꿈꾼다"는 소감을 건넸고 객석에서는 환호가 터져 나왔다. 이어 그는 "후보 투표를 하는 여러 가지 기준 중에 그런 부분도 한번 고려해 보시기를 바란다"는 말을 남겼다. 공식 석상에서 이와 같은 소신 발언이 나온 전례가 드문 한국에서, 여성들의 로맨스 <아가씨>를 만든 박찬욱 감독이 남긴 말이기에 더욱 의미 있는 소감이었다.

"우리는 위로가 필요한 시대에 살고 있는 거 같아요"

김혜자 <눈이 부시게> 2019ㅣ백상예술대상ㅣTV부문 대상

실감 나는 알츠하이머 연기를 펼친 드라마 <눈이 부시게>로 배우 김혜자는 제55회 백상예술대상에서 TV 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뜻밖의 수상에 연신 "어떡해"를 말하던 그는 "혹시 몰라 시청자분들이 많이 좋아해 주신 내레이션을 말해야겠다고 생각해 대본을 찢어왔다"고 수줍게 말했다. 김혜자의 꾸밈없는 한마디 한마디에 후배 배우들은 물기 가득한 눈으로 경청을 보냈다. 그는 "위로가 필요한 시대에 살고 있는 여러분"을 향해 위로를 선물했고, 객석은 금세 울음바다가 됐다. "내 삶은 때론 불행했고 때론 행복했습니다. 삶이 한낱 꿈에 불과하다지만 그래도 살아서 좋았습니다. 새벽의 쨍한 차가운 공기, 꽃이 피기 전 부는 달큰한 바람, 해 질 무렵 우러나오는 노을의 냄새. 어느 한 가지 눈부시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지금 삶이 힘든 당신.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당신은 이 모든 걸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하기만 한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마세요. 오늘을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

"상 받는 줄 알았으면 (청심환) 하나 더 먹는 건데···"

진선규 <범죄도시> 2017ㅣ청룡영화상ㅣ남우조연상

지난 2017년 제38회 청룡영화상의 남우조연상은 <범죄도시> 진선규의 몫이었다. 유해진, 김희원, 배성우 등 쟁쟁한 후보들을 제치고 이름이 호명되자 진선규는 곧바로 눈물을 쏟기 시작했다. "저 조선족.. 중국에서 넘어온 사람 아니구요. 대한민국 국민입니다"라는 말로 포문을 연 진선규. 이어서 "여기 오는 것만으로도 너무 떨려 청심환을 먹었는데 상 받는 줄 알았으면 하나 더 먹었어야 됐는데.."라며 울먹였다. 12년 무명생활을 견디고 드디어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된 그는 "40년 동안 도움받으며 살아서 감사한 분이 너무 많다"며 고마운 이들을 언급했다. 특히 고향 친구들에게는 "제 코가 낮아서 안 된다며 계까지 붓고 있는 친구들이다"고 밝히며 웃음을 선사했다. <범죄도시>의 위성락으로 보여준 살벌한 모습과는 전혀 다른 겸손함과 순수함이 화제가 됐다.

"여보, 약속 지키는데 34년 걸렸네."

천호진 <황금빛 내 인생> 2017ㅣKBS 연기대상ㅣ대상

같은 해 KBS 연기대상에서는 배우 천호진의 수상소감이 화제로 떠올랐다. <황금빛 내 인생>으로 34년의 연기 경력에 받은 첫 대상이었는데, 기뻐하는 후배 배우들의 감화된 표정도 눈길을 끌었다. 그러나 정작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어나간 천호진의 수상소감이 화제가 됐다. 그는 "아직 끝나지 않은 드라마 때문에 상은 제가 받지 않고 이 세상 모든 부모님들께 드리겠다"고 전했다. 이어 "진심으로 이 상을 전하고픈 사람이 있다"면서 아내에게 진심 어린 메시지를 전했다. 덤덤한 표정으로 전한 로맨틱한 소감에 객석 분위기가 한층 달아올랐다. "여보, 연애할 때 한 약속을 지키는 데 34년 걸렸네. 너무 늦었다. 미안해. 당신만 허락하면 내 다음 생에 당신하고 다시 한번 살아보고 싶네. 꼭 약속 지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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