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셋쨋주 <씨네21> 편집부의 공기와 어울리는 음악을 선곡하자면 스터길 심슨의 <The Dead Don’t Die>를 택할 것이다. 예년보다 설 연휴가 빠르게 찾아온 까닭에 한달 반 남짓한 기간 동안 두권의 특별호와 한권의 특대호 마감이라는 큰 산을 넘게 됐다. 키보드 치는 소리와 교정지 넘기는 소리, 이따금 정적을 깨는 한숨 소리가 들려오는 사무실에 앉아 점점 안드로메다로 향하는 정신줄을 부여잡으며 모두가 마감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하지만 마감의 고통과 잡지의 재미는 정비례한다고 자신할 수 있을 만큼, 이번 설 합본 특대호에는 볼거리, 읽을거리가 많다. 예능의 새로운 흐름을 주도하는 여성 엔터테이너 송은이를 심층 인터뷰한 김혜리 기자의 글부터 올해 스크린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펼칠 다섯명의 신인배우를 조명한 특집까지 우리의 번아웃이 독자의 즐거움이 되길 바라며 준비한 기사들을 부디 훈훈한 마음으로 읽어주셨으면 한다.
이번호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없는 글도 있다. <씨네21>이 지난 두주에 걸쳐 보도한 <경계도시2> 스탭 인건비 미지급 논란 기사를 읽고 <디어 평양>(2006), <굿바이, 평양>(2011), <가족의 나라>(2013)를 연출한 재일동포 양영희 감독이 보내온 기고문이다. 그는 <씨네21>의 기사를 읽고 1998년 자신과 홍형숙 감독 사이에서 벌어진 저작권 침해 논란을 상기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양영희 감독은 22년 전 자신이 통역으로 참여했던 홍형숙 감독의 다큐멘터리 <본명선언>(1998)이 그가 연출한 일본 <NHK> 방송다큐멘터리 <흔들리는 마음>(1996)의 9분40초 영상을 무단으로 도용한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고 고백한다. ‘조선 국적’으로 한국에 입국할 수 없었던 그는 한국의 영화 담당 기자들을 수소문해 <흔들리는 마음>의 복사본을 우편으로 보내고, <본명선언>을 상영한 부산국제영화제측에 비교 시사회를 제안하며 저작권 침해 문제가 한국에서 공론화되길 바랐다. 국내 영화계에서도 이슈가 된 이 논란은 홍형숙 감독이 영상을 사용하는 데 양영희 감독의 합의가 있었다고 주장하며 해소될 기미를 보이지 않다가 영화 관계자들의 관심에서 잊혔다. 양영희 감독은 “과거의 일을 이제 와서 말하는 게 무슨 꿍꿍이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라면서도 “당사자들은, 마음속 깊은 곳에 박힌 가시를 쉽게 도려내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몇년, 길게는 몇 십년 동안 계속 생각을 합니다. 시간이 지나고 인생 경험이 쌓이며 당시 몰랐던 문제의 본질도 찾게 되니 더욱 힘들어집니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한국의 다큐멘터리 제작 관행과 영화인의 창작 윤리에 대해 경종을 울린 <경계도시2> 인건비 미지급 논란 기사에 부쳐 과거 해결되지 못한 <흔들리는 마음> 저작권 침해 논란을 다시금 공론화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양영희 감독이 이번 기고문을 통해 <흔들리는 마음>과 <본명선언>의 비교 시사회를 공개적으로 제안한 만큼 이 문제에 대한 논란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씨네21>은 <경계도시2> 관련 보도와 양영희 감독의 기고문이 독립영화계의 제작 관행과 구조적인 문제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길 바라며, 후속보도에 힘쓰고 토론을 위한 지면을 열어둘 것임을 밝힌다. 홀가분하지만은 않은 마음으로 시작하는 2020년이 다채로운 논쟁의 해가 되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