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송은이 인터뷰 - 작당모의의 명인
2020-01-30
글 : 김혜리
사진 : 오계옥

송은이는 약속시간보다 15분 이르게 도착했다. 하지만 차 문은 열리지 않았다. 스르륵 잠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어디서나 쉽게 잠들고 짧은 숙면 후 개운하게 깨어난다. 호기심 많고 부지런한 데다 갈 곳 많은 사람에게 주어진 작은 축복인지도 모르겠다. 15분 후 복숭아 핑크색 머리칼이 햇빛을 반사하며 팔락팔락 다가왔다. 지난 연말 <MBC 방송연예대상>에서 AOA와 셀럽파이브가 만든 공동 무대의 흔적이다. “이제는 춤꾼이 다 됐나봐요. 3주 연습하니까 몸에 익더라고요.” 2015년 <송은이&김숙의 비밀보장>(이하 <비밀보장>) 팟캐스트를 신호탄으로 그가 세운 콘텐츠 제작사 ‘컨텐츠랩 비보’가 내놓은 결과물 중 하나인 그룹 셀럽파이브는 웃음을 위한 1회적 프로젝트를 넘어, 무대 위의 여성이 보여줄 수 있는 멋의 영역을 넓혔다. 세 번째 신곡 <안 본 눈 삽니다> 준비 과정을 보여준 예능 프로그램 <판 벌려-이번 판은 한복판> 최종회를 보면서 나는 웃고 울었다. 콘서트 형식을 취한 최종회에 모인 셀럽파이브의 팬들은 공연자를 동경하는 대신, 자신과 멀지 않은 모습의 여자들이 잠재된 재능을 폭발시키는 광경에 동지적 흥을 느끼며 팬덤 이름대로 온몸으로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었다. “송은이가 흐름이다”라는 팬의 플래카드는 여러모로 진실이다. 송은이의 컨텐츠랩 비보가 내놓는 기획들은 캐스팅이나 콘텐츠 면에서 남성 중심 공식을 반복하는 방송사 예능 프로그램의 단조로움에 지친 대중과 여성 예능인들에게 낭보가 되었다. 그가 판을 벌이는 방식 역시 흐르듯 자연스럽다. 셀럽파이브의 신보 준비가 하나의 프로그램이 됐고, 팟캐스트의 한 코너에서 <김생민의 영수증>을 독립시켰다. 유튜브 채널 <비보티비>로부터 <전지적 참견시점>이 나왔고, <비밀보장>의 고민상담 포맷과 올리브 채널의 필요를 종합해 <밥 블레스 유>가 탄생했다. 지난해 가을에는 매니지먼트사 미디어랩 시소가 비보의 조직도에 추가됐다. “셀럽파이브가 앞으로 할 일이 많은데 모여 있으면 좋을 것 같았어요. 마침 봉선이는 소속사가 없었고 저와 신영이는 계약이 만료됐고요.” 기사를 마감하는 현재는 유명인의 집을 털어 안 쓰는 물건을 기부하는 <김숙TV> 유튜브 채널이 열렸다는 트윗이 퍼지는 중이다.

영화를 보면서 이따금 송은이를 생각하곤 했다. 자그마한 체구로, 끝내는 모두가 자기에게 귀기울이게 만드는 <주노>의 엘렌 페이지를 볼 때 그랬고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이 개봉했을 때에도 기획자 송은이가 이 영화를 얼마나 사랑할지 눈에 선해 두근거렸다. <그녀들을 도와줘>에서 바깥세상이 어찌 돌아가건 웨이트리스 동료들에게 살 만한 일터를 만들어주려고 종일 분주한 지배인 리사(레지나 홀)를 보면서도 자연스럽게 송은이의 이름이 떠올랐다. “아무개처럼 웃긴 애는 본 적이 없어요.” 인터뷰 도중 송은이는 여러 명의 후배를 같은 말로 칭찬했다. 닮은 데 없어 보이는 선후배들이 송은이의 곁을 편한 장소로 여기는 까닭은, 그가 세상 누구보다 자신이 지닌 장점을 크게 보고 그것으로 어떻게 함께 더 행복해질 수 있을지 열심히 상상해주기 때문일 것이다. “따뜻한 사람을 넘어서 큰 사람이에요. 연예계 종사자는 나 잘되는 길에 대해 관심이 많기 마련인데, 송 선배는 ‘이타적’이라는 단어를 쓸 수밖에 없어요.” 후배 박지선의 표현이다. 이 사람의 선의와 의지, 믿음과 욕망의 일치, 호쾌한 웃음과 예리한 감식안은 어떻게 공존하는 걸까? 우리는 귤을 까먹으며 대화를 시작했다.

-졸업한 중고등학교가 서울 강서구 학교들이던데요. 강서구 토박이인가요?

=태어난 동네는 서교동이고, 엄마 말로는 제가 복덩이라 아빠 사업이 잘돼 집을 사서 용산구 청파동에서 살았어요. 그러다 어느 집안에나 하나씩 있는 보증 사건이 터져 4학년 때 목동으로 이사해야 했죠. 그런데 예전 학교 친구들과 더 지내고 싶어서 4학년 2학기까지 새벽 5시 반에 일어나 버스 두번 갈아타고 청파동으로 학교를 다녔어요. 그렇게 학기 나머지를 마치고 5학년에야 전학을 했죠. 먼 길이지만 똘똘하게 잘 통학해서 부모님이 걱정하지 않았나봐요.

-어떤 분위기의 가족이었어요?

=제가 아빠와 엄마를 반씩 닮았어요. 아빠는 늘 놀 궁리, 가족여행 갈 궁리를 하셔서 여름방학의 좋은 기억이 많아요. 포니 투 픽업 자동차의 짐칸을 숙식할 수 있게 개조해서 캠핑카처럼 타고 다녔어요. 엄마는 목소리가 크고 단호한 면이 저와 닮았어요. 2살 터울 언니 오빠 아래 셋째였는데 내내 막내로 살다가 8살 때 남동생이 태어났어요. 눈이 커다란 막내를 삼남매가 아주 예뻐했죠. 언니랑 저랑 우리처럼 다리 짧으면 안된다고 무릎 아래를 쭉쭉 잡아당겨주곤 했어요.

-사남매의 셋째라는 자리가 성격 형성에 끼친 영향도 있을까요?

=잘 모르겠고 제가 어려서부터 길눈이 밝았대요. 엄마가 할아버지 환갑 준비하러 시장 포목점에 저를 데려갔는데 돌아보니 없더래요. 전 지금도 시장 지리가 기억나는데 포목점 앞으로 먹는 좌판이 죽 있었거든요? 떡볶이 가게 구경하다보니 엄마가 안 보이고 작은 키로 찾아봤자겠다 싶어 혼자 집으로 갔어요. 그런데 엄마는 시장 가는 길이 멀고 복잡해서 아이 혼자 집을 찾아갔으리란 생각을 못하고 실종신고까지 마치고 돌아왔더니 제가 태연히 언니 친구들이랑 놀고 있었대요. “이놈의 계집애!” 하면서 빗자루 코스로 넘어갔죠. (웃음) 6살 때는 언니가 밤이 늦어도 엄마가 안 온다고 무서워서 울고 있었더니 제가 “에이, 엄마가 오지. 안 와?” 하면서 놀더래요. 어려서부터 겁이 없었어요.

-학교에서도 학급의 가수이고 학교 재주꾼이었을 것 같습니다.

=쭈뼛대거나 겁내는 일은 없었어요. 아이들이 놀고 싶어 할 때 바람잡는 역도 하고 야간자습 시간에는 돈 걷어서 담 넘어 아이스크림 사오고. 언젠가는 야간자습하다가 문득 중학교 친구들이 보고 싶어서 그 애들이 진학한 다른 고등학교에 찾아갔어요. 가서 뭘 크게 한 건 없고 그 학교에서 야간자습을 했죠. (좌중 폭소) 선생님이 “얘는 뭐니?” 하니까 제 친구가 “중학교 친구인데 명덕여고 다녀요” 그랬어요. 딴짓을 하는 것도 아니고 공부를 하고 있으니 야단칠 수도 없어서 “어, 그래” 하고 마시더라고요. 기본적으로 저는 선생님이 혼낼 수 있다는 생각이 그리 두렵지 않았어요.

-가족 안에서 안정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사소한 두려움이 없지 않나요?

=엄마의 영향이 컸을 거예요. 뚝심 있고 겁이 없으세요. 어렵게 우리를 키우시는 걸 보면서도 가난해서 힘들다는 생각은 안 해봤어요. 엄마가 우동 장사를 하실 때도 “우리 엄마 우동 맛있다”고 자랑하며 친구들은 자주 데려갔어요. 한번은 “엄마가 이런 장사하는 거 부끄럽지 않니?”라고 물으셔서 “아니? 난 좋은데?”라고 대답한 기억이 나요. 한 때 잘살던 시절이 있어서 염려하셨나봐요.

언제 어디서든 “야, 모여봐봐!”

-서울예대에 진학할 때도 거침없이 선택했나요?

=지금처럼 대학에서 사람이 나와 진학설명회를 하던 시절도 아니라 연극영화과에 대해서도 잘 몰랐어요. 그저 막연하게 애들하고 작당모의해서 뭘 만드는 걸 좋아했어요. 중3 때는 <더티 댄싱>, 고등학생 때는 왜였는지 <사운드 오브 뮤직>에 꽂혔는데 합창대회에서 끼 있는 친구들을 모아 <사운드 오브 뮤직>의 한 장면을 뮤지컬 라이브로 공연했어요. 피아노 치는 친구를 한명 섭외해서 반주시키고요. 마리아요? 저는 폰 트랩가 남매 중 끝에서 두 번째 아이 역이요. 그런데 이 공연이 인기를 끌어서 주변 학교와 교회에서 초청도 들어오고 순회공연까지 다녔어요. 10만원 정도 개런티를 주기도 했는데 리더인 제가 똑같이 나눠줬어요. 그때부터 유구한 N분의 일의 역사가 시작됐죠. (웃음)

-팔자군요.

=수학여행을 가든 뭘 하든 저는 항상 “야, 모여봐봐!”를 외쳤어요. 고2 때 <사운드 오브 뮤직> 공연으로 공동 작업의 재미를 맛본 거예요. 명덕여고는 학과 공부를 많이 시키는 학교라 연극반은 없고 합창반이 유일한 클럽활동이었는데 1학년 때 오디션을 봐서 엘토 파트로 뽑혔어요. 주황 치마, 초록 상의의 유니폼이 치욕적으로 촌스러웠지만 학교 밖에서 공부 아닌 무엇을 하는 시간이 좋았어요. 그러다 합창반의한 학년 상급생 언니와 각별히 친해졌는데, 언니 없는 집에 가서 “어머니, 저 왔어요” 하고 밥을 얻어먹을 정도였어요. 언니가 고3이 되어 연극영화과 입시 준비를 하게 됐고 외부에서 올린 공연을 보고 뒤풀이까지 따라갔어요. 안경 낀 분이 일어서서 설명하고 있었는데 알고보니 조교였고 제게 듣는 눈이 참 좋다고 하면서 연기수업을 받도록 도움을 주셨어요. 동국대를 목표로 준비했는데 불운도 겹치고 해서 자연스럽게 서울예대 시험을 봤죠. 당시에 연극영화과는 후기대가 없었거든요. 서울예대 입시에서는 시험장에서 교수님이랑 한 20분간 이야기를 주고받고 노래도 두어곡 부르고 나왔어요. 수험 안내하는 선배가 넌 합격할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어떤 분들에게는 상당히 편애를 받는 유형인가봐요.

=그럴지도요. 험하다는 예능계 생활을 하면서도 집합당해본 적이 없어요. 왜냐하면 기합당하는 시간에 저는 항상 선배 중 누군가가 시킨 심부름 중이었거든요. (웃음) 체벌에 대해서도 친구들에게 건너들은 것뿐이죠.

-야무지고 미더워 보여서 심부름을 전담했나봐요. 대학 진학할 때만 해도 가수나 뮤지컬 배우의 길을 생각했을 텐데요.

=오리엔테이션을 갔더니 같은 조에 흔치 않게도 고교 선배 언니가 있었어요. 따라서 탈춤 동아리 예대민속연구회에 가입했어요. 그래서 제가 손병호 선생님과 예능 프로그램에서 탈춤을 출 수 있었죠. 예대 민속연구회에는 류승룡 오빠, 김진수 오빠 계보가 있거든요. 개그 동아리는 제 의지로 가입했어요. 안재욱씨가 개그 동아리 앞 기수 회장이었죠.

-대중을 상대로 한 공연자의 길을 생각한 셈인데 동경하던 연예인이 있었나요?

=전영록 선배님을 좋아했어요. 가수이자 배우인 데다 노래도 만든다고 하니 엄청나 보였어요. <돌아이> 포스터 받으러 새벽 6시에 명보극장, 중앙극장에 줄을 섰어요. KBS 개그맨으로 다닐 때 방송국 앞 문화센터에서 주 2회 ‘이정선의 기타교실’을 다니며 기타 연습을 했어요. 작곡은 소질이 없어요. 쓰겠다고 흥얼거리다 보면 어디서 들어본 곡이라 다같이 부를 수 있어요. (웃음)

-저는 특별한 이유 없이 모태 신앙일 거라고 생각해왔는데 기독교 신앙을 가진지 15년 정도 되셨더군요. 신앙이 일하는 태도에 일으킨 변화가 있을까요?

=2003년에 캐나다의 이성미 언니가 놀러오라고 하셨어요. 비행기에서 지루할까봐 책 몇권을 골랐는데 그중 한권이 공지영 작가의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이었어요. 유럽에 수도원이 많으니 그곳들을 기점으로 여정을 짜볼까 하는 단순한 생각이었는데 성미 언니 집에서 지내는 동안 기도와 찬양을 자연스럽게 보며 생활했어요. 그러고는 돌아와서 전부터 교회 같이 가자고 했던 최강희씨에게 연락을 했어요. 그때까지는 권유를 받아도 일요일 아침에 재밌는 TV 프로그램이 얼마나 많은데 교회를 가냐고 거절했었거든요. 예배는 없고 소모임을 하는 몇몇 분이 계셨는데 그저 한주 동안 겪은 일, 생활에서 만난 예수님 이야기를 하는데 이유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어요. 충격적이게도 강희는 이 일을 기억도 못해요. 그 뒤로는 기도하며 홀로 조용히 있는 시간이 좋아졌어요. 원래는 명상을 제일 싫어했는데 말이죠. 생각을 왜 혼자 하냐, 사람들과 떠들고 이야기해야지라는 게 평소 입장이었거든요. 철저한 인본주의예요. 사람이 먼저다! 그런데도 모든 일이 억지스러움 없이 순연하게 일어났어요. 성경을 읽으면서 크리스천으로서 어떤 영향력을 줄 수 있을까 하는 작은 고민이 시작된 것 같아요. 말을 많이 하는 직업인데 웃긴다고 까불다가 세상에 나쁜 영향을 주지 않을까 조심하게 되는 거예요. 순발력과 감각이 중요한 예능에서 말수가 줄어드는 병이 걸렸죠. 그래서 두 가지를 기도했어요. “저는 이 일이 너무 좋고, 예수님도 어디 말싸움에서 진 분이 아니시니 그런 말들을 하지 않고도 웃길 수 있게 해주세요”가 하나였고 두 번째는 마흔 이후 평생 가질 수 있는 직장을 찾게 해달라는 기도였어요.

-선한 영향력, 좋은 영향력이라는, 송은이씨가 자주 쓰는 표현을 2019년 MBC 연예대상 소감에서 여러 여성 코미디언들이 쓰는 걸 보고 놀랐습니다. 송은이씨로부터 퍼져나간 걸까요?

=뭉클하고 기분 좋았어요. 특히 다른 누구도 아닌 안영미 입으로 듣고 놀랐어요. (웃음) 저한테 하도 많이 들어서일 수도 있어요. 셀럽파이브 동생들과 매일 새벽 2, 3시까지 연습도 하지만 잡담하고 놀기도 하거든요. 영미는 불교 신자인데 우리 무대 오르기 전에 다치지 않게 해달라고 손잡고 기도하면 영미가 “아멘”을 해요.

찰흙 덩어리가 점점 커지는 느낌으로

-현재 몇개나 되는 단톡방에 들어 있나요?

=세어보지 않았어요. 아주 많죠. 완전히 무음으로 해놓고 나중에 확인해 답을 다는 편이에요.

-그렇게 많은 사람과 널리 관계를 맺으면서 그중에서도 김숙씨가 특별한 파트너인 이유가 뭘까요? 두분 사이 화학식이 뭔지, 좁게 사귀는 사람의 단짝도 아니고 두루 친구 많은 사람에게 있는 단짝이라 더 궁금해요.

=팟캐스트 <비밀보장>이 잘된 이후로 많이 받는 질문이에요. 솔직히저는 숙이만큼 웃긴 애를 본 적이 없었어요. 그래서 언제나 숙이와 이걸 해보자, 저기를 가자 도모해왔죠. <비밀보장>도 그것의 자연스런 연장이었어요. 일단 숙이는 다른 후배들과 달리 저를 어려워하지 않아요. 숙이가 저보다 2년 늦게 데뷔했는데 20대 고생하던 시절에 만난 전우애 같은 것도 있죠. 처음에는 ‘이상한 애’라고 여겼고 숙이도 선배에게 사근사근하게 대하는 스타일이 아닌데 어느 순간 숙이 이야기를 듣다보니 ‘이상한 애’가 ‘웃긴 애’가 됐어요.

-데뷔 초부터 아셨다면 혹시 알을 깨고 나온 아기 오리가 처음 본 상대를 어미로 보는 각인 현상 아닐까요?

=숙이가 그런 과는 아니죠. (웃음) 숙이네 집이 일종의 사랑방이어서 일 많은 애, 조금 일하는 애, 일 없는 애 다같이 모여 놀았어요. 부업한다고 숙이가 접시 그리고 있으면 제가 쓸데없는 일 하지 말고 개그 짜라고 잔소리하고 숙이는 “언니! 이게 떼돈을 번대!”(김숙의 성대모사로)라고 대꾸했죠. 결국 사기당하고…. (좌중 웃음) <개그 콘서트> 들어오라는 말 들었다는 소식 알려줬을 때는 “어, 무조건 해. 언니가 같이 아이디어 짜줄게” 했더니 “나는, 못할 것 같은데” 그랬어요. 숙이는 아주 웃기고 재미있는데 지구력과 집중력이 달려요. ‘컨텐츠랩 비보’에서 회의할 때도 그래서 직원들이 “이사님 주의력의 한계는 30분이다. 그 안에 중요한 이야기 다 해야 한다!”고 곁가지로 새지 않도록 준비해요. 하하.

-2014년 송은이씨와 함께 출연한 <택시>에서 김숙씨가 한 말이 인상적이었어요. 30대 싱글 여성이 예능에서 부각될 때는 너무 어렸고, 30대 후반이 되니 시집 식구, 육아 이야기하는 여자들의 예능이 많아졌다는 내용이었어요. 하지만 그로부터 5년간은 <비밀보장>을 통해 시대랑 잘 조우한 것 아닌가요?

=<택시> 출연했을 때가 <비밀보장> 팟캐스트 막 시작한 즈음이었어요. 그걸 들은 PD님이 재미있어해서 <최고의 사랑>에 숙이가 캐스팅됐고 잘해냈죠. 평소에 우리에게 하던 이야기들, “어디 조신하지 못하게 남자 목소리가 담장을 넘어?” 같은 말이 방송에서 나갈 수 있게된 시기였어요. 예전 같으면 심의규정을 떠나 보는 어른들이 불편한 멘트라는 이유로 방송되지 못했을 거예요. 숙이가 기분나쁘지 않게 잘 살렸고 통쾌하다는 반응이 나왔어요. 때가 온 거죠.

-송은이씨도 과거에는 웃기는 코미디언과 구분해 진행자형 코미디언이라고 분류되다가, 지난 5년간 여성 연예인을 보는 관점과 여성 시청자들의 목소리가 달라지면서 적극적으로 장점을 평가받고 있는 케이스잖아요.

=대개 여자 코미디언들은 망가지면서 웃긴다고들 생각하죠. 제가 기획을 하다보니 올 라운드 플레이어로 봐주시는 것 같은데 실은 20년 전부터 <느낌표> 김영희 PD님이 기획한 <얘들아 헬멧 쓰자> 같은 일반인과 진행하는 방송을 많이 해서, 제 원숏보다 다른 분들의 이야기가 잘 전달되는 게 중요했어요.

-송은이씨 목소리는 참나무 같아요. 목공인 앞에서 제가 감히 이런 비유를! 재질이 단단한 나무가 참나무 맞나요? 목소리가 공기 반 소리 반이 아니라 소리백이에요.

=단단하기로는 오동나무죠. 저희 어머니가 성량이 크세요. 제 웃음소리가 너무 크고 목소리가 듣기 싫다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무한도전>에서 하나 아쉬웠던 점을 꼽자면 여성 게스트를 소화하는 방식이었어요. 김연아, 이나영씨 같은 게스트가 나오면 남자 출연진이 떠받드는 행동으로 웃음을 자아내려 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외모나 ‘여자답지 않음’을 놀리면서 코미디를 만들려는 패턴이 보였어요. 그래서 무한걸스가 초대됐던 에피소드도 속상해하며 봤죠. 유재석씨와도 가까운데 아이디어의 부족에 관한 아쉬움을 터놓고 말한 적은 없었나요?

=재석씨에게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은 없어요. 무한걸스는 소개팅 포맷으로 출연했죠. 저는 제작진이 컨셉을 잡아 초대하면 그 안에서 맞짱까진 아니더라도 동등하게 연기하길 원해요. 그런데 당시 <무한걸스>는 <무한도전>의 스핀오프 격으로 (쉽게 간다는) 욕을 많이 먹던 터라 <무한도전>에 출연하면 도움이 될 것 같다고 판단했어요. 우리가 얻을 것이 있었던 거죠. 알게 모르게 저나 무한걸스 멤버들이 승부욕이 있어서 어떤 포맷으로 웃기건 중심은 지키자는 생각을 공유하고 있었어요. 이제 신영이가 남자 옆구리 차는 모습은 방송에 나가도 남자가 여자에게 그렇게 하는 건 못 나가는 시대가 됐죠. 저는 본질적 불평등에 대해 목소리를 낼 준비와 공부는 안돼 있고 조리 있게 말을 못하지만, 목소리 내는 분들 덕분에 변하고 있는 건 맞아요. 남자 예능인들이 탄탄히 짜인 판에서 더 많은 기회를 갖는 건 사실이거든요. 소속사도 그렇고요. 우리가 그러지 못했음을 전에는 의식하지 못했지만 안 순간부터는 나도 변해야 하고, 다만 나 혼자 열심히 하는 걸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하며 일하고 있어요. 목소리를 내는 사람도 있고,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람도 있는 거라고.

-<무한걸스>는 2013년 종영했지만 당시 팬들이 <비밀보장>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다른 팬덤도 많이 보아오셨는데 어떤 차별성이 있나요?

=찰흙 덩어리가 점점 커지는 느낌이에요. 눈덩이요? 눈보다 찰흙이 단단하잖아요. <비밀보장> 팬들은 그냥 우리 방송이 재미있어서 듣다가 다른 방송이 재밌으면 그리로 가서 듣는 차원이 아닌 것 같아요. 보내주시는 사연이 갈수록 깊어지고 <비밀보장>을 향한 메시지가 심상치 않아요. 옛날에도 웃음 주는 일이 의미 있고 때로 숭고하다는 생각은 갖고 있었지만, 청취자/시청자와 진짜 소통을 통해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일의 의미가 확장되는 경험을 했어요. 숙이랑 <비밀보장>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이야기해요. 광고가 들어오고 수익모델이 있는 프로가 됐지만, 절대 그것 때문에 계속하지는 말자는 것이 저희의 합의예요. 물론 진지하게 마주 보고 대화하는 그림은 아니고 나란히 앉아 우걱우걱 뭘 먹으며 “야!, 그래도 우리가 돈 때문에 하진 말자!” “그렇지, 언니. 모양 빠지게 그러면 안되지!” 하는 분위기죠. 수익이 동기가 되면 방송 밀도가 떨어지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빠뜨리고 끌려갈 수 있어요.

-많은 사람들이 2015년 팟캐스트 시작과 2016년 컨텐츠랩 비보의 회사 창립이 2010년대 후반 송은이씨 커리어를 만들어냈다고 여깁니다. 하지만 어찌보면 <무한걸스>가 잠재적으로 여기에 앞선 기점이 아니었나 싶기도 해요. 여성 예능에서 어떤 점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나요?

=남녀가 같이 출연하는 예능 프로가 있었지만 거기서 여성 출연자가 주도적 역할을 하진 않았죠. <무한걸스>는 특이한 장르였어요. 지금 다시 보면 말도 안되는 거친 시도를 많이 했죠. 그래도 <무한걸스>를 통해 여자들과는 어울리지 않는 줄만 알았던 연대라는 단어가 친근해진 것 같아요.

<비밀보장>, 재미 추구는 기본 고민은 장치

-비보의 출범에 대해 원더우먼 페스티벌에서 들려주신 이야기가 좋았습니다. 주어지는 무대가 없다고 연기를 쉬면 기량이 줄기 때문에 근육 손실을 막기위한 운동장을 짓듯 만들었다고 했죠.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 어떤 무대가 주어질지 모르니까 감을 잃으면 끝이라고 숙이하고 이야기했어요. 그렇게 팟캐스트 <비밀보장>을 시작했는데 재미있을 법한 구성으로 녹음을 하고 보니 너무 방송스러운 거예요. 고심하다가 음악 없이 숙이가 게임에 빠져 있을 때 녹음을 시작해버렸더니 괜찮았어요. 1회는 세 차례 녹음한 분량에서 좋은 부분을 편집해 만든 거예요. 만약 녹음해도 마음에 안 들면 안 내보낼 수도 있다는 점이 좋았어요. 정경미, 김경아, 조승희가 하는 <투맘쇼>도 너희들끼리 엄마 셋이 하는 쇼를 해보라고 권했는데 자기들끼리 잘 만들어왔어요. 처음에는 두려워했어요. “너네 다 대본 쓸 줄 아는데 뭐가 걱정이야. 무대 올릴 때 기술적으로 어려우면 그건 내가 도와줄 수 있어. 무조건 해. 잡담이라도 해”라고 떠밀었어요. 이제 <투맘쇼>팀도 비보 같은 작은 회사를 만들었어요.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에 올리고 3, 4년 계속하니 여러 지자체가 초청해서 ‘어린이집 보내고 오세요’라는 타이틀로 11시대 공연을 하고 있어요.

-팟캐스트 <비밀보장>의 출범은 가까이 지내던 김숙씨와 작가들과 브레인 스토밍한 결과인가요? 아니면 송은이씨의 기획을 주변에 제안한 건가요?

=숙이와 제가 팟캐스트를 한다면 객관적으로 봐줄 제삼자가 필요했어요. <송은이·신봉선의 동고동락>부터 오래 함께한 김종선, 조혜정 작가에게 작가들이 잘할 수 있는 영역을 부탁했어요. 마침 언론에서 ‘결정장애’가 만연했다는 보도를 보고 고민 상담을 하자고 제가 아이디어를 냈고 제목은 숙이가 정했어요. ‘아무것도 아닌 문제들인데 우리가 결정해주면 어때? 우리 답이 맞는지 여부는 해본 분들이 판단하시고 우리가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여기까지다’라는 느낌으로.

-<비밀보장> 이전부터 <우리 애가 달라졌어요> 같은 프로그램도 있었지만 시청자, 청취자의 고민을 상담한다는 포맷에 꾸준히 강하십니다. 성공적 상담의 핵심은 뭘까요? 상담자가 얻는 즐거움은 무엇일까요?

=재미 추구는 기본이고 고민은 장치라고 생각했죠. 사실 <우리 애가 달라졌어요>부터 제 방송관이 달라졌어요. 무수한 가정을 다녀보면 결국은 ‘감정의 대물림’이라는 문제 하나로 귀결돼요. 아이는 나의 거울이라잖아요? 원인을 거슬러가면 80%는 부모의 감정이 아이에게 물려진 결과이고, 더 들어가면 부모가 조부모, 시부모에게 받는 스트레스가 잘 해소되지 않다가 아이에게 흘러가는 거예요. 그때 깨달았아요. 내가 방송에서 하는 말로 기분이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겠지만, 나쁜 감정을 주면 그걸 받은 사람이 세상에 나가 다른 이에게 독을 전하겠구나. 주변에서는 어떻게 말을 일일이 반성하냐고 하지만, 저는 제가 삭이는 편이 낫지 세상에 퍼져나가는 것이 더 절망적이에요. 한동안 자신이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준다는 일종의 ‘바이러스 이론’에 빠져 있었거든요. 젊었을 때 인생을 즐겁게 살자가 모토였다면 이젠 나이에 따른 책임을 타인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일을 통해 스트레스 없이 다할 수도 있겠다 싶어요. 해결은 못하더라도 하다못해 “뭐 그렇게 개떡 같은 상황이 있어요!”라고 말해드리면 “아, 개떡 같은 상황이구나” 하면서 무게를 줄일 수 있지 않을까요. 때로는 ‘이건 법원 가야 하는데?’ 싶은 사연도 와요. 그런 경우는 글로만 사안을 정확히 알 수 없으니 실수할까봐 채택을 안 하죠.

-조혜정 작가에게 들으니 다섯명이 무급으로 컨텐츠랩 비보를 시작했다가 조금씩 비보의 직원이 늘었는데 회계 다음으로 공연팀을 채용했다고 들었어요. 공연기획이 비보가 장기적으로 추구하는 영역인가요?

=꾸준히 하고 싶었는데 2년에 한번씩 꾸준히 하고 있죠. (웃음) 2016년에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로부터 의뢰받아 저와 프로듀서 한명이 기획했어요. 외주도 들어오지만 자체 기획 위주로 공연을 만들어가려고 해요. 작가님들 경우는 월급을 받지만 외부일도 자유롭게 할 수 있어요. 회사 분위기는 직원들이 뭉텅이로 너무 친해서 걱정될 정도예요. 신입 직원이 어색할 것 같아 마음이 쓰이죠. 지금은 여성 직원이 압도적인데, 매니지먼트 회사를 세우면서 남성 직원도 늘어날 것 같아요.

-지난해 매니지먼트사 미디어랩 시소를 설립했습니다. 설마 비보의 비읍을 다음 한글 자음 시옷으로 바꿔 작명하신 건 아니죠? (웃음)

=시소는 비보의 자회사예요. 모음을 이오로 맞춰보려고 했죠. 또 시(see), 소(saw)라는 뜻으로 우리가 만드는 콘텐츠와 소속 연예인을 더 많이 보고 또 보셨으면 하는 뜻을 담았어요. 그리고 균형은 언제나 중요하니까 놀이터의 시소도 생각했고요. <밥 블레스 유>는 담당 PD님과 작가들이 지은 제목이었고요. 참, <밥 블레스 유>가 새 시즌에 들어가요. 배우 여러분도 게스트로 모시려고 섭외 중이에요.

-개인적으로 특히 반한 배우가 있나요?

=사실 제가 이정은 배우 팬카페 활동을 하고 있어요. 회원 37명일 때 가입했는데 지금 800명이 됐어요. 오래전부터 연기 잘하시는 건 알았고 김혜자 선생님과 출연하신 드라마 <눈이 부시게>도 정말 좋았죠. 그런데 영화 <미성년> 보고 완전히 반했어요. 김혜수 선배랑 <내가 죽던 날> 촬영하신다는 소식을 아는 영화 PD님에게 듣고 이정은 배우와 일면식도 없는데도 크랭크인하는 날 커피차를 보냈어요.

-3집을 낸 셀럽파이브는 송은이씨와 김신영씨의 시너지가 열쇠로 보입니다. 김신영씨의 연기를 보고 있으면 우리 주변의 천재 중 한명 아닌가 싶어요.

=어느 날 신영에게서 전화가 와서 뮤직비디오를 찍고 싶다고 했어요. 도와주마 했더니 그게 아니라 춤을 배워서 같이해야 한다고 했어요. 그즈음 <무한걸스> 멤버를 다시 모아 뭔가 할 수 없을까 생각하던 중이라 봉선과 영미에게 제안을 했고 승낙을 받았어요. 신영이 김영희에게 촬영을 맡겼다가 무대 대형이 홀수가 나아서 영희도 합류했죠. 여자 코미디언들이 한창 “내가 셀럽이 돼보니까”라고 우스갯소리를 하던 시기라 셀럽파이브로 이름이 결정됐어요. 유튜브에만 올리면 끝인가 했는데, <쇼 챔피언> MC인 신영이가 어느 날 스케줄을 잡아왔어요. “본부장님이 1월 18일 무대에 서게 해준대.” 그래서 춤뿐 아니라 노래까지 녹음하게 됐고 일이 커졌죠.

-처음부터 구두를 벗고 공연할 계획이었나요?

=신발을 신으니 발차기가 날렵하지 않았어요. 스타킹 올이 나가도 신경 쓰지 않아요. 우리에게 스타킹은 보온의 도구일 뿐.

사람을 끝까지 사랑하기

-아무 데서나 갑자기 잠들고 쪽잠을 잘 주무시는 걸로 알아요. 성실하고 호기심이 많은 데다 업무까지 과도해서 온 증상일까요?

=그런 것치고는 수면의 질이 나쁘지 않아요. 어떤 사람은 먹어야 풀리고 다른 사람은 수다를 떨어야 기운이 생기잖아요. 제게는 잠이 최고예요. 불면증 앓는 분들에게는 호사스럽게 들릴 텐데 잠을 너무 잘 자요. 꿈도 잘 안 꿔요. 해 지면 자고 동 트면 눈뜨고 창조의 섭리대로. 하하. 코를 많이 골아 수면검사를 했더니 뜻밖에 무호흡은 없더라고요. 숙이는 50여초씩 무호흡이 있어요. 이 얘기를 들은 윤정수씨가 물질을 해보라고 했대요. 그 정도면 해녀 수준이라고. (폭소) 도파민 과다랬나 결핍이랬나 더 푹 잘 수 있는 약을 받았는데 웬걸 “이걸 먹으면 얼마나 질 좋은 수면을 할까?” 하는 신나는 생각과 호기심에 들떠서 오히려 잠을 못 잤어요. (웃음)

-송은이씨에 대해 주변에서 가장 많이 듣는 표현이 “챙겨줬다”예요. 코미디언 박지선씨도 최초의 기억으로 비타민제를 챙겨준 일을 말하더라고요. 그리고 <김생민의 영수증>(이하 <영수증>)에 게스트로 나갔을 때 송은이씨가 직접 출연료 정산건으로 연락해서 놀라고, 출연료를 보통 KBS 예능 프로그램의 그것보다 두둑히 “챙겨주셔서” 다시 놀랐다고. (웃음)

=<영수증>은 비보와 몬스터 유니언이 외주 제작사였는데, <영수증>이 팟캐스트 <비밀보장>의 한 코너였기 때문에 지적재산권이 저희에게 있었어요. KBS에서 제안받았을 때 저작권 인정받지 못하면 안 하겠다고 버텨서 인정받았어요. 외주사로서는 처음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생각지도 못한 외주 제작사가 됐고 직원을 충원해서 지금의 13명에 이르게 됐어요.

-저도 직업상 다른 사람의 장점을 자주 찾아요. 하지만 타인의 장점은 내게 필요한 만큼만 보다가 멈추기 마련인데 송은이씨는 끝까지 남의 매력을 파고들어 어디다 어떻게 쓸지까지 끝장을 보시는 것 같아요. 보통 자신 외에는 그렇게 들여다보기 어려울 텐데요. 김한희 매니저의 노래 실력을 <전지적 참견시점>에서 보여준 것도 작정한 것 아닐까 짐작했어요.

=작정했죠. 한희 매니저가 부른 소절이 더 많고, 맞아요. 음역도 한희 위주로 잡았어요. 저도 예능 시작했을 때는 일등하고 싶은 시절이 있었어요. 그런데 상당히 일찍 숙이처럼 웃기는 재능보다 옆에서 웃기게 해주는 쪽에 더 재주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처음 깨달았을 때는 속상하기도 했어요. 이것도 재능인가. 그러다가 내가 토스해준 멘트로 웃겼으니 저애가 나한테 고마운 마음을 가질까? 고마워해줬으면 좋겠다 하는 시기가 잠시 있었고요. (웃음) 시간이 더 흐르니 그 자체가 즐거워지는 경지가 됐어요. 교회에 다니기 시작한 시점과 맞물린 변화예요. 주제 파악을 정확히 했고 다른 사람의 장점을 찾아 웃기게 만드는 일이 더 재미있고 가치 있다고 여기게 됐어요. 사람을 적당히 보지 않고 끝까지 사랑하는 게 뭔지 생각해요. 하하, 임상실험을 하는 거죠. 실험당하는 걸 그들이 모르죠. (웃음)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 남성 스타 예능인 이름을 딴 라인이 언급되고 꽂아넣는다는 표현도 썼죠. 남자들에게는 꽂아넣을 기성 판과 인맥이 있지만 여자 예능인들에게는 아예 적용하기 힘든 말이에요. 송은이씨는 그래서 판 자체를 새로 만든 경우인데, 만약 기성 예능에서 여성 연기자들을 수용하고 주도권도 잡을 수 있었다면 여성만의 기획을 안 했을까요?

=저도 생각해봤는데 예능은 놀이터 같아요. 놀이터를 보면 어쩔 수 없이 남자애들끼리 모여 놀고 여자애들의 놀이도 따로 있잖아요. 본질적으로 좀 다른 게 아닌가 싶어요. 전원 남자 예능이 있다면 전원 여자 예능도 있어야죠. 남자들이 더 적극적이어서 많이 활동한다면 우리도 주저하지 말자 싶었어요. 판을 짜다보면 큰 판을 바꿀 수도 있지 않을까.

-여성에게 파티 메뉴를 짜라고 하면 본인 식성보다 참석자들 취향을 고루 고려해서 고민하는 반면 남자들은 한쪽으로 몰아간다고 해요. 사고방식의 차이가 있는 거죠. 그래서 가령 10명의 위원회에 여성을 3명 포함시킨다고 여성의 입장이 30% 반영되지 않는다고 해요. 적어도 과반수가 돼야 평등의 효과가 나온다는 글을 본 적이 있어요.

=성비 문제를 파고 들어가면 결국 교육인데, 우리 아빠는 단 한번도 “여자가 왜 그러냐”는 말을 안 했어요. 제가 엄마, 아빠 양쪽으로 용돈을 받아내도 돈도 써봐야 버니까 내버려두라고 하셨어요. 자동차 수리하는 걸 옆에서 구경하면 저리 가라고 하지 않고 기계를 설명해주셨고 낚시도 데리고 다녔죠. 그래서 남자들 사이에서 내 의견을 주장하는 일이 두렵지 않았어요. 학교도 여중, 여고를 나왔고 예대에서도 제 의견을 무시당한 경험이 별로 없었어요. 졸업하고 재석씨랑 휘재씨랑 같은 소속사에 있을 때도 프로그램 섭외가 들어오면 “뭘 걱정해? 이렇게 하면 되지” 하고 의견을 제일 많이 냈고 두 사람도 잘 따라줬어요. 그래서 제가 사회가 얼마나 기울었고 현실이 심각한지를 잘 몰랐던 거예요. 그런데 숙이는 그런 경험을 했어요. 딸만 있는 집에서 막내로 자랐거든요.

-운전을 좋아하시죠? <최고의 사랑> <밤도깨비> 같은 프로그램에서도 이동할 때 차를 직접 운전하는 장면이 많았고 카센터가 장래 희망인 걸로 알아요. 자동차와 운전의 어떤 면을 좋아하세요?

=5층짜리 건물 사서 1층은 카센터, 2층은 당구장, 3층은 만화방, 옥상은 캠핑장으로 만들어 제 안의 호기심을 다 분출할 수 있는 곳으로 만들고 싶죠. 운전하는 시간을 사랑해요. 좋아하는 노래도 크게 부르고 기도도 하고 생각을 많이 할 수 있어요. 매니저가 운전을 하는 차 뒷자리에서는 오히려 산만하거나 잠을 자게 되죠.

-2010년대를 어떤 시기로 정리하세요?

=내 앞가림을 하고 가까운 몇명이 행복하게 일했으면 좋겠다고 시작한 일들이 생각보다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았어요. 신앙을 갖고 중심을 단단히 하길 잘했다고 생각해요. 덕분에 흔들리지 않고 여기까지 왔구나 싶어서요.

-지난해의 스텔라 아르투아 맥주의 ‘여성의 꿈’ 캠페인에 캐스팅되셨습니다. CF라는 사실을 넘어서 본인에게도 의미심장한 경험이었을 것 같아요.

=연예인이지만 광고를 많이 찍어본 편이 아니에요. 인터뷰도 잘 하지 않고요. 사람들이 왜 안 하냐고 물으면 “안 했더니 기자님들이 나를 대단한 사람인 것처럼 써주셔서 그냥 가만히 있으려고”라고 농담하곤 했죠. 그런데 스텔라 아르투아 CF 촬영을 하러 가니 광고만 찍는 것이 아니라 인터뷰어가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 대화를 통해 내가 심심한 사람인 줄만 알았는데 스토리가 있었구나라는 사실을 알게 됐고 책임감도 느꼈어요.

-안영미씨의 시상식 소감에 화답해서 “안영미의 선한 영향력 프로젝트가 있다”고 말씀하셨죠? 안영미씨와 미디어랩 시소 소속인 본인 외 세명 신봉선, 유재환, 김신영씨의 장점을 브리핑하신다면요? 가능하면 밝힐 수 있는 올해 계획도 포함해서요.

=신봉선은 남들도 자신도 외모로 웃기는 코미디언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말로도 잘 웃기는 예능인이라는 걸 제가 알고 있거든요. 봉선이는 무엇보다 따뜻한 사람이고 연예인 생활하며 힘들었던 시절에 성장하고 배려가 깊어졌어요. 그래서 토크에서 치기도 받쳐주기도 잘해요. 그래서 봉선의 따뜻함을 보여줄 수 있는 콘텐츠를 기획하고 있어요. 유재환은 아는 것이 많아 그것을 영감으로 녹일 수 있는 아티스트이고 신영이와 시너지가 있어요. 신영이는 그 밤톨만 한 머리 안에 뭐가 들어 있는지 매일 꺼내보는 재미가 쏠쏠해요. 영미 프로젝트는 말난 김에 웃기니까 해보려고요. (웃음) 안영미는 지적 호기심이 많고 영화도 많이 보고 뭐든 습득이 빨라요.

-강연 초청을 많이 받으실 텐데요.

=콘텐츠 관련 강연은 하기도 해요. 구글은 제가 회사가 궁금해서 수락했고 카카오는 최근에 가서 비보 영업하고 왔어요. 비보와 프로모션을 함께한 기업들에 대한 프레젠테이션을 만들어갔어요. 재미있는 이야기 위주로 구성하고 “뭐가 느껴지세요?” 하면서 카카오도 어서 분발해서 비보와 함께하시라고 넌지시 말씀드렸죠.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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