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업작가 생활을 2년째 하고 있는데, 아직까지 불규칙한 삶을 살고 있어요. 루틴을 잡는 것이 제가 해야 할 과업이고, 너무 먼 미래를 생각하기에는 지금 당장 해야 하는 프로젝트가 산적해 있어서 먼 날에 어떤 작가가 되겠다는 생각보다는 당장 해야 하는 소설을 잘 쓰자고 생각하고 있어요. 지금은 김원영 변호사님과 함께 연재했던 ‘김초엽·김원영의 사이보그가 되다’ 칼럼을 책으로 묶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2017년 제2회 한국과학문학상 중단편 부문 대상을 받으며 데뷔했어요. 제 이름으로 제출한 <관내분실>과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이 같이 상을 받았는데, 심사는 블라인드로 이루어졌고, 중복 투고를 막는 조항이 없었거든요. 두 작품 중 수상 가능성이 더 높은 작품을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관내분실>은 요즘 SF소설 분위기고,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클래식한 SF에 가까우니까요. 처음 수상 소식을 들었을 때 연구실 회식 중이었는데 연구실 사람들에게는 알리지 않았어요.
상을 받지 못했다면 지금은 뭘 하고 있을까요? 저도 궁금해요. 석사를 한 뒤 뭘 할까 고민하던 시기에 공모전에 당선되 었거든요. 안됐으면 바로 취직했거나 다른 공부를 하러 대학원을 갔을 수 있겠다 싶어요. 과학 전공을 살려서 다른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는데요. 마침 공모전에 당선되는 바람에 1년 정도는 글만 써보자고 생각했어요. 장편소설도 이제 작업해야 하는데요. 장편을 단편처럼 하나의 장면으로 향해 가도록 구조를 짜는 건 어려운 것 같아요. 오히려 여러 곁가지들이 장편을 즐기는 이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다른 장르라고 생각하고 접근하려고 해요. 2020년에는, 상반기에 경장편 하나를 공개해야 하고, 하반기에 연재 계획이 잡혀 있어요. 열심히 쓰는 거죠.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텅 빈 우주정거장에 할머니가 쓸쓸하게 앉아 있는 모습에서 시작한 소설이에요. 이 장면이 소설이 되려면 어떤 이야기가 있어야 할까 생각했어요. <관내분실>은 소재에서 시작했어요. ‘마인드 도서관’이라는 걸 먼저 생각하고, 그 안에서 어떤 정보가 분실되는 관내분실이라는 개념을 떠올린 뒤, 그러면 잊힌 사람은 누구일까로 이어졌어요. 그다음에 엄마와 딸의 이야기로 자리를 잡았어요. 저는 감정을 움직이는 이야기인지를 소설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거든요. 특히 단편소설은 아름다운 한순간을 포착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소설을 쓰기 전에 에세이나 시를 먼저 썼어요. 소설 이전의 글이 감정을 더 많이 담았고, 소설을 쓴 뒤로는 감정을 정제하는 법을 많이 익혔다고 생각해요. 소설에서는 감정을 객관화할 수 있어야 한다고 봤어요.
포항공과대학교에서 생화학 석사를 하긴 했는데, 그렇다고 SF소설 소재를 얻는데 특별히 도움이 되지는 않아요. 과학 전공을 해도 자기 전공 말고는 잘 모르니까요. 전공으로 배운 부분은 소재화하기가 더 어려워요. 애매하게 알 때는 소재로 쓸 수 있지만 잘 알면 얼마나 말이 안되는지만 떠오르고 쉽게 쓰기 난감해지니까요. 도움이 된다면 소재보다는 과학자들이 행동하는 모습이나 논리 전개 같은 부분이에요. 연구 결과를 얻기 위해 어떤 연구가 있어야 하는지도 알고 있고. 과학기술의 변화 과정에 대한 생각도 글 쓰는 데 영향을 줘요.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에서 안나의 연구가 유행이 지난 연구가 되는데요, 연구실에 있으면 그런 점이 잘 보이고 중요하거든요. 하지만 소설을 쓸 때마다 공부는 새로해요.
미래에 가더라도 과거를 잊으면 안된다는 게 어쩌다보니 제 소설에서 중요한 화두가 되기도 했는데요. 음, 제가 오늘의 작가상을 한정현 작가님과 공동 수상했어요. 한정현 작가님 소설 <줄리아나 도쿄>를 읽고 역사적이고 문헌사적인 소설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심사평을 읽고 언론 인터뷰를 하다보니 역사와 SF가 만나는 지점이 있더라고요. 역사는 과거를 보면서 현재를 비추는 작업인데, SF는 미래를 보면서 현재를 비추는 작업이니까요. 둘 다 현재를 다른 각도에서 보게하는 작업이에요.
한국과학소설작가연대 운영이사로 2년간 활동했는데요. 그때는 제가 막 데뷔한 무명작가였던 때였어요. 운영이사의 원래 업무가 홈페이지 관리를 비롯한 전산업무여서, “공대 나온 김초엽 작가님…” 같은 이상한 이유로 하게 되었는데(웃음), 대표였던 정소연 작가님과 부대표였던 배명훈 작가님이 SF소설계를 확장하는 데 관심이 많아서 도움을 받았어요. 글은 혼자 쓰니까 작가들과 교류가 없잖아요. 저 역시 이런 교류가 없었다면 다른 작가들을 경쟁 대상로만 생각했을 듯해요. 지금은 같이 글 쓰는 동료라고 생각하죠. 나 혼자만 잘되는 건 잘되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연대 활동이 제게는 굉장히 행운이었어요.
소설을 쓰기 위해 과학책을 많이 읽어요. 과학기사는 자료조사를 하기에는 깊이 가 얕은 경우가 많아서, 책이 소설을 쓰기에는 좋은 재료가 된다고 봐요. 해외에는 긴 분량의 과학기사들이 가끔씩 나오거든요. 그런 글도 읽곤 해요. 굳이 분류하자면 제가 생물학쪽에 관심이 많기는 한데, 관심 있는 분야와 이야기로서 재밌는 분야는 다르니 다방면으로 책을 읽으려는 쪽이에요. 제 소설에는 성별이 크게 중요하지 않은 주인공이 많았어요. 소설을 다 쓰고 나서, 주인공이 굳이 남자일 필요가 없으면 여자로 하는 편이에요. 거기에 대한 반응이 재미있어요. 예를 들어,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에서 주인공이 할아버지라고 생각하고 있다가 할머니라 당황하시더라고요. 쓸 때 기억을 떠올려보면, 일부러 성별 특성을 드러내지 않고 쓰다가 한번 안나라는 이름으로 성별을 드러내보면 재밌겠다는 식으로 가볍게 생각했었어요. 소설의 주인공이 기본적으로 여성이라는 걸 알고 보시는 독자들은 여성인지 남성인지 불분명한 인물을 전부 여성이라고 전제하고 읽으시더라고요. <스펙트럼>에 나오는 할머니를 회상하는 ‘나’는 끝까지 성별 설정을 안 했어요. 그런데 대부분 손녀로 읽으시더라고요.
언젠가 게임 시나리오를 써보고 싶어요. <투 더 문> <아우터 월드> <호라이즌 제로 던> 같은 게임을 보면 SF 소재를 잘 활용하거든요. 소설과 게임은 경험하는 방향이 다르잖아요. 게임은 몰입이 잘된다고 해야 하나. 다른 세계에 가 있는 느낌을 주는 매체라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