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우한시를 시작으로 한국, 일본, 호주, 미국, 독일 등 세계 각지로 퍼지고 있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높은 치사율과 빠른 감염률로 사람들의 불안감은 점점 고조되고 있다. 중국에서는 이미 수많은 사망자가 발생, 한국에서도 확진자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2003년 사스(SARS), 2015년 메르스(MERS)가 떠오르기도 한다. 그렇다면, 과연 영화 속에서는 이런 바이러스 사태가 어떻게 그려졌을까. 다양한 장르, 분위기를 띈 바이러스 소재의 영화 7편을 돌아봤다.(외계의 존재가 바이러스로 등장하는 SF, 분노 바이러스를 내세운 좀비물은 제외했다)
<감기>
아마 국내 관객들에게 가장 익숙한 작품은 김성수 감독의 <감기>일 것이다. 개봉 당시 약 31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적당한 흥행을 기록했지만, 2년 후 메르스 바이러스가 확산되며 다시금 조명 받았던 영화다. 감염 속도 초당 3.4명, 치사율 100%의 전례 없는 호흡기 바이러스가 창궐해 패닉 상태가 된 대한민국. 그 속에서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소방관, 의사, 시민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혈압을 상승시키는 정부, 다수를 위해 희생하는 캐릭터, 자신의 안위만 챙기는 악인 등 재난·생존 영화에 빠지지 않는 캐릭터들이 여럿 등장했다. 한 가지 반가웠던 부분은 우리가 원했던, 국민들을 1순위로 생각하는 대통령이 등장한 대목. 이외에도 여러 클리셰, 익숙한 전개 등이 펼쳐졌지만 <감기>는 (마치 <부산행>처럼) 국내 작품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소재를 가져와 신선함을 전했다.
<아웃 브레이크>
<감기>가 이 영화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았다고 말하기는 힘들 듯하다. 볼프강 페터젠 감독의 <아웃 브레이크>다. 지금 보면 진부한 설정과 전개가 많지만 1995년 제작, 바이러스 소재 영화의 틀을 다진 작품이다. 아프리카 자이르에서 신종 바이러스가 발생, 불법 원숭이 수입으로 미국에까지 사태가 번지는 내용이다. 흑막이 밝혀질까 두려워 시민들을 희생시키려는 무능력한 권력자, 이를 저지하려는 주인공,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변하는 인물, 진작에 막을 수 있었지만 일을 크게 만드는 사소한 실수까지. 전형적인 요소가 빈번히 등장했지만 당시에는 긴장감 넘치는 극적 스토리로 많은 관객들의 사랑을 받았다. 또한 단순히 선악 구조를 나누기보다는 중간 지점에 있는 캐릭터를 이용해 ‘최선과 최고의 선택’에 대한 고민도 풀어냈다.
<컨테이젼>
다음은 편집의 귀재, 스티븐 소더버그가 탄생시킨 바이러스 재난영화다. 감독의 명성답게 맷 데이먼, 주드 로, 로렌스 피시번, 기네스 펠트로, 케이트 윈슬렛 등 대규모 블록버스터에서 볼 법한 화려한 라인업을 꾸린 영화다. 명확한 주인공 이 정해진 것이 아니라 의사, 기자, 면역이 있는 소시민, 감염자 등 여러 인물의 고군분투를 균등하게 보여줬다. 각 인물들이 가지는 다른 감정과 목적 등을 보다 뚜렷하게 나누어 다양한 인간 군상을 보여줬다. 마치 옴니버스 영화들을 솜씨 좋게 버무린 느낌. <컨테이젼>이 가졌던 최고의 장점이 한 가지 더 있다. 바로 철저한 고증. 면역력을 가진 이가 나타나지만 “이제 해결되는 거 아니냐?”라는 질문에 “백신 개발까지 엄청난 시간이 걸린다”(실제 바이러스의 백신은 단번에 만들어질 수 없으며, 대부분 1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된다)고 말하는 등 클리셰 한 방에 날리는 대목이 종종 등장해 리얼리티를 살렸다.
<더 베이>
페이크 다큐멘터리의 형식을 취한 영화도 있다. <레인맨>, <벅시> 등을 연출한 배리 레빈슨 감독의 <더 베이>다. 작은 어촌 마을에 정체불명의 벌레가 나타나고, 온몸을 썩게 만드는 바이러스를 퍼트리는 이야기다. 국내 영화로 치면 같은 해 제작된 <연가시>와 유사점이 많다. 영화의 배경지가 된 체서피크 해변은 실제로도 환경오염 문제가 심각한 곳이며, 베리 레빈슨 감독은 이와 관련된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하려 했지만, 보다 확실한 경각심 자극을 위해 <더 베이>를 모큐멘터리 호러영화로 만들었다. 엔딩에서는 다큐멘터리용 실제 영상이 등장하기도 했다. 호러 장르답게 영화는 중간중간 파운드푸티지(페이크 다큐멘터리의 하위 장르로 1안칭 캠코더로 촬영한 것 같은 영상물)를 통해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끌어올리며 강한 몰입감을 자아냈다.
<리트릿>
이제부터는 결을 조금 달리하는 영화들이다. 재난 자체보다는 바이러스를 배경으로만 끌고 와 다른 것들에 무게들 더 실은 사례들. 칼 티베츠 감독의 <리트릿>은 바이러스가 불러오는 ‘불안감’을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로 활용했다. 영화의 배경은 외부와는 철저히 단절된 외딴섬. 그 안에서 한 부부(탠디 뉴튼, 킬리언 머피)와 의문투성이의 남자(제이미 벨)가 펼치는 심리전이 핵심이다. 피투성이가 된 채 섬으로 온 남자는 부부에게 “이곳을 제외한 모든 곳에 바이러스가 창궐, 절대 이곳을 벗어나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처음에는 그의 말을 믿지만 점점 난폭하게 변하는 남자. 부부는 바이러스에 대한 불안과 남자에 대한 의심 사이에서 갈등한다. 바이러스의 실체를 밝히지 않고도 배우들의 날카로운 심리전, 쉽게 예상할 수 없는 반전으로 재미를 더했다. 바이러스가 아닌, 외계인 소재이지만 유사한 틀을 가진 작품으로는 떡밥의 대가 J.J. 에이브럼스가 제작한 <클로버필드 10번지>도 있다.
<눈먼자들의 도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주제 사라마구 작가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눈먼자들의 도시>도 바이러스가 핵심 소재다. 다만 현실성과는 거리가 먼, 거의 판타지에 가까운 설정을 가진 ‘맹인 바이러스’를 등장한다. 갑자기 모든 사람들이 시력을 잃어가는 세상 속, 남편을 만나기 위해 감염자 인척 연기해 격리 병동으로 들어가는 여자(줄리언 무어)가 주인공이다. 허무맹랑한 설정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눈먼자들의 도시>가 담고자 한 것은 리얼한 재난 사태가 아닌, 극단의 상황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추악함과 그 속에서도 존엄을 유지하려는 인물의 모습. 온갖 고통을 감내하는 주인공을 따라가다 보면 인간성에 대한 사색에 빠져들게 되는 작품이다. 비록 영화는 소설의 감흥에는 한참 못 미친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날카로운 비판과 지루할 틈 없는 속도감 등은 유지해 작품을 영화로 처음 접한 이들에게는 호평을 받기도 했다.
<퍼펙트 센스>
아마 가장 색다른 바이러스 소재 영화가 아닐까. 마지막은 데이빗 맥켄지 감독의 멜로 영화 <퍼펙트 센스>다. 오감이 차례차례 사라지는 바이러스가 퍼진 세상에서 사랑에 빠지는 수잔(에바 그린)과 마이클(이완 맥그리거)의 이야기다. 점점 서로의 체취를 맡지 못하고, 목소리를 듣지 못하고, 볼 수 없게 되는 상황. 그러나 두 사람이 점점 적응해가며 서로를 느끼려 애쓴다. 이는 그들뿐 아니라 패닉에 빠졌던 전 세계의 사람들도 마찬가지. <퍼펙트 센스>는 멜로 장르의 본질과도 같은 “무엇이 사랑을 유지시켜주는가”라는 질문을 감각의 부재와 연관시켜 참신하게 풀어냈다. 에바 그린의 덤덤한 내레이션과 음악도 감성을 더했다. 사랑의 필수 조건처럼 여겨지는 것들이 지워져가지만, 결국 ‘완벽한 감각’에 다가서는 둘의 모습은 묘한 여운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