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김용완, 연상호 두 영화감독이 연출자와 작가로 참여한 드라마 <방법>
2020-03-12
글 : 송경원
십자가 없는 한국형 오컬트 드라마가 온다

“영화와 드라마의 경계가 갈수록 얇아져가는 걸 느낀다. 중요한 건 콘텐츠다.” <부산행>(2016)으로 한국 장르영화의 새로운 돌파구를 제시한 연상호 감독이 이번에는 드라마로 발길을 돌렸다. 2020년 2월 10일 월요일 밤 9시30분에 첫 방송되는 tvN 월화드라마 <방법>은 변화하는 매체 환경의 흐름을 읽을 수 있는 도전적인 프로젝트다. 한국에서는 보기 드문 오컬트 스릴러 장르를 표방하는 <방법>은 여러모로 새롭다. 스튜디오드래곤이 기획하고 레진스튜디오에서 제작하는 이 드라마는 각본을 쓴 연상호 감독의 드라마작가 데뷔작이고 <챔피언>(2018)을 연출한 김용완 감독의 첫 드라마 연출작일 뿐만 아니라 심지어 스탭 상당수가 영화 현장을 경험한 바 있다. 물론 그것만으로는 그다지 특별할 것도 없다. 한때는 영화감독과 스탭들이 드라마 제작에 뛰어드는 일 자체가 화제가 된 시절도 있었지만 매체간의 구분이 점차 의미가 없어지는 지금에 와선 그저 자연스러운 현상 중 하나일 따름이다. 역설적으로 바로 그 점이 영화와 드라마 사이 문턱이 낮아지고 뒤섞이는 현재의 트렌드를 반영한다. 장면 자체의 완성도는 이제 드라마와 영화를 구분짓는 조건이 아니다. 두 형식을 구분짓는 것은 플랫폼, 즉 관객을 만나는 방식에 달렸다. 일주일에 두번, 12부작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드라마의 서사는 2시간 안에 완성되어야 하는 영화와는 확실히 다르다. 거대한 세계관 아래, 낯익은 이야기를 어떻게 다르게 풀어갈 것인가. 매체간 장벽이 허물어지는 지금, 드라마 <방법>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여기 <방법>에 대한 짧은 소개와 함께 김용완 감독, 연상호 작가의 코멘트, 그리고 엄지원, 정지소 두 배우의 인터뷰를 전한다.

<방법>은 저주로 사람을 해하는 주술인 ‘방법’(謗法)을 소재로 한 ‘초자연 유니버스 스릴러’다. 국내 최대의 IT기업으로 성장한 포레스트를 중심으로 불가사의한 사건이 벌어지자 정의감 넘치는 사회부 기자가 흑막을 파헤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포레스트의 진종현 회장(성동일)의 폭행사건을 취재하던 임진희 기자(엄지원)는 제보자를 통해 포레스트 내에 수상한 자회사가 있음을 알게 된다. 임진희는 진실을 세상에 알리려 하지만 기업과 유착관계에 있던 신문사 부장의 방해로 무산되고 좌절한다. 그때 정체불명의 소녀 소진(정지소)이 나타나 자신을 방법사라고 소개하며 필요하면 누구든 죽여줄 수 있다고 말한다. 소진은 포레스트의 진종현 회장이 세상을 해하려는 악신이며 인간의 법으로는 그를 이길 수 없다는 경고를 남긴다. 진희는 처음엔 허무맹랑하다며 소진을 무시하지만 첫 번째 제보자가 자신으로 인해 억울한 죽임을 당하자 증오에 몸을 맡겨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소진에게 저주를 의뢰한다. 소진이 저주의 살을 날리기 위해 대상의 사진과 한자 이름, 그리고 소지품이 필요하다고 하자 진희는 이를 준비해주고 그날 밤, 기괴한 사건이 발생한다. 진희는 그제야 초현실적인 힘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자신 역시 그 세계에 이미 발을 디뎠음을 깨닫는다. 그렇게 진실을 추적하는 언론인 진희와 사람을 저주하는 방법사 소진은 거대한 음모 뒤에 숨은 악신의 계획을 저지하기 위한 사투를 시작한다.

새로운 것과 낯선 것은 종이 한장 차이다. 익숙한 것에서 새로운 요소를 뽑아내는 데 능숙했던 연상호 감독의 장기는 <방법>에서도 빛을 발한다. 사실 오컬트 드라마는 이제 한국 시청자들에게도 낯선 장르가 아니다. 다소 마니악한 장르였던 오컬트는 <검은 사제들>(2015), <사바하>(2019), <사자>(2019) 등을 통해 어느덧 친숙한 대중문화의 일부로 저변을 넓혀나갔다. 다만 기존의 오컬트물은 주로 천주교 세계관이 기반이었던 데 반해 무속신앙을 소재로 한 <방법>은 익숙한 듯 새롭게 다가온다. 진종현 회장을 영적으로 보필하는 무당 진경 역을 맡은 조민수 배우는 “토착 신앙을 소재로 밀어붙이는 드라마라는 점이 새로웠고” 그것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 중 하나였다고 밝혔다. <방법>은 완전히 낯선 소재를 가지고 생경한 이야기를 하는 드라마가 아니다. 익숙하다고 착각했던 것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게 한다는 점이야말로 이 프로젝트의 독창적인 부분이며 작가로서 연상호가 늘 추구해왔던 지점이다. 그런 측면에서 <방법>이란 제목은 실로 의미심장하다. 드라마 <방법>에서의 방법(謗法)은 사람을 저주해서 손발이 오그라지게 하는 주술을 의미하는 말로 요즘은 잘 쓰이지 않지만 한때 인터넷상에서 ‘상대를 공격한다’는 의미로 통용되기도 했다. 얼핏 일을 해나가는 수단, 우리가 잘 아는 의미의 방법(方法)으로 이해되기 쉬운데 ‘방법’이란 제목의 중의적인 면이 외려 이 드라마의 포지션을 잘 상징하고 있다.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며 안심하던 것들이 다른 면모를 드러낼 때 얼마나 흥미로운 상상력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셈이다.

익숙하되 새로운, 초자연 유니버스 스릴러

오컬트 드라마로서 <방법>은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에 집중한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악신은 그저 초자연적인 존재가 아니라 인간의 악의와 통제되지 않는 본성에 대한 은유라 해도 좋겠다. 이에 맞춰 <방법>은 악신으로 대표되는 초자연적인 현상을 눈에 보이는 CG 등을 통해 직접 표현하기보다 주변 상황과 인물의 감정을 통해 느낄 수 있도록 세련되게 유도한다. 언제 어떻게 덮쳐올지 모르는 거대한 악의를 더듬어나가는 심리 스릴러에 무게가 실려 있는 것이다. 사회부 기자의 시점에서 진실을 파헤치는 과정은 자연스레 몰입을 유도하며, 방법사이자 10대 소녀인 소진의 복잡다단한 면모들은 이야기를 한층 입체적으로 만든다. 소재만 보면 매우 특별한 사람들의 기이한 사연처럼 보이지만 실상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한 셈이다. 무엇보다 12부작 드라마라는 방대한 볼륨 덕분에 각 인물의 사연들을 좀더 촘촘히 따라갈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방법>이 굳이 초자연 ‘유니버스’ 스릴러를 표방하는 건 이것이 단발로 끝나는 닫힌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연상호 작가는 “세계관을 확장해나갈 수 있는 가능성에 흥미를 느껴” 이야기를 구상했다고 밝혔다. “한편의 영화는 각자 다른 메시지를 가지고 진행된다. 하지만 요즘 관객은 단발성 이야기에 그치지 않고 전체 세계관을 연결시키고자 하는 욕망이 강하다.” 어쩌면 <어벤져스>로 대표되는 이른바 유니버스 형태의 영화들은 드라마 포맷에 훨씬 적합할지도 모르겠다. 영화가 제한된 상영시간 안에 압축시켜야 하는 이야기라면 드라마는 좀더 긴 시간 동안 각 인물의 사연을 친절하게 풀어낼 수 있는 여지가 있다. 게다가 전체적인 설정을 유지하되 에피소드별로 여러 시도를 펼치는 게 가능하다는 장점도 있다. 무엇보다 연속된 극으로서 다음 에피소드까지 기다리는 시간이 짧다. 연상호 감독이 드라마작가로서 이번에 특히 신경 쓴 부분도 바로 이 지점이다. “사건의 비밀을 풀어가는 미스터리 스릴러의 틀을 유지하되 에피소드별로 다양한 캐릭터의 이야기를 풀어가고 싶었다.” 김용완 감독 역시 “드라마는 기본적으로 하나의 거대한 세계를 쪼개는 작업이다. 다음 화가 궁금해지도록 호흡을 구성하는 데 특히 공을 들였다”고 말한다. 에피소드별 조각들이 맞춰져 하나의 거대한 그림으로 이어질 때의 쾌감은 <방법>의 핵심이라 할 만하다. 김용완 감독은 “특정 영화나 드라마를 참조하는 대신 전체적인 분위기를 창조하기 위해 집중했다”고 강조했다. “개별 장면만 놓고 보면 영화의 완성도와 별반 차이가 없을 정도로 공을 들였다”는 것이다. 사실 <방법>에는 김용완 감독, 연상호 작가뿐 아니라 영화 스탭들이 다수 참여했는데 <곡성> 등 미스터리 스릴러물에서 경험을 쌓은 스탭들이 다시 모여 완성한 장면들은 어둡고 모호하며 위험해 보이는 분위기를 한껏 살린다. 오컬트 장르 특유의 분위기로 시청자를 장악하는 것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무속신앙을 모티브로 한만큼 굿을 하는 장면들이 특히 중요했는데, 김용완 감독은 “기존의 드라마나 영화에서 접했던 굿과는 전혀 다른 에너지를 접할 수 있을 것”이라 자신했다. 무당 역을 맡은 조민수 배우 역시 “<곡성>팀이 그대로 참여해서 도움을 주었다. 그대로 방영될진 모르겠지만 어떤 굿 장면은 8분이 넘는 원테이크로 촬영하기도 했다”며 쉽지 않았던 도전에 대한 만족감을 드러냈다.

영화와 드라마의 장점을 고루 취하다

다시 돌아가, 결국 핵심은 이야기다. 영화, 드라마 등 플랫폼에 따라 형태와 접근을 바꿀 수 있지만 콘텐츠 자체가 흥미로워야 한다. 그리고 그 점에서 연상호 작가의 솜씨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진종현 회장 역의 성동일 배우는 “대본을 가리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워낙에 이야기가 탄탄해서 대본이 시키는 대로만 해도 편하게 갈 것 같은 작품이었다”며 선택의 이유를 밝혔다. “물론 쉬운 이야기는 아니다. 연령대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다. 하지만 일단 접하면 눈을 뗄 수 없을 만한 흡인력이 있다. 게다가 대본이 전부 완성된 상태에서 촬영했기 때문에 전체 그림을 이해하기 편했다. 사전제작을 하더라도 마지막회 대본은 공개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방법>의 경우 모두 알려주었기 때문에 복잡하고 이중적인 캐릭터를 표현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말하자면 이건 이야기에 대한 자신감과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한 도전이자 플랫폼에 따라 어떻게 관객과 만나야 할지 최적의 방법을 고민한 결과물이다. “<방법>은 틀과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영화와 드라마 양쪽의 장점을 적절히 취한, 보기 드문 사례로 기억될 것이다.

사진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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