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정지소라는 이름이 낯설다면, <기생충>의 박 사장 딸 다혜를 떠올려보자. 2019년은 데뷔 8년차 배우 정지소의 이름을 가장 널리 알린 해였다. 그리고 선택한 드라마가 바로 <방법>이다. 누군가에게 저주의 주술을 날릴 수 있는 능력을 지닌 방법사 소진은 그녀의 표현에 따르면 “묘한” 매력의 소유자다. SF영화나 공포영화에서나 볼 법한 판타지 기반의 캐릭터를 얼마나 신비감 있게 표현할 수 있을까. 이번 드라마에 임하는 정지소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연기 숙제였다. 권력의 암투가 횡행하는 어른의 세계에서 어린 10대 소녀가 홀로서기하듯 이를 악물고 선배 배우들과의 작업에서 뒤처지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했던 그녀의 노력이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을까. 여하튼 <방법>은 배우 정지소가 데뷔 이후 가장 큰 주목을 받는 시점에서 가장 중책을 맡은 작품이다. 비리, 복수, 증오, 저주 따위로 점철된 <방법>의 장르적 세계 안에서 홀로서기를 시도하는 그녀의 다짐이 꽤 믿음직스럽다.
-<방법>은 이색적인 소재와 장르색이 뚜렷한 드라마다. 10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캐스팅됐다고 들었다.
=신선하고 독특한 소재이고, 캐릭터도 독특하다. 내가 맡은 소진이란 캐릭터는 특히 인물을 상징하는 색깔이라든지 소품이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맡은 역할의 비중이 커서 살짝 부담도 됐지만 경험 많은 선배 배우들의 면면을 보면서 욕심도 났고 여러모로 놓쳐서는 안되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방법사’ 소진은 기존의 다른 드라마나 영화에서 본 적 없는 독특한 설정을 지닌 인물이다.
=일종의 열쇠 같은 존재다. 모든 사건의 시발점이 되는, 또 사고뭉치 같은 느낌의 캐릭터다. 어릴 때부터 복잡한 사연을 지녔고 또래 친구들과는 완전히 다른 환경에서 살았던 인물이다. 원한도 가지고 있고 성향도 특별하다. 자신이 정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또 소진은 진희(엄지원)가 자신에게 꼭 필요한 존재라고 여기게 되면서 그녀 곁에 딱 붙어 쫓아다닌다. 아마 시청자들은 참 묘한 아이구나, 라고 생각할 것 같다. 어둡지만 귀여운 면모도 지니고 있고. 한편으로는 쌀쌀맞으면서도 애잔한 구석이 있는 인물이랄까. 여러 가지 감정을 동시에 갖게 만드는 캐릭터라고 생각한다.
-주술을 부리는 방법사라는 독특한 설정의 캐릭터를 연기하는 게 어렵지는 않았나.
=만화에서나 나올 법한 판타지적인 캐릭터라서 많이 낯설었다. 하지만 촬영하면서 두려움보다는 신선함과 재미를 더 많이 느꼈다. 김용완 감독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연기했는데 감독님은 내게 소진의 악한 면모를 많이 보여주라고 이야기하셨다. 소진이 처한 독특한 상황에 대해서는 <패닉룸>(2002)의 크리스틴 스튜어트나 <렛미인>(2010)의 클로이 머레츠가 연기하는 어린 여주인공 캐릭터의 모습을 보면서 많이 연구했다.
-<기생충>의 다혜와 비교하면 우선 외모 면에서 상당한 변화를 줬다. 머리를 짧게 잘라 처음엔 못 알아봤다.
=소진이 모자를 뒤집어쓰고 존재를 숨기기도 하는데 무엇을 숨겨야 하는지는 아직 말할 수 없다. 그런 미스터리한 설정을 강조하기 위한 외모 변화로 이해해주면 좋을 것 같다. 또 소진이 항상 입고 있는 빨간 후드는 상징과도 같은 옷이다. 포스터에도 등장하듯이 자신을 태워서 세상을 밝힌다는 뜻이 담겨 있다.
-극중 소진은 직접 방법을 행하는 인물이다. 그렇기에 시각적으로 독특한 볼거리를 안겨줄 것으로 기대되는데.
=소진이 방법을 할 때는 이름의 한자를 알아낸 뒤에 사진을 구하고, 또 그의 물건을 쥐고 방법을 행한다. 그렇기 때문에 물건을 감싸쥐는 액션이나 표정 연기 등의 변화가 있을 뿐 굿을 하는 진경(조민수)처럼 화려한 액션이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적은 움직임의 방법을 통해서 엄청난 데미지를 입히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소진의 매력이다.
-<기생충> 때부터 이름을 바꿔 현승민에서 정지소로 활동하고 있다.
=동생 이름이 화랑인데 역사적으로 신라시대에 지소태후가 화랑을 조직했다고 알려져 있다. 동생을 엄마처럼 보살피고 싶은 마음을 담아 내가 직접 이름을 짓고 개명했다.
-<기생충>에서 함께 작업한 선배 배우들이 할리우드에 가서 찬사를 받는 모습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던가.
=사실 나는 <기생충>을 찍으면서 별로 고생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선배들이 현장에서 고생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입장이었다. 그분들이 각종 시상식 무대에 올라 박수갈채를 받는 모습을 보니, 마치 나 때문에 고생했던 부모님이 해외여행 가서 호강하는 모습을 보는 것처럼 뿌듯했다. 휴대폰으로 그분들 사진을 보는데 뿌듯하고 울컥하기도 했다. 나는 <기생충> 출신의 금수저라고 할 수 있다. 그 작품 덕분에 <방법>에도 참여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한국에서 그분들 보기에 부끄럽지 않게 열심히 노력하고 있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기생충>의 인기를 언제 실감하나. 지난해에 인스타그램도 개설해서 팬들과 소통하고 있는데.
=친구들과 돌아다닐 때, “어? <기생충>의 다혜?”라고 알아봐주는 분들이 있는 게 신기하다. 내가 행동을 조심해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머리를 짧게 자른 뒤에는 잘 못 알아보는 경우도 많다. 이제는 <기생충>의 다혜를 넘어서야 할 때다.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