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문화를 비디오테이프로 배웠다. 비디오 대여점에 들러 매주 한편씩 빌려본 영화는 세계문학전집과 함께 내가 잘 모르는 세계를 간접적으로 가르쳐줬는데, 그중에서도 “평범한 소녀가 원치 않게 그 학교 최고의 킹카와 엮이며 또래 여자들의 시샘을 받다가 덜컥 사랑에 빠지고 위기를 겪지만 결국 키스하며 끝난다”는 식의 하이틴 로맨스물은 선망의 대상이었다. <레이디 버드>(2018)의 레이디 버드(시얼샤 로넌)처럼 지금 있는 공간을 가장 따분한 곳으로 폄하하던 당시 소녀의 눈에 미국 영화 속 10대들은 어찌나 다이내믹하게 살던지. 직접 운전해서 파티에 가는 청소년들이 아직 섹스해 보지 못한 친구를 외계인 취급하는 게 낯부끄럽지만 왠지 저들은 나보다 어른인 것 같아서 부러웠다. 그리고 졸업 파티! 프롬(prom)이 뭐길래 저들은 곧 프롬이 다가온다고 하면 난리가 나는 걸까. <클루리스>(1995)를 보며 베벌리힐스가 부자들만 사는 동네라는 걸 처음 알았고, 알리시아 실버스톤은 <키키>와 <쎄씨> 같은 패션지에 나오던 김민희·배두나·양민아(배우 신민아. 데뷔 당시에는 본명으로 활동했다)와 함께 책상에 사진 붙여놓고 좋아하는 워너비가 됐다. 히스 레저가 최고의 모습을 보여준 영화는 <다크 나이트>(2008)도 <브로크백 마운틴>(2005)도 아닌 <내가 널 사랑할 수 없는 10가지 이유>(1999)가 아닌가? 캣(줄리아 스타일스)을 위해 운동장에서 <Can’t Take My Eyes Off You>를 부르는 모습을 보고 반하지 않은 사람이 있었나 싶다. 그렇게 할리우드 로맨틱 코미디 영화로 인지한 스타들의 일거수일투족은 온스타일 채널에서 해주던 <할리우드 E!뉴스>나 다음 카페 ‘할리우드의 아름다운 커플’, 일명 ‘할아커’에서 확인했다. <퀸카로 살아남는 법>(2004)을 통해 최고의 하이틴 스타로 떠오른 린제이 로한의 파파라치 사진 때문에 스키니진이라는 것도 따라 입었다. 그런데 날 사로잡은 할리우드 스타들의 면면을 보다가 어느 날 문득 소름이 돋았다. 다인종 국가라는 미국에서 나온 영화들인데 어째서… 하나같이 백인뿐이지?! 내가 상상했던 퀸카는 언제나 제1세계 고등학교에서 치어리딩을 하는 늘씬한 백인 금발 여성이었다. 가끔 한명 나오는 흑인은 같은 반 친구. 동양인은… 본 거 같긴 한데 어디에서 뭘 하고 있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렇게 로맨틱 코미디를 보며 조립한 나만의 판타지 세계는 정작 같은 동양인을 소외시키고 있었다. 더군다나 대학에서 LGBT나 인종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 후 더이상 예전과 같은 마음으로 로맨스를 즐길 수 없었다. 이성애가 기본값인 이 폭력적인 세계에서 동성애는 늘 조롱의 대상이었고, 여성은 늘 같은 여성을 미워하고, 부유하고 똑똑하고 외모가 잘난 캐릭터는 어김없이 백인들이 독식하며 편견을 강화했다. 동양인들이 동양인의 존재를 지우는 일을 받아들이고 (현실에서도 최상위층 기득권인) 백인을 덩달아 찬양하게 만드는 구조라니, 심지어 내가 소비 행위를 통해 부조리에 일조했다니!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 할리우드에서 이 장르는 침체기에 접어들었다. 슈퍼히어로영화들이 극장을 잠식하며 하이틴 로맨스물처럼 가볍게 즐길 수 있는 극장용 영화는 사라져갔고, 그나마 혼합 장르로 나온 <트와일라잇> 시리즈는 도저히 캐릭터가 납득되지 않아 즐길 수 없었다. 드라마 <가십걸> 시리즈는 친구들끼리 ‘돌려 사귀기’에 입 벌리고 보느라 간질간질한 감성과는 거리가 있었다. 그렇게 한때 미친 듯이 찾아보던 미국 하이틴 로맨스는 풋풋한 채닝 테이텀이 나오는 <쉬즈 더 맨>(2005)을 마지막으로 어린 시절 추억 저편으로 사라졌다.
묻어뒀던 취향의 발견
사용자 패턴을 분석할 수 있는 데이터베이스를 갖춘 넷플릭스는 저평가된 시장을 발견했다. 2018년 여름 ‘사랑의 여름’(Summer of Love)의 일환으로 <상사에 대처하는 로맨틱한 자세> <키싱 부스> 등의 오리지널 로맨틱 코미디 영화를 연달아 내놓았는데, 이들은 기본적으로 옛날 로맨틱 코미디의 서사구조를 취한다. 넷플릭스 유료 회원 8천만명 이상이 이 작품들을 시청했고 특히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는 넷플릭스가 가져온 ‘롬콤’(Rom-com, Romantic Comedy) 열풍의 선두주자였다. 내 주변의 이성애자 여자들은 한동안 모였다 하면 “혹시 너도 보았느냐”며 이야기꽃을 피웠고, 라라 진의 방이나 패션에 대해 떠들고 로맨스 연기에 능한 피터의 멋짐을 찬양했다. 영화 공개 이후 라라 진 역의 라나 콘도르는 인스타그램 팔로워가 10만명에서 810만명으로, 피터 역의 노아 센티네오는 80만명에서 1760만명으로 치솟았으니 전세계적인 인기를 짐작할 만하다. 사람들은 취향이 바뀐 게 아니었다. 잠시 묻어뒀을 뿐.
왜 우리는 하이틴 로맨스를 다시 사랑하게 됐을까? 줄거리 자체는 특별할 게 없다. 라라 진은 사랑에 빠질 때마다 상대에게 러브레터를 쓰지만 부치지 않고 상자에 모아둔다. 그런 언니를 지켜보기 답답했던 동생 키티(애나 캐스카트)는 지난 몇년간 라라 진이 썼던 편지 다섯통을 모두 발송해버리고, 그중에는 맏언니 마고(저넬 패리시)와 막 헤어진 옆집 남자 조시(이스라엘 브로우사드)도 있다. 친언니와 오랜 ‘남사친’ 앞에서 곤란해질 일을 피하고자 라라 진은 또 다른 편지의 수신자, 7학년 때 잠시 좋아했던 피터와 계약 연애를 시작한다. 마침 피터는 라라 진과 한때 베스트프렌드였지만 지금은 사이가 멀어진 젠(에밀리아 바라낙)과 관계가 끝나면서 그의 질투심을 유발하려는 동기가 있었다. 모두가 뒷내용을 예상할 수 있다. 보여주기식 가짜 연애를 시작한 라라 진과 피터가 진짜 사랑에 빠질 거라고. 그런데 라라 진이 한국계 미국인이라는 설정이 영화를 다른 차원으로 바꿔놓는다. 이른바 할리우드영화에서 보편성을 책임지는 ‘옆집 소녀’ 캐릭터를 동양인 배우가 연기하다니! 백인 금발 여성보다는 라라 진과 외모나 취향이 비슷한 관객은 감정이입할 수 있는 폭도 깊어진다. (이런 거였어? 백인들은 처음부터 온전히 이입했을 텐데, 진짜 억울했다.) 이것은 제1세계 백인 여성을 보며 동경했던 것과 전혀 다른 경험이며, 소속 집단의존재감을 인정받는 과정이다. 또한 라라 진은 사랑에만 집착하지 않고 자매나 친구와의 관계를 함께 고민하며 상대에게 진짜 마음을 전하는 법을 깨우치는 독립적인 캐릭터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재미가 있다. 그렇게 넷플릭스로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를 만난 이들은 라라 진이 되었고, 한때 친했지만 지금은 멀어진 친구를 보는 복잡한 심경에 깊이 공감했으며, 포틀랜드에 피터를 닮은 첫사랑을 두고 온 것 같은 기분도 만끽했다.
아시아계 미국인이 주인공인 영화가 의미하는 것
동명의 원작 소설을 쓴 제니 한은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글에서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 역시 화이트워싱(기존 캐릭터 설정과 무관하게 백인 배우를 캐스팅하는 것)을 시도한 이들이 있었다고 밝혔다. “심지어 책이 출간된 2014년 전부터 영화화 제안이 있었다. 하지만 내가 아시아계 미국인이 주연이어야만 한다고 주장하면 그들의 관심은 사라졌다. 한 프로듀서는 나에게 캐릭터의 정신을 포착할 수만 있다면 나이대나 인종이 무슨 상관이냐고 말했다.”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에는 라라 진이 동양인이기에 겪는 특수한 상황들, 특히 차별 문제가 등장하지 않는다. 때문에 백인이 연기해도 무방하다고 단순하게 생각한 제작자가 존재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꼭 사회문제를 전면에 내세운 콘텐츠가 아니더라도 자연스럽게 “서울과 도쿄, 상하이 길거리의 소녀들의 사진을 보며 레퍼런스 삼은”(제니 한) 캐릭터가 주인공이 된다는 것 자체가 이 영화의 가장 큰 경쟁력이다. 굳이 정치적인 메시지를 담은 영화가 아니라도 아시아 여성이 주인공이 될 수 있다고 보여주는 것은 인종문제를 제기하는 것 다음 단계에 미디어가 할 수 있는 실천이다.
2월 12일 공개되는 속편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 P.S. 여전히 널 사랑해>는 생애 첫 연애를 시작한 라라 진의 고민이 솔직하게 묘사된다. 놀이공원 데이트부터 스킨십까지 모든 게 처음인 그와 달리 학교 최고의 킹카 피터는 이미 경험해본 일일 테니 말이다. 더군다나 라라 진에게 연애편지의 또 다른 수신자, 6학년 때 좋아한 존 앰브로즈(조던 피셔)의 답장이 오면서 라라 진은 두 남자 사이에서 갈등하게 된다. 전편에서 앙금이 풀리지 않는 젠과의 관계 회복도 중요한 숙제다. 한편 넷플릭스 <루머의 루머의 루머> 시리즈에 출연해 ‘핫 가이’로 인기를 끈 싱가포르 출신 배우 로스 버틀러는 라라 진의 친구 크리스틴(매들린 아서)과 묘한 로맨스 기류를 형성한다. 2, 3편 제작이 확정되면서 한국계 미국인 캐릭터로 보여줄 수 있는 이야기도 넓어졌고, 자연스럽게 아시아인이 영화에서 보여줄 수 있는 모습 또한 다양해진다.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 시리즈에 그치지 않고 더 많은 아시아인 주연 콘텐츠가 제작되어야 할 이유다.
무엇보다 이 영화를 보고 자랄 새로운 시대의 아이들이 꿈꾸는 롤모델은 백인 스타만으로 채워지지 않을 것이다.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 관련 사진을 사물함에 붙이고, 라나 콘도르의 패션 아이템을 핀터레스트(이미지 기반의 SNS. 마치 핀으로 사진을 붙이듯이 이미지를 전시할 수 있다)에 모아 감상하는 틴에이저들의 풍경이 반갑다. 그들은 분명 지금의 어른들보다 더 크고 다양한 꿈을 가질 수 있다. 그리고 한때 하이틴 로맨스를 보며 설렜던 성인들은 그 시절 푹 빠졌던 첫사랑과 기분 좋게 조우했다. 한때 로맨스 드라마를 즐기면서도 한편에 남은 아쉬움을 털고, 다시 마음껏 좋아할 수 있는 모습으로.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의 한계?
다양성 측면에서 호평받은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 시리즈의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가령 라라 진은 동양인으로 캐스팅했지만 그와 엮이는 남자들은 왜 동양인이 아니냐는 비판은 경청할 이유가 충분하다. <플랜에이 매거진>의 옥스퍼드 콘도는 “아시아계 미국인 작가가 세 자매의 아버지를 백인으로, 한국인 어머니는 이미 세상을 떠났다고 설정했다. 그리고 백인 남자들을 선망의 대상으로 삼았다. 이건 어떤 뒤틀린 판타지인가?”라고 비판했다. 더 나아가 “라라 진의 게이 친구 루커스를 흑인 배우 트레초 마호로가 연기한 건 성정체성과 인종까지 아우르는 다양성을 지향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소수인종을 동성애자로 둠으로써 백인 남성의 성적 경쟁자가 아니게 만드는 오래된 수법”이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