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영화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 시리즈는 이 장르가 오랫동안 간과했던 시장을 드러냈다. 한국계 미국인 캐릭터가 청춘물의 주인공이 되자 영화에 더욱 이입할 수 있는 시청자들이 있었고, 익숙한 클리셰도 신선하게 만들며 하이틴 로맨스의 부활을 이끌었다. 영화의 폭발적인 인기는 자연스럽게 새로운 스타를 탄생시켰다. 시리즈를 관통하는 주인공 라라 진을 연기한 베트남계 배우 라나 콘도르의 인스타그램 팔로워는 10만여명에서 810만여명으로 늘어났고, 그는 지금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하이틴 스타 중 하나다. 시리즈의 마지막 편에 해당하는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 언제나 그리고 영원히, 라라 진> 촬영차 한국을 찾은 라나 콘도르를 지난해 9월에 만났다. 그는 지난 1년간 자신이 해낸 일이 무엇인지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다.
-마고(저넬 패리시)·라라 진·키티(애나 캐스카트) 세 자매가 모두 한국을 찾았다. 어떻게 시간을 보내고 있나.
=완전 즐기고 있다. 본격적인 촬영에 들어가기 전 3일 정도 개인적인 시간을 가졌다. 화장품을 비롯해 쇼핑도 많이 하고, 정말 믿을 수 없는 색을 품고 있는 아름다운 고궁도 갔다. 어제 쇼핑을 다니다가 우연히 펠트 페인팅을 파는 가게에 들어갔는데 사랑에 빠진 소녀와 소녀를 그린 그림이 많았다. 라라 진의 방에도 비슷한 그림이 있다.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는 실제 한국인들이 입는 패션을 정확하게 구현하려고 노력한 작품이다. 한국에서 쇼핑하면서 놀랐다. “여기도 라라 진, 저기도 라라 진이 입는 옷이 걸려 있잖아? (웃음)” 나는 늘 라라 진의 눈으로 영화의 세계를 이해해왔지만 그건 머릿속으로 상상한 결과물이었다. 이곳에 와서 라라 진의 문화를 더욱 잘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아시안 배우들이 할리우드에서 소비되는 전형적인 방식이 있다. 대체로 블록버스터영화에서 독특한 분장을 하고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점에서 보편성을 가진 이른바 ‘옆집 소녀’ 캐릭터를 아시아인이 연기한 게 상징적이다.
=내가 무언가를 ‘개척’했다는 표현을 쓰고 싶진 않다. 미디어에서 비치는 아시아인의 이미지를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다른 분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다만 제니 한과 넷플릭스는 아시아인이 단지 납작한 조연 캐릭터에 머무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내가 연기하는 캐릭터를 통해 증명할 기회를 줬다. 동양인은 머리가 좋다는 식의 스테레오타입에 빠질 필요는 없지 않나. 물론 아시아인이 똑똑하긴 하지만!(웃음) 아시아계 배우들은 더 다양한 모습을 미디어에서 보여줄 수 있다. 아시아인도 싸우고 분노하고 화나고 때로 혼란스러워한다. 우리도 백인 캐릭터가 그런 것처럼 다양한 감정을 느낄 수 있다. 미디어가 바라보는 아시아인에 대한 인식을 조금이라도 바꿀 수 있다면 밤에 푹 잘 수 있겠다는 마음으로 라라 진을 연기했다. 그리고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1편의 엄청난 성공으로 시퀄이 제작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어땠나(지금은 총 3부작 제작이 확정됐다.-편집자).
=속편을 원했지만 1편 촬영 당시만 해도 구체적인 논의가 오가지 않았다. 시퀄 제작이 확정됐을 때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선물을 받은 것 같았다. 1편은 라라 진의 연애편지와 그의 연인이 될 피터 카민스키(노아 센티네오)에 관한 이야기였다. 속편에 이르러 우리는 인간 라라 진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그가 어떤 사람인지 확인하게 된다. 10대 성장기의 혼란스러운 감정을, 그의 캐릭터를 3차원적으로 탐구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이다. 그리고 3편에 이르러 우리는 라라 진이 성장하고, 친구들로부터 지지받고, 관객이 라라 진을 처음 만났을 때보다 외롭지 않은 모습을 볼 수 있다. 라라 진의 친구들도 변화하고 아주 멋진 우정을 보여줄 거다. 한 소녀에 대한 완전한 이야기를 보여줄 수 있어서 흥분된다.
-2020년 밸런타인데이보다 이틀 앞서 공개되는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 P.S. 여전히 널 사랑해>의 관전 포인트는 무엇인가. 또한 라라 진은 전편 엔딩에서 맺어진 피터와 존(조던 피셔) 사이에서 갈팡질팡할 예정인데, 두 남자의 각기 다른 매력을 설명해달라.
=라라 진은 이성친구에 관한 고민만 하는 캐릭터가 아니다. 이번 편에서 라라 진이 겪는 갈등을 통해 누구의 여자친구가 아닌 한 개인으로서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 그리고 두 남자 모두 정말 매력적인데…. (웃음) 우선 존은 정말 신선하고 놀라운 캐릭터다. 피터와 달리 라라 진이 어렸을 때 정말 친했던 아이다. 그들의 관계는 아주 견고한 우정을 기반으로 하고, 이점은 라라 진과 존 사이의 로맨틱한 기류에 영향을 미친다. 원래 사람들은 먼저 친구가 됐다가 연인으로 발전한다는 식의 흐름을 믿지 않나. 그에 반해 피터는 존보다 훨씬 자신감 있는 캐릭터다. 그리고 라라 진에게 무척 헌신적이다. 풋풋한 시절 만난 사랑과 지금의 사랑. 둘 중 어느 쪽을 택하느냐가 이번 편의 주된 갈등이 될 것이다. 아마 시청자들이 ‘피터 파’와 ‘존 파’로 나뉘어 격렬하게 싸우게 되지 않을까 싶다. (웃음)
-한동안 침체기에 빠졌던 로맨틱 코미디 시장이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를 비롯한 넷플릭스 영화 덕분에 다시 활기를 찾았다. 그 힘이 어디에서 왔다고 보나.
=매일 납득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는 시대다. 그래서 사람들의 마음속에 사랑하고 킥킥대고 미소 짓고픈 열망이 오히려 싹트는 것 같다.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 시리즈는 솜사탕 같은 영화다. 누가 솜사탕을 좋아하지 않겠는가? 이 영화는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때 흐뭇하게 웃을 수 있는, 영혼의 치킨수프가 되어주는 작품이다. 고된 하루를 마무리할 때 우리는 이런 영화를 볼 필요가 있다. 순탄치만은 않은 인생에서 이런 영화는 당신을 행복하게 만들고, 다른 사람에게 선하고 순수한 사랑을 나누라고 말한다.
-시리즈에 걸쳐 라라 진이 성장함에 따라 라나 콘도르 배우 본인도 성장한 지점이 있나.
=물론 있다. 배우로서가 아닌 인간으로서 내면을 들여다보고 성장할 수 있게 만드는 작품을 만나는 일은 매우 드물다. 나는 아주 어릴 때 미국인 가정에 입양됐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혼란스러웠다. 그래서 아시아 문화를 탐구하고 베트남계 미국인으로서 나의 정체성을 탐구할 필요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이제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안다. 영화를 촬영한 건 2년 반 정도밖에 되지 않지만 인생 전체에 걸쳐 학습한 것만 같다. 나는 정말 자랑스러운 아시아인이라고 아주 높은 곳까지 올라가 소리치고 싶다.
-2018년 여름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과 <서치> 등과 함께 ‘아시안 어거스트’를 이끈 장본인으로 꼽히고 있다. 할리우드 현지에서도 이를 실감했나.
=할리우드에서 다양성이 확장되는 시기에 내가 작은 부분이나마 일조한 것 같아서 매우 감사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람들이 우리의 말에 귀 기울이고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느꼈다. 그만큼 과거에 아시아 배우가 주연을 맡는 일이 드물었기 때문일 것이다. 훌륭한 아시아계 배우들이 앞서 기반을 다진 덕분에 지금과 같은 놀라운 일이 벌어질 수 있다. 아시아 역시 세계의 일부라고, 우리가 표현할 수 있는 캐릭터는 아주 다양하며 전처럼 바보 같은 캐릭터들만 계속 연기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낼 수 있다. 배우뿐만 아니라 다른 아시아 작가, 감독, 프로듀서들도 다양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는 열정을 갖고 있다.아직 갈 길이 멀지만 우린 옳은 길을 가고 있고, 그저 열심히 일을 하고 싶다. 지금 세계는 변화의 과정에 서 있다. 여성과 남성, 아시아 여성과 남성들은 계속 발전을 거듭해왔고 그 여정에 함께할 수 있어 흥분된다. 더 큰 진보와 도약을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