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플랫폼 전쟁] OTT는 관객과 시청자를 어떻게 바꾸었나 ①
2020-03-18
글 : 임수연
OTT 플랫폼은 방송과 영화 시청 패턴을 어떻게 바꾸었는가... 플랫폼별 전략 차이와 한국 업체들의 해외 진출 가능성

콘텐츠를 사랑하는 A씨는 드라마 <스토브리그>의 팬이다. 본방을 챙겨보고 앞부분 10~20분가량을 놓치면 ‘퀵 VOD’ 서비스를 이용해서 따라잡고 다시보기로 무한 복습하는 그에게 웨이브 가입은 필수였다. 하지만 지상파 3사의 콘텐츠를 제공하는 웨이브에서는 CJ E&M 계열사와 JTBC 방송을 볼 수 없다. tvN 드라마 <방법>을 보기 위해 티빙을 추가 가입한다. 봉준호 감독의 <옥자> 때문에 알게 된 넷플릭스에서는 요즘 <넥스트 인 패션> <아이 엠 낫 오케이>를 애청하고 있다. 친구에게 추천받은 해외 드라마 <체르노빌> <킬링 이브>를 보기 위해 접한 왓챠플레이는 어떤 플랫폼보다 다양한 영화를 보유하고 있어 계속 월정액을 내고 사용할 예정이다. 최근에는 ‘덕질’하는 아이돌이 나오는 <고막 메이트>가 가장 빨리 공개 되는 시즌 앱을 설치했고…. 아, 숨 쉬듯이 함께하는 유튜브를 빼먹었다. 중간 광고 없이 영상을 볼 수 있게 해주는 유튜브 레드에 가입한 것은 A씨가 지난해 가장 잘한 일 중 하나다. 양준일의 영상을 광고의 방해 없이 감상할 수 있음에 감사드리는 A씨다. A씨만큼은 아닐지라도 2개 이상의 OTT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은 더이상 특별한 일이 아니게 됐다. 2016년 한국 서비스를 시작한 넷플릭스가 쏘아올린 공은 전세계 미디어 지형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포스트 넷플릭스’로 요약할 수 있는 OTT 시장의 지각변동은 거대 공룡 기업 디즈니가 가세하면서 가속화됐다. 미국에서 이틀 내 무료 배송을 보장하는 아마존 프라임 회원 1억5천만명은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멤버십을 이용할 수 있고, 워너미디어의 HBO 맥스, NBC 유니버설의 피코크 등도 서비스를 시작했다. 한국은 옥수수와 푹이 합작한 웨이브가 넷플릭스의 대항마로 먼저 출사표를 던졌다. 넷플릭스가 한국 서비스를 시작한 2016년 1월 함께 론칭했던 왓챠플레이도 꾸준히 회원을 모으고 있고, 올레TV 모바일에 뿌리를 둔 시즌도 있다. 유튜브는 <워크맨> <자이언트 펭TV> 등 끊임없이 새로운 이슈를 생산하고 있다. 디즈니+나 애플TV+가 한국 진출을 한다는 이야기가 간간이 전해지는 가운데, 최근 업계의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은 3월 내 공식 발표를 목표로 하는 CJ E&M과 JTBC의 합작 OTT 플랫폼이다. CJ E&M이 기존에 운영하던 OTT 플랫폼 티빙을 새 단장해 선보일 예정이다.

시즌의 오리지널 콘텐츠 <고막메이트>.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기묘한 이야기>.

소비자 필요에 따라 선택해 즐기는 서비스

이제 막 발을 뗀 토종 OTT의 각축전에서 중요한 점은 이들이 거대 통신사의 지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1억6500만명에게 받는 월정액을 기반으로 공격적인 투자를 하는 넷플릭스를 규모로 이길 수 있는 플랫폼은 한국에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휴대전화를 보유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입하는 통신사를 내세우면 초반 가입자를 확보하는 데 훨씬 수월할 수 있다. SK텔레콤(이하 SKT)과 지상파 3사가 참여한 웨이브는 SKT 이용자들에게 접근성이 높다. 특정 요금제 가입자는 무료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거나 혹은 웨이브 전용으로 쓸 수 있는 데이터를 제공하는 요금제를 고려할 수도 있는 식이다. 웨이브는 통신사 혜택이 아니라도 월정액을 내고 서비스를 이용하는 층을 늘려나가 2023년까지 유료 가입자 500만명을 달성하겠다는 야심찬 목표를 세웠다. 이희주 콘텐츠웨이브 정책기획실장은 “SKT의 마케팅이 가장 큰 역할을 할 것이다. 실제로 출범 이후 크로스 가입자들이 생각보다 더 많았다”고 밝혔다. 통신사의 기술력을 플랫폼에 활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가령 “SKT의 기술력이 VR이나 AR 콘텐츠와 협력을 할 수 있게 돕고 SK 연구소가 갖고 있는 검색엔진을 웨이브에 적용하는 것을 검토”(이희주 콘텐츠웨이브 정책기획실장)할 수 있다. KT 회원에게 친숙한 시즌은 콘텐츠 품질에 공을 들이고 있다. 유현중 KT 모바일 미디어사업담당 상무는 “플락음원이 선호받는 것처럼 영상도 결국 좋은 화질과 사운드가 관건”이라고 전했다. “5G 서비스가 시작되면서 모든 통신사가 1080p 해상도의 영상을 제공할 수 있다. 그런데 데이터 전송속도가 4Mbps냐 8Mbps냐에 따라 또 퀄리티가 다르다. KT에서는 같은 1080p 해상도에서도 4K급 이상의 화질을 만날 수 있다.” 그 밖에 서울대, 포항공대, 카이스트 출신의 엔지니어가 모인 벤처 기업 왓챠에서 파생된 왓챠플레이 같은 사례도 있다. 실제 영상을 클릭하거나 감상해야 시청 패턴에 반영이 되는 넷플릭스와 달리 왓챠플레이는 왓챠 앱에서 10~30개의 별점만 남겨도 개인화된 취향 파악이 가능하다. 수천개의 취향 클러스터(시청 패턴을 근거로 비슷한 취향을 가진 그룹에 포함시키는 것)에 따라 추천작을 제시하는 넷플릭스와의 차이다. “적어도 한국에서는 엄청나게 많은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다. 왓챠가 보유한 별점이 네이버의 40배가 넘는다. 처음부터 개인화 기술을 전문으로 했기 때문에 개발자들이 머신러닝(인간의 학습 능력과 같은 기능을 컴퓨터에서 실현하고자 하는 기술 및 기법)과 딥러닝(사물이나 데이터를 군집화하거나 분류하는 데 사용하는 기술)을 이용해 유저들의 취향을 파악해 추천 알고리즘을 만드는 일이 가능했다.”(박태훈 왓챠 대표) 한편 CJ E&M과 JTBC의 합작 OTT 플랫폼은 모기업이 스튜디오드래곤, JTBC 스튜디오와 같은 제작사를 갖고 있는 만큼 또 다른 시너지를 기대할 만하다. 할리우드 같은 스튜디오 시스템을 안정적으로 구축해내면 거대 제작비를 조달하거나 타사와 제휴를 맺는 과정도 보다 수월해진다. 한국에서 넷플릭스로 대표되는 OTT 플랫폼이 처음 소개됐을 때 화제가 된 것은 그들의 공격적인 투자 규모였지만, 국내 OTT는 콘텐츠를 확보하는 방식이 다소 다르다. 넷플릭스의 경우 단매(작품 이 발생시키는 실매출과 무관하게 계약 기간 동안 일정 금액으로 판권을 사오는 방식)로 콘텐츠를 구입한다. 글로벌 단위로 콘텐츠를 공급하는 넷플릭스는 규모의 경제가 가능하기 때문에 비용이 많이 드는 정액 판권을 선호하고, 토종 OTT는 매출을 공유하는 수익배분제(RS·Revenue Share) 계약을 통해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으로 많은 수의 콘텐츠를 확보한다. 한국 소비자가 넷플릭스보다 왓챠플레이에서 다양한 영화를 감상할 수 있는 이유다. 물론 토종 OTT도 높은 비용을 들여 콘텐츠를 수급할 때가 있다. 왓챠플레이는 <HBO>의 <왕좌의 게임> <체르노빌>, 의 <리틀 드러머 걸: 감독판> <킬링 이브>를 독점 공개했다. “드라마를 수급하면 어느 정도 수익을 올릴 수 있나 정량분석이 가능하다. 해외 드라마가 비싸더라도 지를 수 있는 마지노선을 계산할 수 있다”(박태훈 왓챠 대표)는 게 한국 OTT측의 설명이다.

‘유튜브 크리에이터와의 대화’ 행사에 참석한 백종원, <워크맨>의 고동완 PD, <자이언트 펭TV>의 이슬예나 PD(왼쪽부터).
왓챠플레이에서 볼 수 있는 <HBO>의 <체르노빌>.

넷플릭스 VS 디즈니

미국에서는 넷플릭스와 디즈니 중 누가 최종 승자가 될 것인가를 놓고 업계의 관심이 뜨겁다. 디즈니와 HBO, NBC 유니버설 등이 OTT 사업에 뛰어들면서 언젠가 디즈니 영화와 <오피스> 시리즈를 떠나보내야 하는 넷플릭스가 2등으로 내려올 수 있지 않냐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조사기관 이마케터의 에릭 해그스트롬 같은 예측 전문가는 “애플TV+와 디즈니+의 신규 가입자는 궁극적으로 제로에서 출발한다. 넷플릭스에서 가입자를 데려오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이라며 선점효과를 강조했다. 반면 온라인 영화 금융 시장 <슬레이트>의 스테판 패터놋 CEO는 영국 IT 전문 매체 <테크레이더>에 “아마 디즈니가 시장을 지배하게 될 것이다. 실시간 스포츠 중계의 선두주자 ESPN, 가족 친화적인 프랜차이즈를 보유한 디즈니+, 넷플릭스와 가장 유사하며 천천히 그들을 따라잡고 있는 훌루를 보유한 곳”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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