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기사는 [콘텐츠 전쟁 1] 공룡 기업을 꿈꾼다! '카카오M', '스튜디오드래곤', '제이콘텐트리'에서 이어진 기사입니다.
지난호 <씨네21>은 넷플릭스의 등장 이후 가속화된 플랫폼 전쟁을 주제로 미디어 산업의 현재를 살폈다. 새로운 플랫폼 시장의 성패는 그들이 보유한 콘텐츠에 달려 있고, 지금 전세계 크리에이터들은 경쟁력 있는 콘텐츠를 생산하기 위해 분투 중이다. 한국에서도 월트디즈니컴퍼니가 마블 스튜디오와 픽사 스튜디오, 루카스필름 등을 인수한 것과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카카오M과 스튜디오드래곤, 제이콘텐트리는 충무로의 대표 제작사들을 하나씩 인수하며 몸집을 키워나가고 있다. 모회사를 공유하게 된 파트너들간의 협업을 중심으로 탄생할 새로운 콘텐츠들이 가져올 변화를 이번 특집을 통해 분석한다. 또한 공룡 기업들이 영입한 크리에이터의 면면을 중심으로 이들이 무엇에 주안점을 두고 있는지 파악해보았다. 한편 OTT 플랫폼은 콘텐츠 전쟁에 참전한 제작사들이 전투를 벌이기 위해 찾는 장이 됐다. 콘텐츠의 힘을 어느 때보다 절감하고 있을 제작사들이 선보이는 기대작들을 플랫폼별로 소개한 기사를 덧붙인다.
영화, 드라마, 공연 제작사 등 그동안 각자의 영역에서 각자의 특색에 맞는 콘텐츠를 만들어왔던 이들이 힘을 합친 것은 역동적으로 변동하는 시장에 대응하기 위한 움직임으로 보인다. 김재중 무비락 대표는 “한국영화계가 싸워야 할 대상은 한국 안에만 있지 않다. 할리우드영화와 애플TV와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와 경쟁해야 한다. 경쟁 대상이 다양하고 더 넓어지니 이에 대비하는 의미가 있지 않을까. 인수합병을 하고, 지분을 인수하며 힘을 합쳐 더 좋은 양질의 콘텐츠를 만드려는 게 아닌가”라고 최근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또한 기존 영화산업이 극장 수익에 크게 기댔던 것과 달리 드라마는 광고부터 해외 수출로 인한 수익까지 기대할 수 있다. 관객이 익숙한 캐릭터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를 선택하는 일이 점차 늘어나면서 기존의 IP를 활용하는 프로젝트도 물살을 탔다. <신과 함께> 시리즈는 드라마판을 일찌감치 논의 중이고, <나쁜 녀석들> 시리즈가 마동석을 중심으로 한 캐릭터와 세계관을 극장가로 확장하면서 흥행에 성공했다. <걸캅스> 역시 OCN 드라마로 재탄생할 예정이다. 이렇듯 IP의 유연한 확장이 보장되면 포맷부터 국경을 넘나들 수 있다. 565만 관객을 동원하며 무비락의 대표작이 된 <청년경찰>은 일본에서 10부작 드라마로 나올 예정이다. 일본에서 시즌제 드라마를, 혹은 영화 버전을 만들 수도 있고 일본 드라마에 담긴 에피소드를 한국으로 가져와 한국 드라마 <청년경찰>을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이 김재중 대표의 설명이다. 무비락은 현재 드라마·영화 동시 제작 프로젝트도 준비 중이다. “이점이 많다. 배우진이 그대로 갈 수 있고, 미술 비용도 절감된다. 가령 의학 드라마의 경우 병원 세트를 그대로 활용하는 게 가능하다.”(김재중 대표)
창작자 입장에서 느끼는 한계를 극복할 돌파구로 드라마를 찾으면서 서로의 니즈가 맞아떨어진 사례도 있다. <부산행>(2016)의 연상호 감독은 tvN 드라마 <방법>의 대본을 썼고, 스튜디오드래곤이 먼저 그에게 드라마를 제안하며 성사됐다. 연상호 감독은 “적당한 볼 거리가 있어야 극장에 간다는 플랫폼의 성격이 명확해지다 보니 내가 갖고 있는 어떤 이야기들은 영화에 잘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도 하게 됐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드라마에 관심을 갖게 됐다”며 최근 다방면에 걸친 활동의 의미를 전했다. “최근 몇년 사이 드라마 플랫폼이 급속도로, 역동적으로 변하고 있다. 한국영화 르네상스라고 불리던 시대에 극장 시스템이 역동적으로 바뀌었던 것처럼, 이 시기가 창작자에게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창작자로서 영화만 하는 것이 오히려 다양한 것을 만드는 데 방해가 된다는 생각이 든다.”
무너진 플랫폼의 경계, 그 이면
플랫폼의 경계가 무너지면서 중간 다리 역할을 하는 신생 제작사들도 나타났다. 네이버웹툰의 자회사인 스튜디오N은 웹툰, 웹소설이 양질의 콘텐츠를 만드는 제작사 및 창작자들을 만나 영상물로 영역을 확장할 수 있게 연결하는 브리지 회사다. 지난해 방영된 드라마 <타인은 지옥이다> <쌉니다 천리마마트>는 모두 네이버웹툰 원작을 영상화한 작품이었고 영화 <비질란테> <상중하> <연의 편지> 등을 준비 중이다. 레진스튜디오는 오리지널 콘텐츠를 먼저 선보였다. tvN 드라마 <방법>을 제작한 변승민 레진스튜디오 대표는“레진스튜디오의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을 통해 회사의 기본 역량을 잘 키워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레진코믹스의 웹툰을 영상화하는 시도를 했을 때 더 빠르고 넓은 범위의 시장 접근이 가능하다”고 전했다. “하나의 IP를 다변화시켜 활용한다는 전략은 아주 오래된 얘기다. OSMU(one source multi use, 하나의 자원을 토대로 다양한 사용처를 개발해내는 것)와 같은 용어는 20여년 전에도 있었다.지금 시장의 키플레이어, 감독과 작가, 프로듀서의 다양성이 더 중요하다. 기획 단계에서 다양한 영역에 있는 기획자들이 다른 영역에 접근할 수 있는 브리지 역할을 해주고 있다. 상업영화 감독이 드라마 작가가 된 드라마 <방법>처럼 포지션을 바꿨을 때 나오는 새로움을 시도하고 있다. 올해 크랭크인하는 영화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2020)는 잠재적 성장 가능성이 있는 배우로부터 기획이 시작된 프로젝트다. 기획과 원작만 보고 특정 배우를 먼저 떠올렸다.”
하지만 거대 제작사와 플랫폼 중심으로 재편되는 환경에 우려를 표하는 입장도 있다. 연상호 감독은 “하나의 콘텐츠를 계속 확장한다는 측면에서 거대 기업으로 뭉치는 것이 반드시 좋을까, 개인적으로는 비관적으로 본다”는 의견을 조심스럽게 냈다. “일본의 만화 산업을 보면 만화로부터 영화나 드라마, 애니메이션과 게임이 나오면서 콘텐츠의 생명력을 이어간다. 그들을 아우르는 하나의 회사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잘 짜여진 네트워크 덕분이다. 별개의 섬처럼 존재하는 각 산업을 묶을 수 있는 기획이나 키워드가 필요한 것이지 하나의 법인으로 묶는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서로 헐거워지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CJ의 콘텐츠가 CJ의 다른 자회사에서 다른 형식으로 검토될 때 이것이 무산되면 그냥 끝나는 건데, 쇼박스나 NEW로도 유연하게 아이템이 옮겨갈 수 있다면 오히려 확장성이 커지지 않을까.”
더군다나 콘텐츠 제작사는 플랫폼을 만들고, 플랫폼은 오리지널 콘텐츠를 통해 제작 파트를 강화해가는 풍경은 해외 사례에서 이미 예고되어 있다. 넷플릭스는 현재 가장 많은 콘텐츠를 생산하는 제작사가 됐고, 디즈니의 OTT 플랫폼 디즈니+는 출시 첫날 가입자 1천만명을 돌파했다. CJ ENM과 JTBC의 합작 OTT가 출범하고 메신저를 기반으로 한 카카오M의 자체 플랫폼이 생기면 또 한번 콘텐츠 산업은 지각변동을 겪을 것이다. 영화부터 드라마, 음악과 디지털 콘텐츠까지 아우르며 생산과 유통을 책임지는 공룡 기업의 등장은 크리에이터에게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을까. 익명의 한 영화 제작자는 “넷플릭스와 같은 플랫폼은 이름값 있는 감독에게만 손을 내밀고 신인에 대한 리스크는 짊어지려 하지 않는다”며 거대 기업에 선택받지 못한 창작자는 그 입지가 더 좁아질 수 있음을 우려했다. 또한 파워 있는 캐릭터와 세계관, 하나의 IP를 통해 파생된 콘텐츠가 각광받는 최근의 트렌드가 모든 소비자의 욕망을 대변하지는 못한다. 반면 다양한 파트너십이 제공할 기회는 예전이라면 불가능했던 시너지를 일으켜 새로운 문을 열 수 있다. 모든 것을 카카오M과 스튜디오드래곤, 제이콘텐트리가 할 수는 없다. 그들과 협업하거나 나름의 경쟁력을 갖고 살아남을 중소 제작사들의 가능성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결국 콘텐츠 산업은 콘텐츠의 질로 평가받는다. 지금의 지각변동이 갖는 의미가 무엇일지, 우리는 그 결과물을 통해 확인할 수밖에 없다.
대세는 디지털 콘텐츠!
드라마와 영화, 예능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것만큼이나 TV와 유튜브의 구분 역시 헐거워지고 있다. JTBC스튜디오는 스튜디오 룰루랄라를 통해 박준형의 <와썹맨>, 장성규의 <워크맨> 등을 성공시켰다. 다만 이들이 거대 스튜디오가 투자하는 만큼 안정적인 수익모델을 만들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정지원 JTBC 홍보팀장은 “유튜브 예능의 수익은 동영상 광고와 브랜디드 콘텐츠가 메인이다. 이제 디지털스튜디오를 시작한 지 3년차에 접어든 것을 생각하면 MCN 회사 대비 수익 측면은 나쁘지 않다. 다만 사업의 규모가 아직은 작은 부분에 아쉬움이 있으며 규모를 키워야 한다는 미션이 있는 건 사실이다. 그래서 킬러 콘텐츠를 베이스로 스핀오프를 만들고 세분화된 광고 시장을 공략한다거나 장르의 확장 그리고 커머스, MD사업 등의 영역으로 접근하며 확장 가능성과 방향을 살펴보고 있다”고 전했다. 카카오M은 “모바일 시청 습관에 집중해서, 모바일에서 보기 때문에 더욱 재미있고 흥미로운 콘텐츠들을 만드는 것”(한수경 카카오M 커뮤니케이션팀장)을 목표로 삼았다. 레진스튜디오가 제작하는 <아만자>는 이미 촬영을 마쳤다. 카카오M과 함께 선보일 숏폼 콘텐츠로, 15분씩 총 10회로 제작됐다. “그동안 숏폼은 연애 드라마 등으로 주로 소비됐는데, 이와는 다른 소재와 시선으로 영화적인 부분을 강조한 퀄리티 좋은 작품을 선보이고 싶었다. 지금 시대에 맞춰, 작품의 호흡에 가장 적합한 플랫폼과 형식을 찾아가는 것을 준비하고 있다.”(변승민 레진스튜디오 대표) 뉴 아이디(NEW ID)는 차세대 디지털 콘텐츠를 개발하고 글로벌 플랫폼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지난해 10월 출범한 NEW의 디지털 콘텐츠/플랫폼 계열사다. 김조한 NEW ID 이사는 아직 국내에서는 생소한 패스트 서비스(Free ad-supported TV (FAST) service. 광고가 나오는 대신 인터넷만 연결되어 있으면 방송을 볼 수 있다.-편집자) 시장을 소개했다. “NEW가 보유한 콘텐츠를 글로벌 디지털 시장으로 확대하고 글로벌 시장에 선보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기존 플랫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방송 채널을 만들어 K팝 및 디지털 콘텐츠를 만들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