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비평]
'다크 워터스'가 보통 사람들의 전쟁을 말하는 방식
2020-04-22
글 : 송형국 (영화평론가)
트럼프 시대의 카메라

<다크 워터스>의 스크린에선 카메라가 수평이동하는 경우가 잦다. 유난하다 싶을 정도다. 쓰임새도 다채로워 ‘수평 트래킹의 뷔페’라 일컬어도 됨직하다. 토드 헤인즈의 카메라가 왜 이리 자주 트랙을 타는 걸까. 고다르가 뜻한 것처럼 카메라가 옆으로 움직일 때 소실점은 끊임없이 바뀐다. 삼각대 위에 멈춰 있을 때 한개의 소실점만 갖는 카메라는, 그렇게 트랙 위에서 자신의 숙명을 넘어선다. 1인칭 시점만으로는 온전히 담을 수 없는 시각적 진실. 이동하는 렌즈는 시시각각 초점 대상을 바꾸며 사태의 실체에 다가서려 안간힘이다. 여기까지라면 수평 트래킹에 대한 고전적 정의일 수 있겠다. 토드 헤인즈 감독과 에드워드 래크먼 촬영감독의 횡적 움직임에는 추가되는 것이 있다. 눈앞의 피사체들에 의해 자꾸만 저 먼 곳이 가려지는 데 대한 안타까움이 얹어진다. 오프닝숏을 비롯해 숱한 장면들에서, 이동하는 카메라 바로 앞 사물들은 화면을 몽땅 가렸다가 겨우 프레임 밖으로 나간다. 카메라가 멈춰 있을 때도 렌즈 바로 앞에 있어서 커다래진 인물의 몸이 종종 스크린을 덮고 지나간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는데, 우리의 눈은 한치 앞의 것들에 의해 가려지곤 한다는 듯. 감독이 이를 모색한 뜻에 대해서는 조금 뒤에 다시 생각해보기로 하자.

글로벌 기업 듀폰이 ‘테프론’이라는 상표로 판매한 화학물질 PFOA는 프라이팬에 코팅하면 음식물이 눌어붙지 않게 해준다. 한국을 포함한 전세계 조리도구에 수십년간 사용됐다. 듀폰의 테프론 판매 수익은 매년 10억달러에 달했다. 그런 와중에 테프론 제조 시설 주변에선 가축들이 죽어나갔고 공장 노동자 가운데 암 발병이 잇따랐다. 변호사 롭(마크 러팔로)이 고향 농부의 요청으로 소송을 제기한 때는 1998년이다. 싸움은 지난했다. 듀폰 한국 지사는 2006년 서울의 한 호텔에서 ‘PFOA 무해성 강조 기자간담회’를 열고 “현재까지 인체 유해성은 밝혀진 바가 없다”고도 했다. 테프론이 신장암, 고환암, 궤양성 대장염 등의 중증질환과 직접적 연관이 있다는 연구 결과는 2012년에야 나왔다(삼성반도체 공장 노동자 황유미씨가 백혈병으로 숨진 때는 2007년. 삼성측의 산업재해인정과 공식 사과는 그로부터 11년여 뒤에 이뤄졌다).

진실 규명과 승리는 다르다

이미 알려진 실화다. 그리하여 영웅의 집요한 추적으로 진실을 밝혀냈다는 이야기일까. 편리한 짐작은 이 영화의 절반 정도가 지날 때쯤 바뀌게 된다. 근자의 연관 영화 <스포트라이트>가 ‘어떻게 밝혀낼 것인가’에 대한 탐사였고 <더 포스트>가 ‘밝힐 것인가 말 것인가’를 놓고 벌인 투쟁이었다면 <다크 워터스>는 진실 규명이 곧 승리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21세기 자본주의에 걸맞은 현실 진단을 내놓는다. 언론 활동에 빗대 <스포트라이트>는 취재, <더 포스트>는 편집을 말한 영화로 요약한다면 <다크 워터스>는 진실을 알린 이후 자꾸만 새로 시작되는 싸움을 냉정하게 전하는 작품이다. 듀폰이 환경 당국으로부터 거액의 벌금을 부과받은 때는 2003년. 이후 듀폰의 식수원 오염과 주민 질병 사이의 연관성을 밝혀내기까지는 9년의 시간이 흘러야 했다. 그러는 사이 변호사 롭의 가정과 그의 건강은 피폐해진다. 의학적 연관이 밝혀지면 배상하겠다고 합의한 듀폰은 2012년 결과가 나오기 무섭게 합의안을 파기한다. 10여년간 고통을 겪은 롭과 주민 개개인은 골리앗을 상대로 새로운 싸움을 시작한다.

이렇게 사태를 끝없는 터널처럼 만드는 배경으로 <다크 워터스>가 놓치지 않는 지점은 대기업이 만들어내는 일자리 문제다. 지역신문에는 “불만 품은 농부, 도시 최대의 고용주를 고소하다”라는 제하 기사가 실린다. 문제를 제기한 농부는 지역사회에서 설 자리가 없어진다. 용기 있게 집단소송 대표로 나선 주민은 외출할 때마다 이웃들로부터 해코지당한다. 듀폰이 위기에 처하면서 일자리가 줄어든 지역 민심은 날이 갈수록 흉흉해진다. 이로써 민-민 갈등이 횡행한다. 1개 대기업 공장이 도시 전체를 먹여살리는 경우는 한국에도 적지 않으므로 이런 상황은 우리에게 익숙하다. 해당 공장이 폐쇄되거나 대규모 인력 감축을 단행할 때 주변 상권이 무너지고 지역경제 전체가 흔들린 사례도 우리는 적잖이 겪었다. 제조업 위기 시대에 하나의 대기업에 의지하는 도시는 지금도 한국에 몇곳이 더 있다. 의존적이던 공동체에 고용 문제가 생겼을 때, 싸워야 할 대상이 헷갈리면서 약자들끼리만 투쟁하는 일이 <기생충> 같은 영화 속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점 또한 낯익다. 일자리가 사라진 미국의 러스트벨트 도시들도 비슷했다. 이 약점을 파고든 이가 트럼프 대통령이다.

집단소송에 나설 주민의 첫 증언이 나오는 극중 2000년 말, 영화는 주니어 부시가 미국 대권에서 승기를 잡는 TV뉴스를 비춘다. 지역민들의 넉넉한 살림살이가 상당 부분 듀폰에 빚지고 있었음을 고백하는 이 장면에서 미국 관객이 현실의 대통령 선거를 떠올리지 않기란 쉽지 않다. 트럼프 후보를 당선에 이르게 한 일등공신은 누가 뭐래도 일자리 공약이었다. 미국의 블루칼라들은 중국이 당신들의 일자리를 죄다 빼앗아갔다고 소리 높여 외치는 트럼프에 열광했다. 하지만 “(미국의) 500만명 넘는 제조업 노동자가 2000년 이후 일자리를 잃었다. 그중 400만개 이상의 일자리가 자동화 때문에 사라졌다”(<보통 사람들의 전쟁>, 앤드루 양 지음). 제조업 일자리 급감은 교역 때문이 아니라 기술 탓이라는 게 수많은 연구기관들의 한결같은 조사 결과다. 대중의 눈을 가리는 손쉬운 분노는 올해도 트럼프의 재선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다크 워터스>에서 인물이나 사물이 자꾸만 렌즈 앞에 어른거리며 화면을 가리는 이유가 설명되는 것 같다. 토드 헤인즈가 이 영화에서 고집스레 추구하는 움직임은, 트럼프 시대와 무관하지 않은 운동 이미지다. 진실은 멀리에 있고 이를 가리는 것들은 대개 눈앞에 있다. 최근 <1917>이 여러 차례 보여줬듯 현대영화에서 피사체가 화면 전체를 가리고 지나가는 순간 나눠 찍은 영상이 합성되곤 하지만, <다크 워터스>에선 현실에서 합성된 진실이 그 화학작용 탓에 실체를 숨긴다.

“뭐가 어떻다는 거죠?”

자국의 대통령을 끔찍이도 싫어하는 미국 지식인들이 요즘 시골 민심을 훑어보고 나면 낙담에 빠진다고 한다. 텍사스와 켄터키, 캔자스 등지의 다수 주민들이 “진심으로 트럼프를 존경하고 지지하는 눈빛을 보내”기 때문이란다. 영화는 변호사 롭이 시골 출신임을 종종 강조한다. 문제를 처음 제기하고 나선 이도 시골 농부다. 그가 극 초반 롭에게 오염된 하천을 보여주는 장면에서, 롭은 문제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묻는다.“뭐가 어떻다는 거죠?” “눈이 멀었어? 돌들이 다 하얗잖아.”문제의 화합물은 무색투명해서 하천은 맑아만 보였다. 강바닥 돌들이 탈색된 것까지 들여다볼 줄 알아야 했다. 듀폰이 저지른 ‘미필적 고의’는 백화점이 무너진 1995년 이후 한국인에게도 익숙한 법률용어가 됐다. 공기 중에 퍼져나간 가습기살균제 입자처럼 보통 사람들의 눈에 띄기 어렵다는 뜻이 담긴 용어이기도 하다. 악덕 기업의 비리를 밝혀내는 게 핵심이 아닌 이 영화에서, 우리 삶 속에 녹아들어 있지만 쉽게 알아차리지 못하는 유해 물질은 보통 사람들의 전쟁을 통해 가까스로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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