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브리 스튜디오의 작품들이 지난 2월부터 4월까지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되며 다시금 회자되고 있다. 지브리를 대표하는 인물은 단연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다. 수작업 방식을 고수해온 그의 굳건한 철학이 없었더라면, 지브리는 2D 애니메이션 분야의 최정상에 오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브리를 하야오 감독 한 명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지브리 스튜디오가 지금의 위치에 오르기까지는 많은 이들의 노고가 있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과 함께 지브리 스튜디오에 몸담았던 주요 인물들을 알아봤다.
지브리의 시작
지브리 스튜디오는 전신은 애니메이션 제작사 ‘톱 크래프트’다. 톱 크래프트에서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를 제작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1년 후 출판사 도쿠마 쇼텐의 투자를 받아 톱 크래프트를 인수하고, 명칭을 변경해 ‘지브리 스튜디오’를 설립했다. 이 과정에서 하야오 감독과 함께 지브리 설립을 이끈 이들이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과 애니메이션 잡지 <아니메쥬> 편집장으로 역임하고 있던 스즈키 도시오다.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과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애니메이션 제작사 ‘도에이’에서 선후배 관계로 처음 만났다. <태양의 왕자 호루스의 모험>, <루팡 3세>등으로 호흡을 맞췄으며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서 하야오 감독이 연출이, 이사오 감독이 프로듀서를 맡아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후 함께 지브리를 설립하고 <천공의 성 라퓨타>에서도 같은 역할을 수행했다. 그렇게 50여년의 세월 동안 협력하며 오랜 친구이자 동료로 활동했다. 스즈키 도시오 프로듀서는 서적 <만화의 DNA>에 실린 인터뷰에서 이런 두 감독의 관계에 대해 “보통 사람을 알기 어려울 정도로 특별한 감각이다. 미야자키씨와 대화하면 어떤 경우에도 다카하타씨 이야기가 나온다. 미야자키씨가 ‘내가 꾸는 꿈에는 언제나 파쿠씨(이사오 감독의 별명)가 나온다’고 말한 적도 있다”고 전했다.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은 직접 연출한 작품들로도 지브리의 위상에 힘을 실었다. <반딧불이의 묘>,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 <가구야공주 이야기> 등을 선보이며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 가상의 공간을 무대로 거대한 스케일과 극적 사건들이 자주 등장하는 하야오 감독의 작품과 달리, 이사오 감독은 일본의 시대상을 정교하게 반영했으며 일상 속 인물들의 내면을 깊게 파고들며 또 다른 매력을 자랑했다. 그렇게 이사오 감독은 지브리 설립부터 제작팀이 해체한 2014년 직전까지 지브리의 최전선에서 뛰었으며, 2018년 향년 82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50년이 넘는 세월을 이사오 감독과 함께한 하야오 감독은 그의 장례식에서 1963년 처음 만났을 때, <태양의 왕자 호루스의 대모험>(1968) 협업 시절 등을 회상하며 착잡한 심경을 전했다.
이런 하야오, 이사오 감독이 작품을 제작할 수 있게끔 물심양면으로 지원한 사람이 스즈키 도시오 프로듀서다. 그는 <아니메쥬> 기자로 일하며 이사오 감독의 <태양의 왕자 호루스의 대모험>, 하야오 감독의 <루팡 3세 칼리오스트로의 성> 등을 취재했다. 그렇게 두 감독과 연을 쌓은 스즈키 도시오는 그들의 작품에 직접 참여하기로 결심했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의 투자가 도쿠마 쇼텐으로부터 “원작이 없다”는 이유로 퇴짜를 맞았을 때, 직접 하야오 감독에게 원작 만화를 만들 것을 제안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만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는 <아니메쥬>에 실렸고, 만화는 큰 인기를 끌며 영화화로 이어졌다. 지브리 스튜디오의 설립을 위해 도쿠마 쇼텐을 찾아가 투자를 받아낸 것도 도시오의 몫이었다. 이후 스즈키 도시오는 지브리의 프로듀서로서 제작 환경을 조성하고 홍보, 인사 등 운영 전반을 맡았다. 2020년 1월 성사된 지브리의 넷플릭스 공개도 그가 주도했으며, 지금까지도 지브리와 관련된 인터뷰, 프로젝트 등을 책임지고 있다.
본 기사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과 함께한 지브리의 사람들 ②'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