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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오늘의 엄마> 펴낸 강진아 감독 - 상실을 향해 담담히 나아가는 법
2020-05-07
글 : 남선우
사진 : 최성열

애인의 세 번째 기일이 가까워진 겨울, 스물아홉 정아는 언니 정미로부터 엄마의 건강검진 결과가 이상하다는 연락을 받는다. 또 한번의 작별을 예감한 정아는 엄마가 누워 있는 병원과 일상이 흘러가는 공간을 오가며 상실의 감각과 재회한다. 먹먹한 이야기를 삼삼한 문체로 좇은 소설 <오늘의 엄마>는 <환상속의 그대>를 연출한 강진아 감독의 첫 소설이다. 5년 만에 자신의 이름을 건 창작물을, 그 자신과 관객이 익숙해져 있는 형태가 아닌 방식으로 세상에 내놓기까지 분명 어떤 용기가 필요했을 테다. 그 용기 뒤에 숨은 속내 또한 궁금했다. 강진아 감독은 “정말 편하게, 솔직하게 말하겠다”며 뭉쳐 있던 마음 한구석을 펼쳐 보였다.

-2013년 첫 장편 연출작 <환상속의 그대>를 선보였고, 2015년 단편 <그게 아니고>를 발표한 이후 작품 활동이 뜸했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

=난 영화 만드는 걸 아주 재밌어했다. <환상속의 그대>를 개봉시키면서도 너무 즐거웠다. 하지만 개봉 이후 크게 수익이 나지 않으면서 내가 설계했던 지점이 어긋나기 시작했다. 같이 영화를 만든 동료들의 인건비를 제대로 지급하지 못해 마음에 압박이 오랫동안 남았고, 독립영화 시스템 안에서는 이런 일이 반복되리란 생각에 상업영화를 하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영화는 내 맘대로 찍고 싶으면서 갖춰진 환경만 빌려오겠다는 자세로 임하니 우여곡절이 많았다. 그러면서 5년간 두세편의 영화가 엎어졌다. 함께했던 배우, 스탭들에게 나만 믿으라고 했던 말들이 내게 화살로 돌아왔다. 어쩌면 내가 모든 걸 책임지겠다고 했던 게 너무 어린 생각이 아니었나 싶었다. 그제야 내가 무얼 좋아했는지, 무얼 하려고 했는지 다시 고민했다. 영화 만드는 게 참 좋으면서도 계속할 자신이 없더라. 더 슬펐던 건 매일매일 만들어온 캐릭터와 작품을 떠나보내는데도 별로 아쉽지 않았다는 거다.

-마음이 많이 지쳤기 때문일까.

=내가 만든 인물을 나도 잘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작사, 배급사 등으로부터 받은 의견을 취합해 만든 인물을 내가 사랑하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걸 깨달은 순간 목적은 하나였다. ‘내가 알 것 같고, 애정을 줄 수 있을 것 같은 인물을 만들어보자.’ 그게 2017년 중반쯤이다. 그러다보니 행동지문으로 이루어진 시나리오에 익숙한 내가 인물의 속마음을 써내려야만 했다. ‘생각했다’, ‘느꼈다’와 같은 말들을 쓰는데 이래도 되나 싶더라. (웃음) 근데 막상 쓰고 나니 너무 속이 시원하고 편했다.

-그렇게 소설 쓰기가 시작된 건가.

=처음부터 소설의 형태를 생각하고 쓴 건 아니었다. 항상 시나리오를 봐주는 친구들에게 내가 이런 걸 썼다고 가져가니 “시나리오도 아니고, 트리트먼트도 아니고, 도대체 뭘 한 거냐”고 되묻더라. (웃음) 결과적으로는 그게 소설 형식이었던 것이다. 그다음부터 장편소설을 쓰기 시작해 1년 반 동안 몇편을 완성했다.

-그렇게 완성된 소설 <오늘의 엄마>를 보니 <환상속의 그대>에 이어 죽음과 상실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어렸을 때부터 죽음에 대한 공포가 심했다. 죽으면 어떻게 될까 진심으로 두렵고 걱정된다. 의식하는 나, 인지하는 나의 존재가 사라진다는 걸 상상할 수가 없다. 요즘도 내가 죽으면 다음 세대의 기술에 맡겨달라고, 나를 냉동해달라고 말하곤 한다. 혼이 심장에 있는지 뇌에 있는지 몰라 정확히 어디를 냉동시켜야 할지는 모르겠지만.(웃음) 그래서인지 나는 자꾸 누군가가 떠나고 난 빈자리를 오래 들여다보고 만지는 성향이 되어버렸다. 그런 이야기를 계속하고 싶어진다.

-<오늘의 엄마>는 죽음에 따른 상실 그 자체보다 상실을 예감한 이가 일상을 살아가며 천천히 상실에 다가가는 이야기로 느껴졌다.

=소설의 많은 부분이 허구지만 편찮으신 어머니와 함께 병원에서 생활을 했던 것은 나의 경험이기도 하다. 이 소설을 쓰기까지 여러 계기가 있지만 거대한 사회적 슬픔과 일상의 개인적 슬픔을 통과해오며 일과 삶에서의 공백을 경험한 내가 다음 세계로 넘어가는 시간이 우선 필요했다. 그러다보니 담담히 상실을 향해가는 이런 소설이 나온 것 같다.

-그 과정의 중심에 세 모녀가 있고, 병원에서도 여성 인물들이 주변부에 위치한다.

=여성 서사를 의도하고 쓴 것은 아닌데 쓰고 나서야 내가 여성들간의 관계에 매력을 느낀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남성 인물을 내세워 이야기를 쓸 때보다 더 복합적으로 접근하게 되는 지점이 있다. 여성들과는 관계가 끝난 후에도 계속해서 뒤를 돌아보게 된다. 그 부분에서 매력을 느끼는데, 소설 속 여성 인물들 사이에도 그런 관계가 그려진 것 같다.

-여럿이 영화를 만들 때와 달리 홀로 소설을 쓰는 작업은 어땠나.

=나도 출판사 편집자를 만나기 전까지는 소설은 혼자 쓰는 것인 줄로만 알았다. 독자의 시선을 염두에 두지 못하고 써내려갔다. 1인 출판을 했다면 타인의 시선이나 의견 없이 또 다른 결과물을 만들어냈을텐데, 편집자를 만나면서 독자의 시선을 고민하는 공동 작업이 시작된 거다. 둘이 함께 균형을 맞추며 완성한 지금의 결과물이 혼자 쓴 버전보다 마음에 든다. 투고 당시의 원고를 다시 볼 엄두가 안 날 정도로. (웃음)

-원고를 직접 민음사에 투고했다고 들었다.

=맞다. 처음에는 독립출판도 생각했고, 소설을 역으로 시나리오화해서 제작사에 팔 생각도 했다. 실제로 시나리오로 만들어본 소설도 몇편 있다. 아, <오늘의 엄마>는 영화로 만들면 아무도 돈 주고 안 볼것 같아서 시나리오화를 시도해보지 않았다. (웃음) 정말 마지막이라고, 원고를 허공에 던진다 생각하고 출판사에 장편 여러 편을 투고했다. 간혹 영화감독으로서 청탁을 받고 출판하게 된 걸로 오해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게 아니라고 꼭 말씀드리고 싶다. 근면하게 글을 써왔던 사람으로서 다른 누군가에게 그런 식으로 무력감을 주고싶지 않다.

-앞으로 어떤 작품을 만날 수 있을까.

=써둔 장편소설이 몇편 있다. 소재도 서사도 다양하다. 이 소설들을 다듬는 시간을 가질 것 같다. 마지막으로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영화가 진행되지않는 동안 나를 먼저 탓하다가도 못난 맘으로 영화판을 탓할 때가 있었다. 내가 모르는 방식으로 세계가 작동하고, 나는 그 원리를 모른다고 생각하며 내게 오지않은 기회를 아쉬워했다. 그런데 문단에 아무 연고도 없는 내가 투고를 해서 책을 내게 됐다. 어쩌면 영화를 할 때도 내가 서툴렀을 뿐 영화판 자체가 나를 떠민 것은 아닐지 모른다고 생각하게 됐다. 이 책을 통해 그 점을 비로소 깨달아 고맙고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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